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26화 (126/200)

< 말 안해도 한 번 더 하려고 했다는군요 >

“현재 시간 16시 10분. Q1까지 20분가량 남았습니다.”

F1의 퀄리파잉은 45분 동안 Q1, Q2, Q3 총 세 번에 걸쳐 진행된다. 22명의 참가 선수 가운데, Q1에서 6명, Q2에서 6명을 탈락시켜 마지막 Q3를 치른다. 이때 Q3에서 폴포지션을 비롯한 탑10의 본선 레이스 그리드를 가리게 된다.

“유후후!”

아부다비, 야스 마리나 서킷의 주말. 레이스 시작 전, 이미 이곳은 축제 분위기였다. 관람 스탠드부터 잔디밭까지 서킷 주변으로 늘어선 사람들. 편한 옷차림과 응원 도구들을 들고 나타난 갤러리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두두두두두두둥.

퀄리파잉 예선이 있는 토요일 오후. 본격적인 퀄리파잉 시작 전, 게러지 안에서 대기 중인 서준하가 중계 화면에 잡혔다.

[Scuderia Ferrari]

[Junha Seo. 50 SEO]

페라리의 오버롤과 하얀 발라클라바, 그리고 한스(HANS, 헬멧과 어깨를 고정해서 충격 시 목 흔들림을 줄여준다)를 착용한 서준하. 스태프의 신호에 맞춰 콕핏에 들어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찰칵.

찰칵.

서준하가 차량에 타자 더욱 강해진 플래시 세례. Q1 시작 전, 신인 드라이버에 대한 취재진의 열기는 다른 선수 못지않게 뜨거웠다. 신인 드라이버의 경우 중하위권 팀에 소속돼 데뷔전을 치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시작부터 상위권 팀에서 데뷔하는 서준하에 대한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준하야, 좀 더 강하게 묶을까?”

“음, 나머진 괜찮고, 위쪽을 더 강하게.”

서준하가 콕핏에 들어가자, 출발 준비 담당 미캐닉들이 서준하의 여러 겹의 시트 벨트 조이기 시작했다. 최고의 팀답게 페라리 스태프들은 체계적이고, 준비된 절차들을 빠짐없이 따랐다. 덕분에 드라이버는 크게 신경 쓸 일 없었고, 그저 피트를 나서고 맞이하게 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출발 전 준비가 완료되자, 분주했던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멀찍이 대기 중이던 F1 공식 중계 카메라맨이 서준하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어딘가 여유가 있어 보이는 서준하입니다. 긴장한 표정은 아니군요.”

신인 드라이버들은 물론 출발 전 레이싱 드라이버라면 대부분 엄청난 긴장감에 휩싸이기 마련. 오픈된 서준하의 바이저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오자, 서준하가 윙크를 날리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찰칵.

찰칵.

게러지를 둘러싼 기자들과 스태프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거는 듯한 저 눈빛, 무언가를 보고 싶다고 열망하는 듯한 저 눈빛. 긴장보다는 설렘이, 조급함보다는 자신감이 강해졌다.

‘이미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거야.’

2016의 마지막 GP였지만, 서준하에겐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나 마찬가지. 데뷔전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2017시즌의 도입부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아니, 무엇보다 최정상에 오르려면 시작부터 성과를 내는 이변을 만들어야 한다.

[Q1. 17분 :59초]

[PIT LANE OPEN]

이번 생 데뷔전은 일종의 새로운 도전이다. 항상 최고의 준비로 F1 레이스를 치렀던 그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투입된 불리한 상황은 좀처럼 갖기 어려운, 그래서 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으니까.

“피트 레인 오픈! 시작과 동시에 페라리의 서준하가 게러지를 나섭니다!”

“페라리 팀 스태프 전원이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는군요!”

서준하가 나서는 길 앞으로 일렬로 늘어선 페라리 팀원들. 저마다 밝은 얼굴로 그의 데뷔전 축하를 표했다. 이번 생 페라리 팀에서의 첫 퀄리파잉을 가진 서준하. 다시 마주하는 팀원들의 기쁜 얼굴을 보자 묵직하고 뜨거운 것들이 올라왔다.

***

Q3 진출자에 한해, Q3 최고 랩타임을 기록한 타이어로 본선 레이스를 스타트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덕분에 대부분 선수들이 Q3에선 플라잉랩을 짧게 한두 번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 Q3에 진출한 서준하 역시 최대한 느릿하게 코스를 돌며 플라잉 랩에 도전하기 전 최대한 타이어를 아꼈다.

[Q3. 11분 :59초]

[PIT LANE OPEN]

Q1, Q2로 12명의 선수가 탈락했고, 최종 Q3이 시작됐다. 연습주행에서 랩타임이 저조했던 중하위권 드라이버들과 신인 드라이버들이 대거 탈락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연습주행에서 상위권에 기록했던 선수들이 떨어지는 반전은 없었는데,

부와아아앙.

부와아아아앙.

“Q3 가장 먼저 서킷에 나온 해밀턴! 21턴을 빠져나오며 스타트 라인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Q1, Q2 모두 탑 기록을 세운 해밀턴. 팀 메이트와의 챔피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택을 빠르게 가져갔다. 그리고,

“1분 38초 755! 7분 남은 상황에서 해밀턴이 잠정 폴 기록을 만듭니다! Q2 폴 기록보다 0.6초나 앞당겼군요...!”

“자, 그리고 해밀턴 랩타임이 나오자마자 페텔이 플라잉 랩을 달려요!”

한 선수의 시작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퀄리파잉. 로즈버그를 비롯한 우승 후보들도 피트를 나서거나 스타트 라인 직전부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2016 마지막 GP 폴포지션을 잡기 위한 어택이 시작됐습니다! 페라리의 서준하 선수도 마지막 코너를 나오면서 갑자기 스피드가 달라졌는데요!”

21턴을 빠져나온 서준하도 플라잉 랩을 시작했다. 트래픽이 없는 퀄리파잉은 자신 있었고, 1분 38초대의 잠정 폴 기록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3단, 127km/h...]

[4단, 206km/h...]

Q1, Q2를 치르며 새로운 주법으로 어택을 하는 데 더욱 능숙해졌다. 전생의 잠정 폴 기록을 잡기 위해 달리던 조급한 마음과 다르게, 지금은 오히려 그 기록을 넘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분명 전생과 하나 달라진 게 없는 F1 무대였지만, 지금 서준하의 마음은 이전과 달랐다.

[Junha Seo. 50 SEO]

[Speed Trap : 316 km/h]

야스 마리나의 두 번째 직선 구간에 오른 서준하. 스피드 트랩을 통과하자 오늘 퀄리파잉 최고 속도인 315km/h를 넘어서고 말았다.

“파워 브레이킹! 이어지는 코스만 잘 돌파한다면, 서준하 랩타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최고속으로 11턴에 진입하면서도 브레이킹 타이밍을 최대한 늦추는 모습이에요! 이 구간 코스 아웃이 빈번하단 걸 모르는 걸까요? 아무튼 용기가 대단합니다!”

고저 차는 없지만, 직선 구간이 꽤 긴 탓에 자칫하면 바깥으로 밀려나기 쉬운 11턴. 중계진은 신인 서준하가 위험 구간이란 걸 모르기에 더 대담한 돌파가 가능했다고 봤지만, 그는 본래 급진적이고 대담한 드라이버다. 중계진의 요란 덕분에 많은 갤러리의 관심이 서준하에게 향하고,

“자, 스타트 라인 근처로 페텔이 보입니다. 곧 골인하겠군요!”

“볼까요, 아, 0.72초 차이군요, 가장 먼저 해밀턴을 뒤쫓았던 페텔이 2위에 랭크합니다...!”

해밀턴의 기록을 잡기 위해 서준하보다 먼저 뛰어들었던 선수들이 스타트 라인을 통과했다. 우승후보 페텔 역시 해밀턴의 기록을 따라잡지 못한 상황. 뒤따르던 다른 선수들도 1초 이상 차이가 나며 챔피언의 만든 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해밀턴] - [서준하]

[1:38:755] - [1:31:492...]

.

.

[해밀턴] - [로즈버그]

[1:38:755] - [1:26:471...]

잠정 폴 기록 옆으로 비교 제시된 서준하의 랩타임. 몇 초 후 드러날 결과에 중계 부스가 기대감에 휩싸였다.

“자, 이번에 들어올 선수는 서준하와 로즈버그! 20턴과 21턴을 남겨둔 서준하가 먼저 19턴을 빠져나옵니다!”

두 코스를 남겨둔 서준하. 이미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랩타임이 예상됐다. 좀 더 타이트하게 두 코스를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19턴에서 끌어올린 스피드에 최소한의 브레이킹으로 널따란 두 코너를 돌았다.

“볼까요! 서준하!”

띠링.

[Hamilton] - [Seo]

[1:38:755] - [1:39:130...]

“0.4초 차!!! 서준하 2위에 랭크합니다!”

“와, 페텔보다 앞선 기록입니다!!!”

Q3 랭크 상단의 해밀턴 밑으로 이름이 올라간 서준하. 중계진은 물론 페라리 피트가 흥분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서준하의 뒤로 로즈버그! 메르세데스의 로즈버그가 마지막 턴을 빠져나옵니다!”

“어! 로즈버그도 빠른데요! 볼까요!”

띠링.

“아!!!”

이번 시즌 또 다른 챔피언 후보 로즈버그. 그의 Q3 플라잉 랩 기록이 공개됨과 동시에 중계진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

“일단 그대로 달리라고 해!”

로즈버그의 기록과 동시에 갑자기 분주해진 메르세데스 피트. 팀의 수장 테오가 스타트라인을 빠져나온 로즈버그에게 속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테오, 로즈버그도 한 번 더 플라잉 랩을 도는 건가요?!”

“잠깐... 잠깐만 기다려보게.”

1분 39초 241로 2위 서준하와 0.11초 차이로 3위에 랭크한 닉 로즈버그. Q3에서 사용한 타이어 그대로 결승 레이스를 시작하기에 일반적으로 플라잉랩은 최대한 적게 돌아야 한다. 아직 어택 오더를 결정하지 못한 테오를 향해 레이스 엔지니어들이 물었다.

“아니, 페텔도 아니고. 이게 무슨...”

당연히 이번 Q3 역시 해밀턴과 닉의 싸움으로 생각했던 테오 감독. 예상치 못한 인물이 기록을 세우자, 매번 빠르고 날카로운 판단을 내렸던 그가 당황한 채 오더를 내리지 못했다.

“타이어냐... 프론트 로우냐...”

“하... 이거 엄청 어려운 문제인데요. 닉이 타이어 관리능력이 좋긴 하지만, 뒤에 붙은 페라리도 미디엄으로 나온 상황이라...”

일반적으로 예선에선 빠른 기록을 내기 위해 많은 팀들이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Q3 진출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메르세데스는 두 레이서 모두에게 미디엄 타이어를 장착시켰다. 잠시 생각에 잠긴 테오. 예상보다 한 바퀴 정도는 더 어택해도 크게 무리 없을 것 같아 보이는데,

“오케이, 한 번 더 가지. 그대로 어택하라고 해.”

로즈버그 같은 레귤러라면 타이어 관리능력도 최강이다. 컨트롤라인의 판단이 늦어질수록 드라이버가 막대한 손해를 보기에 테오는 생각을 멈추고 바로 오더를 내렸다.

“말 안 해도 한 번 더 하려고 했다는군요...”

“그래, 그럴 만하지...”

팀의 오더와 상관없이 다시 한번 플라잉 랩을 이어가려 했던 로즈버그. 챔피언 자리가 걸린 퀄리파잉이었고, 무엇보다 오늘 데뷔한 신인보다 뒤졌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레치를 만들었다.

“페라리의 서준하는 서행 중입니다. 더 이상 어택을 시도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군요.”

데뷔전을 치르는 드라이버의 실력이라고 보기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숏런 능력. 테오가 경주차 뒤로 깜빡이는 붉은빛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오늘 저 친구한테 한 방 먹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구만...”

종료 2분 전, 잠정 2위 기록을 세우고 서행 중인 페라리 경주차. 우측으로 최대한 느리게 달리는 모습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 말 안해도 한 번 더 하려고 했다는군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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