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29화 (129/200)

< 정말 F1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현우야, 이거 될 거 같지 않냐?”

지상파 방송사 MBD의 제작국 PD 두 사람. 야스 마리나 서킷의 사우스 그랜드스탠드 구석에 앉아 아부다비 레이스를 관전했다. 레이스 중반에 다다른 상황에서 선임 PD 최용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데,

“흠, 정말 페라리를 한 방에 들어간 이유가 있었네요. 다음 시즌에도 활약할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박현우 PD. 2017 F1 중계 편성을 두고 MBD 방속국의 두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국에선 아직 모터스포츠가 마니아적인 측면이 너무 강하기도 하고, 일단 대중적이지 못 하잖아요. 코리아 그랑프리가 망해서 접은 것도 그 때문이고. 흠... 전 좀 불투명한 것 같아요.”

한국인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F1 차와 비슷한 오픈휠 레이스카를 타 볼 리는 만무하다. F1에서 쓰이는 파츠(부품)들 가운데, 당장에 자신의 차에 끼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러니 F1에 대해 알면 알수록, 구경만 하는 한국인과의 괴리감은 커질 수밖에.

현장에서 F1 월드 챔피언과 레이스 중인 최초의 한국인 레이서를 보고 있지만, 박현우 PD의 생각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SPOT 티비의 모터스포츠 시청률 보면, 진짜 보는 사람은 몇 안되는 거 같은데...”

지난 시즌 케이블 방송사의 F3 평균 시청률은 0.25%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평균 시청률이 0.5%, 정규 시즌 메이저리그가 0.7%인 걸 감안하면, 확실히 모터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마카오 F3 우승 이후 국내 서준하의 인기는 많이 올랐지만, 실제 모터스퍼츠 중계를 챙겨볼 사람들이 늘었는지는 아직 미지수. FOM으로부터 중계권을 가져오는 비용이 적지 않은 만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근데 전에 없던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더라고.”

“전에 없던 변화요?”

“일단 지난 F3 시즌 이후부터 한국에서 다양한 성격의 레이싱 대회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어. 이런 걸 보면, 모터스포츠 자체에 대한 관심이 분명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거든.”

슈퍼레이스,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 등 전에 없던 일반 레이스들이 많이 생겨난 상황. 게다가 대현차와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 서준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분명 의미있는 신호다. 조금 전 다시금 페텔을 추월하며 서준하의 레이싱에 감명 받은 최용 PD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F1이 일반인들한테 접근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배경이 어떤 곳이건 자국 선수의 활약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한국인들과 F1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변을 만들어내는 자국 선수의 도전은 레이싱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봐 봐. 예전엔 골프 방송이 요즘처럼 이렇게 활발하지 않았잖아. 근데 박세리 선수가 딱 뜨고부터 한국에 완전 골프 붐이 일은 거 알지?”

“그렇죠,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죠.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생각해 봐. 저 선수가 세계 3대 스포츠 중 하나인 F1에서 성과를 냈을 때 과연 한국에 어떤 변화가 오게 될지. 대충 감이 오지 않아?”

피겨스케이팅, 수영, 컬링 등등 한국에선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비인기 종목들의 활성화. 이는 곧 세계 무대에 올라 성과를 낸 선수들의 영향이 컸다. 서준하가 아직 F1 무대를 밟기 전에도 국내에서 관심을 끌었던 건 단순히 이전에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걸 이뤘다는 사실이 주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특히나 RG그룹 쪽에서 서준하의 에이전시랑 컨택이 잦다는 소문도 돌고 있으니까.”

“정말요? RG에서요?”

스페인, 핀란드, 스웨덴 등 오랜 기간 자국 F1 드라이버의 스폰서를 자청했던 글로벌 기업들. 국내에서도 서준하를 기점으로 과감한 해외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 기업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니까 다른 방송국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해. 오늘 레이스 끝나면 분명히 경쟁은 더 치열해질 테니까.”

F1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서준하가 얼마나 큰 이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외 컨텐츠 편성부에 오랜기간 근무했던 최용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서준하라는 선수가 한국 모터스포츠를 끌고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ABUDABI RACE]

[20/55 LAP]

[1위. HAM]

[2위. RSB]

[3위.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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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순위권 선수들의 타이어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느껴집니다. 스무 바퀴 동안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듀오 모두 랩타임의 큰 변화 없이 잘 달리고 있어요.”

집중력이 떨어질 시기에도 랩타임에 큰 변화가 없는 선두권 선수들. 일찍이 피트 스탑에 들어간 중하위권 선수들과 대조적으로 기존 타이어로 오랫동안 주행을 이어나갔다.

“구티에레즈, 오콘, 막누스와 같은 어린 선수들은 아무래도 아직 야스 마리나가 어색할 수도 있어요. 아부다비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서킷 중에 하나일 테니까요.”

“그렇죠. 지금 선두권 선수들이 순위권에 있는 건 대부분이 F1에서 야스 마리나를 경험해봤기 때문이에요. 확실히 F1은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2009년 뒤늦게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아부다비 GP. 몇십 년 동안 역사를 이어온 다른 서킷에 비하면, 신생 서킷이 분명하다. 해밀턴, 로즈버그, 페텔 모두 2009년 이전부터 GP에 나왔던 선수들. 해설자가 서킷 경험의 중요성을 꺼내놓는데,

“그런데 말이죠. 지금 3위를 달리는 서준하의 선전이 놀라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 어린 선수가 야스 마리나를 어디서 타봤겠습니까? F3나 르노 리그에서도 분명 다루지 않았을 텐데...”

“맞습니다. 이쯤 되면, 페라리의 시뮬레이터 시스템이 거의 현실에 가까운 환경을 구현해내는 건 아닌지, 뭐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지난 연습 주행부터 이어져온 어린 한국 선수에 대한 찬사. 오늘 레이스에서도 중계진의 입으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많은 영드라이버들이 대거 하위권에 포진된 것과는 확실히 대조적인 모습.

“갑작스런 데뷔전에 준비가 부족했을 텐데요. 하지만 서준하의 주행은 마치 아부다비를 몇 번 경험해본 듯합니다.”

“동감합니다. 더 놀라운 건 지금 저 선수가 가진 차량의 컨디션이 100퍼센트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남은 레이스 지켜봐야겠지만, 이렇게 페이스 유지만 잘해준다면, 정말 F1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이스 중반까지 순위권을 유지했다는 건 그만큼 레이스를 잘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걸 증명해내는 서준하. 그의 온보드 영상이 중계 스크린에 등장했다.

“다소 지루했던 마지막 레이스도 이제 슬슬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페라리 팀의 피트가 분주하군요.”

미디움 타이어로 레이스를 시작했던 페라리 듀오. 22랩 본래 계획했던 피트 스탑이 다가오며 타이어 체인지에 들어갔다.

“서준하와 페텔이 동시에 피트 스탑에 들어갑니다!”

“페라리는 오늘 레이스 피트 스탑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던것 같습니다. 지금이 바로 계획했던 그 타이밍인 듯하고요.”

“자, 그러면 이제 경쟁 팀에선 어떤 선택을 내릴지...!”

롤리팝 맨의 신호에 따라 피트 박스에 들어온 서준하. 그의 F1 레이스 첫 피트 스탑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

“페라리 두 선수 모두 피트 스탑에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호너. 이번에도 계속 달리나요?”

바로 뒤에서 페라리 듀오를 뒤쫓던 레드불 레이싱 팀. 5위 리카르도와 7위 페르스타펜이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레드불 팀 피트월에도 상당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상황판을 보던 엔지니어가 감독의 판단을 기다리는데,

“일단 그대로 페이스 유지하라고 전달하게.”

레드불 역시 21랩, 22랩 피트 스탑을 계획했지만, 호너는 23랩을 지시했다.

피트 스탑은 레이서의 기존 레이싱 리듬을 깨는 변화 가운데 하나. 새 타이어의 적응도, 피트 스탑 과정 그 자체, 아웃 랩 이후 달라진 경쟁 구도 등 레이서는 달라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무너지거나, 아니면 다시 페이스를 만드는데 꽤 시간이 걸릴 테지. 우리한텐 지금이 기회네.”

베테랑 레이서 페텔은 모르겠지만, 서준하는 분명 어린 신인이었다. 반드시 이 새로운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고, 이는 곧 레드불 팀에게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호너가 피트 스탑 타이밍을 계획보다 늦추며 페라리 팀 피트를 지켜보는데,

“서준하, 21초 124! 페텔, 21초 454! 타이어 체인지 완료! 피트 레인 출구로 들어갔습니다!”

평이한 피트 스탑 기록. 내심 색다른 결과를 기대했던 호너가 아쉬운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하지만 피트 스탑은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곧 루키가 맞닥뜨리게 될 상황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No.50(서준하의 차량 넘버) 서킷 진입 직전. No.19, No.14가 피트 레인 출구 근처로 접근합니다!”

다시 서킷에 오른 서준하. 그의 옆으로 아직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은 6위 알론소와 7위 마싸가 보였다. 두 선수 모두 F1 경력만 15년이 넘는 베테랑 드라이버들. 이들의 순위가 낮은 건 소속 팀 차량의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이지, 결코 실력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다.

“한 바퀴 더. 다음 바퀴 막누스와 리카르도를 복귀시키도록 하지.”

기존 타이어를 한계까지 써가며 교체 전 랩타임을 끌어올리려는 레드불 레이싱. 경쟁팀의 루키가 맞닥뜨린 상황에 호너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예상대로 곧바로 베테랑과 루키의 배틀이 시작될 것처럼 보이는데,

“붙는다!”

“...?!”

서킷에 올라섬과 동시에 대각으로 차를 모는 서준하. 피트 레인 출구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3턴에서 인코스라는 유리한 지점에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

“...!”

레드불 팀의 예측과 다르게 움직이는 알론소와 마싸. 앞차를 추월할 수 있는 길목이 완전히 막혀버리자, 급격하게 속도를 줄이고 말았다.

“나오자마자 길목을 막아?!”

서킷의 재등장과 동시에 발 빠른 판단력을 보여준 서준하. 루키가 베테랑 레이서들에게 막혀 치고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였던 호너의 예상과는 달랐다.

“...계획을 바꾼다. 곧바로 이번 랩에 들어오도록.”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호너가 곧바로 피트 스탑 전략을 수정했다.

부와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앙.

윙미러를 흘겨본 서준하. 그의 뒤로 알론소의 하얀색 포뮬러카가 보였다. F1 무대 최고 실력자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이미 그의 앞을 달리는 중이었고, 타이어 컨디션이 좀 전과 달랐으니까.

‘이젠 너야, 막누스.’

데뷔와 동시에 라이벌로 지목된 레드불 레이싱의 막누스 페르스타펜.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 하나로 그와 엮이는 게 불편했던 서준하가 빠른 속도로 레드불의 레이싱카를 뒤쫓았다.

< 정말 F1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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