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34화 (134/200)

< 이 검시 의뢰자가 누군지 알아? >

경주차의 타이어, 연료, 부품 등은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레이스가 아닌 단순히 F1 경주차를 움직이는 일에도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참가팀 간 이 주행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

본격적인 시즌 시작 전, 테스트 주행을 많이 할수록 팀에게 유리하다. 때문에 FIA는 지정된 날에만 신차를 주행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덕분에 참가 드라이버들은 각 팀의 신차를 2월 프리 시즌(Pre-season)에서야 처음 주행할 수 있다.

“잠깐만요, 비켜봐요.”

“와아아!!”

2017년 2월 26일, F1의 1차 공식 테스트 주행이 있는 날. 카탈루냐 서킷의 페라리 팀 피트 앞으로 모여든 취재진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스르르륵.

테스팅 주행 출발 전, 베일을 씌워놨던 SF70H가 모습을 드러내자, 취재진들이 더 크게 환호했다. 곧이어 한스와 발라클라바를 착용한 서준하가 경주차 옆으로 등장했다.

“초반에는 속도를 내는 것보다 레이싱카의 밸런스를 체킹하는 데 집중해주게.”

“네, 알리슨.”

오늘은 드라이버와 팀 모두에게 중요한 날. 빠르게 도는 것만이 테스팅 주행의 목적이 아니다. 엔지니어들에겐 신뢰성과 셋업을 확인하고, 가상과 실제 데이터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래, 오늘 컨디션은 괜찮나?”

드라이버는 총 8일간의 테스트 기간 동안 대략 600바퀴 이상을 돌게 된다. 팀이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데이터를 쌓으려면, 드라이버는 하루 500km에 가까운 거리를 달려야 한다. 테스트 주행은 또 다른 의미에서 드라이버의 체력을 평가할 수 있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부와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앙.

페텔을 비롯한 다른 팀 선수들이 주행을 시작한 가운데, 이제 서준하의 페라리가 피트를 나섰다.

-우선 브레이킹 테스트부터 시작할게. 쓰레쉬 브레이킹(한계 제동)부터 서서히 부드럽게 내려놔 줘.

처음 차량이 노면을 달리는 상황이기에, 팀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사소한 것들까지 정밀하게 체크한다. 이때 팀의 요구 사항을 직접 체크하는 드라이버의 즉각적이고 자세한 피드백 능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강하게 밟아도 밀리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3턴 탈출 이후 트레일 브레이킹 체크하겠습니다.”

엔지니어들과 계속되는 확인 작업에도 서준하와 팀의 소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신차에 문제가 없기도 했지만, 페라리 팀의 확인 사항과 그 절차가 서준하에겐 익숙한 것들이었다. 엔지니어들의 궁금증과 더 나은 개발을 위해 드라이버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서준하였다.

-좋다, 준하야. 이제 조금씩 스피드를 올려줘.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된 간단한 점검들. 기술팀 엔지니어들의 흡족한 목소리가 서준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Copy that.”

만약 지금 타고 있는 경주차가 페라리가 아니었다면, 현재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F1 경주차,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더라도, 각 팀마다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새로 시작한 꿈의 무대 앞에서 다시 한번 페라리 카에 올랐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

“이게 3년 전 엔진이랑 뭐가 달라!! 아나 이씨...!!!”

공식 테스팅 주행이 한창인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서킷. 피트 레인 앞으로 오렌지 색 맥라렌 레이싱카가 멈춰섰다. 어이없다는 제스쳐와 함께 경주차에서 나온 베테랑 드라이버 알론소.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 역시 엔진 문제로 테스팅 주행을 망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혼다의 엔진이 또 한 번 말썽이군요.”

페라리 팀의 엔진 책임자 알리슨과 엔지니어들이 옛 드라이버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알론소도 화가 날 만하죠. 이번 시즌까지 저러면 알론소가 맥라렌을 택한 결정은 정말 최악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젊은 시절 슈마허의 독주를 막았던 F1의 또 다른 슈퍼스타 알론소. 2014년 페라리에서의 커리어를 끝으로 맥라렌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세 시즌 연속 차량 문제로 이번 시즌 역시 폭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끼이이익.

콰아앙.

푸쉬이이이.

피트 레인 시작점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굉음. 경주차들의 일정한 배기음 사이로 예상치 못한 소음이 들려오자, 알리슨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눈이 빠르게 중계 스크린으로 향했다.

“저거 완전히 망했구만... 저 정도면 프론트 바디는 복구 불능이야. 경주차를 새로 가져와야 하겠는걸.”

“No.18이면 스트롤이라는 루키 드라이버 아닙니까? 신고식 한 번 요란하네요.”

이번 시즌 F1 무대에 데뷔하는 윌리엄스의 얀슨 스트롤. 스타트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그의 경주차가 결국 15턴 런오프에 멈춰섰다. 흐트러진 타이어 더미 앞으로 반쯤 찌그러진 윌리엄스의 하얀 레이싱카가 연기를 내뿜었다.

“역시 이번 시즌 테스트 주행도 무난하게 넘어가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새 시즌이니까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은 게 많겠지. 하지만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고 많은 변화를 주는 건, 오히려 드라이버나 경주차를 힘들게 할 뿐이지 않겠나.”

수년간 페라리 팀의 기술 책임자로 일해온 알리슨. 그의 경험상 경주차는 마치 예민한 동물과도 같아서 시즌을 치르며 서서히 작은 변화를 더해가는 편이 안정적이었다.

“알리슨, 준하가 70바퀴 클리어했습니다.”

“빠르구만. 잠시 휴식하라고 전달하게.”

단순히 오늘 문제는 약팀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레드불 팀은 초반 차량 문제로 오랫동안 출발하지 못했고, 메르세데스 역시 중간에 피트를 여러 번 드나들었을 정도로 불안정했다.

반면, 이번 시즌 페라리 카와 드라이버들은 달랐다. 팀이 준비한 가상과 실제 데이터 간 차이는 적었고, 드라이버들은 장시간 주행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페텔과 준하의 기록이 1위, 2위입니다. 지난 시즌 테스팅 첫날 기록보다 4초 이상 빠릅니다.”

“4초?”

이번 시즌 일부 제한됐던 에어로파츠들의 재사용과 차량 폭의 변화로, F1 역사상 가장 빠른 랩타임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17시즌 새로운 레이싱카. 엔지니어의 말에 알리슨이 타임 로그를 살피고,

“3위와 격차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크고...”

페텔과 서준하의 기록은 비슷했지만, 3, 4위 메르세데스 팀보다 3초 가까이 앞섰다. 아직 일정이 많이 남은 터라 충분히 메르세데스와의 격차는 줄어들겠지만, 테스트 첫날 경쟁팀보다 일찍이 빠른 기록을 냈다는 건 많은 의미가 있었다.

“준하까지 이렇게 해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이거 시작부터 기세가 좋아...!”

신차의 안정성은 물론, 드라이버들의 적응력까지 보여 준 오늘 테스팅 주행. 시즌 출발 전 페라리 팀이 행복한 상상에 잠겼다.

***

“양력(Lift Force)이 증가했다는 느낌이 강해요. 이번 에어 인테이크의 구조 덕분인 듯한데, 인테이크 하단 쪽을 좀 더 넓게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마지막 테스팅 주행을 마치고, 알리슨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서준하. 신차의 에어 인테이크(엔진으로 보내는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차체에 낸 구멍)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시하며 조금이라도 스피드를 더 낼 수 있도록 개발 방향을 제시했다.

“그렇구만, 그건 내가 카딜레와 함께 얘기해보도록 하지.”

팀의 에어로다이나믹스 책임자와 상의해보겠다는 알리슨. 지난 며칠간 서준하 덕분에 많이 놀랐던 그가 오늘 역시 남다른 피드백을 주는 루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참 그리고, 책임자님. 이번에 에어로 파츠들을 공부하다가 한가지 발견한 게 있는데요.”

“어, 그래 말해 보게.”

“메르세데스나 레드불 팀 경주차의 서스펜션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스펜션?”

전생의 17시즌 테스트 드라이버 생활을 거치며 각 팀의 정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서준하. 17시즌 경쟁팀들의 이슈는 트릭 서스펜션이었다. 전생엔 몇몇 팀들의 서스펜션이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공기 역학에 영향을 줘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시즌 후반에서야 드러났었다.

“찾아보니 서스펜션의 구조가 조금 특이합니다. 이런 구조라면 에어로에서 이점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확실히 우리 팀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한번 보시겠어요?”

서준하는 17시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다. 본래 레이스는 정정당당하게 치러야 하는 법. 설계 당시 의도치 않았던 부분이라도, 대회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라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서준하가 정리해둔 데이터 앞으로 알리슨이 다가섰다.

“음... 자네 말대로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이렇게 서준하가 집어주지 않아도, 이후에 발견할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문제가 언론화되는 시기는 너무 늦다. 특히나 자신과 경쟁 구도에 있는 두 팀이 이점을 보는 사안이기에 초반부터 서준하가 직접 나섰다.

“내 곧바로 카딜레를 만나러 가겠네. 이건 충분히 FIA에 심의를 넣어볼 만해.”

참가팀 간 경쟁은 서킷 밖에서도 벌어지는데, 경쟁팀의 차량을 두고 주최 측에 적법성 심사를 의뢰하는 것이 대표적. 서준하에게 윙크를 날린 알리슨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FIA가 직접 검시를 하겠다고?!”

영국 케인즈에 위치한 레드불 레이싱의 헤드쿼터. 신차 서스펜션 시스템의 적법성을 두고 주최 측이 검시를 해오겠다고 알려왔다. 비서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호너 감독이 놀란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필 테스팅 주행이 다 끝나고 하겠다는 건 뭐야...!”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땐 레드불은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F1 기술자 아드리안 뉴이도 별문제 없다고 했었던 사안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는 깊어졌고, 결국 주최 측이 검시에 나서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마, 만약에 말입니다... 검시에 따라 곧바로 재설계 명령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까?”

“...물론이지.”

“지, 지금 이 시기에요?!”

서스펜션 재설계는 간단하지 않다. 지오메트리부터 차량의 밸런스 그리고 타이어의 그립까지 많은 사항들을 원점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호너의 말을 들은 엔지니어의 표정이 굳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지...”

시즌 개막까지 3주 안으로 다가온 상황. 재설계 명령이 떨어진다면, 시즌 초반 대부분의 라운드는 그냥 포기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이 검시 의뢰자가 누구야?!”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치 이미 재설계 판정을 받은 듯한 태도의 호너.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페라리 쪽에서 처음 문제제기를 했던 걸로 압니다...”

지난 시즌 페라리를 꺾으며 2위 자리에 올라선 레드불 레이싱. 새 시즌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가하던 차 불길한 소식이 팀을 엄습했다.

“페라리?!”

< 이 검시 의뢰자가 누군지 알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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