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36화 (136/200)

< 티포시의 환호를 받으며 페라리 카가 아웃 랩을 시작합니다 >

“이번 호주 그랑프리에서 데뷔하는 선수 루키들이 많았는데요. 하지만 역시나 F1은 쉽지 않은 곳이죠. Q1부터 신인들이 대거 탈락합니다.”

지오비나찌, 밴돔, 스트롤, 파머 등 이번 시즌 데뷔한 선수들이 1차 퀄리파잉에서 저조한 랩타임을 기록하며, 본선 레이스 하위권 그리드에 위치하게 됐다.

“루키들의 소속 팀이 상대적으로 약팀이기도 하지만, 퀄리파잉 기록은 드라이버들의 숏런 능력과 같은 실력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팀의 입장에선 Q1 탈락자들의 지금 기록이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디펜스와 어택을 수시로 해야 하는 레이스가 아니기에 차량 성능을 제외하면, 퀄리파잉 기록은 온전히 드라이버의 실력이다. F1 팀들이 은퇴했던 선수들을 다시 불러온다거나, 10년 이상의 베테랑 드라이버들을 오랫동안 콕핏에 앉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인들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잠재성을 끌어올리는데 드는 비용보다 페이를 더 주더라도 베테랑들을 두는 게 결과적으론 훨씬 안정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 특히나 스폰 파워가 약한 팀이 신인을 내세우는 건 팀의 존망이 걸린 모험을 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현재 레드불과 페라리의 루키들이 더 조명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Q1 기록만 해도 그 차이가 2~4초가량 나니까요.”

0.01초를 다투는 F1 무대에서 2초 이상은 엄청난 차이. 이제 막 시즌을 치르는 막누스와 서준하의 기록은 다른 루키들은 물론, 5년 차 레귤러들보다도 빨랐다. 두 선수는 마지막 Q3까지 진출하며 현재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입증했다.

“시즌 초반 1라운드는 역시 테스팅 주행의 결과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카탈루냐에서 10위권 밖으로 물러났던 선수들이 역시나 Q2에서 대거 탈락하는군요.”

지난 프리 시즌 주행에서의 결과를 토대로 팀은 계속해서 차량을 업데이트하지만, 한 달 안에 완벽한 수정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시즌 내내 업데이트를 거쳐야 하는 건 물론이고, 매 그랑프리 다른 환경에 적용해야 하기에 테스팅 주행에서 최대한 좋은 기반을 다져놓지 못한다면, 시즌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제 Q3을 시작합니다! 역시나 앞선 두 차례 퀄리파잉에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리카르도가 가장 먼저 피트를 나섭니다!”

이제 10명의 Q1, Q2 탈락자를 제외하고 레이스 탑10 그리드를 가리는 Q3가 시작됐다. Q3 진출자들은 Q3 타이어 그대로 본선 레이스를 시작하기에 주로 한두 번의 어택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퀄리파잉이 진행될수록 선수들의 랩타임은 빨라지는데, 1초 이상 앞당기는 결과로 볼 때, 이들의 순간 집중력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어택을 시도했던 로이스 해밀턴! 1분 22초 188의 기록을 세우며 단번에 잠정 1위에 올라섭니다!”

Q3, 12분의 시간 동안 워밍업도 없이 단 한 번의 어택으로 1위 기록을 만드는 챔피언 드라이버. 곧바로 라이벌 페텔이 피트를 나서며 어택에 들어갔다.

“0.275초 차이! 페텔이 2위에 오릅니다. 자, 이제 선수들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하죠?”

“다시 한번 어택을 시작하는 리카르도! 그와 동시에 뒤따르던 막누스와 보타스도 플라잉 랩에 들어갑니다!”

챔피언 후보들의 느릿한 주행과 달리 Q3 시작과 동시에 일찍 나왔던 선수들이 또 한 번의 어택을 시작했다.

***

“와, 사람들 엄청 많아...!”

영화 더블 라이더즈의 호주 촬영을 마친 한국의 여배우 공효지. 영화 제작사 워너스 브라더스와 기획사의 요청으로 호주 그랑프리가 열리는 맬버른 서킷을 찾았다.

평소 에프원과 레이싱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F1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매니저를 따라나섰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한국 선수를 응원하는 건, 영화 홍보는 물론 많은 국내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만들 것으로 보였다.

“오늘은 예선전이라 이 정도지만, 아마 내일 본선에선 저쪽 사이드 스탠드들도 꽉 찰 거예요.”

“뭐? 오늘보다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Fangio 그랜드스탠드에 들어선 공효지와 매니저.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멜버른 서킷의 스탠드는 이미 절반이 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본격적인 관람을 위해 공효지가 스탠드에 앉았는데,

“와, 스크린 좀 봐. 하나둘셋... 우리 앞에만 5대가 있어...!”

“경기장 규모가 큰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한 화면에 담길 수 있는 레이싱 카의 숫자가 제한적이다 보니 대부분 F1 서킷은 이런 대형 스크린이 많아요.”

공효지 주변으로 국내 야구장에서 볼 수 있는 중계 스크린들이 있었다. 슈퍼 스크린이라 불리는 이 화면은 서킷 곳곳의 다양한 장면들을 동시 중계하고 있었는데, 다른 스탠드들을 통틀어 무려 14대가 설치돼 있었다.

“하하, 취재 열기가 남다르죠?”

“정말... 내가 아는 언론사는 다 온 것 같아.”

서킷 펜스 주변으로 카메라와 함께 즐비한 수백 명의 취재 인파. 유명 해외 방송사부터 한국의 언론사까지 특별한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뭐야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 있어?”

“알론소라고 F1 드라이버가 마지막 예선을 출발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아아, 와 근데 진짜 이런 엄청난 응원 열기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아...”

Q3 맥라렌 팀 슈퍼스타 알론소가 피트를 나서자, 멜버른 서킷이 엄청난 환호로 가득 메워졌다. 스페인과 맥라렌 팬들은 물론, 페라리와 함께 추억을 간직한 티포시들도 응원 열기를 더했다. 이곳저곳 여러 스포츠 행사에 참여해봤지만, 이렇게 수만 명이 동시에 내지르는 함성을 들어본 적은 드물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하나둘 피트에서 나오기 시작한 레이싱 카들이 질주를 시작했다. 스탠드 멀리서부터 마치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경주차의 배기음이 들렸고, 곧이어 초스피드로 달리던 경주차가 순식간에 공효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미, 미쳤어...! 엄청 빨라!”

“저기 직선 구간에선 속도가 320km/h 이상은 될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차니까요.”

여느 다른 행사장에 참석하는 것과 다른 느낌을 전달받은 공효지. F1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단순히 서킷을 달리는 경주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많은 인파가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조금씩 F1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는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뭐야? 갑자기 왜 또?!”

“드디어...!”

“왜?!”

예선 막바지 다시 한번 엄청난 환호로 뒤덮인 경기장. 이전의 다른 정상급 선수들과 맞먹는 규모의 함성은 또 한 번 엄청난 전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F1 드라이버! 페라리의 서준하 선수요!!!”

서킷 곳곳 붉은색 페라리 팀의 깃발과 함께 휘날리는 태극기. 슈퍼 스크린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드라이버가 피트를 나서는 모습이 등장했다.

***

[호주 그랑프리 Q3]

[3 분: 17 초]

“이제 모든 선수가 서킷에... 아, 죄송합니다. 아직이군요...”

종료가 임박해오자, 더욱 분주해진 서킷. 타임로그를 체크하던 캐스터가 서준하의 이름 옆으로 표시된 ‘-’ 마크(대기 중)를 보고,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드디어 나옵니다! 페라리의 서준하가 피트 레인을 출발하는군요!”

“와, 이건 좀 의외인데요. Q1, Q2 항상 일찍부터 서킷을 돌던 서준하였는데요. 차량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시간상으로 봤을 땐 한 바퀴밖에 못 돌 것으로 보이고요. 만약 의도한 거라면, 이거 페라리 팀의 자신감이 대단한데요?”

이제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2분. 기록 측정은 스타트 라인부터 시작되기에 한 바퀴의 어택조차 아슬아슬해 보이는데,

“티포시의 환호를 받으며 페라리 카가 아웃 랩을 시작합니다!”

부와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앙.

경쟁자들의 랩타임을 파악하고 서킷에 들어온 서준하. 예상대로 해밀턴과 페텔의 잠정 폴 기록은 22초대. 그 뒤로 보타스, 리카르도, 막누스가 23초대에 포진해 있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선 어떻게든 0.2~0.3초 차이로 빽빽이 기록을 달성한 5명의 선수들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띠링.

아웃 랩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플라잉 랩을 달리는 서준하. 해밀턴이 일찍부터 잠정 폴 기록을 만드는 바람에 경쟁자들도 이른 시간에 어택을 시작했지만, 애초에 서준하의 목표는 폴 포지션이 아니었다.

-준하야, 보타스는 22초 913! 우리 목표치보다 조금 더 타이트하게 갈 것!

레드불 드라이버들과 3위 자릴 두고 치열했던 보타스. 다른 선수들보다 한 바퀴 어택을 더 가져가며 결국 우위를 점했다. 그가 타이어 관리에 자신 있는지, 아니면 레이스에서 피트 스탑을 여러 차례 가져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이어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뒤늦게 나온 서준하가 비등한 기록을 내는 것이 팀의 원하는 시나리오였다.

-리카르도가 한 번 더 뛴다. 우린 계획대로 23초대만 만들어내면 성공이야.

불필요해 보이는 리카르도의 재어택. 아마 자존심이나 승부욕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습 주행을 제외한 시즌 첫 경쟁에서 라이벌로 지목된 선수들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을 터. 기록이야 어찌 됐건 서준하로선 감사할 일이다. 승부에 영향을 주지 않고 기선 제압을 해야 할 곳은 따로 있었으니까.

“현재 플라잉 랩을 달리는 선수는 서준하와 리카르도! 대략적인 레이스 순위가 결정된 가운데, 두 선수가 11턴 시케인에서 가까워졌습니다!”

12턴부터 피니시 라인까지 이어진 섹터 3. 해당 구간 잠정 폴 기록과 어택 주자들과의 랩타임이 비교됐다.

“서준하! 섹터 3 시작에서 해밀턴의 기록보다 0.194초 차이! 단 한 번의 어택에서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줍니다!”

“와, 빠릅니다. 남은 4개의 턴만 잘 돌아준다면, 서준하도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은데요?!”

선수마다 특정 구간에서 스피드가 특출한 선수가 있다. 중고속 코너의 섹터 3가 바로 그런 곳. 두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피트인 했고, 몇몇 선수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현재 상황을 지켜봤다.

“16턴을 빠져나오는 서준하와 리카르도! 자, 볼까요...!”

스타트 라인으로 들어오는 서준하. 잠깐의 텀을 두고 리카르도 역시 피니시했다.

띠링.

[1. 해밀턴: 1:22.188]

[2. 페텔: 1:22.456]

[3. 리카르도: 1:22.712]

[4. 서준하: 1:22.825]

[5. 보타스: 1:22.913]

[6. 그로장: 1:24.135]

“리카르도가 3위, 서준하가 4위에 랭크합니다! 보타스의 기록보다 0.1초씩 빨랐군요!”

팀이 지시한 23초대의 목표 기록을 넘어선 서준하. 특히나 단 한 번의 어택으로 두 차례 어택을 시도한 선수보다 빠른 기록을 달성했다.

‘상대적으로 긴 스탠드와 네 번째 그리드... 레이스는 내가 유리해.’

포디엄 경쟁자로 지목된 선수들보다 타이어를 아낀 서준하. 예선 4위에 랭크하며 내일 레이스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 티포시의 환호를 받으며 페라리 카가 아웃 랩을 시작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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