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51화 (151/200)

< 반드시 살아서 나간다 >

“2017 바레인 GP 본선 레이스 시작합니다!!!”

출발 신호가 꺼짐과 동시에 그리드를 나서는 경주차들. 20대의 포뮬러카가 내뿜는 배기음이 사키르의 사막으로 퍼져나갔다.

“선두는 시즌 초반 3연승을 노리는 페라리의 페텔. 그리고 그 뒤로 해밀턴과 서준하, 보타스와 막누스가 달립니다!”

오늘 레이스는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팀에게 더욱 중요하다. 페라리가 오늘도 연승을 이어간다면, 심리적으로 훨씬 우위에 서 큰 부담 없이 남은 그랑프리를 치를 수 있다.

반면, 메르세데스에겐 오늘 페라리의 초반 강세를 끊지 못한다면, 분명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스타트와 동시에 페텔의 뒤를 강하게 압박하는 해밀턴! 두 선수의 경쟁이 초반부터 치열합니다!”

“말씀하신 순간, 해밀턴이 첫 코너에서 곧바로 페텔의 오른쪽으로 파고듭니다!”

스타트에서 미스를 낸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수가 순위 변동 없이 첫 코너에 도달했다. 기다란 홈스트레치에서 속도를 높인 해밀턴은 최대한 브레이킹 타이밍을 늦추며 선두를 노렸다.

“추월 성공! 페텔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면서 해밀턴이 시작부터 선두에 올라섭니다!”

“오늘 해밀턴은 작정한 것 같습니다! 페텔도 첫 랩의 첫 코너부터 저런 식으로 과감히 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을 거거든요?”

이어지는 무난한 두 코스를 빠져나가는 해밀턴과 페텔. 두 번째 기다란 직선 주로를 빠른 속도로 주파해나갔다. 그리고,

“페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레이트 브레이킹! 이번에는 페텔이 해밀턴의 안쪽으로 노즈를 밀어 넣는 데 성공합니다!”

단 한 번의 오버테이크로 선두 자릴 되찾는 페텔. 레이스 시작 후 두 바퀴는 DRS를 사용할 수 없기에 차량 간 추월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지만, 직선 구간이 끝나는 추월 포인트에서 페텔과 해밀턴은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초반 두 선수의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마치 오늘 레이스가 챔피언 결정전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군요...!”

“포메이션 랩의 신경전에서 서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경쟁이 과열될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 있거든요?”

치열한 공방전은 팬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지켜보는 팀들에겐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했다.

또한 57바퀴 레이스 동안 타이어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사키르에서 초반부터 타이어에 부담을 주는 이런 주행은 두 선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차리리 어느 한 선수가 리드를 가져가는 것이 더 났지만, 둘 중 누구도 쉽게 선두 자릴 양보하지 않았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서준하의 앞으로 치고받는 두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두 선수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면서도, 코스 돌파는 빨랐다. 해밀턴에게 압박을 가하라는 팀의 오더에도 서준하는 쉽사리 두 선수의 뒤에 붙지 못했다.

‘오늘은 둘의 자존심이 걸린 날이야.’

일부러 해밀턴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은 것도, 두 선수의 배틀을 그저 관망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압박을 가할 해밀턴이 선두와 2위 자릴 오갔고, 타이어 관리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둘의 주행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폭풍 속을 내 발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어.’

지금 할 일은 리어 타이어 부담이 엄청난 사키르 서킷에서 타이어를 관리하며, 페이스를 유지하는 일.  시간이 흐르고, DRS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뒷선의 경쟁자들이 서준하의 앞으로 치고 나왔다. 서준하는 호시탐탐 앞으로 치고 나오려는 보타스와 막누스를 막는 데 집중했다.

“3위 자릴 두고 추격자들이 공간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

“선두 해밀턴 9랩에서 1분 32초 798 기록. 뒤따르는 페텔 역시 0.21초 느린 32초대입니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앞으로 한두 바퀴 안에 피트인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선두권 두 선수의 레이스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레드불 레이싱 팀. 팀의 퍼포먼스 엔지니어링 헤더 벤의 보고에 호너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노면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9랩만에 32초대라니 놀라워... 과연 혼자 달렸다면 저런 랩타임이 나왔을지 의문이야.”

“벌써 3위와 격차는 5.512초 벌어졌습니다. 확실히 빠르긴 빠릅니다.”

“타이어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겠지. 시작부터 불이 붙어버렸으니까.”

사키르 레이스에서 1분 32초대 랩타임은 굉장히 빠른 기록. 이는 트랙 에볼루션과 퓨엘 이팩트를 동반한 레이스 후반이나 돼서야 가능하다.

하지만 레이스 극초반 이런 기록이 등장한 건, 그만큼 두 선수가 타이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 두 선수의 SS 타이어의 교체 타이밍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쩌면 오늘이 역사에 남을 만한 인상적인 레이스가 될지도 모르겠구만.”

“확실히 지지난 시즌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초반부터 둘이 치고받았던 경기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오늘 무슨 날인가요, 아까 신경전부터도 그렇고.”

F1에는 다양한 라이벌 구도가 존재했었다. 라우다와 헌트, 세나와 프로스트, 슈마허와 하키넨 등등. 이들은 몇 차례 F1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경기 만들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0년대에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고, 그들이 바로 페텔과 해밀턴이었다. 오늘 경기 시작부터 치열한 두 선수의 배틀은 명경기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한데,

“하지만 인상적인 레이스가 꼭 어느 한 명의 승리로 끝났던 것만은 아니었지.”

수십 년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F1 라이벌 간의 치열한 경쟁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모터레이싱의 세계에 30년 가까이 몸담아온 호너. 그의 입가에 점점 더 큰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챔피언 드라이버들을 팀에 데리고 있을 수 없는 게 우리 팀의 현실이라면, 그들이 동시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봐야겠어.”

피트 스탑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페텔과 해밀턴의 배틀. 그럴수록 페라리와 메르세데스의 경쟁팀들은 기뻐했고, 기분 좋은 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보타스와 막누스의 격차가 0.81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음 DRS 존에서 추월 가능성 75%, 때가 왔습니다!”

“좋아! 이제 슬슬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거야, 막누스!”

야간 레이스로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경주차의 불꽃. 막누스의 레드불 카의 플로어가 노면과 부딪히며 엄청난 불꽃을 내뿜었다. 그렇게 보타스의 뒤에 붙는데,

“예쓰!!!”

“추월 성공! 게다가 4턴 진입 보타스의 속도가 100km/h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보타스를 제치고 앞으로 튀어나온 막누스. 이제 그의 앞으로 서준하가 탄 페라리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번 시즌 첫 포디엄 피니시를 만들어내라, 막누스...!”

페텔과 해밀턴은 멀었지만, 서준하는 가까웠다. 보타스에게 고전할 줄 알았던 막누스가 손쉽게 앞으로 나오면서 레드불 팀의 분위기는 급격히 밝아졌고, 호너는 생각만해도 흥미로운 상상에 빠지게 됐다.

***

“현재까지 막누스의 랩타임이 굉장히 빨랐어요. 이번 랩 막누스 작정했습니다! 보타스의 앞으로 막누스가 치고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막누스가 서준하의 뒤를 추격하죠! 피트 스탑 이전에 두 선수 한 번 붙을 것 같은데요?!”

중계 화면에 등장한 막누스의 레이싱카. 그의 앞으로 서준하의 페라리카가 보였다.

“출발부터 서준하는 타이어 관리에 신경 쓰는 건지, 좀처럼 페이스를 올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이 선수 스타일대로라면, 한두 번 2위 자리에 있는 해밀턴을 압박이 들어갔을 텐데요. 오늘 주행 앞차와 어느 정도 일정 거리를 두고 달린다는 느낌을 주는군요.”

퀄리파잉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어택을 시도했던 서준하. 분명 지금 레이스에서 경쟁자들보다 스틴트가 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좀처럼 스피드를 내지 않았다. 덕분에 스퍼트를 올리던 막누스가 서준하의 뒤에 바짝 붙게 됐는데,

“배틀! 10턴을 빠져나오며 두 번째 직선 주로에 올라선 서준하와 막누스가 이어지는 코스 진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눈치를 살핍니다!”

“11턴을 두고 막누스에게 기회가 올 것 같은데요...!”

서준하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간 막누스. 직선 코스가 끝남과 동시에 앞차의 바깥쪽으로 튀어나오는데,

“아! 빠릅니다! 엄청난 블로킹이 한 번 더 나왔습니다! 막누스의 진로를 막아서는 서준하!”

추월 타이밍을 뺏기며 11턴 코스 공략 라인이 뒤엉켜버린 막누스. 급격하게 속도가 떨어지자, 점점 서준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 곧바로 선두에서 다시 배틀! 13턴 진입을 두고 해밀턴이 페텔의 인 라인을 공략합니다...!”

서준하의 디펜스 성공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두로 넘어간 화면. 피트 스탑 타이밍을 앞두고 서킷 여기저기서 난타전이 벌어졌다. 우측으로 꺾이는 중고속 코너 13턴. 페텔의 뒤를 달리던 해밀턴이 과감하게 안쪽으로 프론트 바디를 밀어 넣는데,

“아!!!”

순간 페텔과 해밀턴의 경주차의 앞바퀴가 부딪치고 말았다.

“...!!!”

“...!!!”

그렇게 두 선수 모두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선회하자, 차체의 방향이 틀어진 페텔의 앞바퀴가 해밀턴의 바디를 강타하고 말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스르르르륵.

콰과과가강.

“오마이갓! 대형 크러쉬가 발생했습니다!!!”

런오프 바깥으로 스핀하며 부딪히는 두 차량. 그리고,

“아!! 뒤따라오는 서준하! 서준하가...!!!”

사고 현장에 흥분한 중계진들. 뒤따라오던 서준하의 눈앞에 미끄러지며 스모그를 내뿜는 경주차들이 보였다.

-스탑!!! 스탑!!! 스탑!!!

서준하의 팀 라디오로 울려 퍼지는 롭의 오더. 크러시 현장을 앞두고 서준하가 재빨리 브레이킹 했길 바라며 다급하게 외쳤다.

‘피한다! 피한다!! 피한다!!!’

13턴 진입 전 서준하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 눈앞으로 날아다니는 데브리들을 피하며 빠르게 속도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가까스로 데브리들 앞에 멈춰선 서준하. 자신이 원래 타려던 라인이 막히자, 빠르게 몸과 머릴 움직이며 빈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등장한 차량 한 대.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서준하보다 좀 더 미리 브레이킹하며 진입한 막누스. 잔해와 차량으로 막혀버린 코스를 돌파하기 위해 런오프로 들어섰다.

‘반드시 살아서 나간다!’

박살 난 차량과 페텔의 리타이어는 팀으로선 엄청난 손해. 하지만 그럼에도 서준하의 입장은 달랐으니,

‘이번 생 첫 우승을 여기다!!!’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와 경쟁팀 최고 실력자의 동반 리타이어. 사고 현장을 겨우 빠져나온 서준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우승의 기회가 찾아왔다.

< 반드시 살아서 나간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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