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스타가 한 명 더 필요한 시점이지 >
-바깥쪽밖에 없어 무조건 막아라, 막누스!
리스타트 후 서준하와 접전을 벌인 막누스. 10턴 이후 DRS 존이 없는 짧은 직선 주로의 끝에서 슬립을 타고 나오려는 서준하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절대 안 뺏겨!”
무조건 막아야 했다. 이번 시즌 첫 우승 기회였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서준하와 대등한 조건의 배틀이었으니까. 자신보다 어리고 경험 없는 루키, 라이벌로 지목된 상대와의 배틀에서 지는 건 스스로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길 들어오겠다고?!’
직선 주로가 끝나고 90도 가까이 좌측으로 꺾이는 11턴. 슬립을 타며 우측으로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는 뒤차의 추월 시도를 막누스의 레이스 엔지니어가 확인했다.
‘바보 같은 놈...!’
혼자서 돌파하는 것도 까다로운 곳이라 좀처럼 추월 시도가 일어나지 않는 코스. SS 타이어를 장착한 페라리의 루키의 마음이 다급해진 게 분명해 보였다.
‘지금 공간은 여기밖에 없어...!’
11턴의 코너각은 급격하기에 인 라인으로 추월을 시도하는 건 뒤차에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진입과 동시에 막누스는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서준하의 경주차를 보고 방향 전환을 늦췄다.
동시에 차량을 최대한 바깥쪽으로 붙여 뒤차의 라인을 봉쇄하는데,
“...!!!”
코너 진입과 동시에 바깥쪽으로 돌기 시작했던 서준하가 곧바로 진로를 바꿔 안쪽으로 크게 방향을 전환했다.
‘라인크로스...!!!’
확신에 차 조금 무리하게 방어했던 막누스는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하며 자신과 휠투휠(두 대의 경주차가 나란히 달리는 상황) 상태가 된 페라리 카를 넋 놓고 바라봤다.
-젠장! 속았다...
이어지는 우측 코너 12턴. 두 대의 경주차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지만, 다음 코스의 유리한 위치인 아웃라인을 점한 건 서준하였다. 페라리카가 최대한 속도를 높이며 조금 전의 추월 시도를 완성하려고 했다.
-어쩔 수 없어, 물러나, 막누스!
이어지는 12턴 돌파를 위해선 아웃라인을 타야 한다. 인라인으로 돌파했다간 탈출 이후 서준하와 격차만 더 벌어질 뿐이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요청에도 막누스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12턴 진입까지 계속해서 서준하와 나란히 달리는 막누스. 속도를 줄이지 않는 드라이버의 모습에 엔지니어 돌발 행동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만, 선회를 시작하며 서준하와 점점 멀어졌다. 레코드 라인을 밟지 않은 것이 탈출 이후 곧바로 앞차와의 간격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아! 막누스가 끝까지 추월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코스 진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서준하가 환상적이었던 추월을 마무리합니다!”
“이제 바레인 그랑프리의 선두는... 서준하 선수입니다!!”
곧바로 중계화면에 등장하는 조금 전 11턴의 서준하의 추월 장면 리플레이. 다시 보길 원했던 중계진은 물론 갤러리의 시선이 슈퍼 스크린으로 향했다.
“사실 저기서 추월 시도를 한 것도 막누스의 허를 찌른 거지만, 바깥쪽으로 막누스를 유인한 다음 재빠르게 안쪽으로 라인크로스를 시도하는 서준하의 예상치 못한 어택도 주요했습니다! 막누스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이군요...!”
“오늘 레이스 아니, 이번 시즌 등장한 추월 장면 중에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은데요! 제아무리 디펜스에 자신 있는 드라이버라 할지라도 이건 못 막아요.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중계 스크린에 등장한 서준하의 페라리 카. 가장 맨 앞에서 13턴 헤어핀을 선회하기 시작하는 모습에 갤러리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이제 서준하는 다음 DRS존까지 최대한 막누스와 격차를 벌리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DRS 사정권에 들어오면, 다시 선두 자릴 뺏길 가능성이 아주 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12턴에서 막누스가 끝까지 인라인을 고수한 것이 서준하에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 격차로 봤을 땐, 막누스는 DRS 못 써요...!”
이젠 앞으로 치고 나갈 일만 남았다. 자신의 타이어 전략을 최대한 활용하며 이번 생 처음 부담 없는 선두권 질주를 시작했다.
***
“오히려 이런 레이스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리스타트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페텔과 해밀턴의 사고 이후 레이스가 한창인 바레인 서킷. 패독의 VVIP 스탠드에서 FOM의 새로운 회장 체이스와 상업권 운영부문 사장 션이 흡족한 표정으로 레이스를 바라봤다.
“음... 그래, 좋아.”
사실 체이스 회장은 걱정스러웠었다. 서킷을 찾은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페텔과 해밀턴의 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갤러리의 분위기는 굉장히 달아올랐다. 하위권 선수들은 포인트 권으로, 중위권 선수들은 포디엄으로, 순위권 선수들은 우승을 위해 그 어느 레이스보다 치열하게 달렸으니까.
“조금 전 서준하의 추월 장면이 순간 시청률 최고를 찍었답니다. 웹에서도 반응이 엄청 뜨겁고요.”
“이거 참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주는구만, 하하.”
어느 팀이 승리를 하든 그건 크게 상관없다. F1의 인지도와 인기를 늘려나가야 하는 FOM 입장으로선 유명 선수의 활약이나, 레이스의 내용이 흥미진진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번 시즌 새로 부임하며 FOM의 주주들로부터 기대를 안고 있는 체이스 회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는 게 그림이 아주 좋겠는데 말이야...”
“페라리 팀 루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지금 기세가 아주 좋잖아? 오늘 우승하면 챔피언 경쟁 구도에도 오를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오늘 레이스 이렇게 끝난다면, 55포인트로 1위네요. 오호, 이건 정말 엄청난 이슈를 불러올 수 있겠군요.”
리타이어로 페텔과 해밀턴이 오늘 단 한 포인트도 추가하지 못하게 된 상황. 오늘 서준하가 3위안에 든다면, 이번 시즌 월드 챔피언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F1의 지속적인 인기와 팬덤을 원하는 FOM으로선, 서준하의 우승이 더 큰 이슈를 만들 건 분명해 보였다.
“계속 이렇게만 해준다면, 막누스보다 훨씬 빠르게 챔피언에 오를지도 모르지.”
최연소 F1 데뷔 타이틀과 최연소 GP 우승 타이틀을 가진 막누스 페르스타펜. 15시즌 데뷔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잠재성을 보이며, 곧 챔피언 후보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샀지만, 이번 시즌에도 역시 주춤하며 그 기대가 한풀 꺾여버렸다. 따라서 이제 그보다 훨씬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는 서준하에게 점점 그 관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이제 저 친구한테 배팅을 좀 해보는 건 어떨까요?”
“배팅? 흠...”
“로즈버그나 알론소의 빈자릴 메울 스타 드라이버가 한 명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FOM은 F1이 미국의 슈퍼볼처럼 더 큰 인기를 얻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팬들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을 수 있는 F1의 슈퍼스타들이 나와줘야 한다.
FOM은 그랑프리 말고도 별개의 이벤트를 개최해 F1의 팬덤을 형성하는데, 여태껏 많은 F1 슈퍼스타들은 이들의 지원 속에서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해밀턴이 빠르게 챔피언이 될 수 있던 건 물론 실력도 실력이지만, 엄청난 관심이 그걸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레이스 결과를 봐야겠지만, 저 친구 느낌이 남다르지 않겠습니까?”
최근 중국, 싱가폴 등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그랑프리 계약을 맺은 FOM. 아시아에서 F1의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봤고, F1의 수익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선 아시아의 인기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션이 볼 땐, 그 중심에 설 수 있는 선수가 한국의 서준하였다.
“음, 그래. 슈퍼스타가 한 명 더 필요한 시점이지.”
“해밀턴 같은 드라이버가 한 명 더 나와주면 좋겠는데요.”
해밀턴이 F1의 슈퍼스타가 된 건, 그의 놀라운 기록들이기도 했지만, 그는 서킷 밖에서도 패션과 음악, 연예계 등 여러 방면에 나서며, 팬들의 관심을 더 끈 선수였다. 그 중요성을 FOM이 심어줬고, 배후엔 항상 그들이 있었다.
“그래, 그럼... 페라리 커머셜 팀이랑 미팅 한 번 잡아보게.”
오래전 해밀턴의 사례를 떠올린 체이스 회장이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지시를 내렸다.
***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현재 선두의 상황 설명 바람. 피트레인으로 빠졌는지?”
차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레이스를 운용 중인 보타스. 3위를 달리는 그가 선두의 위치가 보이질 않자, 레이스 엔지니어에게 그 위치를 물었다.
-이번 랩 스무 바퀴 리드. 아직 서킷에 있다. 타이어 상태로 봐선 한두 바퀴 내로 피트 스탑할 듯.
일반적인 SS 타이어의 수명보다 더 오래 타이어를 쓰고 있는 서준하. 15랩 타이어 체인지 이후 20바퀴 내내 랩타임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 바퀴 더 리드를 이어간다
“한 바퀴 더?”
-SS로 스물한 바퀴째...
차분했던 보타스의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진작 앞에서 사라졌어야 할 서준하는 마치 S타이어를 장착한 것마냥 서킷을 벗어나지 않았다.
-37랩 스타트! 서준하 막누스 둘 다 이번이 인 랩일 듯!
“미쳤어? 도대체 왜 안 들어가는 거야?!”
스물세 바퀴로 예정했던 보타스의 마지막 타이어 교체 시기. SS 타이어로 리스타트 초반 이득을 챙긴 서준하가 마지막까지 랩타임을 잃지 않는 믿기 힘든 상황을 보타스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박스! 박스! 랩타임이 떨어져. 어쩔 수 없어, 우리도 이번 랩에 체인지한다!
“뭐...?”
원래대로라면, 일찍이 피트 스탑에 들어간 서준하가 자신의 뒤를 달리고 있어야 했다. 훨씬 무른 타이어로 자신과 동일한 랩을 소화한 루키의 모습에 보타스는 자존심이 상했는데,
“XX!!”
피트 레인 입구가 다가오자, 서준하를 시작으로 막누스가 차례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팀 라디오로 계속해서 박스를 외치는 엔지니어의 말에 결국 보타스의 입에선 욕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서준하, 막누스 둘 다 소프트로 변경. 예상대로다. 침착해라, 보타스.
이제 남은 랩은 18바퀴. 메르세데스 박스에 멈춰선 경주차 주위로 미캐닉들이 달라붙었다. 서준하의 타이어 교체 타이밍을 제외하면, 앞차와의 격차도 자신의 타이어 교체 타이밍도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준하를 시작으로 우승 후보들이 피트 레인을 나섭니다!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도는 사키르 서킷!”
“아! 지금 주목해야 할 건 보타스의 타이어입니다. 앞선 경쟁자들과 다르게 SS 타이어를 장착했거든요?”
중계 화면에 등장한 보타스의 타이어. 레이스 후반 승부수를 띄운 모습에 아직 배틀이 일어나지도 않았음에도 메르세데스 팬들은 환호했다.
“피트 레인을 빠져나온 보타스! 출발과 동시에 막누스의 뒤에 바짝 붙는데요...!”
“와, 보타스 작정했습니다! 3턴에서 배틀!!”
“드디어 막누스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갑니다!!!”
2연패와 오늘 해밀턴이 리타이어한 상황에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따내야 하는 메르세데스 팀. 리스타트 이후 팀이 기다렸던 순간이 도래했다.
‘지금이다, 이때만 기다렸다고!!!’
오늘 레이스 우승을 꿈꾸는 보타스. 마흔 바퀴 내내 참아왔던 스피드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슈퍼스타가 한 명 더 필요한 시점이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