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83화 (183/200)

< 오히려 저런 짓으로 더 빨라질 수 있다고? >

리스타트 이후 종종 라인에서 바깥으로 밀려 나간 선두 차량이 더는 언더스티어를 내지 않았다. 22랩 서준하의 뒤를 맹추격하고 있는 해밀턴. 갑작스러운 상대의 변화에 놀라고 말았다.

‘오히려 저런 짓으로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서준하의 드라이빙은 아이러니해 보였다. 속도를 내고 달려야 하는 마른 노면에서 오히려 조금씩 브레이킹을 밟으며 차체를 흔들어주었으니까.

하지만 드라이빙 상식과 달리 그런 테크닉을 적용한 선두차는 이전보다 더 멀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저딴 생각을 어떻게 한 거냐, 코리안...’

웨트 컨디션은 노면의 마찰력이 적기 때문에 언더스티어가 나며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드라이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접지력을 확보하는 것. 이에 서준하는 일부러 마찰을 만들어내며 타이어를 달구고, 표면의 물기를 날려 버리는 테크닉을 선보였다. 게다가,

‘제기랄! 앞이 안 보여!!’

리스타트 이후 선두와 가장 가깝게 달렸을 때, 해밀턴은 좀처럼 추월을 시도할 수 없었다. 추월을 하려면 최대한 브레이킹을 늦춰야 하는데, 특정 추월 포인트에서 서준하가 일부러 물보라를 튀어내며 시야를 방해했다.

“23랩 스타트! 이제 다시 서준하의 랩타임이 빨라지고 있군요! 시간이 흐를수록 랩타임 향상 폭이 가장 큰 선수 역시 서준하입니다!”

레인 타이어는 골이 파여있어 물을 배출할 수 있지만, 노면이 마르기 시작하면 그 골이 쉽게 닳아 결국에는 타이어가 터지고 만다.

“이제 레코드 라인이 많이 마르기 시작했거든요? 이제 드라이버들이 타이어 관리에서 느끼는 부담은 더 커졌을 겁니다!”

비가 그치고 열두 바퀴가 더 진행된 상황. 그 골이 가장 깊은 웨트 타이어를 장착한 경주차들이 랩타임은 다른 차량보다 랩타임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제 서준하도 더는 타이어를 비트는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고 달렸다. 타이어의 온도는 충분히 오르며 노면에 찰싹 붙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준하, 현재 노면의 상태는?

“물웅덩이를 제외하곤, 레코드 라인은 충분히 말랐다.”

-흐음, 그럼 타이어 교체 타이밍을 앞당기는 게 좋겠어. 예상보다 노면이 마르는 타이밍이 훨씬 일러.

서준하가 장착한 인터미디어트 타이어 역시 마른 노면에서 상당히 내구성이 약하다. 롭이 노면의 상태를 체크하며 슬릭 타이어의 교체 시기를 계획하는데,

“아니, 아직 충분히 더 달릴 수 있어.”

-응?!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무전을 날리는 서준하. 윙미러로 해밀턴의 움직임을 흘겨보며 어느 정도 격차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아아악.

전방 8턴 시케인의 안쪽을 라인을 향해 경주차를 붙이며 물웅덩이를 지나쳤다. 진입과 탈출 각각에서 양쪽 타이어가 물에 젖었다.

“아! 서준하! 8,9턴 시케인을 빠져나가는 라인이 좀 어색해 보이는데요?!”

또다시 시작된 서준하의 특이한 주행 라인. 레코드 라인이 마르기 시작한 지금, 이번에는 그가 젖은 노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오호, 이제 다시 젖은 쪽으로 달린다?”

“실컷 타이어의 온도를 높여놓고,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요?”

패독의 VIP 스텐드에서 레이스를 관람하고 있는 스튜어트와 에머슨. 특정 구간 선두 차량이 그리는 라인에 두 레전드 드라이버의 관심이 쏠렸다.

“아하, 그렇구만...!”

주행 라인을 바꾸기 시작하고 다시 한 바퀴를 살펴보는 스튜어트. 무언가 알아차린 듯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저건 일부러 저러는 거야. 타이어 관리를 위해 물에 적셔 식히겠다는 거겠지. 이거 참, 영리한 친구구만.”

“아, 그래서 시케인에서만 한 번씩 젖은 노면에 들어가고 있었군요?”

아직 서킷 곳곳으로 위험 구간은 여전했기에, 최대한 웨트 타이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 서준하는 타이어의 온도가 과열됐을 때마다 특정 구간에서 일부러 젖은 노면을 달려 타이어를 식혔다.

“레인 컨디션에서의 주행 방식이 아주 철저하네요. 왜 처음 인터미디어트 타이어를 장착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데요, 흐음...”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영국 그랑프리 첫 출전인 신인이, 이런 비 오는 실버스톤은 언제 겪어봤다고 저런 주행을 하나, 안 그래?”

변화하는 트랙의 컨디션에 따라 서준하의 대응 방식은 완벽했다. 그의 레인 컨디션 속 드라이빙 스타일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애초에 그런 것들을 떠올릴 수 없는 배경은 더 의외였다.

“그러게요. 지금 주행 라인들을 보면 어느 시케인에서 레코드 라인을 벗어나야 손해가 덜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그걸 고작 스물다섯 바퀴 동안 이 물보라 속에서 찾아냈다는 건...”

이어지는 스튜어트 경의 입에선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천재, 천재의 드라이빙 말고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구만, 그래...”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선수의 신체적 특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하지만, 특히나 레이스는 머리로 하는 싸움이다.

넓게는 레이스 전체 상황, 좁게는 매 코너 매 순간 드라이버의 판단으로 랩타임이 결정된다. 드라이버들의 체력과 반사신경 등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드라이빙 지능이 떨어지면 F1 드라이버가 될 수 없다.

“피트 스탑이 변수를 만들 수 있으려나... 뒤쪽에선 반전을 노리는 것 같군요.”

“사실상 4위 바깥으론 격차가 많이 벌어졌어. 또 한 번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이제 노면이 완전히 마르면서 선수들이 슬릭 타이어로 교체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선두와 격차는 많이 벌어졌다. 리스타트 이후 열 바퀴 동안 가장 빠른 선수도 역시 서준하였다.

“가까이서 직접 보니까, 이젠 나도 확신이 생기는구만.”

“확신이요?”

어제 갈라 디너에서 서준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 스튜어트 경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부터 잠깐 스키드음을 집중해서 들어보게.”

“스키드음이요? 갑자기?”

오늘 레이스에서 무언가 발견한 듯한 스튜어트가 바로 앞 슬라럼 세션을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때마침 선수들이 슬라럼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자, 지금... 그리고 이제 다음...”

“흐음...”

“어떤가? 차이가 느껴져?”

스튜어트의 말에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에머슨. 갤러리의 함성과 주변 소음에 차량 간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와 달리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스튜어트는 미세한 차이를 발견한 듯 보였는데,

“차이가 분명해. 확실히 다른 차들은 박진감이 넘치는 데 반해, 선두 차량은 아주 조용하지.”

에머슨은 그제야 스튜어트가 짓는 웃음의 의미를 알아챘다.

“조용하... 아, 그렇다면...”

이번에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슬라럼으로 달려오는 경주차들의 소리에 집중했다.

“내가 본 드라이버 중에 가장 부드러운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그 말은 곧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것과도 같지 않겠나?”

스튜어트의 말처럼 서준하는 거의 모든 코너에서 스티어링휠을 덜 꺾었지만, 속도는 더 빨랐다.

“아... 레이스에서 부드럽다라는 건 완벽하다는 사실과 같으니까요.”

보다 빠른 속도로 코너 진입 시 조타량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타이어의 접지와 하중의 이동에 더욱 집중하고, 그립 사용을 극대화한다면 경주차 조작을 더욱 부드럽게 할 수 있다.

“그래 맞아. 어제 내가 들었던 말이 허무해지지 않을 것 같진 않구만....”

스튜어트의 말에 고갤 끄덕이는 에머슨. 이제야 어제저녁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서준하의 말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이게 정말 98년생 신인의 드라이빙이 맞습니까...?”

부드러운 브레이크 페달 조작으로 슬라럼을 빠져나가는 서준하의 경주차. 코너의 안쪽으로 마법처럼 빨려들어 가듯 움직이며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이제 서킷에선 웨트 타이어를 장착한 선수를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대부분 미디움 타이어로 교체를 마친 상태군요.”

“그렇습니다. 오늘 레이스 페스티스트랩이 이제 1분 33초대로 들어왔고요. 이제 실버스톤은 거의 완벽한 드라이 컨디션입니다.”

레이스는 계속 흘러 어느덧 42랩 후반. 40랩이 넘어서자, 선수들이 평소 실버스톤의 주행 랩타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레이스 후반 포기하지 않고 선두를 추격하고 있는 해밀턴! 아! 스토 코너에서 푸쉬언더가 일어나는군요!”

코너에서 갑자기 가속하여 출력이 높아졌을 때 앞바퀴가 그립력을 잃어 외곽으로 밀려 나가는 푸쉬언더 현상.

“음... 해밀턴이 좀처럼 하지 않는 실수를 하는군요. 확실히 오늘 레이스 부담이 큰 것 같습니다.”

피니시까지 아홉 바퀴를 남겨둔 상황에 서준하와 6초 가까이 격차가 벌어지자, 메르세데스 팀의 마음은 굉장히 조급했다.

-로이스, 다음 랩 소프트로 교체하고 따라잡아 보자, 지금 이 페이스론 불가능해

이번 그랑프리 엄청난 타이틀이 걸린 해밀턴의 우승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던 메르세데스 전략 팀이 해밀턴에게 직접 무전을 보냈다.

-뒤는 보타스가 막아줄 거다. 오늘 1위 말고는 아무 의미 없잖아?!

막판 피트 스탑으로 한 단계 순위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우승을 위해선 막판 변수를 던져야 했다. 하지만,

“...”

전략 디렉터의 무전에도 해밀턴은 답이 없었다.

‘녀석 때문에 드라이빙 리듬이 모조리 틀어졌어...’

막판 교체 전략의 성공 가능성보다 현재 해밀턴의 관심은 달라진 자신의 주행 감각에 있었다. 실수가 나오는 것도 전과 다른 이상한 느낌 때문. 패배감을 느끼며 시케인에서 선두와 가까워졌다.

-로이스! 로이스! 왜 무전이 없나. 다음 랩...

해밀턴은 말없이 팀 라디오의 볼륨을 줄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서준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뭐 하는 놈이냐... 시즌 초반보다 훨씬 강해졌어....’

오늘 완벽했던 그의 레이스 운영과 신기에 가까운 드라이빙들. 해밀턴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위기감을 맛보며 처음으로 앞으로 더욱 쉽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그리고,

“자! 43랩부터 후속 차량들과 더욱 빠르게 거리를 벌리는 서준하! 마지막에는 독주 상태로 톱을 차지하는 게 지난 레이스에서 보여준 방식이었는데요...!”

경쟁자의 타이틀 달성을 깨부수는 것은 물론, 압도적인 승리를 다짐했었던 서준하.

“갑자기 어디서 이런 스피드가...!”

“아! 4륜 드리프트로 우드코트 코너를 통과!!!”

레이스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실버스톤에서 이런 포뮬러 머신의 움직임은 본 적이 없었는데요...!!!”

페이스가 오르지 않는 추격자들과는 반대로 서준하는 훨씬 빠르게 달리며 추격자들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 오히려 저런 짓으로 더 빨라질 수 있다고?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