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즈카 서킷을 정말 잘 아는 선수라는 느낌을 주는군요 >
[현재 레이스 순위: 25/52 lap]
1.서준하(SS->S): Pit Lane
2.막누스(S): (-)
3.해밀턴(S): 6.7s (3.2s)
4.보타스(S): 11.3s (4.6s)
......
“서준하! 나옵니다!!”
피트 레인 출구로 등장한 서준하의 페라리 카. 흥분으로 가득한 레드불 피트 전원이 1턴 진입로 근처를 바라봤다.
“리스타트! 막누스와 격차 2.1초!”
“...!!!”
선두의 등장과 동시에 발표된 격차에 레드불 팀은 엄청난 기대감을 품었다.
“드디어...!”
지난 세 라운드 초중반 압박을 받지 않은 서준하는 독주를 이어가며 2위와 엄청난 격차를 내며 크루징 우승을 차지했다. 때문에 호너 감독은 레이스 중반 찾아온 지금 상황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막누스! 퍼스트 턴 진입!”
홈스트레치를 달려온 막누스의 가속도와 한 바퀴 이른 타이어 교체 타이밍.
“브레이킹을 늦춰! 가속도는 우리가 더 빨라!!!”
격차가 1초대로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추월 기회는 분명 높아 보였는데,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좌측으로 꺾이는 던롭 커브의 진입로. 막누스의 앞으로 서준하의 페라리카가 인라인 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포착했다.
-막누스 아웃 라인!
“나도 봤어!!!”
엔지니어의 오더를 듣기도 전, 본능적으로 추월 라인이 떠올랐던 막누스. 코스 돌파와 추월 모두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바깥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런데,
“...!!!”
선두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페라리 카가 우측으로 진로를 바꾸자, 막누스는 아웃 사이드로 몰리고 말았다. 그리고,
끼이이이이이익.
가속 구간에서 브레이킹을 하는 막누스. 앞이 막힌 레드불 레이싱카는 부딪히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코너 진입에서 선두 차가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면서 디펜스에 성공했다.
-이제 시작이야...! 계속 몰아붙여!
“말 안 해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
엔지니어의 말에 막누스가 성을 냈다. 흥분한 드라이버는 이제 눈앞에 경쟁자를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제기랄, 또...!
그후로도 막누스의 어택은 계속됐지만, 파고드는 족족 서준하의 디펜스에 막히고 말았다.
-무빙에 혼란을 주라고! 계속 패턴이 똑같잖아!
선두 차량은 한 번밖에 진로 변경을 할 수 없지만, 공격자는 상관없다. 황금처럼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 이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해 보였다.
‘XX! 이제 끝내줄게.’
터질 듯한 분노를 꾹꾹 누르며 스푼 헤어핀(Spoon Curve)을 빠져나온 막누스의 앞으로 좌측 코너 130R이 보이고,
‘저기야...!’
코너 바깥쪽에 붙은 선두 차량은 아웃 라인으로 크게 선회할 생각인 듯했다. 그렇다면,
‘물어라...!’
막누스는 서준하가 진로를 바꾸길 바라며 앞차의 안쪽으로 치고 나왔다. 그런데,
“...!!!”
예상과 달리 앞차는 안쪽으로 들어오는 자신의 차량을 막지 않았다.
-그대로 치고 나가!!!
이에 막누스가 인코스를 파고들며 130R 턴으로 먼저 진입을 시작했다.
***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서준하의 앞으로 보이는 130R 코너의 브레이킹 포인트. 그와 동시에 서준하의 안쪽으로 레드불 경주차의 기척이 느껴졌다.
훼에에에에에엥.
리스타트 이후 막누스의 압박은 거셌고, 확실히 더 격차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막누스의 스피드를 떨어뜨리기 위한 묘수가 필요한 지금,
‘물었다...!’
안쪽으로 진로를 바꾸지 않자, 막누스가 옆으로 튀어나왔다. 서준하가 판 함정으로 막누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130R은 그런 빠른 속도론 인라인 돌파가 불가능한 곳이야!!!’
선회를 시작하는 두 선수. 스티어링휠을 비튼 타이밍은 같았지만, 악셀을 밟은 포인트는 달랐다. 그리고,
“아! 막누스 진입 속도가 너무 빨랐죠! 악셀 타이밍이 늦으면서 130R의 탈출 속도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추격자의 스피드를 떨어뜨림과 동시에 디펜스에 성공! 와...! 서준하의 디펜스가 예술의 경지에 달했습니다!!!”
평범한 갤러리라면 놓칠 수 있는 디펜시브 테크닉. 서준하의 움직임을 관찰한 전문가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30R 진입로에서 막누스는 처음 추월 라인에 혼란을 주는 더미 어택(Dummy Attack)을 시도하려 했지만, 서준하가 진로를 막지 않자 곧장 안쪽으로 쭉 들어왔죠. 하지만 가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최악의 코너링을 하고 말았습니다. 추격자들의 조급함을 제대로 이용한 디펜스였습니다...!”
빈공간으로 가속도를 높인 막누스는 덕분에 코너링에 어려움을 겪었고, 바깥쪽에서 미리 유리한 진입 라인을 잡아둔 서준하는 훨씬 일찍 악셀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요! 가장 놀라운 건, 서준하가 상대의 실수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해설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스즈카 서킷을 정말 잘 아는 선수라는 느낌을 주는군요. 지금 저런 테크닉은 130R에서만 가능한 거예요!”
흔히 F1 드라이버들간의 실력차는 크지 않다고 하지만, 오늘 레이스를 본 사람들은 그 급을 나누려고 했을 정도로 서준하는 영리하고 빨랐다.
이후에도 추격전은 계속됐지만, 서준하는 여유로웠다.
“아까의 충격이 컸나요? 막누스와 서준하의 격차가 계속 벌어집니다!”
“자, 이러면 이제 접전은 2위 자릴 두고 벌어질 것 같은데요?!”
서준하의 타이어는 작동온도를 찾았고, 매 바퀴 추격자들보다 조금씩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막누스와 가까워진 해밀턴! 헤어핀 진입에서 레이트 브레이킹으로 맹추격! 12턴에서 추월 시도 가능할 것 같아요!”
“아! 막누스! 방어 차량의 저런 무빙은 좋지 않습니다! 저건 투 무브예요, 투 무브(Two Move)!”
레이스 중후반 시작된 해밀턴의 기습 일격에 막누스는 반칙성 무빙을 저지르기까지.
“또다시 막누스와 해밀턴의 배틀! 아! 이렇게 되면 지금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서준하죠!!!”
계속되는 접전에 선두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
페라리카의 독주가 다시 한번 시작됐지만, 중계 카메라의 포커스는 피트레인에 머물러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아리바베네 감독의 표정은 심각하군요...”
환호하는 티포시들과 달리 침체된 분위기에 빠진 페라리 피트가 슈퍼 스크린에 등장했다.
***
“차량 속도가 점점 떨어집니다. 이번 랩 평균 속도가 20km/h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미캐닉과 엔지니어들. 소식을 듣고 게러지로 들어온 아리바베네가 상황 파악에 나섰다.
“엔진 점화 플러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직접 봐야겠지만, 출발 전에 그쪽을 급하게 손봤던 걸로 봐선, 아마 그 문제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데그너 코너에서 레이싱카의 밸런스가 조금 흐트러진 듯한 페라리 카를 확인한 감독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 보타스가 추월!”
“이런...!”
“아, 안 되겠답니다! 차를 멈추겠다네요...”
문제를 일으킨 건 페텔의 경주차였다. 팀 라디오를 통해 점화 플러그 문제 해결을 계속 시도했지만. 페텔은 쉽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페텔, 레이스 아웃! 멈췄습니다...”
“한 경기를 더 지켜봐야겠군, 허...”
오늘 레이스에서 서준하와 페텔이 포디엄에 들면, WCC에서 챔피언을 확정 지을 수 있었던 페라리 팀. 4위까지 바짝 치고 올라왔던 페텔이 무너지자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지금 상황에 안토니아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을 하게 됐다.
‘이번 시즌 페텔의 WDC는 끝난 셈이고... 그렇다면...’
오늘 리타이어로 WDC 종합 232포인트에서 한 점도 추가하지 못한 페텔은 앞으로 남은 네 경기의 포인트 획득이 큰 의미가 없게 돼버렸다.
‘팀 메이트를 챔피언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일만 남은 거지...’
더 이상 우승에 목맬 필요가 없어진 페텔의 시즌 후반부. 지난 시즌까지 독보적인 퍼스트 드라이버가 이제 팀과 메이트를 위한 레이스를 펼쳐야 할 때가 오고 말았다. 그리고,
“49랩, 섹터1, 2 최단 시간 돌파!”
“엇...!!!”
침울했던 페라리 피트의 분위기를 뒤엎어 놓은 엄청난 소식. 49랩 서준하의 랩타임을 전해 들은 팀원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49랩의 카시오 트라이앵글을 빠져나온 서준하.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는 한계 직전까지 속도를 줄이며, 타이트한 코스 돌파에 성공했다.
‘이번 랩 될 거 같아. 느낌이... 좋다!’
이제 파이널 랩까지 두 바퀴가량 남은 시기. 퓨엘 이팩트와 트랙 에볼루션으로 랩타임을 단축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마련됐다. 그리고,
띠링.
팀 라디오에 울려 퍼지는 환호와 동시에 서준하의 가슴 속 무언가가 탁, 하고 터져버렸다.
“1분 33초 144!!! 페스티스트!!!”
스티어링 휠을 쥐고 있던 손이 덜덜 떨리며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끝까지...!’
이미 2위 차량과의 격차는 10초 이상. 목표했던 랩타임을 만들었다고 속도를 줄일 생각은 없다. S 구간에 들어온 서준하가 과감하게 첫 좌측 코너를 자르고 들어섰다.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F3 시리즈 연승을 이어가던 시절, 오직 서준하의 이름만을 연호하던 팬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드는 스즈카의 함성.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퍼펙트한 독주에 그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체커기를 눈앞에 둔 서준하! 거의 다 왔습니다!”
독주는 계속돼, 어느덧 파이널 랩의 마지막 세션을 빠져나온 서준하. 피니시 라인에 다가서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빌리버블...! 서준하 이렇게 되면 WDC 무려 324포인트입니다!!!”
“최연소 루키의 그랜드 슬램 달성...!!!”
이번 라운드 야구의 퍼펙트게임과 볼링의 300점 만점과도 유사한 F1의 완벽한 승리, 서준하가 자신의 커리어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을 기록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둥.
위닝 랩을 돌며 팬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던 서준하가 검차대에 도착했다.
“예쓰!!! 헉...”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우승자 주위로 엄청난 취재 인파가 몰려들었고, 차량 위로 올라선 우승자가 수만 명의 갤러리들 앞에 우승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준하!!! 준하!!! 다음 라운드...”
플레시 세례에 눈을 못 뜰 지경.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들의 질문은 딱 하나였다.
“다음 라운드 우승을 차지한다면,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을 확정 짓게 되는데요...!”
17라운드 우승 시 남은 세 라운드 전부 리타이어해도 챔피언을 차지하는 상황.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피니시 이후 눈물 콧물 다 쏟은 서준하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20라운드까지 안 갈 겁니다. 이번 시즌 미국에서 끝내겠습니다!”
오랜 세월 꿈꿔왔던 그 순간이 또다시 다가오자 서준하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 스즈카 서킷을 정말 잘 아는 선수라는 느낌을 주는군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