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89화 (189/200)

< 무슨 일 있나요? >

“아직 복귀 안 한 거야?”

일본 그랑프리가 끝난 저녁, 게러지로 들어선 롭이 아직 서준하와 엔지니어들이 정비 중인 모습을 발견했다.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어. 자기가 직접 보겠다고 저렇게...”

시상식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했던 서준하는 경주차의 업데이트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게러지로 내려온 상황이었다.

“준하가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지금 엄청 힘들 거야. 네가 좀 쉬라고 말해봐, 롭...”

“내가 말해도 소용없을 텐데. 게다가 이번에 에어로 파츠를 새로 장착하는 건 준하가 원했던 거라...”

미국 서킷의 특성상 리어윙 모양에 변화를 적용하기로 한 페라리 팀. 오늘처럼 레이스가 끝난 직후는 아니더라도, 서준하는 늘 경주차의 미세한 조정까지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드라이버였다.

“그리고 사실 F1은 저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각 서킷과 드라이버의 상태에 맞는 컨디션을 위해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쉴 새 없이 작업하는 곳이자, 주말 레이스가 펼쳐지는 내내 밤잠을 설쳐가며 머신 조정 작업으로 녹초가 되는 곳.

화려해 보이는 F1 무대도 사실은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전쟁터다.

“준하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레이싱 주간동안 다른 곳에 눈 돌아가는 드라이버는 절대 월드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걸.”

수천 개의 부품 중 점화 플러그 단 한 개의 이상 때문에 내내 선두를 지키던 드라이버가 리타이어로 우승을 헌납하기도, 단 하나의 작업 실수와 작전 미스로 우승을 놓친 예가 수없이 많다.

피라미드 같은 드라이버의 세계에서 거르고 걸러진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F1 드라이버들. 그들 가운데 챔피언이 될 드라이버에겐 어떠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됐어. 이제 나머지는 우리가 마무리할 테니, 가서 쉬도록 하게, 준하.”

“네, 미국 도착해서 다시 조립할 때 아까 말한 덱윙 절대 놓치지 말고 빼주세요. 수고하셨어요.”

무엇보다 눈앞에서 챔피언은 물론, 인생을 날려봤던 서준하로선 매번 신중에 신중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또다시 찾아온 최후의 기회 앞에 그때와는 다른 정신으로 무장한 서준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기 위해 평소와 같이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

“아무리 네 경기를 남겨뒀다고 해도, 50포인트 차이를 뒤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메르세데스 F1 AMG의 본부가 위치한 영국 브래클리. UBS, 퀄컴, 페트로나스 등 스폰서 중역들과 팀의 임원진이 16라운드 결과를 두고 미팅을 가졌다.

“그렇죠. 남은 경기 해밀턴이 전부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도 서준하가 한두 번만 포디엄을 차지한다면 끝날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허허, 이번 시즌 우승이 두 번뿐이라는 사실이 너무 뼈아프군요.”

지난 몇 년간, 이맘때쯤 팀과 해밀턴의 챔피언 확정 소식을 들어왔던 스폰서 컨소시엄은 반전의 여지가 적은 지금까지의 결과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크흠.”

F1 팀을 관리하는 메르세데스의 임원진 브리타 시거. 스폰서들의 불안 가득한 목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 시즌은 너무나 예측 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팀은 항상 변함없는 태도로 레이스에 전념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쟁팀에선 2010년대 최강의 퍼포먼스를 가진 메르세데스의 경주차와 비슷한 신차를 개발해냈고, 신인 드라이버의 활약이 겹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허허... 시즌 후반기 시작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군요. 이제는 다음 시즌까지 페라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길까 걱정스럽습니다.”

“아뇨, 이미 빼앗긴 것 같군요. 갑자기 이게 무슨...”

스폰서들의 불만은 계속됐고, 결국 팀의 주 스폰서 UBS의 담장자 로너까지 목소리를 높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자, 일단 제 얘기 좀 들어보시죠...”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한 브리타. 이제는 형식적인 답변보다 팀의 실제 변화 양상을 알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F1은 결국 누가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드느냐에 대한 싸움입니다. 이번 시즌 떨어졌던 출력과 안정성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했습니다. 18시즌 메르세데스의 파워 트레인 시스템은 역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겁니다.”

F1은 결국 빠른 차를 만드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라 믿는 메르세데스 팀. 다음 시즌 제임스 알리슨과 같은 기술 개발자들을 영입하며 더욱 완성도 높은 V6 파워 트레인 개발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다음 시즌에 관해선 걱정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

말을 마친 그녀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임원진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크흠... 그렇군요...”

“V6 이후 파워 유닛 성능 차이는 다 거기서 거기지 않겠습니까? 허허...”

브리타의 예상과 달리 스폰서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스폰서들의 표정 어딘가엔 좀 더 획기적인 변화를 원하는 듯 보였는데,

“드라이버 라인업에는 변화를 주지 않을 생각이신 겁니까?”

이때 팀의 타이틀 스폰서 페트로나스의 담당자 샴술 압바스가 정적을 깨고 말을 꺼냈다.

“...”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회의장의 모든 시선이 브리타 사장에게로 향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테오 감독과 검토 중입니다. 시즌 마무리가 이뤄진다면, 새 드라이버를 영입할 계획입니다만...”

확실히 이번 시즌 보타스는 로즈버그의 빈자릴 메워주지 못했다. 최강팀의 경주차를 타고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 이는 스폰서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럼 어떤 선수를 영입할 계획인 거죠?”

“현재 저희 쪽 테스트 드라이버들이나, 유스 팀에서 올라온...”

“브리타, 지금 신인을 쓰겠다는 겁니까? 허허, 그럼 이거 다음 시즌도 불투명해지겠군요.”

한 해 수천억이 달하는 스폰 비용을 지불하는 스폰서들. 브리타의 생각보다 그들의 불만은 굉장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이적 시장이 제한적이라, 페라리와 대적할 만한 선수 모두 계약 기간이 겹칩니다. 차라리 일찍이 검증된 신인을 기용해 해밀턴을 서포트하고 적응 기간을 앞당기는...”

“왜 없습니까. 최고의 선수를 데려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때 가장 먼저 드라이버 문제를 제기했던 압바스가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최고의 선수라면... 누구를?”

당황한 브리타가 눈을 껌뻑이며 그를 바라보고,

“서준하를 데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경쟁 팀의 루키. 압바스의 말에 회의장 전체가 술렁거렸다.

대부분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서준하의 이름이 언급된 이후 회의장은 온통 서준하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는데,

‘...’

또 한 번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브리타의 입에선 실소가 흘러나왔다.

‘원하는 게 이거였구나...’

누가 보더라도 앞으로 F1 챔피언십의 서준하는 핵심 키(key)였다. 이번 시즌 11경기 우승을 차지한 서준하. 결국 스폰서들이 원하는 건 그였다.

“아, 네. 서준하 선수요...”

브리타가 다시 마이크를 집어 담당자들을 주목시켰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검토해보도록 하죠...”

마치 원하는 답변을 들었다는 듯 밝아진 담당자들의 표정. 브리타가 씁쓸한 표정과 함께 급하게 회의를 마무리했다.

***

뚜두두두뚜.

다다다탕.

LA의 상징적인 거리 할리우드 블러바드(Hollywood Boulevard)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음악 작곡가 브라이언 타일러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흥겨운 음악으로 행사 시작을 알렸다.

수와아아앙.

끼이이이이이이익.

“호주의 넘버 원 프리스타일 스트릿 바이커! 데이브 맥케나가 팬들 앞에 스토피(stoppie)를 선보이는 군요!”

TCL 차이니스 극장과 돌비 극장 대로변으로 튀어나온 모터사이클 한 대.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 스턴트 라이딩과 낙하산 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오늘 F1 할리우드 페스티벌의 주인공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할리우드 배우들과 영화 관계자들, 그리고 수많은 팬들이 열광적으로 포뮬러카의 등장을 맞이했다.

“가장 먼저 레드불 레이싱의 막누스 페르스타펜 선수...!”

부와아아아아아앙.

타이어를 미끄러뜨리며 강렬한 스키드음을 내기 시작하는 레드불카.

끼이이이익.

스모그와 함께 F1카 특유의 배기음으로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는데,

“아... 잠깐 차량의 문제가...”

도넛 퍼포먼스를 보이던 도중 엔진이 꺼져버린 레드불 차량. 스키드음과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거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아, 네. 음...”

움직이지 않는 경주차를 스태프들이 직접 끌고 움직이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지금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관중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 뭐 좀 나올 것 같았는데. 갑자기 흥이 깨지네.”

“하, 엔진이 꺼진 건가?”

오늘 행사에 참가한 영화 ‘분노의 질주’의 주연 배우 빈 디젤과 감독 게리 그레이. 두 사람도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촬영하던 휴대폰을 내려놨다.

“쯧, 이번엔 실망시키지 않겠지?”

곧이어 또 다른 포뮬러카 한 대가 등장하자, 거리의 분위기는 다시 커다란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끼이이이이익.

그렇게 뒤이어 미국팀 Haas 드라이버 마그누센의 쇼런. 자연스럽게 거리로 들어온 차량에 무사히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워허! 방금 부딪힐 뻔했다고...!”

이번에도 데모는 순탄하지 않았다. 속도를 내며 달려온 하스의 차가 180도 턴 도중 펜스 블록과 부딪히며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허허, 아까 그 모터바이시클이 하이라이트였구만...”

첫 쇼런에 많이 긴장한 듯 보이는 드라이버의 주행. 조금 전 상황에 가슴을 쓸어내린 게리 감독이 멀어져가는 하스의 포뮬러카를 보며 혀를 찼다.

두두두두두두둥.

마그누센에 이어 쇼런을 나서기로 한 서준하. 대기 중인 레이싱카 주위로 갑작스럽게 진행 스태프가 달려왔다.

“잠깐만요, 준하! 잠깐만 있다가 출발할게요.”

“...?”

“아, 이거 참 오늘 진행 왜 이래...”

“무슨 일 있나요?”

“180도 턴 공간을 더 확보하기로 했어요. 아까 마그누센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스태프가 현장 분위기와 사고 상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쇼런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서준하의 대기 시간은 늘어나고 말았는데,

“오케이, 완료.”

그리고 잠시 후,

“준하, 이제 나가면 되는데요. 너무 무리해서 턴하지 마세... 엥?!”

출발 사인을 보내기 위해 서준하의 곁으로 다가선 스태프가 당황하고 말았다.

“준하...?!”

완료됐다는 말과 동시에 곧바로 대기 장소를 떠나버린 서준하.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뭐? 펜스를 넓혀?!’

침체된 분위기 속 할리우드 거리로 페라리카의 엔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무슨 일 있나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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