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곳인지라 시커멓게 먼지 때가 끼어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려고 들려면 보지 못할 것도 아니다.
삼봉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발딱 일어섰다.
요상한 집주인은 요상한 집주인이고, 한심한 집구석은 한심한 집구석이지만 일단 삼봉은 자신의 할 일은 해야겠다 결심한 것이다.
이 멀쩡한 집안 꼬라지가 아주 귀신 나오기 일보 직전인데 그걸 결코 두고 보기만 할 삼봉은 아니다. 그는 재게 발을 놀려 청소 도구들을 찾아 끈적거리는 먼지 때가 잔뜩 끼어 있는 목재 계단을 요절내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결심을 어떻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정삼봉 십구 년 평생 상상도 못할 한심한 작자를 만나고, 그는 아주 대단한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주인은 이층 서재 방에 팩스 올 때쯤이 되었다 싶어 이층으로 가려다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꾸무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짐짓 놀라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한 얼굴을 만들어야 했는데 벌렁벌렁 뛰는 심장이 그가 정말로 놀랐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왜유.”
집주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좀 전의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삐죽 튀어나오는 삼봉의 음성이 곱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 말해 놓고서 후회한 삼봉은 애써 웃으려 했지만 컴컴한 계단참에서 새까만 삼봉이 웃으면 희게 번들거리는 이밖에 보이지 않는다.그게 더 괴기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삼봉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뭐해.”
“청소하는디유?”
면바지 하나를 걸쳤을 뿐 속옷 차림이나 다를 바 없는 주인이 계단 벽을 짚었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계단 등이 켜지자 물걸레를 들고 계단을 닦고 있는 삼봉의 모습이 훤하게 보였다.
“음마. 전깃불을 왜 써유. 걍 둬유. 별스런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청소하는데 뭐 한다고 불을 쓴대유. 전깃불 하나도 다 돈이에유. 혹시 아랫돈이 웃돈에 눌려 숨 못 쉬겠대유?”
“내 돈은 다 은행에 있다.”
주인으로서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겠지만 삼봉은 기가 막혔다. 간단한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주 심각하게 저 허우대 멀쩡한 쥔 양반이 정말로 골 때리게 무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야. 코딱지.”
“……?”
“불 켜고 닦아. 박박.”
“……야.”
“반말하지 말고.”
“야?”
쓸데없는 전기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훤하게 밝혀진 계단참을 보니 일없이 전깃불을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하던 삼봉이었다. 어두컴컴한 데서는 잘 보이지 않던 목재 계단의 찌든 때가 선명하게 보이니 이미 닦았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다시 닦아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삼봉은 뜬금없이 반말하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쥔 양반을 멀뚱멀뚱 바라보아야 했다.
“너 죽을래?”
“싫은디유?”
“어른한테 반말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 배웠어?”
“반말 안 했는디유?”
“니가 자꾸만 야라고 했잖아. 코딱지만한 게…….”
“야?”
“지금도.”
삼봉은 걸레를 들고 있는 손으로 머리통을 북북 긁었다.
무식한 게 아니라 살짝 실성한 거 같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았다.
“그 야는 그런 야가 아닌디유?”
“아냐?”
“아니여유.”
“야가 야지. 아닌 야가 어디 있어. 우기지 말고 어른한테는 존댓말 하는 거야. 갈 데가 없다고 하니 데리고는 있어 주지만 난 예의 없는 것들은 딱 질색이니까 알아서 기어.”
“음마. 깝깝한 거……. 아. 글씨 그 야는 그런 야가 아니라니까유.”
말이 안 통한다. 인간이 어떻게 생겨 먹으면 사람 말을 이렇게까지 못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일까. 삼봉은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어른한테 공대하라지만 암만 해 봐야 큰형뻘밖에 되지 않는다.물론, 삼봉이 큰형인 일봉에게 막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손하게 ‘야…….’ 하고 대답하는데 대뜸 나오는 말이 ‘반말하지 마.’이니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었다.
“어이. 코딱지.”
“야……. 아니, 예?”
십구 년을 편하게 씨부리며 살다 졸지에 옴팡지게 재수 없는 서울말을 해 보려니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이 삼봉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실성한 게 분명한 쥔 양반에게 잘 보여 깔머슴 생활 일 년을 넘기고 이 년 정도 이 집에서 일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려는 몸뚱이를 진정시키며 삼봉은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너 혹시 위로 형님 있냐?”
“있는데유?”
“둘?”
“야……. 아니, 예.”
“반말하지 말라고 했다.”
“알았어유. 앞으로는 야라고 안 할께유.”
“큰형이 일봉이고 둘째형이 이봉이냐?”
“야.”
“씁!”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 배운 말이 그것인데 쉽게 고쳐질 리는 없다. 주인은 살벌하게 혀를 찼지만 삼봉은 그저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큰형이 일봉이고, 둘째형이 이봉이냐고.”
“……예. 그렇지유.”
“훗…….”
살벌한 우격다짐으로 남의 평생 말투까지 손 봐 놓은 주인의 목적은 저것이었다.
솔직히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코딱지 형제들의 이름을 비웃어 주는 것. 대단히 유치한 발상이지만 주인은 자신이 유치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그리고 그가 하면 아무리 유치한 짓도 유치하게 보이지 않으니 유치하다는 타박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삼봉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끄러미 주인을 바라보았다.
“시방 넘의 이름 갖고 뭔 짓이래유?”
“뭐가.”
“방금 웃었잖아유. 비웃은 거쥬? 넘의 이름을 갖고 비웃은 거 맞쥬?”
“웃긴 건 사실이잖아. 요즘 아들 이름을 일봉, 이봉, 삼봉이라고 짓는 사람이 어디 있냐? 유치하게…….”
“음마! 아우------. 지금 이 냥반이 뭐라는 거여.”
“……?”
주인은 정색을 하고 덤비는 코딱지를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자신이 얼마나 실례를 했는지에 관해 아무런 자각이 없으니 어리둥절한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치사하고 기막힌 행동을 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아무도 그것이 그의 나이나 사회적인 지위에 맞지 않는 행동임을 지적해 준 사람이 없었다.
“이봐유. 아까 참에 지한테 뭐라고 했시유. 어른한테는 예절을 갖추는 거라고 했시유. 안 했시유. 금 그짝도 아랫사람 대하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감유? 우짜서 나만 그짝한테 성질에도 안 맞는 서울말 써감서 예. 예. 해야 하는 거고, 그짝은 넘의 집안 장손 이름을 갖고 웃음거리를 만들어도 상관 엄다는 거여유? 지는 참말로 이해가 안되는구먼유. 그리고 지는 지 이름이 웃기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구먼유. 삼봉이가 워째서유. 더군다나 지는 그짝한테 부리는 머슴이겄지만 우리 큰형이나 작은형은 그런 거 하고 암 상관없는 남 아니여유? 생판 모르는 남한테 고렇게 상식 이하로 굴면 사람들이 그짝을 얼마나 우습게 보겄시유. 건 생각도 안 해봤지유?”
“상식……!”
무식하다는 말과 더불어 상식 없다라는 말은 주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는 살벌하게 인상을 쓰며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코딱지만한 게 어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대들어. 죽을래?”
“금. 네모지게 뜨고 대들어유?”
“뭐?”
“봐유. 일케 뜨고 대들면 되는 거여유?”
라며 삼봉이 제 눈꺼풀에 손가락을 데고 쭉 늘어트리자 네모진 것처럼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모습이 되기는 했다.
주인은 어이가 없어 붕어처럼 입만 뻐끔대야 했다.
그 웃긴 얼굴을 하고 삼봉은 사정없이 주인을 타박하기 시작한다. 새까만 코딱지 같은 녀석이 눈을 네모지게 뜨고 바락바락 대드는 모양은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광경이었다.
“암만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하는 거래지만 그짝 눈앞에 있는 나는 뵈지도 않어유? 내 앞에서 우리 큰형 작은형 이름을 갖고 동네 똥개 새끼 이름 부르듯이 하는 이유가 뭐래유? 말을 해 봐유. 지도 좀 알아야 겠시유. 지가 머슴 사니까 우리 집 식구들도 죄 그짝 머슴으로밖에 안 보이는 감유? 그래유?”
“야 코딱지.”
“아. 코딱지건 귀딱지건 대답을 해 봐유! 넘의 이름 갖고 뭐라는 이유가 뭐여유. 시방 그짝이 그 이름 져 준 울 아부지까지 욕보인 거 아남유? 대체 예의범절, 예의범절 제 받는 건 찰떡같이 받아 챙기면서 넘한테 지켜야 하는 건 개뿔도 모르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웠시유. 학교 안 나왔시유? 그 정도는 초등학교서도 가르쳐유. 야간 나왔시유?”
“안 나왔다!”
“뭐유?”
삼봉은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는 나라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강촌 오지 마을 아이라고 해도 존재하지 않는다라 생각했던 것이다.
삼봉의 눈에 주인은 꼭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처럼 잘났다. 인생이 화보라는 누구보다 잘났고, 이기적인 얼굴이라는 누구보다 훨 나았다. 한 마디로 그 얼굴에서는 흠잡을래야 흠잡을 만한 곳이 없을 만큼 완벽한 얼굴이며 몸매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정색을 하고 흉흉해진 얼굴을 한 채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누가 믿겠는가.
그는 이 양반이 장난을 치는 거려니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유.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유.”
“어쩌다 보니 안 나왔다 왜. 불만이냐?”
“불만은 아니지만서두……. 참말이어유?”
“내가 상식도 없고, 예의범절을 몰라도 이제 말 되지?”
“아. 잠깐! 시방 하신 그 말이 진짜 참말이어유?”
“내가 코딱지 데리고 거짓말하게 생겼냐?”
“…….”
“대답해 봐! 이 내가 코딱지만한 널 데리고 농담 따먹기 할 만큼 심심해 보이냐고!”
삼봉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솔직히 저 잘난 얼굴에 이 좋은 집을 보면 그리 심심할 거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 번만 더 무식하다느니 상식 없다는 소리를 하면 아주 확 마당에 묻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 알아서 해! 언더스탠?”
“야…….”
“확! 이게 끝까지 반말이네…….”
충격적인 정보들이 너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몰려든 까닭에 삼봉은 대략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끝까지 ‘야…….’라는 공손한 대답을 반말지거리로 취급하며 시비 거는 주인에게 그는 공손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대답해 주었다.
“예스. 아이 언더스탠드.”
참담한 삼봉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육중한 괘종시계가 댕-! 하며 종소리를 냈다.
주인은 마치 12시를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에 놀란 신데렐라처럼 괘종시계를 보고는 삼봉을 밀치고는 계단에 올라섰다.
“네까짓 거 마당에 확 묻어 버려도 누구 하나 나한테 뭐라는 사람 없거든? 그러니까 알아서 기는 게 좋을 거야. 또! 다시는 나한테 반말 하지 마. 코딱지만한 게 세상 무서운 거 모르고 덤비는 걸 오냐 오냐 받아 줄 만큼 성격 좋은 나도 아니니까. 오늘은 바빠서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입 조심해라. 코딱지.”
서둘러 계단을 오르면서 한 말이었기 때문에 삼봉은 그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이 내뱉은 ‘코딱지’ 운운을 들었을 때 그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열 받은 멧돼지 마냥 슝슝 콧김을 내뱉었다.
“음마. 음는데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 내 말은 똥구녕으로 들은 모냥일세? 흥이다!”
훤하게 불을 밝힌 계단 한구석에 다시 쪼그리고 앉은 삼봉은 흥얼거리며 목재에 들러붙은 묵은 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무식헌 놈을 무식허다 그러지 유식허다 그럴까. 바보 아녀?”
낼름 혀를 내미는 정삼봉과 우주인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인간 유형인지도 모른다.
우주인이 아무리 안하무인의 상식 이하라 하지만 적어도 밥 주는 사람 앞에서는 얌전한 것을 보면 짐승 수준은 되는 것이 분명하다. 대체로 주인은 양 여사 앞에서 패악 부리는 일을 하지 않았고, 양 여사도 주인이 다른 데서 무슨 짓을 하건 자신의 앞에서만 얌전하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니 양 여사와 주인은 성격적인 면에서 부합하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깨작거리지 말고 먹어. 복 나가게 왜 젓가락으로 음식을 쑤석거려.”
“입맛이 없어.”
“그럼 먹지 마.”
말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당장 식탁 위를 치우려는 양 여사를 흘긴 눈으로 노려보고는 식탁을 사수하겠다는 듯 주인은 엉거주춤 식탁 위의 그릇들을 싸안았다.
“내가 남기면 저 코딱지 주려고 하는 거지?”
“코딱지가 밥을 왜 먹어.”
“저거. 시커먼 놈. 삼봉이라고.”
“아…….”
“기분 나빠.”
“버리는 것보다 낫잖아.”
주인은 한 시간 전에 자신이 한 말을 몸으로 실천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 여사를 노려본 것이다.
“나 먹는 밥만 해 주는 거잖아. 배 변한테도 예진이한테도 밥 안 해주면서 왜 그 코딱지한테는 밥을 챙겨 주는 건데!”
“애니?”
“뭐?”
“애냐고. 어울리지도 않는 어깃장은 어디서 배워 왔어?”
양 여사가 좀 화를 내는 것 같아 주인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아까 코딱지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네모지게 뜨고 대들면 화가 좀 누그러드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짓을 하기에는 체면이 좀 걸린다.
“변호사 선생이나 예진 씨 같은 경우야 너한테 월급 받잖아. 밖에 나가 밥 한 끼 사 먹는 거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이랑 돈 한 푼 안 받고 집안일 해야 하는 애랑 같아?”
“응?”
“안 먹을 거면 팔 치워. 금자나 주게.”
“코딱지 안 줄 거야?”
“삼봉이 거는 냉장고에 넣어 놨어. 더럽게 왜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줘.”
“다 꺼내. 나 갑자기 배가 많이 고파졌어. 다 먹을 거야.”
양 여사는 반찬 그릇을 치우려다 말고 팩 돌아서 주인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가 되면 정말로 어깃장이고 패악이다.
“아들 같으면 한 대 패줬다. 알아?”
“양 여사 아들보다는 내가 백 배 낫다며.”
“내 아들은 너 같은 짓 안 해!”
“나 같은 짓 안 해서 엄마를 남의 집 식모로 보내고 삼 년 동안 연락 한 번을 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