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58)

양 여사는 조근조근 자신과 말을 섞으면서도 재게 손을 놀리는 삼봉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냥 물김치에 넣어도 빛깔 우러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우주인은 나박김치에 순무 들어간 것을 질색하며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예쁘게 보라색 물이든 무는 곧잘 골라 먹으니 어쩔 수 없이 해 왔던 일이지만 단단한 순무를 빻아 즙내는 일이 여간 고역은 아니었다. 자신은 한참을 애써야 하고, 젊은 예진이를 시켜도 영 하는 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삼봉이는 저래도 사내라며 금세 순무를 토막토막 썰어서는 돌절구에 넣고 팡팡 찧어 대는 게 아닌가.

눈부실 정도로 밝은 오후 나절 햇살에 돌절구에서 튀어 오르는 보라색 순무 즙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야!”

파삭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찌르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양 여사는 고개를 들었다. 경쾌한 몸짓으로 순무를 박살내던 삼봉의 손동작이 멈춰지고 곧이어 사근사근 귀여운 얼굴마저 찡그려진다.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우주인이나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입 삐죽거리는 정삼봉이나 도낑개낑에 도토리 키 재기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배에서 태어나도 저만하지는 않겠다 싶은 둘의 대거리에 제법 재미를 붙인 양 여사였다. 가만 보면 영 상성이 맞지 않는 거 같지만 그렇게 싸우면서도 짐 싸 들고 나간다 덤비지 않고, 나가라고 바락바락 소리만 질렀지 그간 일한 월급 챙겨 내던지지 않는 것을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게 분명했다.

비록 깔머슴이라고는 해도 우주인은 사람 부리면서 한 푼도 안 챙겨 주는 성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양 여사는 신중하게 저 둘의 관계를 관망하고 있었다.

“일방에 문서 세절기 안 움직여.”

“그려유?”

“그려유는 무슨 그려유야. 니가 청소를 재깍재깍 했으면 이런 일 안 생기잖아. 빨랑 가서 치워!”

“오늘 아침에 싹 다 비웠시유.”

그리만 대답하고 다시 절구질을 하는 삼봉의 공이에서 질퍽거리는 소리가 연방 울려 퍼졌다. 다시 반짝이는 햇살로 보라색의 순무 빛 물방울이 튀기 시작하지만 양 여사는 그게 그리 오래갈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 조그만 머릿속으로는 지금 ‘뭔 놈에 일을 하기에 허구한 날 종이만 작살내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하지 말고 가서 후딱 비워.”

“지가 시방 그짝 붙들고 일없이 농담할 만큼 한가해 보여유?”

“……?”

“암튼 지도 바쁘니깐 가서 다시 해 봐유.”

“바쁘긴 니가 뭘 한다고 바빠.”

양 여사는 갈등했다. 꼴을 보아하니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전에는 끝 간 데 없이 싸울 태세다.

“지금 그짝 자실 김치 담그는 거 안 뵈는감유? 지가 마냥 노는 걸루다 보여유?”

“김치를 양 여사가 담그지 니가 왜 담가. 더러워. 손대지 마.”

“음마? 시방 뭐라 그러는 거여유?”

“난 양 여사가 한 음식 아니면 안 먹어. 그러니까 내가 먹을 김치에 손대지 말라고.”

“음석 갖고 그라는 거 아니구먼유.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혀도 되유?”

“안 돼. 하지 마.”

“시끄럽구먼유. 뭔 놈에 사내가 입 까탈스런 게 말루 못할 만큼 별시럽대유? 김치를 어떻게 일주일 걸러 한 번씩 담그느냐 이 말이여유. 여름에는 사흘에 한 번씩 담가야 한담서유. 그게 말이 되유? 아줌니 몸도 션찮은데 언네도 아니구 그게 뭔 지랄이래유? 걍 주는 대로 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남유? 대체 사람이 왜 그려유.”

“시끄러. 시끄러! 안 들려. 안 들려. 아무 말도 안 들려!”

하지 말라는데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정삼봉. 듣기 싫다는 얼굴로 귀를 막아 버리는 우주인. 양 여사는 머릿속에서 개념을 깨끗이 지워 버린 두 녀석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의 중재자는 양 여사가 아닌 모양이다. 양 여사는 우주인의 등 뒤에서 낮은 포복을 한 채 기어오고 있는 생명체를 보고 피식 웃어 버렸다.

발광하는 우주인을 말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하지만 여간해서는 그녀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밥 때가 되면 나타나고, 기분 내키면 아양도 떨어 주신다.

“사장님?”

하지만 그간 먹인 밥이 몇 그릇인데 싶어 양 여사는 우주인에게 경고해 주려고 했다. 귀를 막은 채 도리질을 치며 귀엽게 반항 중인 우주인이 그녀의 경고를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오렌지색의 복슬거리는 털을 가진 작은 개는 맹렬하게 뛰어올라 우주인의 옆구리를 물었다. 귀를 막은 채 도리질 치던 우주인이 억! 할 사이도 없었다. 그는 어이없이 엉덩방아를 찧었고, 금자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옳다꾸나!’ 하며 우주인의 몸 위로 올라타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음마?”

“흐음…….”

당황한 삼봉과 달리 양 여사는 알맞게 잘라 놓은 배추에 소금을 뿌렸다. 간수가 덜 빠졌는지 굵은 소금이 손에 엉겨 붙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소금 업자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심각해졌다. 바로 코앞에서 고용주가 개한테 물어뜯기고 있는데 태연하기 그지없는 마음가짐이었다.

반면 삼봉은 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눈앞의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금자는 친절한 개였다. 시골 마을 어디서나 한 마리쯤 볼 수 있는 친근한 외모처럼 촐싹대며 아양도 잘 부렸다. 그가 이집에 처음 온 그 날부터 마치 한 삼 년은 아침저녁으로 얼굴 본 식구를 대하듯 발라당 드러누워 배까지 보이며 복종을 맹세한 것이다. 출렁출렁 젖이 늘어진 것을 보면 하는 짓과 달리 어리지 않은 개임도 알 수 있었다. 개 이름답지 않게 ‘우금자’라고 성까지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것인가도 짐작할 수가 있다. 개한테 사람 성을 붙이는 것 자체가 삼봉에게는 이해 가지 않는 것이지만 말이다.

개만큼 주인 덕을 보는 존재는 없다. 부잣집 개가 가난한 집 가장보다 잘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집안에 드나들이 하는 사람들 모두가 금자에게 친절했고, 동네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똥개라는 핸디캡은 그래서 금자에게 적용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눈앞에 광경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개가 주인을 무는데 태연하기 그지없는 양 여사의 반응도 삼봉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중 하나였다. 개가 사람을 물면 일단 그걸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큰 개라서 덤비기 겁나는 것도 아니다. 우금자는 작은 편에 속하는 똥개였다.

“내버려 둬. 저러기는 해도 정말 위험한 짓은 안 하니까.”

“아줌니…….”

말했다시피 우금자는 작은 똥개니까 덩치 큰 우주인에게 큰 위협은 되지 못한다. 처음 얼마 동안 당황한 듯 고스란히 제 살점을 내주고 있던 우주인이 후다닥 일어나 뛰기 시작하자 개는 컹컹 짖으며 그 뒤를 쫓았다.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순무 다 찧었으면 거기 베보자기에 넣고 즙 좀 내.”

“아줌니 저게…….”

얼빠진 삼봉에게 양 여사는 우금자의 전설을 말해 주었다.

낯가림 없이 착한 개란다. 우금자는.

드나드는 사람 많은 집에서 키우는 개답게 낯선 이라며 경계하여 으르렁거리는 일도 없고, 밖이 시끄러워도 짖는 일이 없는 그런 개였다. 애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고 대단히 친절한 개다. 으리으리한 이 집 대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친절하게 양 여사나 다른 집안사람들에게 안내를 해 줄 만큼 영특하기도 하다.얼마나 친절한지 하루는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 도둑마저 열려 있는 부엌문 앞까지 안내를 해줬단다. 그것도 자고 있는 집안사람들이 깰까 봐 소리 없이 조용히 말이다.

경보가 울려 방범 회사 직원이 출동했을 때 우금자란 개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친절한 금자 씨가 우주인만 보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으르렁거리기만 하면 양반이다. 수틀리면 가차 없이 물어 버리기도 한다.

너 밥값 대는 사람이 누구냐고 우주인이 소리를 지르면 말대답하듯 컹컹대며 싸우자 들고, 덮치기 물기는 예사다. 하도 물려서 금자 털끝만 봐도 우주인이 기겁하며 도망칠 정도로 패악을 떨었다.

주인한테 그러는데도 저 성질 머리에 우금자를 쫓아내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요란하게 물어뜯고 짖고 덮치지만 실제로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다.

주인만 보면 무는 개. 하지만 주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개. 심지어 도둑에게까지.

삼봉은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혀를 내둘렀다.

정말로 이놈에 집구석은 도무지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우주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편이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는 그의 인맥이란 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예진은 그가 누구를 만나서 무얼 하는 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신변을 보호하고 그가 원하는 곳에 안전하게 이동시켜 주는 것. 그것이 차예진의 일이었고, 그 일을 해서 그녀는 돈을 받는다.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의 관심은 우주인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차예진 역시 귀찮았다.

술이 떡이 되어 나오는 우주인은 틀림없이 그의 할아버지뻘은 될 법한 노인네들과 놀다 나오는 것이다. 관심은 없지만 저절로 알게 되는 패턴이라는 것이 있다.

비등비등한 나이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주인은 혼자만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 나머지는 모두 부축을 받아야 하거나 심할 경우 119구급대가 출동한 경우도 있었다. 우주인보다 어린 연배의 사람들을 만나면? 말할 것도 없다.

조금 연상의 사람들을 만나면 적당히 취해 자리를 뜨는 경우가 있으니 술을 얼마나 마시는가는. 아니, 술을 얼마나 마시게 하는가는 나이에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저 유치하고 무식하고 비상식적인 남자에게도 상식적인 부분이 얼마간은 있는 게 분명하다.

“하아…….”

차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도 차예진은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열어 주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대충 뭉개고 있으면 알아서 차에 탄다. 회합 장소의 주차장까지는 대단히 엄중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으니 차예진이 신경을 곤두세울 이유도 없었다.

살짝 선루프를 열고 그녀는 뒷좌석에 완전히 자빠져 색색거리는 우주인의 기색을 살폈다.

“집으로 모실까요?”

“응. 몇 시야?”

“다섯 시 좀 넘었습니다.”

“망할 영감탱이들……. 아주 죽여라 죽여.”

쉽게 죽을 것 같지 않은 남자가 심하게 엄살을 부리며 구시렁대는 소리에 차예진은 소리 없이 웃었다. 다른 재벌 이세, 삼세들처럼 적당히 상대해 주고 빠지면 길게 귀찮게 구는 일이 없을 텐데 그의 말대로 그 영감탱이들에게 꼬박꼬박 재롱을 떨어 주시니 영감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번번이 모임이 있을 때마다 불러내고, 그러면 저렇게 온갖 불평을 다 하면서도 그는 그 회합에 참석한다. 그게 다 인맥이고 인맥이 곧 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예진이 보기에 노인네들이 회합에 꼬박꼬박 참석하여 재롱을 떨어 주시는 것도 저 남자의 수많은 재주들 중에 하나였다. 본인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내심 그것을 즐기고도 있다.

“많이 힘드십니까? 약이라도 사 올까요?”

“뭘 약씩이나. 됐어.”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괴롭게 인상을 쓴 채 엎어져 있는 것도 그림이 삼삼하다. 그저 보는 것뿐이기 때문에 차예진은 우주인의 거창한 화보 인생을 꽤 즐기는 편이었다.

“차예진 씨.”

“예?”

차는 채월정을 나서 고약한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승차감이 좋은 승용차라고 해도 형편없이 난폭한 도로 위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쿠션 좋은 뒷좌석에서 한 번 펄쩍 뛰어오른 우주인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일으켜 앉으며 물어 왔다.

“코딱지가 좋아?”

“예? 무슨 말씀이신지.”

“코딱지. 그 삼봉인가 세봉인가 하는 놈.”

“아……. 질문하신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끄윽!”

술꾼의 신트림 소리가 차예진의 비위를 건드렸다. 새벽 위통이 슬슬 시작하는 시간에 온갖 음식과 온갖 술이 짬뽕 되어 있는 냄새는 정말 괴롭다.

차예진은 흉측한 짓을 저질러 놓고도 혼자 고고한 딴 세상 사람처럼 앉아 있는 저 망할 화보 인생을 룸미러로 노려보았다.

“그 코딱지가 마음에 드냐고. 당신 사람 싫어하잖아. 차예진 씨가 배 변처럼 드나들며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거의 집에 있는데 그런 코딱지랑 같은 집에 사는 거 싫지?”

“싫지 않은데요?”

“왜.”

차예진은 뭐 그런 질문을 다 하냐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무엇보다도 신중한 성격이라 함께 지내기 딱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우윽!”

우주인은 다시 한 번 신트림을 했다.

하지만 요란한 트림을 끝내고 번쩍 고개를 치켜든 그는 지금까지 떡이 되도록 취한 주정뱅이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심기가 불편한 우주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기는 뭐가 조용해. 코딱지 주제에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아? 아주 귀가 따가울 정도라고. 예의 발라? 하! 꼬박꼬박 말대꾸에 심지어 반말까지 한다고. 나보다 무려 여덟 살이나 어린 주제에 맨날 날더러 야. 야. 그런다니까?”

“설마요.”

물론, 고용주의 말에 이처럼 냉큼 반박해서는 안 되는 걸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차예진이 알고 있는 정삼봉과 우주인이 아는 정삼봉은 다른 사람인가 보다.

“설마가 사람 잡는 거 몰라? 원래 설마 설마 하다 당하는 거야. 차예진 씨가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코딱지 그거 진짜 웃겨. 알아? 정말로 시끄럽고,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데다 아주……. 아주…….”

“그렇습니까?”

채월정에서 술에 떡이 되어 나온 우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새빨갛게 충혈 되어 광인의 그것처럼 보이는 눈을 번들거리는 미남자만이 뒷좌석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차예진은 이쯤 해서 우주인의 의견에 동조해 주어야 했다. 그녀의 생각이 어떤 것이든 고용주께서 그것을 강요한다면 기꺼이 수긍해 주는 것이 편하게 세상을 사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진짜야. 알았지? 코딱지는 시끄럽고 나한테 막 야. 야. 하는데다 예의도 없어. 한 마디로 재수 꽝이야. 알았지?”

“예.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응. 그래. 차예진 씨는 말이 통하네. 응…….”

잠꼬대였나?

아래위로 좌우로 엄청나게 방정맞은 삼바 춤을 춰 대고 있는 차 안에서 지금까지 꼿꼿하게 앉아 있던 우주인이 풀썩 쓰러져 자빠졌다.

최대한 요동을 줄여 보려고 노력하지만 채월정 대문 밖에서 포장도로까지 가는 2킬로미터 구간은 채월정을 아는 모두가 혀를 내두를 만큼 난코스였다.

낮게 코를 고는 소리에 차예진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바락바락 소리 지르면서 눈을 빛내던 우주인은 몽유병 버전의 우주인이었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알고 있는 정삼봉과 몽유병 버전의 우주인이 주장한 정삼봉은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

마의 난코스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차가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는 더 요란해졌다.

벌써 열댓 살 넘어가면서부터 삼봉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학교에 가는 것은 가는 것이고 집안일인 농사를 거드는 일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창 바쁠 때는 학교 일보다 농사일이 우선인 시절도 있었다. 따라서 그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몸에 배어 좀처럼 늦잠 자는 일이 없었다.

“쥔 양반은 어델 가고 누님 혼자 왔대유?”

“차에.”

“야?”

“차에서 자.”

“……?”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차에서 잠을 자나.

그런 삼봉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차예진은 길게 기지개를 켜며 목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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