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네.”
“누님.”
“응?”
“지가 뭐 쫌 여쭤 봐도 되남유?”
“말해.”
삼봉으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태연하기 그지없는 차예진이 대답하자 냉큼 삼봉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시방 쥔 양반이 차에서 자고 있다고 하신 거여유?”
“응.”
“그 냥반이 원래 고로코롬 요상시러븐가유?”
“응?”
“아 글찮여유.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차에서 잠을 잔대유? 숼찬게 그러는 거여유? 시방 누님 하는 양을 보니께 아주 하루 이틀 양이 아닌 모냥인디. 그게 말이 되유?”
“말 안 되는 짓 많이 해.”
“누구유. 쥔 양반유?”
“응. 우주인이잖아. 가끔 착한 지구인들 괴롭히지 말고 너네별로 가라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온다니까?”
라고 말하며 차예진은 자신의 목어림을 짚었다. 사실 목보다는 입에 더 가까운 지점이다.
삼봉은 그것도 자주 차에서 자는 기행을 한다는 주인도 웃기지만 모시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 주인을 방치한 채 요만큼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차예진도 만만찮게 황당했다.
그래도 손윗사람인데다 뭔가 그럴 법한 이유라도 있겠지 싶은 것은 평소 차예진의 행동거지가 한 치도 틀림이 없는 때문이었다. 사람이 본래 평소 행실로 결정적인 순간에 평가를 받는 것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주인이 깝치고 따질 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어지간히도 삼봉에게 밉보인 우주인은 지금 불편한 몸을 뭉기적거리며 코를 골고 있으니 알 도리가 없겠지만.
“안적 날씨도 얄궂은데 바깥에서 자면 고뿔 드는구먼유. 안짝에다 옮겨 놔야 허잖겠시유?”
“왜?”
“시방 말하잖여유. 바깥에서 자면 고뿔 든다구.”
“그럴 의리는 없는데? 그리고 사장님도 이런 경우 그냥 내버려 두고 내 볼일 보라 했고 말이야.”
삼봉은 손을 내저었다.
“그려도 사람이 그러면 쓰남유? 그건 아니지유.”
“사람이 그러면 못쓰면 난 사람 안 할래.”
“야?”
“없는 의리까지 챙겨야 하는 게 사람이면 난 사람 하기 싫다고. 의리는 너나 지켜. 난 들어가서 잘래.”
참으로 의리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술에 떡이 되어 자빠진 성인 남자를 들어 옮기는 일은 무리다. 물론, 술에 떡이 되지 않고, 상처 입어 피투성이가 된 환자라고 해도 차예진은 그를 들어 옮기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심각한 접촉 기피증 환자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경호 학교를 졸업하고 대단히 뛰어난 무술 실력에 신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까지 갖추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있어 충분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우주인의 경호인으로 취업하기 전까지 길게는 한 달 짧게는 하루 만에 직장을 옮겨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저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삼봉은 매정하게 돌아서 그녀가 기거하는 별채로 쏙 들어가는 여자를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의리를 지키고 사람이기를 선택한 것은 삼봉이다. 그는 제법 싸늘한 밤기운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술 취한 우주인 한 마리를 안채 침실까지 옮겨야 했다. 비록 욕은 한 바가지를 했을망정 그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니 원망할 사람이 없었다.
어지간히 술을 좋아하는 삼봉이었으니 숙취로 고생할 우주인의 위장에도 측은지심을 느꼈다. 자신이야 집안의 막내로 어디 대놓고 숙취 타령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한 번도 해장국을 얻어먹어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해장국에 일종의 한이 맺혀 있는 삼봉은 얼큰하고 시원하게 국을 끓여 우주인의 해장을 돕기로 했다. 저는 받아 보지 못한 호사래도 막장까지 퍼마시고 뻗은 뒤에 오는 후폭풍에는 충분히 공감했던 것이다.
해장국 냄새에 홀린 것 모양 깨우지도 않았는데 어슬렁거리며 식당으로 나온 우주인의 얼굴이 까칠하기 그지없다. 암만 인생이 화보래도 떡이 되도록 들이부은 후에도 그럴까 싶어 힐끔거리며 우주인의 낯색을 살피던 삼봉의 얼굴만 더 구겨졌다.
대체 저놈에 종자는 어디서 떨어진 거라 까칠하게 왕창 구겨져 있어도 분위기 자체가 남과 다른 것일까.
“웬일이셔? 응급실 실려 가게 퍼마시고 들어와도 느끼한 계란국 끓여 주던 양 여사가.”
탐욕스럽게 손을 마주 비비며 황홀한 표정으로 코를 킁킁거리는 우주인의 앞으로 삼봉은 얼큰하게 잘 끓여진 황태 국을 내밀었다. 청양 고추를 송송 썰어 넣어서 꽤나 매콤한 맛이지만 겉으로 봐서는 그저 다를 것 없는 맑은 국이다.
“계란국이 느끼해유?”
“윽?”
그 ‘윽?’은 무슨 뜻일까. 삼봉은 성급하게 숟가락을 들고 있던 우주인이 냉큼 인상을 구기자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약주 많이 하셨시유? 지가 밤에 그짝 들쳐 업고 안채까정 오니라 허리가 뽀사지는 중 알았구먼유. 속 많이 부대끼시지유? 후딱 한 그릇 드셔유? 울 아부지도 이거 한 그릇이면 술이 몽땅 깬다면서 숼찬게 좋아하셨시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삼봉을 마주 보고 마치 거울처럼 똑같이 머리통을 기울이던 우주인이었지만 우글우글 부대껴 대는 속에 황홀한 황태 국 냄새를 마다하기는 힘이 들었다. 그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정체 모를 미심쩍음을 뒤로 하고 냉큼 맑은 황태 국을 한 숟가락 퍼마셨다.
뜨끈뜨끈하고 알싸한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와글대는 속을 일시에 진정시키는 감각은 최상의 섹스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와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명백한 쾌감임이 확실했다. 나른한 만족감이 온몸을 휩쓸어 그의 입에서는 감탄스러운 신음 소리가 절로 새 나왔다.
육체적으로 느끼는 쾌감이 너무 지독한 나머지 그의 이성은 예리한 칼날을 내세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눈물이 나도록 시원한 황태 국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다행이구먼유. 아줌니가 그짝 세빠닥 까탈스럽기가 보통 까탈시러븐 것이 아니래서 엄청 쫄았구먼유. 허긴. 울 아부지도 술 자신 담날 그 황태 국 한 그릇이면 몽둥이 타작할 일도 수월하게 넘어가 주시기는 혀유. 워때유. 괜찮지유? 속이 확 풀리지유?”
탁!
우주인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미련 없이 육중한 대리석 상판의 식탁을 냅다 뒤집어엎었다.
와르르 식탁 위의 반찬 그릇이 쏟아지고 밥그릇이 날아가고 국그릇이 뒤집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식당 한가운데 서서 삼봉은 잠시 동안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서 있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짓이라는 밥상 뒤집기를 단번에 해치워 버린 우주인이 벌떡 일어나 식당을 나가려는 듯 발걸음을 돌릴 때까지도 그랬다. 하지만 이대로 우주인을 범행 현장에서 달아나게 둔다면 그것 또한 삼봉스럽지 못한 행실이다.
“보, 봐유! 이봐유!”
“뭐.”
고개만 빼딱하니 돌리는 우주인의 행실이 참으로 고약하다.
“시방 이게 뭐 하는 짓이래유?”
“눈 없어? 보면 몰라? 밥상 엎었잖아. 안 보여? 안과 가 봐라. 의사 한 놈 소개시켜 줄까?”
“누가 몰라 물어유? 시방 이게 뭐 하는 짓이냐구유. 왜 멀쩡한 밥상을 엎어유? 뭐가 불만이래유? 미쳤시유?”
“니 눈엔 내가 미친 걸로 보이냐? 그럼 미쳤겠지.”
“하!”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여간해서는 기죽지 않는 삼봉의 드센 혓바닥도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양 여사 불러 내 밥 차려 달라고 해. 느끼한 계란국이라도 좋으니까 뭘 좀 먹어야겠군.”
파렴치한 짓을 해 놓은 주제에 뻔뻔하게도 우주인은 궁둥짝을 벅벅 긁으며 벌써 식당을 절반쯤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삼봉이 모질게 달려가 그 옷자락을 잡지 않았다면 미련 없이 방으로 돌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봐유! 지가 이건 들어야겄구먼유. 대체 왜 이런대유. 뭐가 잘못 돼서 이런대유. 말을 좀 혀 봐유. 나도 들어야겠으니께 어디 한 번 말해 봐유. 왜 멀쩡한 밥상을 뒤집어유? 국이 잘못 되었시유? 밥이 설익었어유? 그렇다 해도 이건 도무지 이야기가 안 되는 말이지만 그래도 뭐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여유!”
“이유? 있지.”
그제야 대화를 나눌 생각이 들었는지 우주인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냥 있어도 화보고 인상을 쓰면 설정이 되는 표정이 시니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부아가 치미는 삼봉이었다. 남이 정성껏 만들어 준 음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서 저리 여유 만만 하게 웃을 수 있는 그 심술과 호기가 배알이 틀렸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봉 자신 역시 우주인이 엎어놓은 밥상을 한 번 더 엎어놓고 싶을 만큼 화가 나 있었다.
“난 양 여사가 차린 밥 아니면 안 먹어.”
“안 먹으면 걍 일어서면 되잖여유? 근데 멀쩡한 밥상을 왜 엎어유. 지금 시위 해유? 지가 뭘 그리 잘못했시유. 뒤틀리면 밥상 엎어도 된다고 누가 그려유. 그게 말이 되유?”
“안 돼? 왜 안 돼. 말 안 되는 소리 하는 건 너지. 모르겠어?”
삼봉은 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원래 이 인간이 말 안 통하는 안하무인인 것은 이미 눈치 채고 있는 사안이지만 이건 그걸로 이해하기에 너무 심각한 꼬라지가 아니던가. 세상에 그 어떤 이유로도 밥상 날아가는 일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삼봉은 그렇게 생각했다. 성질 머리 지랄 같기로는 저 외계인 못지않은 둘째형도 밥상을 엎은 적은 없었다.
삼봉이 알고 있는 가장 못돼 처먹은 인간조차도 밥상만큼은 엎지 않았으니 지금 이 상황이라는 것이 삼봉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기는 너무 힘겨운 것이다.
“니가 왜 내 밥상을 차려. 내 밥상 차리는 일 하라고 돈 주고 고용한 양 여사는 어쩌고 니가 왜 내 밥상을 차리느냔 말이야.”
“아줌니가 시방 몸이 쪼깨 아파유. 그래서 지가 내처 주무시라 말씀드리고 나왔구먼유. 그게 잘못인감유?”
“잘못 아니야? 너 할 일이 그렇게 없어? 아니면 그렇게 유능해? 니가 양 여사 일을 해 버리면 양 여사 입장은 뭐가 돼. 그건 생각해 봤어? 양 여사 이 집에서 딱 내 밥만 차려 줘. 그것 때문에 비싼 월급 받고 내 집에 있는 거야. 그걸 니가 하면 양 여사는 이 집에 있을 필요 없겠네? 내보낼까? 양 여사가 그렇게 보기 싫었어?”
“이야기가 왜 글루 튀남유? 시방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어유.”
“왜 아닌데? 니가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이 집안일 전부 혼자 할 수 있는데 내가 양 여사 계속 데리고 있을 이유 없잖아. 있어? 내가 자선사업 하는 사람이야? 양 여사 일은 양 여사 프라이드야. 프라이드 몰라? 자긍심. 무식한 나도 아는데 유식한 니가 왜 몰라? 남의 일 가로채서 하면 너는 기분 좋겠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겠지. 헌데 그게 양 여사가 이 집에 있을 이유, 자리를 빼앗는 행동이란 생각은 왜 안 해? 몸이 안 좋으면 내가 알아서 들어가 쉬라고 말해. 내가 그렇게 말하고 널더러 내 밥 차리라고 한다면 그건 양 여사 업무 처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네가 먼저 나서서 양 여사 쉬라고 말하고 내 밥 차리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수작이야? 니가 양 여사를 고용했어? 니가 사장이야? 아니면 착한 사람인 척 하면서 이 집안일 모두 틀어쥐고 양 여사를 내쫓아 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이야? 그도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의 일자리에까지 민폐 끼치는 게 취미야?”
정삼봉은 프로가 아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일에 있어서 결코 프로페셔널의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마을에서 일손이 부족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게 된다. 그런 식으로 서로 돕고 사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내가 받은 돈만큼 내 노동력을 제공하는 냉정한 세상은 그가 살았던 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계산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지적당한 삼봉이 멈칫하며 눈을 깜빡이자 우주인은 코웃음을 쳤다.
“왜. 정곡을 찔리니까 기분 더럽지? 지금 양 여사가 이 상황을 봤으면 너보다 기분 좋을 거 같아? 아니지. 굉장히 기분 나쁠 거야. 지금 니가 느끼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나쁠걸? 이봐. 정삼봉씨. 여긴 네가 살던 시골 깡촌이 아니야. 여기는 그리고 이 집은 프로들의 세상이란 말이야. 알아들어?”
“…….”
“배 변이 만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싶지? 잘나가는 변호사 세 명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일을 잘해. 돈값을 한단 말이야. 차예진 씨가 그냥 얼굴만 예쁜 아가씨 같지? 너 같은 거 열 명이 덤벼도 그 여자 옷깃 하나 못 만져. 양 여사가 놀면서 월급 받는 줄 알아? 지랄 맞은 내 입맛 딱 맞춰 주는 프로야. 그 손 하나 갖고 나가면 어서옵셔 하면서 맨발 벗고 달려 나올 식당 주인이 한둘인 줄 알아? 나설 데 안 나설 데를 구분해. 주제를 알고 까불라고.”
“지가……. 그렇게나 잘못한 거여유?”
우주인의 한쪽 눈썹이 휙 하니 치켜 올라갔다. 정말로 모질게 쏘아붙이기는 했지만 이처럼 순순히 굽히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잘한 줄 알았어?”
“잘못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봤시유. 울 동네에서는 그랬구먼유. 누가 몸이 아파 놉을 못 나가면 형편 되는 사람이 아무나 대신 가고 그런 게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었구먼유. 지는 그렇게만 생각했어유. 지가 아줌니 자리를 어쩌고 꿰찰 그런 생각 같은 건 해보지 못했구먼유.”
“그래? 사람 찔러 놓고서 ‘어이쿠. 뒈질 줄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면 뒈진 놈이 벌떡 일어나 ‘몰라서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이럴 줄 알았냐? 바보냐?”
“지 바보 아녀유!”
물론, 바보는 아니다. 고향 마을에서는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까지 듣고 살았던 삼봉이었다. 하지만 내도록 우습게만 보이던. 그래서 실성한 게 아닌가 싶었던 집주인이 오늘만큼 뭔가 멋져 보인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저 억울하다는 얼굴로 항변할 뿐이었다. 뭔가 살짝 핀트가 어긋난 것 같기는 하지만 있는 대로 몰아붙여 진 삼봉은 차근차근 그 말의 순리를 따져 보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가 바보냐고 물었지 바보라고 하대? 왜 엄한 사람을 잡고 난리야. 아주 스쳐도 구타라고 고소하겠다?”
“……?”
우주인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돌아섰다.
욱하는 마음에 밥상부터 뒤집기는 했지만 자고 있을 것이 분명한 차예진을 깨워 해장국을 먹으러 나가기는 난감한 상황이다. 양 여사가 앓아누웠다고 하니 밥 얻어먹기는 틀린 문제고 이 일을 어찌할꼬.
그나저나.
“술을 너무 마셨나? 왜 이렇게 말을 잘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요상한 노릇이었다. 대체로 저 코딱지가 바락바락 대들고, 자신은 얼이 빠져 버버거리다 옴팡 뒤집어쓰는 것이 근간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주 제대로 한 방 먹여 줬으니 한 달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 듯 기분이 삼삼해진 것이다.
코딱지의 입을 단숨에 막아 버렸다는 즐거움으로 우주인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식당으로 갔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난장판의 한가운데 서 있는 코딱지를 보자 흥겨웠던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 유쾌해 졌다.
“양 여사 어디가 아픈데.”
“아……. 아래 김치 담고 몸살이 나셨는지 어제부터 골이 지끈지끈 아프다고 하시더니만 저녁부터는 영 맥을 못 추더구먼유. 그래서 지가 나가 약을 지어다 드렸시유.”
“병원에는 안 가도 된대?”
“병원 갈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하심서 자꾸만 고집을 부리시네유. 워째. 오늘이라도 지가 뫼시고 병원에 갈까유?”
“본인 몸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이거 싹 치우고 밥 차려.”
“야?”
저게 또 반말이다. 우주인의 인상이 험악해지자 삼봉은 냉큼 어깨를 움츠리며 작은 목소리로 ‘예?’ 하며 물어 왔다.
“밥 차리라고. 귀까지 멀었냐? 싹 치우고 밥 다시 차려. 아까 그 멀건 국 다시 만들고. 서재에 있을 테니 다 차려지면 불러.”
“허……!”
허파장이 훌떡 뒤집히는 삼봉의 마음을 우주인이 어찌 알겠는가. 아니 외계인이 지구인의 복장 터짐을 이해나 하겠는가. 콧노래까지 불러제끼면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던 삼봉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댜. 진짜 에일리언 아니여? 뭐 저런 게 다 있댜? 허어! 허어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미쳐 팔딱 뛰겠구먼?”
이미 사라지고 없는 우주인이 대답해 줄 리는 없었다.
“다시 차리랠 거를 엎기는 뭣 하러 엎는다냐? 그리고 엎었으면 땡이지 또 차리라는 건 어느 나라 법도여 시방. 어우---! 정삼봉이 성질 마-------니 죽었다. 응? 어우! 저걸 그냥! 참말로 요상한 사람이구먼. 요상해도 너무 요상한 사람이구먼.”
깔머슴만 아니었으면 천금을 준다 해도 이런 집구석에 붙어 있고픈 마음이 안 생기지만 어쩌겠는가. 삼봉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제 가슴을 탕탕 치고 발까지 동동 구르며 속을 끓였어도 삼봉은 엎어진 그릇과 못 먹게 된 음식들을 치우고 다시 상을 차려야 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엄청난 무게의 대리석 상판 식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양껏 힘을 내도 꿈쩍 안 하는 이 물건을 어찌 그리 한방에 뒤집어엎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즈음 해서 삼봉은 진지하게 저 외계인을 맨인블랙에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아마 그가 그런 비밀결사 단체의 연락처를 알았다면 진지한 마음으로 신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봉에게 미분 적분의 난수표들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우주인이라는 이름의 외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