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누, 누가 나 데려왔는데?”
“몰러. 밤에 나가보니까 너 와 있더라고.”
“…….”
“난 누가 뭐 쌀가마니 하나 던져놓은 줄 알았지 뭐여. 뭐가 갑자기 툭 떨어지길래 나가봤더니 네가 마당에 드러누워 있더라니까. 얼마나 놀랐나 몰러.”
“…….”
던질 만큼 싫었던 거니.
한쪽 다리를 세워 앉은 희림이 지금은 없는 남자를 향해 침을 꼴깍 삼켰다. 일단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건 감사하지만 인하의 속내가 어땠을지 알 수가 없다. 사실 그에게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 좀 나갔다 올게, 할머니.”
“밥도 안 먹고 어디 가게? 가게도 다 망했부렸으면서 갈 데가 있어?”
“……잊지 말아야지. 난 참 할머니를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어.”
그러니까 참자, 화내지 말자.
스스로를 세뇌하던 희림이 비틀거리는 몸을 추슬러 일어났다. 마음 같아선 한숨 더 자고 싶지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냉장고 문을 연 그녀가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하자 그새 할머니가 따라붙었다.
“이거 영지랑 헛개랑 오미자잖아. 얻다 쓸라구? 아까 막 먹으믄 안 된다면서.”
“주인 찾아주려고.”
할머니의 만류에도 희림은 야무지게 회장님 진상품들을 꺼내 들었다. 이어 노란 꿀통에서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과감하게 그것까지 집어 들자 할머니가 기겁했다.
“이건 아니여. 우리 거여! 내가 읍내 가서 양봉하는 이 씨한테 직접 사온 거라니까? 토종꿀! 토종꿀!”
“더 잘됐네. 토종꿀.”
희림이 벌써부터 입안에 고이는 단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말려봤자 한번 접수한 꿀은 그대로 끝이었다.
“그걸 얻다 쓰게? 비싼 거라니께!”
“할머니. 지금 이런 거 아까워할 때가 아니야. 투자라고 생각해.”
운동화까지 꿰신은 그녀는 대충 묶은 머리처럼 말도 적당히 주워섬겼다. 할머니가 따라붙기 전에 한시라도 바삐 나가려던 희림이 무슨 생각인지 뒤를 돌아보았다.
“왜 또, 무슨 살림을 거덜 낼라구!”
“……그런 거 아니거든.”
이번에는 냉장고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두 팔 벌려 가로막은 쌀통과 간식 창고도 아니다. 마루 한 귀퉁이에 놓인 세 권의 책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조금은 망설이듯 손을 내밀었다.
◇ ◆ ◇
읍내로 이어지는 버스 정류장에서 북쪽으로 대략 100걸음, 오솔길을 따라 다시 5분여가량, 정말로 이곳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제대로 찾아왔다. 왼편의 동백나무를 두고 서서히 눈을 뜨면 당신은 입가를 가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마도 청연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마주하게 될 테니.
‘여름’ 2장, 보석이 흐르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