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취한 연출가는 상대가 나와 다미안 마탑주라는 것도 잊은 채 중얼중얼 말을 이어 나갔다.
“워낙 새로운 연출 시도를 많이 하신 분이시라서요. 그분이 나타나고 나서 연극계의 판도가 달라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아마 아실 텐데, 그 연출가님은 그 유명한 <13번째 기사>도 하셨거든요.”
설명을 들으니 누군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다미안 마탑주 앞에서 굳이 할 말이었을까?’
내 옆에 서 있던 다미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확실히 그분의 연출은 실험적인 것이 많았지요. 잘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놀라워하며 보았습니다.”
“아, 어린 시절…… 으어억!”
정신이 팔려 있던 연출가는 뒤늦게서야 눈앞에 있는 상대가 다미안 마탑주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제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다미안 마탑주에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며 변명했다.
뒤늦게 좋지 않은 일로 다미안 마탑주가 가문을 뛰쳐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호들갑을 떠는 상대에 비해 다미안 마탑주는 차분한 얼굴로,
“지나간 일입니다.”
라고 대꾸했다. 다행히 다미안 마탑주는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했다.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
계속해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다미안 마탑주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원래도 적극적인 성품은 아니고,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뭐랄까, 어쩐지 기분이 저조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마탑주님, 표정이 어두워 보이시는데요?”
나는 사람들이 저만치 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미안 마탑주의 옆으로 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직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울상으로 지내면 어떡해요.”
다미안 마탑주는 한참 말이 없다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항상 웃고 지내는 게 이상한 겁니다.”
“그렇긴 한데, 신경이 쓰여서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원래 폴리우스처럼 대가리가 꽃밭인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다미안 마탑주는 내가 처음 다미안 마탑주를 찾아갔을 때 폴리우스를 두고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폴리우스가 예전처럼 마냥 웃고 다니지는 않잖아요? 거기에는 우리 둘이 기여한 게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말한 나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벨데르트 백작이 후회할 정도로, 폴리우스가 화날 정도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저랑 손잡은 거 아니었어요?”
“……그건.”
“마탑주님, 벨데르트 가문 이야기가 나온 뒤부터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요.”
다미안 마탑주가 왜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이제는 <13번째 기사> 같은 훌륭한 작품을 내놓던 가문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일까, <13번째 기사> 이상의 파급력을 내놓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그야 나는 당사자가 아니니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저는 원래도 표정이 이렇습니다.”
“그래요? 아니면 말고요.”
나는 짐짓 시치미를 떼는 다미안 마탑주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마탑주도 충분히 큰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마탑주님은 뭔가 늘 바쁘고 초조해 보이더라고요.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 그래서 멋대로 짚어 봤어요.”
“…….”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는 거, 언제나 짜릿하고 멋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서사가 좋더라고요.”
나는 다미안 마탑주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일부러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성공해 봅시다, 우리.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차피 한배를 타지 않았는가.
다미안 마탑주가 시무룩해서 의욕이 나지 않으면 나도 손해다.
하지만 위로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내 의도가 정확히 먹혀들어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요.”
다미안 마탑주도 짧게 대꾸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에서 망설임이 사라진 것 같다고 하면 과한 짐작인가.
‘뭐, 대충 마음 정리한 것 같네.’
앞으로 열심히 일해 주면 좋겠다. 검은 달이 잘될 때까지.
나도 그런 다미안 마탑주를 보고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장에서 일을 끝내고, 나와 다미안 마탑주는 촬영 장비를 비롯한 몇 개의 건의를 전달하기 위해 마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마탑의 입구를 지나가는 길에 반갑지 않은 얼굴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두 대표님께서 함께 들어오셨군요.”
총괄 회의에서 영상석 품질에 대해 의견을 냈던 프린츠 마법사 말이다.
“오늘 날씨가 좋던데 데이트라도 하셨습니까? 두 분께서 약혼한 사이셨던가요?”
다른 사람이라면 그저 흘려들었을 말인데, 상대가 상대다 보니 내가 다미안 마탑주를 유혹해서 백으로 뒀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아직 약혼은커녕, 그냥 파트너로 연회에 참석만 한 사이인데.’
마탑의 마법사면서 그걸 모를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리고 이런 상황을 잘 수습할 수 있는 인물이 나섰다. 다미안 마탑주가 바로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거다.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이 있으면 맡긴 일이나 잘해.”
일하고 돌아온 것이라느니, 어디에 갔다느니. 여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말.
하지만 프린츠 마법사는 그 짧은 말에 바로 항복 선언을 했다.
“죄, 죄송합니다.”
……똑같은 대표인데 다미안 마탑주랑 나랑 너무 다르게 대하는 거 아니냐?
뭐, 아직까지 큰일은 없다.
오늘은 스쳐 지나가며 만나서 그렇지, 나와 얼굴 부딪칠 일도 없고.
사소하게 긁는 건 무시하는 게 더 효율이 좋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프린츠 마법사가 성격만 꼬였지 정상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 * *
벨데르트 극단에서 상영한 <13번째 기사>는 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연극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잡고, 심지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건 유일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연 문화가 잘 발달하지 못한 제국에 연극 붐을 일으킨 작품.
벨데르트 극단이 제국에서 가장 알짜배기 땅에 있는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그때의 유명세 덕분이었다.
무능한 현 벨데르트 백작이 취임한 이후 영지가 확연히 기울었지만, 아직 이미지가 괜찮은 것 또한.
가문까지 날아오르게 할 정도였던 <13번째 기사>의 위상 덕이었다.
그러나 벨데르트 백작가 극단의 처우가 좋느냐고 하면, 전혀 아니었다.
아버지가 영지에 있는 사이, 벨데르트 극단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건 폴리우스였다.
사실 부극단주 격이라고 해도, 딱히 하는 일이 없이 한량처럼 보냈지만……
“멜라니하고 다미안이 연극 사업에 뛰어든다는 말이야?”
“그, 그게. 저희는 이제 가 봐야.”
“아니, 말 돌리지 말고. 그 둘이 하는 연극 같은 게 잘될 것 같냐고요.”
바쁜 제작진들을 불러 제 사사로운 호기심을 채울 때는 아주 열성적이었다.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뭘 몰라. 설마 다미안 편드는 거 아니죠? 멜라니랑 다미안이 계약한 건 어디서 듣고 와서 방금까지 잘 이야기해 놓고?”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애초에 왜 하지?”
폴리우스는 간만에 들른 극단에서 제작진들의 잡담을 들어 버렸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그는 그들을 붙잡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혹시 다미안이 아직까지 도련님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폴리우스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그가 놔줄 생각을 하지 않자 제작진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연극을 영상석으로 만드는 건…… 잘은 모르겠지만, 초보자가 쉽게 뛰어들 만한 분야는 아닙니다.”
주어를 뺀, 일반론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폴리우스는 고개가 꺾일 정도로 웃었다.
“하하, 그렇지? 둘이 알면 뭘 안다고! 다미안…… 역시 나를 이기고 싶어서 환장했네. 가문을 나갈 때는 언제고 가문이 하는 연극 분야에 뛰어들어?”
역시 다미안이 약혼이니 뭐니 하며 멜라니를 건드린 것도 자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을 길가의 쓰레기 보듯이 하더니만, 분명 벨데르트 가문을. 아니, 자신을 이기고 싶어서 발악하는 게 아닌가.
‘연회에서 망신 준 두 사람이 고까웠는데,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도 알아서 망하겠네?’
가뜩이나 벨데르트가 극단을 운영하니 비교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을 거다.
돈만 날리고 명예는 명예대로 다 잃고, 손해는 엄청나게 보겠지.
그리고 그때 사교계에서 조금 입만 털면 소문에 더 쐐기를 박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