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불안한데요. 과연 영상석 회수가 제대로 될까요? 아무리 마력석 자투리로 만든 영상석이라고 해도……”
“영상석을 배송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하루 만에 영상석을 보내 준다고요?”
“대표님, 빌려준 후 회수가 안 되면 연체료를 계산하고, 그 연체료를 징수하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닐 듯싶습니다.”
이미 생각해 온 문제였기에 멜라니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2주를 통으로 빌려주고 원할 때 반납하게 하는 방안을 생각해 봤습니다.”
“네? 아예 돌려받는 기간을 정하지도 않겠다는 뜻이십니까?”
파격적인 발언에 직원들이 술렁였다.
멜라니만이 이곳에서 담담한 얼굴이었다.
“보통 대여 서비스는 사흘, 일주일 등 대여 기간을 정해 두죠. 반납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연체료를 매기고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연체료도 거두지 않으려 합니다.”
“대표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멜라니는 대답 대신 역으로 질문했다.
“자, 대여 서비스를 했을 때, 영상석을 다시 안 돌려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대여 서비스가 문제……”
“저는 그 대안으로 월 정액제를 제시합니다.”
자신 있는 멜라니의 대꾸에 직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대여 서비스 이야기를 하던 것 아니었습니까? 정액제가 무슨 상관인데요?”
“대여 기간을 없앤다면 자연스럽게 연체료까지 없어질 테니까요.”
멜라니의 말에 직원들이 기겁하며 말렸다.
“아니, 그러다 정액제 이용 기간인 한 달이 지나도 반납하지 않을걸요!”
“영상석을 반납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음 영상석을 보내 준다고 한다면요?”
“다른 영상석을 보기 위해서 반납을 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정확해요. 그럼 다들 이른 시일 안에 반납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정액제를 결제한 동안에는 무한대로 빌릴 수 있는데, 영상석 하나만 빌리면 손해잖아요.”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하던 직원들은 어느새 멜라니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상석 사업은 생경한 분야니, 사람들이 처음에 영상석을 마구 빌릴 수 있게 일정 금액이면 ‘무한대로 빌릴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게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정말 일찍 반납할까요?”
물론 다들 우려하는 마음을 전부 거두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중화 노선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프린츠 마법사는.
“아아아, 저는 영상석 개발이나 하면 되는 마법사니까 감히 의견은 못 내겠네요. 클로틸드 대표님께서 꺼내신 말이니까 무조건 맞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공손한 목소리긴 했지만, 멜라니가 하는 말을 비꼰다는 게 선연했다.
하지만 멜라니는 꼭 이 의견을 밀고 나가고 싶었다.
“영상석 사업이 낯설기도 낯설거니와…… 지금 잉그다 영애가 사교계에서 조장하는 여론에도 맞서야 합니다. 한 번만 저를 믿고 따라 주세요.”
잠시 회의실에 정적이 흐르는데, 유일하게 다미안 마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클로틸드 대표님을 믿습니다.”
“마, 마탑주님?”
사실 영상석 사업이 실패하면 멜라니와 함께 가장 손해를 보는 건 다미안 마탑주였다.
가장 보수적으로 나올 것을 예상했는데, 뜻밖에 그는 진지한 태도로 멜라니를 밀어주었다.
“영애만큼 영상석 사업에 진지하게, 또 열정적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
“그러니까 한번 해 보죠, 영애의 말대로.”
그 말에 다른 사람의 반대에 조금은 흔들리던 멜라니의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 * *
‘흠, 그 영상석 사업이 뭐기에 잉그다 영애가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깎아내리는 거야?’
그리고 한쪽 여론이 너무 거세어지면, 반론이 생기기 마련이다.
잉그다 영애가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함께 차를 마시던 레나이드 영애는 얼마 전 자신의 저택으로 배송된 영상석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흠, 이게 말로만 듣던 연극 특화형 영상석인가.’
확실히 두 손으로 들 만한 크기다.
건국제 같은 때나 볼 수 있던 영상석하고는 느낌이 다르다.
레나이드 영애는 영상석과 함께 온 안내서를 보았다.
-극장에서 공연이 내려간 유명한 연극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연극을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편안하게, 극장을 가지 않아도 문화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다 건너 해외의 연극까지!
음, 솔직히 말하자면 레나이드 영애는 연극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몇몇 영애들은 검은 달 홍보 팸플릿을 처음 보자마자 반색하며 흥분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영상석 사업이니 뭐니, 전혀 관심 없었지만.
하도 잉그다 영애와 그 무리들이 떠들며 욕을 해 대니 되레 호기심이 생겼을 뿐.
‘클로틸드 영애가 폴리우스 벨데르트 영식의 전 약혼녀였잖아. 그래서 잉그다 영애가 견제하려고 일부러 욕하는 거 아니야?’
사실 클로틸드 영애든 잉그다 영애든 관심 없었다.
열성적으로 남을 욕하는 잉그다 영애도 별로고 이전에 약혼자 때문에 다른 영애에게 시비를 걸던 클로틸드 영애도 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2주 동안 무료라고 하니까, 내가 손해 보는 건 아니잖아?’
건국제에서나 보던 거대한 영상석보다는 가격이 저렴할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사지는 않았을 거다.
‘잠깐, 내가 2주만 보다가 영상석 구독을 취소하면, 오히려 클로틸드 영애가 손해 아니야?’
영상석이면 비싼 마력석으로 만들었을 텐데 그러다가 공작가가 날아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역시 공작가에서 자라서 그런가 세상 물정 모르는 영애란 말이지.’
레나이드 영애는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실 공작가가 망하든 말든, 자신은 알 바 아닌 일이었다.
마침 심심하기도 하고, 특히 외출하기 힘든 밤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일단 무료로 써 보라고 하니까 자신은 써 주면 그뿐.
레나이드 영애는 입을 삐죽였다.
“연회에 부지런히 나가면 뭘 하느냐, 영식들에게 인기가 없는데!”
“레나이드 영애요? 최근에는 만나지도 않았는데 왜 저와 친하다고 하셨을까요?”
혼기가 찼으니 결혼하라는 압박이 들어오지를 않나, 며칠 전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영애가 한 말이 괜히 생각나기도 하고.
‘잠도 안 오던 차에 잘됐네. 이렇게 혼자서 늦은 밤에 연극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아니, 그냥 어렵다 쉽다가 아니라 아예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침대에 누워서 보는 건 말이다.
-오늘 내가 어쩌면……
해가 진 늦은 시간, 침실에는 자신뿐.
고요한 공기에 어울리듯 연극은 잔잔하게 시작했다.
연극 속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귀족 영애 역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보다 연극에 몰입하게 되는 건?
-괜찮을 거야. 아니, 안 괜찮아도 어때.
레나이드 영애는 처음 자신의 생각보다 엄청나게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 * *
“그 ‘검은 달’……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던데요?”
며칠 뒤, 레나이드 영애는 친한 영애와 함께한 티 파티에서 은근슬쩍 영상석에 대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담담한 척하는 말투와는 달리, 속으로는 굉장히 신이 나서 안달 난 상태였다.
‘검은 달에서 내놓은 영상석, 생각보다 더 좋고 편리하잖아!’
영상석을 빨리 반납할 필요는 없다. 한 달 안에만 보내면 되니까.
그렇지만, 반납을 해야 새로운 영상석을 볼 수 있으니 얼른 보냈다.
그렇게 요 며칠 몇 개의 영상석을 봤더라?
마음에 드는 영상도 있고, 생각보다 지루한 영상도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공짜였으니까!
그리고 레나이드 영애는 자신이 영상석 구독 서비스의 엄청난 팬이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흠흠, 심심해서 봤는데 생각보다 영상석의 퀄리티도 좋더라고요.”
“정말요? 궁금하긴 한데 내 취향의 영상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찾아보는 것도 귀찮고. 요즘 연극에 흥미를 잃기도 해서.”
레나이드 영애의 친구인 벨타 영애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영상석 목록만 보고 고르는 거면 더 실패할 확률이 높을 거 아니에요.”
그녀는 연극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제목이랑 연극 소개에 낚인 게 한두 번인가. 극장에 걸린 연극이면 다른 영애에게 물어보기라도 하지, 목록 보고 고르는 거면 그 연극 아는 사람도 드물 건데요.”
그러나 레나이드 영애는 이 말에 대답할 말이 있었다.
“영애의 취향을 물어보는 설문 조사에 참여하면, 취향인 연극을 추천해 준대요.”
“아니, 그런 게 있다고요?”
“어차피 2주 무료거든요. 보고서 별로면 바로 해지하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