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아니, 왜 우리 쪽 일을 건드려? 기술 개발이나 잘할 것이지!”
“마법사인 본인한테 유통이나 마케팅 관련 일 시키면 전혀 못 할 거면서 무시하기는!”
특히 단순히 멜라니가 상단주라는 이유로 따라오게 된 직원들도 충성심을 보였다.
작고한 공작 부인과는 인연이 없어, 느슨하게 상단에서 일하고 있던 놈들이었는데 말이다.
이게 바로 공동의 적이 있으면 내부는 똘똘 뭉친다는 좋은 예시인가?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멜라니는 변했다.
“요즘 대표님이 잘 안 보이시네요?”
“원래 그런 분…… 은 아닌데.”
이제는 모두가 멜라니가 혼자 남아서 일하는 것을 보면 오늘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리에 없으니 의아했다.
의지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 텐데, 혹시 아픈 게 심해졌나 싶어서.
“여러분! 클로틸드 대표님이 끝까지 영상석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하던 극단과 계약을 체결했대요!”
“아니, 다른 사람들은 절대 못 할 거라고 고개를 젓던 그거?”
안드레는 슬쩍 미소 지었다. 역시 클로틸드 대표가 농땡이를 피운 게 아니었다.
이제 직원들은 멜라니에게 신뢰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식당 식사가 말도 안 되게 화려해진 거, 클로틸드 대표님이 요새 마탑에서 주로 식사를 하셔서 다미안 대표님이 손쓰신 거 아니에요?”
“맞아요. 원래 마탑의 식사도 괜찮았지만, 이 정도로 훌륭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갑자기 바뀐 게 왜 그런 거겠어요?”
그 말에 안드레는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에 마탑의 식사가 건강식이 아니라고 했던 다미안 마탑주의 말 때문에 그런 건가?’
에이, 아니겠지.
“어쨌든 식사가 호화로워져서 다들 만족해하고 난리예요!”
“잘 먹어야 일도 열심히 할 수 있고!”
뭐, 어쨌거나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니 이쯤 되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열의가 오른 직원들은 멜라니를 따라 똘똘 뭉쳐 일을 해냈다.
……그리고 식사가 훌륭하게 바뀌어서 좋다던 직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훌륭한 마탑의 식사를 과도하게 먹으며 살이 쪘다.
‘예전엔 너무 마르긴 했었지…… 응, 괜찮을 거야.’
질은 높아도 건강식이니까 말이다. 건강에는 괜찮을 거다…… 아마도.
안드레는 최근 눈에 띄게 살이 오른 자신의 뱃살을 외면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건방진 마법사 놈이 같잖게 구는 걸 설욕할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많이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안드레 님, 요즘 클로틸드 대표님을 많이 칭찬하시네요?”
“크흠, 그냥 사실을 이야기한 거야.”
안드레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사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다는 건, 멜라니만 모르는 비밀이었다.
* * *
그렇게 몇 달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멜라니가 다미안 마탑주의 손을 잡고 무도회에 들어선 것도 이제 화두에 오르지 않을 무렵.
사람들은 오랜만에 두 사람을 함께 묶어서 대화 주제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거 들으셨어요? 클로틸드 영애랑 다미안 마탑주가 희한한 걸 한대요.”
“아아, 그 영상석 사업이라던 ‘검은 달’ 말이죠?”
“그런데 어떤 사업이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검은 달’이라고 부르긴 하던데?”
많은 투자와 노력 끝에 영상석 사업을 출범했지만, 사실 처음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연극 같은 걸 집에서 볼 수 있다는데…… 극장에서 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둘이 갑자기 파트너로 참석하더니 이런 배경이 있었나 보네요.”
두 사람이 들고나온 영상석 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생경했던 것이다.
설명을 해 줘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냥 사업을 하는 주체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조세핀 잉그다는 멜라니의 꼴을 비웃었다.
자신은 멜라니가 좋아하던 폴리우스를 가진 승리자.
멜라니는 그 폴리우스에게 밀려난 다미안과 소꿉놀이나 하는 패배자.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겨우 마탑이랑 손잡고 하는 게 영상석이야?’
실제로 극단을 경영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벨데르트 극단에서 하는 일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모양새 아닌가?
조세핀은 저번에 밀라 부인과 팔짱을 끼고 멜라니를 찾아갈 때만 해도 그녀를 철저하게 짓밟아 줄 수 있다고 여겼다.
밀라 부인의 옆에 서 있는 건 자신이라고, 이 조세핀 잉그다가 멜라니보다 훨씬 더 나은 며느릿감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오호호. 나는 여기 있는 조세핀이 잘해 주어서 잘 지냈답니다.”
밀라 부인 역시 멜라니가 마음에 안 든 건 마찬가지였던지, 자신이 바라는 방향대로 마음에 쏙 들게 움직여 주었다.
그때까지는 정말,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늦어서 미안합니다, 기다리느라 무리하지는 않았습니까?”
다미안 마탑주가 나타나면서 모두 다 망해 버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멜라니 클로틸드, 그 교활한 여자는 그냥 가만히 있던 게 아니었다.
당하고 있던 게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젠장!’
밀라 부인은 다미안에게 받은 폭언에 정신을 못 차렸고, 괜히 옆에 있는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네가 나오자고 해서 나왔다가 이게 무슨 꼴이니!”
젠장, 자신이야말로 밀라 부인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수발을 든 줄 아나.
“클로틸드 공작 영애 옆에 있었을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냥 폴리우스의 어머니니까, 그녀의 비위를 맞추면 폴리우스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길 거라 생각한 것뿐인데.
‘마음에 안 들어. 그놈의 클로틸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가진 데다가 격이 높은 집안 취급받는 것도,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것도 다 짜증 난다.
이번에야말로 클로틸드와 마탑주의 자존심을 짓밟아 줄 것이다.
어디까지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성공하는지 두고 보라지.
‘사교계에서는 내가 더 유리해.’
멜라니는 몸이 좋지 않다며 사교 모임에 잘 나서지 않으니, 사교계의 섭리를 알 턱이 있나.
‘단순히 클로틸드 가문의 후광으로도 안 되는 곳이 있다, 이거야.’
그리하여 조세핀은 이 틈을 파고들기로 했다.
모임에 참석하기 전, 친한 영애들과 입을 맞추고는, 일부러 영상석 사업을 폄하하는 말들을 떠들었다.
“극장에서 보는 분위기가 있는데, 굳이 그 작은 영상석으로 본다는 건 이해가 안 되네요.”
“맞아요. 저도 동의해요.”
“그런 저품질의 연극으로 만족한다는 건…… 솔직히 안목이 조금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벨데르트 가문 소유의 극단만 해도 영상석 사업에 부정적인지 어떤 연극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물론 벨데르트 가문 소유의 극단에는 멜라니가 접선조차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벨데르트 극단은 진짜 제대로 된 작품을 극장에서만 선보이겠다는 거죠.”
“어머……”
조세핀이 사교계의 꽃으로 불리며 군림한다고 한들, 그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건 아니었다.
조세핀이 하는 말에 다른 영애들이 고개를 숙이며 무조건 맞는 말씀이라고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세핀의 말에 반박할 정도로 영상석 사업 서비스에 잘 아는 영애가 없거니와……
조세핀의 말에 굳이 반박할 정도로 멜라니와 친한 영애도 드물었다.
예전에 비하면 나아지긴 했어도, 여태 사교계에서 멜라니의 이미지가 폴리우스에게 목매는 멍청하고 성격 더러운 영애였던 것도 한몫했다.
공작가 영애임에도 불구하고 멜라니를 흠모하는 영애들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잉그다의 영애의 말이 맞는 것도 같네요.”
“확실히, 클로틸드 영애가 교양 있는 이미지는 아니기도 하고요.”
멜라니에게 폴리우스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말을 들은 몇몇은 멜라니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그리고, 멜라니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영상석은 아직 생경한 개념이니까, 우선 처음에는 수익을 거둘 생각보다 먼저 어떤 서비스인지 접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하여 멜라니는 영상석 판매보다는 대여를 먼저 생각했다.
“2주 정도 영상석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는 체험 서비스를 만들죠.”
“네?”
“그리고 영상석을 다음 날에는 볼 수 있도록 배송하고요.”
영상석 서비스를 친숙하게 접하도록 만든다는 대중화 계획이었다.
‘지금 사교계에서 내 사업을 궁금해하고 있어.’
다른 것도 아니고 다미안 마탑주와 하는 사업이라고 하니까, 뭘 하는지는 궁금하긴 할 거다.
‘이목이 쏠린 지금을 놓치면 안 돼.’
그러나 멜라니 주변 사람들은 영 불안하다는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영상석 대중화 노선 건과는 달리 멜라니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주 동안은 얼마든지 무료로 영상석을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럼 거의 수익이 없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