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어머, 그게 정말인가요?”
역시 여기에는 영애들이 반응한다. 조세핀은 후후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사실 검은 달은 다미안 마탑주님이 혼자 이끌어 가는 건가, 클로틸드 영애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조금 드네요.”
“폐광산을 고리대금업까지 손대면서 샀다니……”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네요.”
어쨌든 그 사실에 검은 달 구독 서비스를 찬양하던 영애들의 입도 꾹 닫혔다.
이 말로 어쨌든 오늘은 사람들에게서 검은 달이 좋다며 떠드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었다.
‘흥, 지금은 빚을 어느 정도 갚고, 안전한 은행 대출로 전환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저 멜라니를 공격할 것이 없나 찾아보다 우연히 알아낸 정보지만. 어쨌든 속은 시원했다.
‘마음에 안 들어.’
사실 검은 달 구독 서비스의 유행이, 그냥 멜라니가 잘되어서 배 아픈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폴리우스는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벨데르트 가문의 극단이…… 영상석 서비스 출범 이후로 계속 적자라고?”
“아무래도 영상석으로 영상을 보는 경우가 많아져서……”
“아니, 사업에 관심 없던 영애가 한 거에 지금 밀린 거라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폴리우스는 공연히 자신에게 보고하러 온 직원에게 화를 냈다.
여태까지 벨데르트 백작가 소유의 극단은 제국에서 연극이라고 하면 무조건 첫 번째로 꼽혔다.
그런데 처음으로 적자라니?
“하, 그놈의 영상석이 모든 극단을 문 닫게 했군? 머저리 같은 놈들이 왜 콘텐츠 계약을 해서……!”
“그, 그게…… 다른 극단들은 오히려 새로운 유입이 생기기도 해서요. 사실 저희만……”
“뭐라고?”
“영상석으로 연극을 접한 사람들이 연극으로도 보고 싶다면서 새로운 유입이 생긴 곳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게 없어!”
“아시다시피 클로틸드 영애는 벨데르트의 극단과는 영상 콘텐츠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서요……”
“영상석으로는 못 보는 연극들이 있으니까 벨데르트 극단으로도 몰려야지, 왜?”
“그게, 클로틸드 영애가 마탑에서 화려한 연출이 나오는 장비를 다른 극단들에게 빌려줬는데……”
“그놈의 클로틸드 영애 소리, 그만할 수 없나!”
폴리우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항상 착한 척하던 도련님의 분노에 직원은 몸을 사리며 더 이상 보고하지 않고 돌아갔다.
‘멜라니는 왜 우리 극단하고만 계약을 안 한 거지? 나랑 엮이기 싫다는 거야, 뭐야?’
폴리우스는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클라라는 얼굴에 경멸이 올라오려는 것을 힘들게 참았다.
‘쯧쯧, 폴리우스 왜 이놈은 애꿎은 직원한테 화풀이를 한담.’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을 예상한 멜라니에게 감탄했다.
이쯤에서 폴리우스의 옆에 있어야 한다고 하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이번 계획은 폴리우스한테 사업하라고 꼬드겨 돈을 날리게 하는 거였지.’
클라라는 멜라니와 계획했던 것을 다시 떠올렸다.
‘좋아. 이런 상황에 내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하라고 했지?’
클라라는 멜라니가 조언해 준 표정과 태도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폴리우스. 하지만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라요.”
“뭐라고?”
“그리고 폴리우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최대한 폴리우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끔…… 아니, 어린애도 아니고.
‘멜라니는 이런 폴리우스를 어떻게 몇 년이나 견뎠는지 모르겠네.’
“영상석이 대세인 건 어쩔 수 없어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있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니까요.”
“그래서, 내가 이대로 가만히 밀려야 한다는 이야기야?”
“벨데르트의 극단이 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폴리우스는 이대로 있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지금이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요.”
한껏 치켜세워 주니, 폴리우스는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클라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선의 선택? 그게 뭔데?”
“아직 클로틸드에서 내세운 영상석 구독 콘텐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초창기라는 이야기에요. 폴리우스의 능력이라면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어요.”
“나도 영상석 사업에 뛰어들라는 이야기야?”
폴리우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하지만 나는 그럴 돈도 없고……”
“극단을 해체하고, 이 건물을 팔아 버려요. 다행히 극장 건물은 예전에 세워진 거라, 금싸라기 땅에 있잖아요? 솔직히 커다란 극장으로 두기엔 수지타산이 안 맞죠.”
“그건 그런데……”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해요. 그래야 클로틸드 쪽에서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그 격차를 메울 수 있어요.”
폴리우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클라라는 멜라니가 해 준 말을 그사이에 다시 되새겼다.
‘클로틸드보다 못할 건 뭐냐고 부추기는 게 제일 효과 만점이랬지?’
“폴리우스의 안목이라면 더 멋지게 할 수 있잖아요.”
“!”
“영상석 사업 자체는 솔직히 뛰어난 아이디였어요. 하지만 교양 없고 안목없는 멜라니 클로틸드 영애가 해서, 조금…… 아쉬운 점이 많달까.”
“…….”
“폴리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극단을 가진 가문에서 컸잖아요. 가진 센스나 안목은 저쪽보다 훨씬 뛰어나잖아요.”
폴리우스는 클라라의 말에 설득되어 가는 중이었다.
“폴리우스가 영상석 사업을 먼저 생각해 냈더라면 분명 더 잘 해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죠!”
역시 멜라니와의 비교가 최고였다.
클라라는 어디까지나 폴리우스를 생각한다는 것처럼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 똑같은 사업에서 후발주자인 폴리우스가 클로틸드 영애를 이긴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
“!”
“다미안 마탑주님 역시도 폴리우스에게 패배감을 느낄 게 분명하고요. 그렇게 되면 클로틸드 영애는 폴리우스를 놓쳤다며 통곡하지 않으려나.”
클라라는 방금 자신이 쐐기를 박았다며 속으로 의기양양했다.
폴리우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
“……확실히, 영상석 사업을 하려면 멜라니가 독점을 하기 전에 얼른 뛰어드는 게 낫겠지.”
“역시 폴리우스는 지혜롭다니까요.”
“그렇지만 난 마력석 가공하는 기술도 없고…… 요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도 예전 같지는 않은걸.”
하지만 폴리우스는 이내 다시 시무룩해졌다. 다 넘어왔구나 싶었던 클라라는 당황했다.
‘평소라면 금방 넘어왔을 텐데.’
폴리우스가 옆에서 부추기면 잘 넘어가는 인물인 건 맞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멜라니와 헤어진 뒤로 좋지 않아진 평판, 상대적으로 높아진 다미안의 위상 따위가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이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
클라라가 눈을 데굴데굴 굴릴 뿐, 무어라 말을 못 하는 사이.
폴리우스는 소파에 몸을 푹 묻어 버렸다. 이미 흥미가 떨어진 것 같았다.
‘이대로 끝인가?’
클라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번 건은 물 건너간 것 같았다.
그녀는 괜히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대화를 마무리 짓는 것을 택했다.
“아아, <13번째 기사> 같은 연극을 영상석으로 다시 볼 수 있나 했는데…… 아쉽네요.”
그런데 중얼거리듯 한 그 말에 소파에 누워 있던 폴리우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 <13번째 기사>? 벨데르트 극단에서 상연한 연극 말하는 거야?”
“네, 네에? 그거 말하는 거 맞아요.”
클라라는 갑작스러운 폴리우스의 태도 변환에 당황해하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13번째 기사>는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이잖아요. 지금도 무슨 연극이 나오면 항상 <13번째 기사>와 비교하고……”
“그래, 하지만 여태까지 <13번째 기사>의 반의반도 따라왔다고 평가받는 연극은 없지.”
폴리우스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도 <13번째 연극>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배우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13번째 기사>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로비오 탐다제.
수십여 년 전 연극임에도 아직까지 화제가 되는, 엄청난 흥행작인 연극을 다시 상영하는 데에 문제가 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아트런 역할에 너무나도 잘 맞는 연기를 보여 준 나머지, 이후 그는 아트런 역할에만 매이는 것이 싫다며 더 이상 <13번째 기사>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른 배우들이 아트런 역할을 맡았지만, 관객들은 배우가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무참히 외면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폴리우스가 설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목을 끌 거예요! 폴리우스를 더 우러러볼 거고요!”
“그래, 그 사람만 설득하면 돼. 애초에 벨데르트 극단에서 올렸던 거니 딱 그 사람 하나만 설득하면……”
“벨데르트 극단의 연극을 클로틸드 영애가 계약하지 않은 게 오히려 신의 한수가 되었네요!”
“그래, 멜라니도 <13번째 기사>를 영상석으로 만든 걸 보면 땅을 치며 후회하겠지.”
혼자 중얼거리던 폴리우스는 이내 결심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아버지께서 영지에 내려가 계시지만…… 사업은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해.”
“앗, 맞아요! 일단 행동에 옮기고 나중에 이야기해 드리는 게 낫겠어요!”
“역시 그게 낫겠지?”
클라라는 생글생글 웃었다.
벨데르트 백작과 상의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세상 물정 모르는 뜨내기인 폴리우스는 좀 더 실수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일단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극단 건물부터 내놔요. <13번째 기사> 영상석은 분명 잘될 거니까 그 후에 극단은 필요 없잖아요!”
클라라는 환하게 웃으며 폴리우스가 사업하기로 한 것을 축하했다.
‘이야, 다행이다. 사업해서 돈 잃는 걸 봐야 하는데. 하마터면 안 할 줄 알았어. <13번째 기사> 이야기는 얼결에 꺼낸 건데, 잘됐네.’
이대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고, 아버지와는 상의도 없이 건물만 급매로 판 모양새가 된 것도 굉장히 웃길 거다.
‘굳이 <13번째 기사> 이야기를 클로틸드 영애에게 해서 바쁜 사람을 귀찮게 할 필요는 없겠지? 중요한 이야기만 말하면 되니까.’
클라라는 키득거렸다.
모두가 설득에 실패한 배우 로비오 탐다제를 폴리우스가 설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행운이 왜 폴리우스에게 따르겠어.’
소설의 주인공도 아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