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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48)화 (48/90)

<48화>

“……마, 마법사에게 투자금을 돌려 달라고 인정을 구하면 되지 않을까? 소송이라도 걸면!”

“마법사의 신의를 잃으면 안 돼요. 계약은 계약이잖아요.”

“하지만, 이건 너무……”

그리고 패닉에 빠진 폴리우스와 달리, 여태까지 침묵하던 조세핀이 돌연 주먹에 꽉 힘을 주며 말했다.

“폴리우스. 계속 아까부터 우는소리를 하는데, 그럼 달리 방법 있어요? 여태까지 돈이 다 날아갈 판인데.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고요.”

지금까지 폴리우스가 앞장선다면, 조세핀은 좀 더 망설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조세핀은 이를 악물었다. 폴리우스 역시 눈을 질끈 감고는 외쳤다.

“그래,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으니까!”

* * *

나는 내가 내놓은 마력석이 열 배로 조세핀과 폴리우스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들으며 환하게 웃었다.

매점매석은 좋지 않다고 여기는 나지만, 일부러 두 사람을 털어먹을 용도로 놓은 덫에 기가 막히게 걸리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마력석이 향후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열 배라니.

이건 말도 안 되게 호구 잡힌 가격이다.

‘그 금액으로 마력석을 사들이면 단가가 안 나올 텐데.’

그저 영상석을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비싸게 팔면 다 될 거라는 생각이 우습다.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 마력석은 이런 식으로 써야지.

“홈시어터는 지적받은 문제점을 모두 반영한 뒤 출시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문한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작위나 신분은 고려하지 않고 철저하게 예약이 들어온 순서대로 배송하라고 이야기해 두었고요.”

나는 직원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실험 단계였던 홈시어터였는데, 갑작스럽게 수요를 확인하고 출시하게 되었다.

‘아버지 덕분에 의도치 않은 홍보가 되었네.’

기존에 영상석을 싸게 대여로 내놓으면 망할 거라고, 무조건 고급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프린츠 마법사는 요즘 잘 보이지 않았다.

‘검은 달에 출근은 하는 것 같은데, 요즘 나를 피하는 건지……’

지금쯤 다른 게 아니라 가입자 수로 내기 조건을 걸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뭐, 아버지의 의도치 않은 홍보가 없었어도 흥행할 자신은 있었지만. 빨리 잘되면 좋지 뭐.

하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행운을 맞닥뜨린 얼뜨기처럼 굴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까다롭고 비싼 태도를 유지했다.

“제가 한 말 명심하세요.”

“네엡! 퀄리티를 절대 타협하지 말고, 서둘러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은 걱정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주문이 들어왔을 때 얼른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주문하신 분들은 클로틸드 공작님이 보여 주셔서 구매욕이 생기신 걸 텐데, 얼른 보내 드리는 게……”

“아니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출시해 달라고 해서 바로 급하게 만들어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

‘영상석은 대여로 싸게 팔고 있으니 그만큼 고급 라인은 차별점을 제대로 줘야 해.’

이런 고급 라인의 제품은 쉽게 구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면 줄수록 오히려 가치가 높아진다.

‘나만 특별하다’. ‘문화생활에 이만큼이나 돈을 쓴다’는 느낌을 주기에 얼마나 좋은 제품인가, 홈시어터가.

괜히 급하게 만들어 팔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이제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는 영상석 구독 서비스에까지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뿐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홈시어터는 아버지가 다른 귀족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다시피 했으니 클로틸드 공작가에도 타격이 갈 수 있다.

여태까지 기술만큼은 마법사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마탑은 말할 것도 없다.

“마탑의 마법사한테 배송하고 설치할 때 친절하되 절대 굽신거리는 느낌은 주지 말라고 당부해 주세요.”

내 말을 이해한 직원이 물러가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의도치 않게 홈시어터가 인기를 끈 덕분에 고민이 빨리 끝났다.

‘영상석과 홈시어터가 성공했으니, 이 상품들도 반응이 좋을 것 같아.’

나는 구상을 하느라 책상에 가득한 스케치를 내려다보았다.

영상석 다음으로 출시할 상품이 정해졌다.

* * *

검은 달은 아직 프린츠 마법사가 내기의 조건으로 건 50만 구독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었다.

꽤 바쁘게 지내고 있었지만, 다행히 진통제를 먹고 있지 않은 덕분에 전보다 몸 상태는 좋았다.

때때로 일어나는 증상 같은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처럼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일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음, 지금은 약속 시간보다 너무 이른데. 무려 40분 전이야.’

오늘은 오랜만에 영상 제작 현장 쪽에 직접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전에 있던 일정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시간이 애매했다.

‘너무 일찍 방문하면 상대가 당황스럽겠지?’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주변도 둘러볼 겸 마차에서 일찍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아가씨, 무리하시는 건 아닙니까?”

“하하. 괜찮아. 이 정도 산책은 해 줘야지.”

옆에서 호위 기사가 염려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언젠가부터는 진통제의 부작용인 근육 경련 때문에 잘 걷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진통제를 끊은 지금 최대한 많이 걸어 줘야지.

……물론, 병 자체가 다 나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런데 모처럼 시작한 내 산책은 허무하게 끝났다.

‘어라, 칠렌 연출가랑 메이런 각본가잖아.’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40분 뒤에 만날 사람이 왜 여기에 있담?

“쉿, 조용.”

나는 옆에 있던 호위 기사를 보며 입술에 손을 올렸다.

두 사람이 쉬고 있는 걸 내가 방해할까 봐 모른 척 지나가려는 생각이었으나……

그 순간, 칠렌 연출가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내 귀에 쑥 박혀 들었다.

“하하, 폴리우스 벨데르트가 <13번째 기사>가 오롯이 자기 것인 양 구는 꼴을 보니 속이 터지네.”

어라, 갑자기 <13번째 기사> 이야기가 나오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지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내가 그러건 말건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자네는 정말 괜찮나? <13번째 기사>는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연극이었어.”

“그건 오히려 연출가이신 칠렌 님이야말로……”

“하지만 그 공을 지금은 망할 놈들이 독식하려 하고 있지.”

칠렌 연출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다못해 <13번째 기사>를 영상석으로 만들 거라고 우리에게 언질이라도 줬다면 또 모르네. 하지만 이 사실을 신문으로 알았을 때의 허탈감이란!”

“…….”

“벨데르트 극단 따위, 돈이 안 된다며 순식간에 해체시키면서…… 그 극단에서 만든 <13번째 기사>는 필요한가 보지? 허허……”

칠렌 연출가는 푸스스 웃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허탈감은 그를 전혀 기뻐 보이지 않게 했다.

“아마 우리를 바로 그만두게 하지 않고, 몇 달 동안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도 영상석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네.”

물론 그 당시 폴리우스는 영상석 사업을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공교로웠다.

그들이 폴리우스를 실제보다 더 간악한 악당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배려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봐야만 했지…… 후후후. 만약 대표님들께서 우리를 불러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사냥이 끝난 사냥개 꼴이 났을 거야.”

이내 칠렌 연출가는 삐딱한 자세로 메이런 각본가를 보았다.

“허허, 자네는 수십 년 전 작품이라 괜찮은가 보군?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건가? 이 상황이 참아지나? 어!”

“……참지 않으면 어쩐단 말입니까.”

줄곧 말을 듣고만 있던 메이런 각본가가 울컥 감정을 터트렸다.

“결합 저작물이니 우리도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말뿐이에요. 우리는 평민이고 그쪽은 귀족입니다. 이야기를, 연출을 다르게 하라고 요구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자네……”

“우리가 붉은 해를 상대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벨데르트 백작가, 아니, 이제는 잉그다 후작가까지 얽혀 있는데?”

메이런 각본가는 고개를 숙였다. 상대적으로 침착해 보였지만 겉뿐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참담한 심정은 목소리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괜히 우리가 나섰다가…… 그랬다가…… 새롭게 설 자리를 주신 대표님들께 해라도 끼치면.”

“메이런……”

“저도 연출가님처럼 평생을 바친 벨데르트 극단이 해체되었을 때 모든 걸 놓고 싶었습니다. 제가 돌봐야 하는 조카만 아니었더라면!”

“……미안하네. 내가 너무 함부로 이야기했어. 자네 역시 속상하지 않을 리 없는데. 내가 잠시 미쳐서……”

“아닙니다…… 칠렌 연출가님이 잘못하신 게 뭐가 있다고.”

음, 나는 더 이상 몰래 들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저기…… 제가 일부러 엿들으려고 하던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중간부터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아니, 클로틸드 대표님?”

두 사람이 나를 보고 경기하듯 놀라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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