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폴리우스는 삐그덕거리며 ‘클로틸드 영애와 마탑주’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단해. 여태까지 그림을 걸어 놓겠다, 꽃을 두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조명으로 가게를 바꿀 생각은 못 했는데 말이야.”
“색깔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다른 장소라도 된 것처럼 딴판인 분위기를 낼 줄은 몰랐다니까.”
“아직은 조명 못 구하는 거지?”
“몇몇 유명한 가게에만 협찬으로 미리 준 거고, 출시는 나중이래.”
멜라니는 무드등을 고심하다가, 간단한 취침등 용이 아닌 가게에 비치할 용도로 몇 가지 종류를 더 추가했다.
가게용은 좀 더 넓은 곳을 비추고, 음악도 적당히 신나지만 너무 요란하지는 않은 템포를 선택했다.
‘이것도 멜라니가 출시한 거라고?’
사람들이 조명을 보고 감탄하는 목소리들이 하나하나 그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다른 가게에서는 보랏빛이 아니라 다른 색깔의 등도 있대요. 청록색도 파란색도 아니라고 하던데……”
“아, 제가 다녀온 곳이에요. ‘너와 나의 바다’라는 이름이었는데, 추상적으로 지으니까 전 더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러게요. 이름을 그렇게 지으니까 그 상황이 떠올라서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기억에 더 남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서 자기 전에 이런 조명 켜면 딱일 것 같은데……”
여기나 저기나, 요즘은 가는 곳마다 멜라니와 다미안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상석과 홈시어터가 없는 곳에서까지, 이렇게 또.
폴리우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쉬울 것 같았던 영상석 사업은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붉은 해 출범을 위해 벨데르트 극단에서 가지고 있는 연극을 영상석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영상석으로 연극을 녹화하는 데에는 비용이 꽤 들어갔다.
‘예전에 했던 연극을 그대로 또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돈들을 불러 대는지, 원.’
그냥 대충대충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돈을 많이 쓰는 건지 모르겠다.
‘극단 건물을 팔지 말았어야 했나?’
그랬다면 기존의 제작진이 연극을 만들었을 거고, 돈을 들여가며 장소를 빌릴 일도 없었을 터.
‘하지만 사업 자금이 필요했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지망생들에게 일을 맡겼더니 금액이 적게 나와서 다행이었다.
“와, 이 음식 맛있지 않아? 내가 그래서 어제는……”
오히려 분위기 전환을 하려다가 기분을 잡치게 된 상황.
그는 애써 조명이 만들어 낸 분위기가 아니라,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려 애썼다.
덕분에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말 웃겼다니까!”
“……그랬군요.”
조세핀은 폴리우스의 말에 간단한 반응만 내놓을 뿐, 평소처럼 귀를 기울이는 기색이 아니었다.
멜라니가 만든 조명이라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게 틀림없었다.
‘다시는 여기 안 온다.’
우중충한 분위기로 어영부영 끝난 식사 자리.
식사 이후에도 사업 일정은 이어졌다.
“반갑습니다. 붉은 해에서 온 조세핀 잉그다입니다.”
그래도 조세핀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뚱한 얼굴을 하지는 않았다.
폴리우스는 내심 안심하며 그녀를 보았다.
조세핀이 괜히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아무리 가문의 후광이 있다고 해도, 검은 달에 비하면 신생 업체인 붉은 해가 관계자들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검은 달과 독점 계약을 맺은 터라……”
영상용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극단은 이미 멜라니와 독점 계약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계약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검은 달에 비해 계약 조건이 터무니없는데요?”
대체 얼마나 돈을 뿌리고 다닌 건지, 멜라니보다 비율이나 계약금이 좋지 않다며 시큰둥한 태도였던 것이다.
“그냥 저희는 계약 안 하겠습니다.”
죄다 그런 식이었다. 폴리우스는 덕분에 콘텐츠 확보에서 밀리고 말았다.
‘젠장, 벨데르트 극단에는 기존의 유명한 연극들이 있으니 괜찮을 거야……’
폴리우스는 이를 갈았다.
그런데 연속해서 계약 성사가 되지 않는 와중.
한 극단에서 계약을 승낙하며 묘한 조건을 내걸었다.
“예전에 벨데르트 극장에서 창작해서 올렸던 연극, 저희 무료로 쓰게 해 주시면 저희 연극 녹화할 수 있게 계약 체결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어차피 다시 극장 운영하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무료로 쓰게 해 달라니 괘씸했다. 자신을 뭘로 보고?
‘저작권료를 빼 주는 것도 아니면서, 멜라니와 똑같은 비율로 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나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멜라니가 하는 영상석 구독 서비스 중 가장 인기 있는 영상들이 이곳에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 할게요.”
그러나 폴리우스가 고민하는 사이, 옆에 있던 조세핀이 먼저 승낙해 버렸다.
“대신 계약은 여러 개를……”
“그럼 연극 하나만 올리게 해 주시는 게 아니라……”
조세핀 역시 멜라니를 이기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던 것이다.
조세핀이 자신과 상의 없이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었지만, 폴리우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내심 자신이 아쉬운 이야기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멜라니보다 처지는 계약이라니.’
어쨌든 폴리우스는 그렇게 몇 개의 콘텐츠는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상석이 문제야. 연극은 어떻게 녹화한다고 해도 마법사들에게 마력석으로 영상석 개발을 맡기려면 돈이 부족해. 멜라니는 돈이 어디서 난 건지……”
폴리우스는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만 하던 말을 기어이 입 밖으로 꺼냈다.
“역시 공작가라 다른가?”
“!”
그 말에 조세핀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자신은 후작가고, 멜라니는 공작가라는 것에 안 그래도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냥 클로틸드 영애가 돈 개념이 없는 것뿐이에요! 마력석이 들어갈 텐데 그 가격으로 내놓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약점이 건드려진 조세핀은 방어에 그치지 않고 반격을 시도했다.
“공작가라고 자꾸 그러는데…… 그렇게 말하면 폴리우스야말로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내가 한 말은……”
폴리우스는 조세핀의 말에 오해라며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를 달래기에는 너무 늦은 때였다.
“당신 어머님이 나를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아냐고요. 저는 그것 때문에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뭐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어머니잖아!”
그 말을 듣자, 조세핀은 반사적으로 마탑주의 말이 생각났다.
“저는 누구와는 다르게 여자 돈 뜯어먹는 놈은 아니라서요.”
“그리고 저는 아들 팔아서 욕심 채우는 어머니도 없고요.”
젠장, 왜 하필 지금 그 말이 생각나는지.
제 어머니를 모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폴리우스와, 성격이 더럽다고 하지만 여자에게 대리효도를 시키지 않는 다미안 마탑주……
“가뜩이나 오늘 일하고 와서 힘들었을 텐데, 편히 쉬지도 못하고 영애의 시간을 낭비하겠군요.”
조세핀은 이를 악물고 폴리우스에게 내뱉었다.
“차라리 연애하거나 결혼할 남자라면 다미안 마탑주가 나을지 모르겠네요.”
“그딴 말을 누구 앞에서 지껄이는 거야!”
역시나 마탑주를 입에 담으니 폭발한다.
여태까지 폴리우스의 앞에서 금기였던 일을 하니 속이 좀 시원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업으로 바쁘고 돈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만나서 놀아 달라!”
“언제는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먼저 다가가서 사근사근하게 굴더니! 날 생각하는 마음이 변했나 봐?”
“내 어머니한테도 그렇게는 안 하는데, 한두 번이어야지!”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조세핀은 울컥해서 클라라와 폴리우스가 둘이 남아 있든 말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하, 진짜 골치 아프게……”
폴리우스는 몸도 마음도 잔뜩 지쳐서 사업장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백작저에 돌아가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마차를 타고 그곳까지 갈 힘도 남지 않은 거였다.
그리고 그를 보며 쭈뼛쭈뼛 직원 하나가 서류 하나를 건넸다.
“저어…… 대표님. <13번째 기사>에 소송이 걸렸는데요……”
“뭐?”
흐느적거리던 폴리우스는 소송이라는 말에 기겁하며 되물었다.
“소송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