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다른 건 괜찮은가 싶어서 틀어 봤는데, 이게 더 심해요. 영상석마다 품질이 들쑥날쑥하네요.”
“으으, 화면이 흔들려서 멀미하는 기분이에요.”
여러 영상석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기대가 가장 컸던 <13번째 기사>부터 보았다.
“그냥 연극을 전체적으로 촬영했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요?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잡을 때마다 화면이 매끄럽지가 않아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불만을 쏟아 냈다. 전반적으로 평을 한 마디로 조합하자면 이랬다.
‘와, 진짜 조잡하다.’
물론 촬영만 문제는 아니고, 전반적으로 연출이 굉장히 별로였다.
“으윽!”
주인공이 크게 다치는 장면. 굉장히 심각하게 몰입해야 할 부분이었으나, 연출이 조잡하다 보니 어린아이의 공격에 엄살을 떠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인 로비오 탐다제의 연기가 굉장히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출 탓에 내내 이질감이 들었다.
촬영 각도가 이상해서 건장해 보여야 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왜소해 보이지를 않나.
비장함을 살려야 할 장면은 오히려 산뜻하게 다가와서 긴장감을 다 깎아 먹고.
“클로틸드 영애와 마탑주님이 하는 영상석 구독 서비스와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품질이라고 해 놓고는……”
하지만 그 처참한 연출보다 사람들이 심각성을 느끼는 것이 있었다.
“검은 달에 비하면 품질이 한참 떨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분명 제국어인데 말이에요.”
배우들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는 거였다.
검은 달처럼 장비들을 투명화해서 배우 가까이에서 영상석을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잘 들린 부분은 영상에 장비들이 화면에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영상석 제작진의 역량뿐 아니라, 영상석을 만드는 기술과 녹화 장비 역시 한참 떨어졌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하지만 <13번째 기사>를 제작하면서, 처음에는 열의에 차 여러 번 연극을 관람했던 폴리우스와 조세핀은 객관적으로 영상석을 판단할 눈을 잃어버렸다.
본인들은 이미 극본으로 읽어 철저하게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영상석의 불친절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이건 비교한다고 하면 오히려 클로틸드 영애에게 미안한 수준이에요!”
멜라니의 영상석 사업 때문에 영상석에 깊게 매료된 사람들이 먼저 사용해 본 만큼 오히려 적나라하게 비교당했다.
그리고, 때마침 소송이 터졌다.
[이복형제 간 적나라하게 드러난 수준 차이, 사람들의 반응은?]
[붉은 해, 조잡한 퀄리티에 이어 저작권 문제까지…… 자칭 검은 달의 라이벌은 어디까지 몰락하나?]
[<13번째 기사>, 과거의 영광은 과거에만 남았어야 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저번에 붉은 해가 사업을 할 때와는 다르게 이 부정적인 기사들은 멜라니가 의도한 것이었다.
멜라니는 붉은 해가 영상석 사업을 시작하면서, 신문사에 뿌린 자료들이 온갖 자극적인 화제들을 몰고 다니며 화제성을 가져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파급력은 멜라니를 겨냥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줬지만 영상석 사업 자체를 홍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결과는 좋았지만 어쨌든 검은 달을 노린 것은 맞았다.
해서, 멜라니는 이번에는 자신이 역으로 신문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쪽에서 흘린 자료가 아니라는 걸 철저하게 비밀로 해서, 소송에 관한 자료들을 신문사에 돌려요.”
저번에 폴리우스와 조세핀, 거기에 이복형제니 전 약혼녀니 하는 자극적인 단어들을 엮었더랬다.
“그쪽도, 똑같이 당해 봐야지. 안 그래?”
평민이 건 소송이니까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던 폴리우스의 예상과는 달리 화제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참한 퀄리티에 충격을 받은 차에, 대놓고 욕할 명분을 깔아 준 것이다.
이렇게 되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 로비오 탐다제까지 나섰다.
“나에게 주인공 역할을 주었던 연출가님을 기억합니다. 저작권 문제는 당연히 합의된 줄 알았는데…… 제가 출연했지만, 보지 말라는 말을 드리고 싶군요.”
<13번째 기사>가 당초 생각했던 퀄리티가 아니라 본인마저 조롱거리가 될 판국에, 로비오 탐다제는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사실 영상석 퀄리티가 좋았더라면 모를까, 배우 자신이 봐도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열심히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은근슬쩍 제작을 한 붉은 해의 잘못을 부각한 것이다.
여러 번 폴리우스에게 건의했지만 통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영상석을 제작할 그릇이 아니라고.
“사실 주인공이 아니었으면 영상석 퀄리티는 더 처참했을 거예요. 그렇죠?”
“맞아요. 배우인 로비오 탐다제 님만 열심히 일했어요.”
주인공까지 이렇게 나오니 사람들은 더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배우에게는 높은 출연료를 지급한 폴리우스와 조세핀에게는 억울한 일이었다.
“신문을 믿지 마세요. 분명 검은 달 측에서 손을 쓴 게 분명합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그럼 소송 자체가 거짓말인가요?”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두 분이 저작권을 위반하도록 조종이라도 했단 말인가요? 그것참 대단하네요.”
갑자기 쏟아지는 부정적인 여론을 감당하지 못했던 폴리우스와 조세핀은 평소보다 둔한 머리로 허우적거렸다.
그나마 괜찮은 시도는, 재판이 정식으로 열리는 걸 막으려고 칠렌 연출가와 메이런 각본가에게 접촉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리며 멜라니에게 상담해 왔다.
“제가 끝까지 소송을 가는 게 대표님께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이미지 망할 대로 망해서…… 돈이나 챙기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이미 붉은 해 영상석 구독 서비스의 이미지는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였다.
재판 역시 평민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어주지도 않을 것 같고.
해서, 멜라니는 오히려 두둑한 위자료를 챙기게 하고 소송을 취하하는 방향으로 두 사람에게 조언했다.
[갑작스러운 소송 취하…… 붉은 해, 귀족의 더러운 민낯을 드러내다.]
폴리우스와 조세핀은 신문에 모두 오해였다며 기사 자료를 돌렸지만, 그래 봤자 기사는 조롱조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편이 더 사람들에게 먹히기 때문이었다.
“1주 무료라고 해서 해 봤는데…… 오히려 더 별로던데요?”
“2주가 아니라 1주라고 욕했는데, 차고 넘쳐. 내 하루도 아까워.”
“후발 주자인데 무슨 배짱이지? 보고 배운 게 없나?”
처음에는 벨데르트 백작가에 잉그다 후작가니까 숨죽이던 사람들도, 이제는 대놓고 불만을 말하게 되었다.
영상석의 품질이 조악한 건 단순히 영상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쨍그랑!
“영상석, 뭐 이렇게 쉽게 부서져요? 살짝 건드린 거란 말이에요!”
“제가 벽에 집어 던지기라도 한 줄 알아요? 사람을 깡패로 아는 거예요?”
사람들은 영상석을 부수면 배상해야 한다는 붉은 해의 말에 반박했다.
그리고 영상석 반납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조세핀은 직원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저쪽은 깨져서 문제되었단 이야기가 없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는 거야? 혹시 클로틸드가 사람 써서 우리를 방해하는 거 아니야?”
“그, 그것이…… 저쪽은 영상석이 깨졌다는 경우가 거의 없는 수준으로 드물어서……”
폴리우스가 눈을 질끈 감는 게 보였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오히려 기존에 있던 클로틸드 쪽의 영상석이 재평가되며, 굉장히 대단했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
“조용히 해!”
폴리우스는 직원에게 윽박질러 입을 다물게 했다.
‘멜라니와 내가 함께 사업을 했다면, 지금쯤 나는 웃고 있을 텐데.’
다미안이 멜라니의 손을 잡던 그 날의 모습이 계속 맴돌았다.
자신과 결혼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멜라니와, 항상 운 좋게 모든 걸 가졌던 이복형 다미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약혼한다니.
처음에는 자신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일회성으로 파트너를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와 버렸다.
조세핀이 아니라 멜라니에게 잘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침대에서 둘이 함께 있던 모습을 들키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자꾸만 들었다.
‘참자. 1주만 지나면 정착될 거야!’
폴리우스는 신이 있다면 자신에게도 행운을 주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울렁이는 감정을 욱여넣었다.
폭풍과 같았던 1주가 지나니, 그의 바람대로 조용해지긴 했다.
다만 폴리우스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1주가 지나자, 대다수가 구독을 끊어 버린 것이다.
“……이게 다야? 구독 신청을 한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