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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54)화 (54/90)

<54화>

“입 다물어!”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데, 그러는 폴리우스야말로 멜라니 클로틸드한테 마음이 있는 게 뻔히 보이잖아요!”

“내, 내가 무슨 마음이 남아!”

“방금 전만 해도 그래. 멜라니 클로틸드가 다른 영식에게 구애를 받건 폴리우스 당신이 왜 끼어드냐고요!”

폴리우스는 찔리는 구석이 있어 놀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조세핀은 물러서지 않고 몰아붙였다.

“다미안 마탑주는 클로틸드 영애만을 보면서 약혼해 달라고 했는데, 당신은 클로틸드 영애와 안 되니까 나한테 구혼한 것처럼 됐잖아!”

“내가 널 싫어하면 이러겠어? 왜 말도 안 되는 걸로 예민하게 굴고 그래?”

폴리우스는 자신이 켕기는 구석이 있는 만큼 더 난폭하게 반응했다.

멜라니가 자신을 못 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불안한 지금의 상황도 멜라니와 이어지면 해결된다는 생각에 잠시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

‘왜 나는 멜라니가 나에게 미련이 있다고 생각했지? 일관적으로 차갑게 구는데도 왜……?’

클라라가 옆에서 속삭였던 말들…… 같은 여자라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클라라의 말은 틀렸다.

결국 멜라니는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다미안의 손을 잡았고……

“이제 나도 마음 다잡으려고 하는데, 왜 피곤하게 그러는 거야?”

“나랑 이야기하는 게 피곤해요?”

“하아…… 그만하자.”

“그만하긴 뭘 그만해!”

폴리우스와 조세핀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 순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잘 맞물린다고 생각했던 서로가, 어느 순간부터 삐걱거리며 헛돌기만 한다는 걸.

왜 약혼을 하기로 한 지금이 더 상대가 버겁게 느껴지는 건지.

“……나중에 이야기하자.”

“폴리우스!”

“우리 둘 다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그러는 거야.”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 두 사람은 약혼으로 묶였고, 전보다 더 자주 만나야 했다. 거기에 사업까지 묶여 있었다.

책임감, 부담감……

진지하게 임하는 지금은 둘의 사랑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폴리우스 벨데르트! 지금 회피하는 거예요?”

조세핀은 당황스러움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폴리우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해!”

떠나는 폴리우스의 뒷모습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방금의 태도에서 매정함을 느끼기보다는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 약혼, 정말 괜찮은 걸까?’

조세핀은 입술을 깨물며 왜 자신이 저런 남자에게 매달렸는지 곱씹었다.

‘클로틸드…… 그놈의 클로틸드만 아니었어도 저런 사생아 같은 건……’

멜라니가 목매는 남자만 아니었어도 팔을 회복하니 어쩌니 해도 폴리우스에게 집착하지 않았을 거다.

멜라니가 사랑하는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왜 버린 걸 자신이 줍는 모양새가 되었느냔 말이다.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과정 같은 건 잊어버리자.

어쨌든 자신이 애초에 원한대로 폴리우스는 자신의 약혼자가 되었다.

멜라니 역시 다미안과 이어졌으니 폴리우스도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보다 멜라니가 우선이라는 듯 구는 폴리우스의 태도가 상처지만……

클로틸드가 몰락하면 오늘의 치욕도 없었던 일이 될 거다.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인물이 될 테니까.

‘두고 보라지. 그때 가면 폴리우스와 파혼해도 알게 뭐야.’

조세핀은 힘을 주어 걸었다.

붉은 해 사업을 위한 영상석들을 한 번 더 검토해야 할 듯했다.

‘어차피 사랑 같은 건, 귀족 간에 필요 없는 감정이니까.’

열렬했던 지난날을 모른 척하며, 조세핀은 힘을 주어 앞을 향해 걸었다.

* * *

똑같이 얼결에 약혼한 모양새였지만, 폴리우스와 조세핀의 경우와는 반대로 멜라니와 다미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약혼한다고 해 줘서 고마워요.”

멜라니는 다미안을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조세핀에게 휘말리는 듯했지만, 결국 다미안과 약혼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자신에게 영식을 붙이려고 한 건 귀찮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는가?

‘마르티스 영애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길 잘했어.’

멜라니는 이어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머뭇거리는 듯하던 다미안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명색이 약혼인데 너무 멋없……”

“계약 약혼 기간 동안은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할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의 말이 동시에 나왔다. 그리고 다미안과 멜라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동시에 반문했다.

“예?”

“예?”

다미안은 숨을 멈췄다.

자신은 만약 약혼하게 된다면 좀 더 멋있게,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멜라니는 계약 약혼을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멜라니는 다미안의 말을 되씹더니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진짜 약혼도 아닌걸요.”

“진짜…… 약혼도 아니라고요.”

“네. 말씀드렸잖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미안은 주먹에 힘을 주었다. 확실히 그랬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약혼을 권하는 거지 평생 같이 살자고 하는 건 아니랍니다.”

“애초에 파혼…… 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물론 파혼 경력이 있는 건 꺼려지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피차 저희가 문제가 되는 입지는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계약’이라고 말할 줄이야. 그냥……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하긴, 언제부터 자신이 결혼을 한다고 마음먹었던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생활을 보며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던가.

그저 자신도 멜라니와 함께 사업 파트너로 지내며, 겸사겸사 보기 싫은 폴리우스의 코를 짓밟아 주면 된다.

피차 그를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 내가 클로틸드 대표님에게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조금 아쉬웠다.

‘아니, 뭐가 아쉽다는 거지?’

* * *

시간이 흘러, 조세핀과 폴리우스의 영상석 사업이 출시되었다.

두 사람이 붉은 해를 출범하겠다고 말한 지 고작 사 개월 되는 때였다.

“그런데 클로틸드 영애와 다미안 마탑주가 만든다고 할 때보다 굉장히 빨리 나오네요?”

“그러게요.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가을에 사업 이야기가 나왔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나오네요?”

고작 계절이 바뀔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던지라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쨌든 빨리 나오면 좋은 일이었다.

저번에 멜라니와 다미안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

“<13번째 기사>가 얼마나 기대가 되던지요.”

“맞아요, 맞아요. 그리고 또…… 누가 더 많은 사랑을 받을지 기대가 되네요.”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은 검은 달과 붉은 해 중 누가 더 사업이 잘되느냐 궁금하다는 거다.

이복형제들끼리의 싸움!

전 약혼녀와 현 약혼녀의 대결!

온갖 신문에서 떠들어 댄 덕분에, 영상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들의 사업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때는 매우 생경한 개념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떠든 덕분에 이제는 영상석이 뭔지 다들 알았다.

멜라니와 다미안 마탑주는 의도하지 않은 영상석 홍보였다.

“그나저나, 가격이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에요?”

“검은 달보다 열다섯 배 비싼 건 좀 심한 것 같아요!”

사실 열다섯 배라고 해도 마력석의 가격을 생각하면, 붉은 해 측에서는 오히려 구독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손해였다.

자투리 마력석을 이용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었던 멜라니 쪽과는 다르게, 조세핀 쪽은 비싼 마력석을 그냥 통째로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그냥 마력석도 아니라 멜라니에게서 열 배나 비싸게 산 마력석이었다.

오히려 초반이니까 점유율을 높이기 위하여 터무니없는 적자를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평은 좋지 않았다.

“뭐, 지금은 무료로 쓰게 해 준다고 하니까. 가격은 정식으로 구독할 때 신경 쓰면 될 일이죠.”

“이름이…… 뭐, 태양 어쩌구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외우지를 못하겠네.”

“붉은 해잖아요. 딱 검은 달을 노리고 지었는데 기억을 못 하시다니.”

그렇게 사람들은 떨리는 기대를 품고 붉은 해의 영상석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어리둥절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저만 그래요? 왜 배우들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안 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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