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57)화 (57/90)

<57화>

잉그다 후작가가 우리 가문에 열등감을 느끼던 건 알고 있었다.

항상 후작가는 클로틸드 공작가보다 뒤처져 있었고, 한 번도 앞질러 본 적이 없었으니까.

라이벌이라는 이야기가 돌 때마다 피식 웃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만든다는 영상석의 내용을 알고 나서 나는 그들이 질투 정도가 아니라 공작가에 커다란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 어머니가 후작의 첫사랑이라고 했던가?’

열렬히 구애했지만, 어머니의 취향이 아니라 여지도 주지 않고 냉정하게 거절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후작 본인도 우리 부모님이 결혼하자마자 바로 결혼했으면서. 앙심이 이렇게 깊을 것까지 있나?

본인이 이렇게 남을 공격했으면, 자신도 당할 건 각오했겠지.

마법사가 제국어를 못 하고 통역사 가족을 인질로 잡았으니까 그냥 그 자리에서 맘 놓고 떠들었나 본데, 녹음기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나 보다.

하지만 이걸로는 안 됐다.

‘이걸 증거로 제출하면 오히려 이쪽이 후작가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차라리 인질로 잡혀 있을 통역사의 가족을 구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낫겠어.’

그들에게 증거를 남겨 달라고 해야겠다.

“잉그다 후작가가 이렇게까지 비열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영애의 아버지까지 건드리는 건데…… 괜찮습니까?”

그런데 뜻밖의 배려를 받았다.

나는 굳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불타오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나는 내 계획을 다미안 마탑주에게 말했다.

그는 내 계획에 모두 찬성했으나, 내가 직접 인질을 보고 싶다는 부분은 반대했다.

“몸도 약한 사람이, 왜 굳이 직접 가려고 하는 겁니까?”

“통역사 관련한 일은 마탑주님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황가가 관련된 이상, 공작가와 마탑이 위험할 수 있으니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거랑 영애가 직접 가는 건 무슨 상관입니까?”

“죄송하지만 마탑주님이 인질을 잘 독려하고 저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나는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내 직언에 마탑주가 입을 다물었다.

“물론 다미안 마탑주님께서는 마탑의 수장이시고, 함께 회의를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걸 지켜보긴 했어요.”

“그런데 왜……”

“거기다, 밀라 부인과 잉그다 후작 영애를 만났을 때 얼마나 통쾌하게 그들에게 일침을 가했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요.”

그렇다. 다미안 마탑주는 결코 어디 가서 말로 밀리지 않을 인물이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다독이며 안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못 하겠어서요……”

나는 다미안 마탑주가 마탑에서 한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감탄했다. 네가 방금 한 말은 일반적인 마법사 수준이 아니야.”

“허업, 감사……”

“마법사 지망생 수준이지. 입으로는 굉장히 잘 떠드는데, 차라리 마법이 나오는 소설을 쓰는 게 어때?”

“!”

라든가.

“마법사는 약해도 돼.”

“그럼……”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는 그러면 안 되지.”

음, 그런데 마탑의 마법사들도 제정신은 아니어서…… 그런 말을 듣고는 이상하게 더 힘을 내는 것 같더라.

‘마법사들은 다 마법에 미친 변태라더니……’

마탑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단한 천재들만 모아 둔 데다, 좀 이상한…… 변태들이 있어서 오히려 그런 채찍질이 잘 먹힌다지만.

인질은 안 그럴 것 같다는 말이지.

“제 화법이 영애의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냥, 인질들은 마음이 약해져 있을 거라는 이야기예요.”

방금 내 아버지 걱정을 먼저 해 준 것처럼.

‘마탑주님이…… 나한테는 안 그러긴 하는데.’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인다……

“후작은 인질이 도망칠 걸 대비해서 사람을 심어 놓긴 했겠죠. 하지만 다미안 마탑주님이 제 옆에 있는데도 위험할까요?”

“……그야 그렇겠지만.”

다미안은 몇 가지를 궁리하더니 마탑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이게 뭔가요?”

“일단 호신용 아티팩트를 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팔찌 여덟 개, 목걸이 여섯 개, 반지 열 개, 벨트 세 개를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꼴로 밖에 나가다니, 창피해서 못 한다.

아니, 창피는 둘째 치고 엄청나게 불편하다.

“이러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요? 누가 공격해 온다고 해도 못 피할 것 같은데요.”

“이런 게 없어도 어차피 못 피하실 거 아닙니까.”

“…….”

“진지하게 따지자면 튀어 오르는 개구리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하지. 내가 어디 가서 허약함으로는 지지 않으니까.

칼을 휘두르고 마법을 날리는 인간이 있는 세계에서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피해?

“크, 크흠. 영애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 침묵에 다미안 마탑주는 헛기침을 하더니 재빨리 뒷수습을 시도했다.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어차피 피하려고 한들 별 소용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네, 굉장한 위로가 되네요.”

“제가 영애 말마따나 화술이 부족해서 영애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니, 오히려 저야말로 쓸모없지요.”

다미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영애야말로 저를 무시하셔도 됩니다.”

지금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 건가?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나오는 거지.

“저야말로 아까 마탑주님의 화법을 대차게 지적했잖아요.”

“그건.”

“그러니까 그만할래요. 저는 말로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취미 같은 거 없어요.”

“……그런 뜻이 아니라.”

“마탑주님께서 아무리 원하셔도 그건 못 해 드려요.”

내 계속되는 공격에 다미안 마탑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사람을 변태로 보시는 겁니까?”

“워워, 진정하시죠.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두 손을 들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겨우 이 정도 말에 변태 취급을 하는 거냐니…… 마탑주님,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허…… 처음부터 느꼈지만, 클로틸드 대표는 사람을 굉장히 당혹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다미안 마탑주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대화 주제를 돌렸다.

내가 착용한 마법 아티팩트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이 중에 팔 할은 위험에 처하면 저절로 발동할 겁니다. 보호막과 결계가……”

말 돌리느냐고 놀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가 인질을 구하러 갈 때 위험하다고 안 데려가 주면 어떡해.

‘마법 아티팩트도 주렁주렁 빌린 감사한 처지니 말이야.’

하지만 그놈의 설명은 오랫동안 끝나지가 않았다.

나는 적당히 마탑주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개구리보다 못한 회피력을 가진 제게 희소식이긴 한데요. 그럼 나머지 이 할은 뭔가요?”

“만약을 대비한 보험용입니다. 영애에게 타격이 가해진다면 제게 알람이 옵니다만…… 혹시 모르니까요.”

다미안 마탑주는 주렁주렁한 내 반지 중 몇 개를 가리켰다.

“영애의 반경 1m를 제외한 모든 곳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마법과, 영애의 몸을 제외한 근거리에……”

그리고 공격 마법의 시동어니 뭐니 여러 가지를 알려 주는데, 설명을 듣던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내 기색을 알아차린 마탑주는 단단히 나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영애의 안전이 달린 일입니다.”

“아니…… 이 정도까지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대로라면 제가 성 하나는 부술 수 있겠어요.”

“네, 그래도 이해하셨군요.”

“아니, 제 말뜻은 그게 아닌데.”

“그럼 이해를 못 하셨단 말입니까?”

……다시 한번 설명이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놀린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닐까 싶다.

‘개구리는 이런 공부 안 해도 될 텐데.’

* * *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여기서 반 정도 줄여도 되지 않을까요? 잘은 몰라도 이거 굉장히 귀해 보이는데.”

“영애가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아아, 맞습니다. 저는 귀한 몸이에요.”

내가 왜 귀한지에 대한 설명까지 이어지려고 하기에 나는 헐레벌떡 말을 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동어를 모두 외운 내 모습을 본 다미안 마탑주는 홀가분하다는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후작가의 모든 기사들이 덤빈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 버틸 수 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