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몇 개는 가져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무 무거워서 뼈가 아파요.”
마법사가 만들어서 그런지 죄다 괴랄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나마 가볍게 생긴, 거북이가 주렁주렁 달린 두툼한 팔찌를 다시 거절했다.
“방어용이라고 하면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할 텐데, 제 손목이 먼저 부서지겠어요.”
“그렇습니까……”
나는 호위 아티팩트를 냉정하게 돌려주었다.
실제로 너무 무겁기도 하거니와, 이걸 내가 받긴 왜 받는단 말인가. 척 봐도 엄청난 가치가 있어 보이는데.
나같이 아픈 인간이 성 하나를 궤멸할 수 있을 정도인데…… 빈말이어도 이런 말은 하는 거 아니다.
“많이 무거우셨습니까?”
“네, 그러니 다음부터는 이 정도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이 반지 정도는…… 받는 게 부담스럽다면 빌려드리는 걸로 하지요.”
“이건 너무 약해서 오히려 제가 부숴 버릴 것 같아서 걱정돼요.”
“부숴도 괜찮습니다만.”
“제가 안 괜찮은데요. 신경이 쓰여서 빼고 다닐 것 같아요.”
계속되는 거절에 다미안 마탑주는 풀이 죽은 듯했다.
흠, 확실히 사업 파트너가 중간에 위험해지면 곤란하긴 하겠지만.
“걱정 마세요. 그래도 호위 기사를 데리고 다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요?”
어차피 사고로 죽을 일보다 병이 악화되서 죽는 게 더 빠를 거다.
어쨌든 인질을 구하는 일이 수월하게 풀려서 그건 다행이었다.
* * *
“말도 안 돼. 왜 사람들은 우리를 편견을 쓰고 대하는 거지?”
“…….”
“조세핀, 말 좀 해 봐! 너는 억울하지도 않아?”
폴리우스가 나빠지는 여론을 못 견디고 소리 질러도, 조세핀은 묵묵히 인내했다. 희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이제 곧, 클로틸드 쪽에 문제가 생길 거야.’
그러면 검은 달 쪽을 구독해서 보던 사람들이 다 붉은 해에게 올 게 분명했다.
붉은 해만 영상석 사업을 한다면 높아진 가격도 독점이니 큰 문제가 안 될 거고, <13번째 기사>는 어쨌든 합의를 했으니 다시 찍으면 된다.
그 외에도 클로틸드가 망하면 독점 계약도 풀릴 테니 콘텐츠가 더 확보될 거다.
마력석도 예전보다 가격이 내려갔다. 자신이 구하려던 그때 갑자기 상승한 게 이상할 만큼.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실패하다니, 그럴 리가 없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으면 된다.
곧 조세핀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터졌다.
“클로틸드 영상석 구독 서비스에서…… 황가를 모독하는 영상이 발견되었답니다!”
* * *
-황제는 선대 황제랑 전혀 닮지 않았잖아요.
-클로틸드 공작이 공작 부인 자리를 비워 두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공작이 선대 황후와 불륜을 저질러, 선대 황제를 낳았기 때문이에요!
얼토당토않은 내용의 영상석이 유통되고 있었다.
황실의 기사들은 그 즉시 영상석을 압류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아니…… 그런 영상이 유통되다니, 미친 거 아니에요?”
“지금 클로틸드 영상석 구독 서비스를 봤다가 우리도 그런 소문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어쩌죠?”
“당분간은 보지 않고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조세핀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저희 쪽은 영상석 유통 과정을 철저하게 검수한답니다. 단순히 영상석을 만드는 것에만 끝내면 안 되죠.”
“오오, 역시 영애는 다르시군요……”
“사실 저는 기본을 한 것뿐인데, 칭찬을 듣다니 부끄럽네요.”
조세핀은 손으로 치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가렸다.
폴리우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다.
“그래, 그 두 사람이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없지!”
그러나 두 사람이 기뻐하는 건 잠시였다.
“당신네 영상석 서비스를 조사하러 왔습니다.”
오히려, 황실이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잉그다의 영상석 서비스였던 것이다.
* * *
내가 괜히 유통 과정에 붉은 해가 조작한 영상석 섞이는 걸 두고 본 줄 아나.
처음부터 위조 복제를 막기 위해 모든 영상석에 고유 코드를 넣어 놓았다.
그러나 고유 코드가 없어도 품질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만든 것과 외국의 마법사들이 만든 게 같을 리가 있나.
더군다나 마르티스 영애의 사주를 받고 일부러 못 한 것도 있는데.
게다가 결정적으로……
‘통역사와 마법사가 야금야금 남겨 놓은 증거들이 있다는 말씀.’
마법사에게는 영상석을 만드는 척하면서, 후작이 하는 말과 행동을 영상으로 찍게 했다.
“황제를 좀 더 날카로운 말로 깎아내려! 이 영상을 본다면 도저히 클로틸드 공작가를 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황제가 선대 황제의 자식이 아니라고 좀 더 비웃는 어조로 찍을 수는 없나?”
그리고 통역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들을 밀고하는 걸로 정해 놓았다.
물론 그 전에 마법사는 죄책감을 느끼고 증거인 자료를 내버려 둔 채 미리 외국으로 도망치는 설정으로 해 두었고 말이다.
‘통역사가 이제는 후작의 아래가 아닌,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후작 같은 이상한 인간에게 걸려 고초를 겪는 일은 없겠지.
마법사 역시도, 외국으로 도망가면서 대단한 돈을 폴리우스와 조세핀에게 갈취했으니 해피 엔딩이다.
‘조세핀과 폴리우스에게만 새드 엔딩이지 뭐.’
그리하여 조세핀은 나에게 덮어씌우려던 죄를 본인이 덮어쓰게 생겼다.
아니, 그게 온당한 거긴 하니까 덮어쓴다는 표현은 그런가.
애초에 이런 영상석을 만든 것도 본인이니 말이다.
‘아쉽다. 폴리우스도 여기에 가담했으면 편하게 보낼 텐데.’
물론, 여기에서는 어찌어찌 벗어나도 피해가 결코 없다고는 못할 거지만 말이다.
* * *
멜라니의 예상대로 폴리우스는 황실에서 나온 조사에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뗐다.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잉그다 후작과 조세핀, 아니, 잉그다 영애가 단독으로 저지른 짓이라니까요?”
실제로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가 아닙니까?”
“말로는 그렇게 하긴 했어도, 아직 청혼서도 안 넣었습니다!”
폴리우스는 남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꼬리 자르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아니었다.
“잉그다 영애가 하던 사업이니 황제 폐하께 밉보일까 봐 우리 영상석을 아예 사람들이 안 본다고?”
원래도 안 봤는데, 이제는 거의 영에 가까워졌다.
나중을 기약하며 잔뜩 벌려 놓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클로틸드를 잡아먹으려던 계략은, 오히려 잉그다 후작가 전체를 집어삼켰다.
“잠시만요. 클로틸드 공작가에게 가서 따져야지, 왜 우리한테 이러느냐고요!”
잉그다 후작가는 빚을 갚지 못해 저택과 재산이 몰수되고, 작위를 박탈하니 강등하니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폴리우스!”
폴리우스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조세핀을 외면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혼란스러웠다.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냉담해진 아버지나, 못 미더운 어머니에게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클라라라면 나한테 답을 줄 거야.’
예전에 멜라니와 문제가 생겼을 때 조세핀에게 달려갔듯이, 조세핀과 문제가 생긴 그는 클라라에게 달려갔다.
여태까지도 늘 그를 보듬어 주며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 줬던 그녀잖은가?
“클라라? 네가 이 시간에 왜 붉은 해 사업장에…… 아니, 오히려 잘됐어. 마침 너를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하지만 폴리우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의 클라라를 마주하게 되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밀려와 정신없는 한 가운데에서, 클라라는 폴리우스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아, 폴리우스.”
평소와는 다르게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환하게 웃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클라라의 모습에 폴리우스는 제 눈을 의심했다.
‘어라?’
언제나 강아지처럼 맹목적으로 자신을 따르던 클라라가 아닌가.
그런데 눈이 마주쳤는데도 무덤덤하게 고개를 돌려?
“클라라. 지금 내가 물어보고 있잖아.”
“뭐라 떠들든 상관없는데,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폴리우스는 너무 놀라서 화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팔짱을 낀 채로 직원들이 하는 양을 감독하는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거기, 영상석을 담을 때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
그리고 그제야 폴리우스는 북적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잠시만!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왜 남의 영상석을 함부로 담아?”
“뭐긴 뭐야. 조세핀 잉그다가 우리 상단에 진 빚을 갚을 수 없으니, 지금 재산이라도 몰수해 가려는 거지.”
“클라라, 이 사람들 네가 불러온 거야?”
폴리우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큰 고생을 하며 만든 영상석들은 성의 없는 움직임으로 상자에 모조리 담기고 있었다.
“마르티스 상단에 잉그다 가문이 빚을 졌다는 건 알지만, 너까지 이러지 마. 조세핀의 사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사업이기도 해. 지금 영상석을 이렇게 가져가면……”
폴리우스는 내심 직접 재산을 몰수하러 온 게 클라라의 아버지가 아닌, 클라라 본인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클라라는 자신에게 푹 빠져 있지 않은가.
“클라라,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실망할지도 몰라!”
조세핀이 몰락한다면 클라라는 자신과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기뻐할 것이다.
그토록 자신을 좋아하던 그녀가 아니었나.
하지만.
“어쩌라고?”
“뭐?”
“네가 나한테 실망하면 오히려 좋은데?”
베에, 클라라는 혀를 쏙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