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냥지..?
* * *
결국 예화까지 합류해 오늘도 같이 합방 하기로 했다.
아니, 근데 사과 방송인데 합방으로 해도 되냐고 물으니 둘은 다정한 눈빛으로 날 다독이며 위로해주었다.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해도 된다고 위로받긴 했는데… 흠, 잘못한 게 없긴 하지만 불쾌감을 줬으니 괜히 날 욕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사과해야 하지 않아?
사실 이것저것 따지기 이전에 무엇을 해도 내 편이 되어줄 친구가 두 명이나 생겼다는 사실에 살짝 감동하긴 했다.
약간 들뜨기도 하고… 이런 기분은 너무 오랜만이네.
“그럼 지금 합방..?”
“아니,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뭐야? 그럼 언제 하는 거야? 빨리해야 하잖아.”
“지금…. 켜야 할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해도 되는 거고! 예지 너에게 지금 문제점이 있어! 무엇일 것 같아?”
뭐…. 뭐지..?
굳이 말 안 해도 문제투성이지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전부..?”
“너의 그 복장이 문제야! 항상 흰 티에 청바지 그게 끝이라고!”
“아~ 맞네. 볼 때마다 항상 이 복장이더라.”
이게 왜 문제일까.
문제였다면 누군가 내게 지적하지 않았을까?
시청자들은 별말 없었지 않나?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잖아.”
“마자마자.”
“그걸 맨날 입고 있으니까. 그게 문제라고!”
“어…매일 갈아입고 있어..”
“그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얼굴이랑 몸이 아깝다고! 그리고 그것보다 편한 옷은 널리고 널렸어.”
“후드티 짱임!”
나름대로 설득력 있지만 내게 돈이 없었다.
다들 내가 돈 좀 번 줄 알지만 도네를 받는다고 전부 내 돈이 되는 게 아니다.
무려 신청하고 한 달 가까이 지난 뒤에 받는다.
고로 나는 한 달 동안 40만 원으로 버텨야 한다
아니지 이제 30만 원인가?
“그럼 다음 달에..”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둘은 날 끌고 밖으로 나간다.
내 팔 하나씩을 붙잡고 팔짱을 끼는데 어떤 의미일까.
날이 춥지는 않은데..
근데 오른팔은 감촉이 좀 그럴 텐데 차갑고 딱딱한 의수는 안고 있기엔 감촉이 좋진 않을 것 같았다.
“의수 딱딱해…”
꺼리는 기색으로 팔을 슬쩍 빼려고 하니 예화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더 꽉 끌어안아 버렸다.
“완전 시원한데?”
예화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결국 양팔의 자유를 뺏겨버리고 난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근처에 옷 가게만 보이면 들어갔다가 보고 나오고 이런 식으로 반복하니 좀 피곤해진다.
“여긴 마음에 드는 옷이 없네.”
“그러넹.”
“이 옷 자세히 보니 별로다. 다른 곳 가자!”
“맞아. 색이 구림!”
이걸 무한 반복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는지 내 몸에 옷을 대보며 입어보라고 말한다.
문제는 나에게 준 옷이… 스커트인 게 문제였다.
상당히 얇아 보이는 파란 블라우스? 그것도 좀…
“난…바지가…좋은데..”
“이런 것도 입어봐야 하는 거야! 근데 왜 부끄러워해?”
“취향 차이겠지. 바지 좋아하는 애들도 많잖아~”
처음 입은 스커트에 대한 감상은… 상당히 불안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통하는 게 불안하고 밑이 뚫려있으니 보이면 어쩌지 싶은 그런 마음..?
그리고.. 조금 짧은 것 같다..?
손으로 스커트 끝자락을 붙잡고 살짝 밑으로 당겨보지만 그렇다고 늘어날 리가 없었다.
이걸 굳이 왜 입는 거야?
“나…. 근데 돈이 없어..”
소심한 저항을 해보지만, 이 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내가 친구 기념으로 사는 거니까!”
“맞아! 나도 골라줄게!”
히히 웃으며 신나게 고르는 정란이가 괜히 미워졌다.
자택 경비원 맞아..?
넌 아싸의 자격이 없어… 이정란..!
예화는 원래 인싸 느낌이었고..
진정한 아싸는 나뿐이었어.
결국엔 주는 옷을 받는 족족 갈아입고 보여주고 수십 번 반복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어보기도 하고 하이 웨이스트에 배꼽티..? 셔링 크롭티..?
모르겠다.. 여자는 어려워.
예화는 너무 여성스러운 옷을 덥석덥석 집어줘서 많이 부담스러운데 정란이는 무난한 옷 위주로 추천해줘서 그나마 좋았다.
후드 티나 주황색 무늬 티셔츠… 집에서 입기 좋다고 돌핀 팬츠나 그런 걸 휙휙 던져주곤 했지만.. 그나마 나은 편이 아닐까.
와… 여성복 전부 너무 비싸.
너무 신세 지는 것 아닐까.
그런 핑계로 무난한 옷 몇 개만 받으려 했지만, 결국엔 엄청나게 받아버렸다.
쇼핑 멈춰!
“갚을게 얘들아..”
“선물이라니까?”
예화의 묘한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란이는 아예 못 들은 척 무시하는 느낌이었다.
하여튼 원래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으려 하니 갑작스레 제지가 들어왔다.
“아니! 기껏 사줬는데 왜 또 그 복장으로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휑한 느낌이 뭔가 이상해…”
“원래 그런 거야!”
“옳소!”
결국 스커트를 입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기분에 치마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지만, 양팔은 둘이서 팔짱 껴서 나를 연행하듯 데려갔다.
설마… 냥지라는 애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방송 시간이 다 돼가기에 간단하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때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보일 것 같은 그 불안감이 많이 해소되어서 편해졌다.
의자에 털푸덕 앉아 벌어진 내 다리를 정란이가 붙잡아 가지런히 모아주었다.
“얘 좀 봐! 이렇게 쩍 벌려서 앉으면 안 돼. 큰일 나는 거야!”
“내버려 둬…”
“곧 방송 켜야 하니까 일어나~”
정란이가 내 등을 찰싹찰싹 두드리지만,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했던 나로선 아직 할 게 남아있다는 거에 절망했다.
예화는 pc를 켜며 방송 세팅을 준비하면서 캠을 꺼버린다.
그러고 보니 예화랑 정란이는 캠을 안 켰었지.
그러고 보니 요새 스트리머들이 캠방을 잘 안 켜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요새 캠 켜는 방송인이 별로.. 없는 것 같네..?”
“캠 켜서 손해가 더 크잖아. 캠 꺼도 스토커가 생기는데 캠 켜면 오죽하겠어.”
“맞아! 쓰레기 같은 놈들 진짜 많다니까? 수양이한테도 생겼더라.”
음… 스토커… 난 아직 없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맞다! 예지 너도 스토커 있잖아! 그런 개새끼들ㅇ…”
황급히 예화의 입을 막으며 말린다.
입 진짜 거칠구나… 방송에서 이러면 큰일 나지 않아?
“예쁜 말…!”
“강아지 같은 놈들은 거기를.. 읍!”
방송에선 신경 쓰겠지..?
잠깐 화장실에 간다고 예화가 들어가자 정란이가 무언가를 말했다.
“응…?”
“오늘 냥지라고 친구가 잠깐 방송에 참여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더라고, 어떻게 할까?”
“괜찮아… 만나 보고 싶네…”
“그래? 다행이네.”
예화가 나오자마자 방송을 시작했다.
테일리 Just Chatting
사과 방송
“야, 방제를 왜 이렇게 지어! 잘못한 거 없다니까!”
“넌 냥지나 신경 써~ 어차피 예지는 시청자 오면 자기 생각이 잘못된 거 알 거 같아.”
“냥지는 왜 또!”
“냥지 어제 눈치 살짝 챈 거 같은데??”
“무서운 년… 눈치는 빨라…”
“예화는 큰일 났대요~ 냥지 합방 보러 한번 들어와 볼 듯~”
“너도 냥지한테 까이는 건 똑같거든!”
“그르네..?”
[방제는 또 왜 그러냐]
[잘못한 거 없다고;;]
[힘내세요]
[혼자 죄송한 듯 ㅋㅋㅋㅋ]
[방장 안대 디자인 ㄷㄷ]
[우린 흉터 관심도 없는데~ 의수밖에 안 보여~]
[극]
[육수 새끼들 의수에 핵 넣고 겜하는 핵쟁이년 빠네ㅋㅋ]
[락]
[뭔 일 있었음?]
[ㅁㄹ]
[묻어]
[영]
[차]
[영]
[차]
[극]
[락]
[저거 벤 ㄱㄱ]
[눈치 없네;; 빨리 묻어]
무슨 일이야?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하는 거지?
정란이와 예화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봤지만 둘 다 웃음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가 다들 이상하다…
나만 눈치 없는 거지…
눈치 없는 자의 서러움인가.
눈치는 어떻게 길러야 하는 걸까.
이씨…
“얘들아 안농~”
[이럴 줄 알았지 ㅋㅋㅋ]
[우리 또또단이 왔다~]
“야! 우리 흑우단은 없어?”
[응 없어~]
[흑우는 목장에서 찾으시고요]
[ㅋㅋㅋㅋㅋ]
[예화가 그래도 착해… 그만 놀려…]
"얘들아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 돼?"
[응]
[우리가 무슨 사인데요 ㅋㅋㅋ]
[아ㅋㅋ 누구세요?]
[예지는 왜 인사 안 하냐]
[아직 사태 파악 못한 듯]
“어…안녕하세요…?”
[왜 또 존댓말로 초기화함]
[ㄹㅇㅋㅋ 안 어울린다]
[커여워~]
[토끼라서 그럼 ㅋㅋ]
[쫄보특) 쫄면 존댓말함]
분위기 보니 괜찮은 거 맞지?
흉터가 그리 끔찍하진 않았구나
하긴 테일 리가 워낙 흉터가 잘 어울리는 미인이라서 그리 나쁘게 보이진 않은 듯했다.
“어제 일은…”
[어제 왜 맘대로 휴방함ㅡㅡ]
[ㄹㅇ 어제 방송 안 켜서 종일 기다렸다]
[그보다 오늘 뭐 할 거?]
“얘들아 오늘은 말할 게 별로 없긴 한데 예지 오늘 말이야.”
[ㅋㅋㅋㅋ]
[1시간? ㅇ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예지가 오늘 겁을 엄청나게 집어먹고 덜덜 떨고 있는 거야~ 울고 있었다니까? 자기 잘못은 없는데 생각이 너무 많다니까. 자신감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
[ㄹㅇ 세상 혼자 사는 얼굴로 왜 그러는 것임 ㅋㅋ]
[꽃길만 걸으라고~]
[공주병인 듯 ㄹㅇㅋㅋ 흉터 관심도 없다고~]
착한 사람들만 모여있나..
다들 반응이 너무 훈훈해… 이쪽 방송은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까?
감동하여서 눈물이 찔끔 났다.
살아가면서 이 정도로 사람들이 관심 가져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요새 너무 나에게 감동적인 일이 많은 것 같아… 내 방송 시청자들은 다 착한가 봐.
사귄 친구도 착하고 시청자도 다들 착하니 내가 무엇을 해도 좋아하는 거야.
“뭐? 울고 있었다고? 언제? 또 나만 따돌리지!”
냥지 : 진짜 따돌려지는 건 나지… 얘들아…
예화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예화는 마치 아내한테 회식 갔다고 말했지만, 술집에 간 사실을 들킨 남편처럼 변명했다.
아까 정란이가 말했던 냥지라는 사람이구나.
냥지 : 너 나중에 보자.
“야..야.. 잘못했어…”
냥지 : 왜 잘못했다부터 나와?
“아..하하..하하”
예화가 당황한 듯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얘가 이러는 건 처음 보네.
냥지 : 테일리 님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 냥지님 안녕하세요..”
뭐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돔황챠~]
[유화야! 즐거웠어!]
[냥지 너도 껴!]
“맞아 냥지도 껴~”
“그래 냥지야! 난 진짜 네가 오길 기다렸다니까?”
냥지 : 그래도 될까요?
“아..그럼요…!”
냥지 : 도스코드 초대해주세요
“도스..어… 잠시만요… 설치할게요..!”
“내가 할게.”
예화가 접속해서 도스코드 방에 초대하자 냥지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듣기 좋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란아… 나만 따돌리고 예화만 데려갔다 이거지?”
“아니~ 그렇게 오해하면 곤란한 건데요..? 그때 너 방송 중이라 예화 데려간 거였지. 말 안 한 예화가 더 잘못이 큰 게 아닌가.”
“이예화!”
“냥지야! 사랑해.”
“나도.”
서로 하하 웃어넘겼다.
대화 코드를 잘 모르겠어…
이게 세대 차이..?
동갑 아니었나?
“냥지야 예지랑 말놔.”
“본인한테 물어야지!”
“말 놓으셔도 돼요… 서예지라고 합니다…”
“예지야 너도 말놔. 난 냥지 라고 해. 실명은 나중에 알려줄게.”
의외로 유한 성격의 냥지랑은 이야기가 잘 통했었고 내일 다 같이 스캐빈저 콜이라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자 예화와 정란이는 같이 돌아갔다.
물론 가기 전에 이사 언제까지 할 거냐고 닦달을 했지만 말이다.
“약속이다! 안산으로 오는 거야!”
“음… 생각해보고…”
“아니지. 서울이 더 좋아.”
“넌 조용히 해!”
나가면서도 투닥투닥 다투며 나갔다.
역시 둘이 있으면 좋지만…이렇게 갑자기 갈 때면 쓸쓸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대답하지 않을까?
“야, 나 VR기기에 들어가니 왜 오른팔이 비어있어?”
[너무나 저급한 기술력. 호환 불가.]
“그럼 난 계속 오른팔 없는 채로 VR 게임 접속해야 해?”
[왜 접속하는지 이해 불가. 사용자의 VR 게임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 파악 불가.]
“뭐? VR 게임 재미있어 보여서 해보려고.”
[VR로 온갖 고문을 당한 사용자의 심리상 VR기기를 피해야 정상. 예측 불허.]
“내가 VR로 고문을 당했었어?”
그건 스토리에서도 없었는데 예상 못 한 대답이었다.
[고문 중 견봉까지의 신체 절단과 안구 훼손. 제국의 고문 법은 89%가 사망하지만, 사용자는 생존 결국 VR을 이용한 고문으로 사용자는 심각한 정신 붕괴. 탈출에 성공했지만, 사용자는 이후로도 인격을 유지하기 힘들어함.]
“그랬었구나.”
[사용자의 상태 파악 완료. 기억이 온전치 못한 상태. 지금 시각 23 : 00 이후로 과거 자료 열람 불가.]
“뭐? 괜찮아. 괜찮다니까? 야!”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이유 없음. 사용자의 바람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이곳에서 과거에 대한 의문 없이 살아가길 권장.]
“흠… 그건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야.”
[놀람. 사용자와의 이해의 일치.]
"지난번에 컴퓨터에 옮겨 놓은 자료는?"
[특정한 상황 외에는 사용자의 사유 물건에 권한 없음. pc에 접속해 삭제할 권한을 허용 권장.]
"싫어."
[유감을 표현.]
“근데 말투는 못 바꾸는 거야?”
[Reject]
뜻 모를 무언가를 툭 내뱉고는 스스로 전원을 꺼버렸다.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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