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오직 너만의 힘으로
* * *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언니를 구하러 온 건지?]
총구를 겨누며 베르카가 물었다.
총구를 겨누고 있었지만
지금 베르카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서 굳은 자국이 보였고
그 탓인지 총을 잡은 손은 가볍게 경련하고 있었다.
지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네 도움을 구하고 싶지는 않지만...어쩔 수 없지...시간이 없으니 말이야.]
총성이 울리던 건물에서
어느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 화재가 난 듯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불길이 일렁이는 건물을 보며 조셉이 물었다.
[그나저나 저길 어떻게 들어갈 건데?]
[이쪽으로 따라와.]
베르카는 건물 뒤쪽으로 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베르카를 따라 건물 뒤로 돌아가자
화물전용 출입구가 나왔다.
화물 출입구는 건물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용병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건물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이쪽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며
조셉이 물어봤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이 넓은 곳에서
그것도 총성이 오가는 곳에서
마리안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찾을 수는 없었다.
[일단 관제실로 가 봐야지, 그곳에 가면 CCTV가 있으니까 언니를 찾기 수월할 거야.]
계단을 올라가면서
베르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털어놓았다.
회사를 두고 아버지와 싸우게 되었고
인질을 잡아서 이동 중이었으나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 공격해왔고
그래서 도망치다 그만 언니와 떨어져 버렸고
언니는 아버지에게 붙잡혀 버렸다고 조셉에게 말해주었다.
관제실로 가던 중
모퉁이를 돌자
두 사람은 용병과 마주치고 말았다.
갑자기 두 사람과 마주치자
용병은 놀라서 재빨리 총을 들었고
베르카도 권총을 들었으나
조셉은 그보다 더 빠르게 도끼를 휘둘러서 머리를 가격했다.
머리에 도끼를 맞은 용병은 억! 하는 비명과 함께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조셉은 다시 한번 도끼를 휘둘렀고
이번에는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피가 많이 나왔다.
조셉은 몸에 묻은 피를 셔츠에 닦았다.
그때, 총소리가 들렸다.
조셉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저쪽에서 용병들이 총을 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너는 어서 관제실로 가!]
조셉은 베르카를 관제실로 보내고는
베르카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용병들은 조셉을 쫒아가기 시작했다.
베르카는 조셉과 떨어져서
관제실에 도착하니 그곳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한바탕 싸움이 있었는지
내부는 피범벅인 상태였다.
베르카가 관제실에 들어가 CCTV 화면으로
마리안느가 있을 곳을 둘러보았다.
건물 내부 화재는 점점 더 심해지는 듯했다.
연기가 여기까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마리안느는 책상 밑에 숨어서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울리는 총소리
불이 났는지 무언가 타는 냄새
그런 상황 속에서 도망칠 수 없는 자신,
마리안느는 이런 상황이 무서웠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마리안느는 그 남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까.
근거는 없었다.
수십 개의 방이 있는 이 건물에서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마리안느를 구하러 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
그래도 그 남자는 올 것이라고
마리안느는 믿었다.
그 남자는 먼저도
마리안느를 찾아왔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
마리안느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 마리안느가 기다리고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바로
[언니!]
마리안느를 찾아온 것은 그 남자가 아닌 베르카였다.
조셉은 용병들을 피해서 달아나고 있었다.
[저쪽이다!]
뒤쪽에서 총알이 쫓아온다.
조셉은 총알을 피하며 미친 듯이 달렸다.
화재가 점점 커지는지
연기가 짙어서 기침이 나고 목이 아팠다.
그러나 살기 위해선 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빠르게 모퉁이를 돌자 나온 것은 막다른 길이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앞에는 막다른 길
점점 다가오는 용병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용병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죽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복도에 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연기가 복도를 가득 매우자
조셉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광경
연기가 피오르면서 따라오는 뜨거운 불길에
조셉의 옛 기억도 따라 피어올랐다.
이런 현장은
조셉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조셉은 자욱한 연기 속에 몸을 숨겼다.
연기는 조셉의 몸을 감추어 주었고
용병들은 조셉을 놓치고 말았다.
연기가 가득한 이상황은 용병들에게는 별로 좋지 못했다.
어느 쪽에 누가 있는지 용벙들은 파악하지 못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숨을 못 쉬겠어!]
용병들은 조셉을 추적하던 걸 포기하고,
연기를 피해 건물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한지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할지 몰랐다.
연기 속을 헤매며 출구를 찾던 중
갑자기,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커헉!]
무언가를 맞은 듯 튀어나온 비명과 함께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비명이 나는 쪽에서 가까이 있던 용병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연기가 자욱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발을 접질렀다! 부축 좀 해줘!]
비명이 난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은 연기 속을 조심스레 더듬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연기 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도끼를 휘둘렀고
용병은 비명과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비명 소리와 함께 동료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자
용병들의 마음속에서 공포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연기 속에서 시야가 차단되고
호흡이 힘들어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공격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차례차례 쓰러지기 시작했다.
연기에 의해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면
사람은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유발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상실한다.
바로 이처럼 말이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공포로 패닉에 빠진 용병들 중 한명이
마구잡이로 아무 곳에나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용병들은
그게 신호탄이 된 듯, 무차별적으로
서로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연기 속에서 자기들끼리 총을 쏘며
서로 죽고 죽어 가고있었다.
그런 아수라가 펼쳐지는 연기 속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빠져나왔다.
남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베르카는 마리안느를 안고
어두운 복도를 달렸다.
베르카는 마리안느에게
그 남자는 여기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언니를 구하러 오지 않았어
그 남자가 어떻게 여길 오겠어?
베르카는 그렇게 말하며
마리안느를 데리고 달아나고 있었다.
전력이 차단 된 건지
복도는 불이 꺼져 있었다.
베르카가 비상구를 향해
마리안느를 안고 달리던 중
뒤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총소리가 울리자
베르카는 그대로 쓰러졌고
마리안느는 바닥에 부딪혔다.
복도 뒤쪽에 용병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총을 쏜 것이다.
마리안느가 베르카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베르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따뜻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마리안느의 셔츠를 빠른 속도로 적시기 시작했다.
마리안느를 안고 쓰러진 베르카의 몸에서
비릿하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였다.
베르카는 총에 맞아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베르카는 고통 때문인지
몸을 떨면서 마리안느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향해
용병이 천천히 다가왔다.
총알을 다 썼는지 용병은 탄알집을 교체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지금껏 마리안느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말 그대로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베르카는 총에 맞아서 움직일 수도 없었고
마리안느 혼자 기어가봤자 곧바로 붙잡힐 것이 뻔했다.
이제는 정말로 끝인 듯했다.
총알을 장전하는 용병을 바라보며 마리안느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야가 차단되자, 마리안느는 많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붙잡은 베르카의 심장소리
피에 젖은 옷의 축축한 감촉
총구가 장전되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
뒤이은 귀를 찢는 비명
갑자기 울리는 비명 소리는
마리안느의 것도, 베르카의 것도 아니었다.
비명 소리의 놀란 마리안느가 눈을 떠보니
마리안느 앞에 그 남자가 보였다.
마리안느를 찾아왔었고
마리안느를 괴롭혔었고
마리안느를 구더기라 불렀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마리안느가 사랑하고 마리안느를 사랑해주는 그 남자가
마리안느의 앞에 있었다.
이번에도 남자는
마리안느를 찾아왔던 것이다.
조셉을 보자 긴장이 풀린 마리안느는
의식이 점차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공포와 긴장으로
정신이 잔뜩 피로해져 있던
마리안느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러곤, 의식이 점차 흐려지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