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8화 〉 새 페이즈(4) (238/265)

〈 238화 〉 새 페이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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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으으읍."

그녀가 숨을 들이 마쉬며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자 그녀의 주변에 있던 수많은 이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눈을 떨었다.

오랜 시간을 지내며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상실한 그들에게 있어서도 용사라 불리는 여자에 대한 공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짙은 감정이었으니까.

"이것밖에 못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인간들, 정확히는 자신이 점찍어둔 이들이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이 일을 기획한 것인데 생각보다 너무 밋밋했다.

하나의 공간에 가둬놓고 몬스터를 투입시킨다?

'이것보다 멍청하고 재미 없는 방법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거야.'

역시 밑 사람들한테만 일을 시키면 이런 일이 벌어진 다니까.

그녀가 작정하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으니 이 공간에 모인 모든 존재들이 그녀의 존재감에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몇몇 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그 불안감 조차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여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 곳이야 말로 미친자들의 광상곡이 열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불만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을 때 용사는 손을 뻗어 자신과 가장 가까운 부하를 불렀다.

"야, 검사, 너는 밑에 애들이 일을 이지랄로 처리할 동안 대체 뭘 한거야?"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검사라고 불린 여자가 뭐가 문제냐는 듯 용사를 바라봤다.

"설마 저 컨셉, 네가 짠 거 아니지?"

제발 아니라고 하기를 바랬다.

그나마 자신이 가장 믿는 부하가 저렇게 끔찍할 정도로 재미 없는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추친했다는 것을 머리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끝 없는 시간 속에서 살면서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생각 중에서 이렇게 까지 재미 없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검사가 냈다?

그녀는 당장 바닥에 머리를 찍을 자신이 있었다.

"제가 짠 것 맞습니다. 인간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결국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S급 각성자가 있는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죽지 않았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상당히 많은 이들을 죽였으니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됩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검사를 바라보며 용사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멍청한 부하를 자신의 옆에 두다니.

실책이었다.

"야, 오크킹. 이새끼 데려가서 팔 다리 잘라 버려."

­취이이이익

초록색 피부에 근육질로 무장한 오크가 검사에게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검사의 몸을 덥칠 듯 위협적으로 다가온 오크는 검사를 가볍게 들고 그녀의 팔 다리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무언가를 잘못했습니까?"

자신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녀는 아주 평온했다.

사지가 잘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래, 잘못했지 내가 이 시설을 만들라고 한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잖아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것 그 죄는 매우 크다."

"벌을 내려주시지요."

"벌 내리고 있잖아."

"이게 벌이었습니까?"

검사의 팔과 다리는 어느새 재생되어 있었다.

오크킹에 의해 뜯어진 팔과 다리가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잘려나간 신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쯧, 이제는 트라우마도 남지 않았나 보군."

스스로의 실수로 팔을 날려먹고는 한참을 고생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나 멀쩡한 모습을 보이니 재미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팔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건 아주아주 오래전의 옛날입니다."

"그러니까 안 통하지."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하루하루 색다른 자극을 위해서 제 팔을 잘랐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자극은 요만큼도 생각안하면서 자기 자극만 오질나게 챙겨요.

용사가 속으로 불만을 표하며 맨 바닥에 털썩 하고 앉았다.

"다들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봐, 최대한 인간들이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모습으로 말이야."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샐 수 없이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며 수많은 유희를 즐겨왔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라고 한다고 한들 그 어떤 이야기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야, 사탄 너는 생각나는 거 없어? 그래도 마왕이잖아. 인간을 몰아붙이는 기술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인간을 공격하는 걸 그만둔지 벌써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사탄이 자신이 책을 읽으며 말했다.

붉은 피부와 사나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가 책을 읽는 방식을 보면 마왕이라는 이름에 그리 부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책을 옆으로 들고 세로로 읽고 있었으니까.

세로로 읽는 책이 아니었다.

원래 가로로 읽는 책을 새로운 감각을 느껴보겠다고 세워서 읽는 중이었는데 저렇게 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넌 왜 책을 그따구로 읽냐?"

"때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다."

"시발 아무도 생각이 없어... 이미 지난 아이디어도 괜찮으니까 누가 아무 생각이나 내봐, 우리끼리 하는 거랑 저 놈들 끼리 하는 거랑 똑같을리가 없잖아."

용사가 볼멘소리로 말하자 성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저 애들한테 어울리는 게 있어요."

성녀의 표정에는 긴장감이나 환희, 기대감 같은 것이 일절 담겨 있지 않았다.

성녀가 약자들을 괴롭히는 망상을 하며 변태같은 웃음을 지었던 것이 분명히 기억에 있던 것 같은 데 지금은 상상이 아니라 진짜로 괴롭히려고 하는 것임에도 그녀의 얼굴엔 일말의 감정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 맞아? 얼굴에 감정이 하나도 없는데?"

"약한 이들을 데리고 장난질을 치는 망상은 오래전에 하다가 즐길 거 다 즐기고 그만 뒀거든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들이 눈앞에서 발악을 한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재밌을 것 같진 않아요."

"일단 말해봐, 혹시 알아?"

끝내주게 재밌을지 말이야.

******

"@#$@%!"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뭐라고 씨부리긴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음과 바디 랭귀지를 섞으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까지 대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싶지는 않았다.

표정을 보니까 나한테 욕을 하는건 아닌 것 같고.

'잘 봐달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자연스럽게 손을 모아 공손하게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최소한 욕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영웅님은 다음엔 어떤 몬스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보스몬스터급이 되는 애가 나올 확률은 낮다고 생각한다.

본체를 얼마나 높은 성능으로 구현했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S급 여러명이 달라 붙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놈들도 있으니 그렇게 강한 놈이 나타날 확률은 없다.

'도대체 뭐가 나타나려나.'

S급 몬스터 두 마리? 아니면 약화가 많이 된 보스 몬스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고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영웅님이 계시니까 든든합니다!

천마신교의 여성은 아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혼자서 S급 몬스터를 무난하게 써는 모습을 봤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찌직.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찌직! 찌지지직!

바닥에 그어진 금은 순식간에 그 세를 늘려갔다.

­쨍그랑!!

격자무늬로 이루어진 바닥이 산산히 조각났다.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자기 무너진 바닥 속으로 떨어졌다.

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얼마나 떨어져 내렸을까?

더 이상 몸에 가속이 받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쯤에는 주변에는 이미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나 혼자 만이 존재했다.

"아해야."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화련이가 검은 색 검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직시한 순간 나는 그녀가 화련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촤악!

그도 그럴 것이 화련이가 나를 공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죽었다.

목이 깔끔하게 베여져 죽어 버렸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뭐지?'

다시 한 번 목이 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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