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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월드 보스를 향해서(2) (38/107)

37. 월드 보스를 향해서(2)

지평선 부근, 우뚝 솟아오른 세계수로부터 강렬한 빛이 차오른다. 

펑!!! 

세계수 주변으로 빛의 파동이 파도처럼 하늘을 타고 퍼져나간다. 

후웅- 

상쾌한 바람이 주변 나무를 훑으며 볼 끝을 스친다.

우빈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서북부의 포식자 기간테로스가 멸종하였습니다!]

[세계수의 힘이 더욱 넓은 지역을 수호합니다.]   

“오랜만이네.”

세계수 주변으로 몬스터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전부 이 시스템 때문이었다. 

몬스터의 한 종이 소멸하면 세계수의 빛이 더욱 강해졌고, 어둠으로 가득한 외곽 지역이 조금씩 밝아지는 구조였으니까.

확실히 세계수의 힘이 강해져서인지, 외곽 주변으로 짙게 피어있던 검은 안개가 가시고 있었다. 독으로 가득하던 대기도 맑아진 기분이었고.

‘생각보다 보상이 별로네.’

우빈은 아쉬운 보상에 입맛을 다셨다.

얻은 룬은 약 13만, 레벨은 1도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희귀 아이템이 드랍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아예 보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빈은 허공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읽었다.

띠링-

[업적을 획득하였습니다]

[히든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기간테로스 학살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종의 몬스터를 끝내면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기간테로스 학살자]

종류: 칭호

등급: A

설명: 기간테스가 가장 좋아한 마수 기간테로스를 멸종시켰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힘을 부여합니다.

효과

-대형 몬스터와 전투 시 모든 능력치 100% 상승.

나쁘지 않은 효과였다. 

당장 던전에서 나왔던 아이언 골렘을 시작으로 차주성이 공략하던 레드 드래곤까지 전부 대형 몬스터이지 않은가. 

엘리드엔 생각보다 거대한 대형 몬스터가 많았다.

“우와···”

민주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온 빛 폭발에 감탄한다. 

이걸로 민주희의 실전 사냥은 3번째였다. 하지만 그냥 3번이 아니었다.

첫 번째 사냥은 레벨 40대가 간신히 잡을 법했던 오우거 솔로 플레이. 

두 번째는 레벨 100 이상의 4인 파티가 돌 수준의 히든 던전 공략.

세 번째는 레벨 180대 용사조차 꺼리는 대형 몬스터를 처리했다. 

이제 경험시켜줄 전투는 필드 보스전 정도려나.

“바로 가시죠.”

“네? 아, 네!”

세계수의 힘이 여기까지 도달해서인지, 가득하던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날것을 타고 가도 될 수준으로 생각됐다.

판단을 내린 우빈이 날것을 꺼내려는 그 순간이었다.

“와··· 대박. 안녕하세요.”

저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옮긴 시야로 두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 사내는 폭발한 기간테로스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옆의 중년은 경계 가득한 시선으로 우빈을 쏘아봤다.

두 사내의 머리 위로 붉은 이름이 없다 그렇다는 건 수배자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띠링-

[배신] 

[노예 거래]

두 사내의 머리 위로 죄목이 떠 올랐다.

『와··· 이게 말이 되나? 사람 맞아? 전이자처럼 보이는데···』

배신이라고 쓰여있는 젊은 사내는 그다지 적의는 없어 보인다.

『말도 안 돼. 이런 건 랭커 10명이 모여도 못한다고···』

노예 거래라고 적힌 중년도 그다지 적의는 없었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경계할 뿐.

솔직히 말해 저 둘에게 적힌 죄목은 특별한 악행은 아니었다.

전이되자마자 몬스터에게 쫓기다 보면, 옆에 있는 동료를 미끼로 써서라도 살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노예 거래 또한 엘리드에선 합법적인 행위로써 이용한다고 크게 잘못됐다는 인식조차 없는 행위였고.

“반갑습니다. 서북부 인근 외곽 지역을 공략 중인 개척자입니다. 저는 김호정, 이분은 박호태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딱히 일이 있다기보다는 너무 놀라워서요.”

젊은 사내, 김호정이 너스레를 떨며 대화를 해왔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볼 일 없으시다면 가보겠습니다.”

우빈이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보자, 김호정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잠시만요! 어디에 가시는데요!”

굳이 답할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변화한 다크 피닉스를 꺼내려는데, 김호정이 뜻밖의 말을 해왔다.

“그쪽은 위험해요. 그 녀석이 있단 말이에요. 강하시다는 건 충분히 알겠지만, 그 녀석에게 걸리면 살아나가실 수 없을 겁니다.”

“그 녀석?”

“나인테일이요. 서북부 지역에 있는 월드 보스인데, 좀만 가면 그 새끼 영역입니다. 여태까지 그 새끼한테 죽은 용사만 300명은 넘을 거예요.”

김호정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뭔가 슬프면서도 화가 나보인데,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그저, 나인테일의 정보가 궁금할 뿐.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죠?”

“네? 나인테일이요? 그건 왜···”

“그 녀석을 잡으러 왔거든요.”

***

수정을 연상케 하는 광석으로부터 푸른빛이 흘러나온다. 

주변으로 반딧불이 같은 수십 마리의 벌레가 주변을 밝힌다. 기나긴 동굴은 계속되었다.

“우와··· 엄청 이뻐요.”

민주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을 반짝인다.

지금 우빈와 주희는 김호정과 박호태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저도 자세히는 잘 몰라요. 근처에 캠프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인테일을 17년 동안 공략 중인 분이 계세요. 한번 가보실래요?

무려 17년 동안이나, 보스를 공략 중인 독종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설마 차주성보다 더 독한 놈이 있었을 줄이야.

우빈은 김호정의 뒤를 따라가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해, 굳이 나인테일에 대한 정보 없이도 공략할 수 있을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공략 대상은 무려 월드 보스이다.

수백 명의 용사가 수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도 잡지 못하는 괴물이지 않은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낭패를 볼 바엔,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가는 편이 좋아 보였다.

판단을 내린 우빈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누구지. 랭커는 확실히 아닌데, 특성이 개사기인건가.』

『도대체 공격력이 뭐길레 기간테로스를 한방에 터트린거지.』

둘의 속마음이 실시간으로 떠올랐다. 

처음 만난 시점부터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호감을 사고 싶어 할 뿐 이해 별다른 이상점은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엘리드에서 무력은 곧 권력과 직결된다.

단순히 강자의 인맥을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대우를 해주며, 영향력이 생긴다.

저들은 우빈에게 그 향기를 맡은 것이다. 

‘17년 차 용사.’

우빈은 김호정의 말을 곱씹었다.

17년 동안 나인테일을 공략했다는 건 최소 2년 차 용사라는 건데. 누구일까.

“형님이 조금 예민하시거든요. 공격적으로 말씀하셔도 속은 따뜻하신 분이니까.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17년 전, 나인테일한테 친동생이랑 친구를 잃으셨데요. 1회차 ‘전이자’시라던데, 대단하지 않아요? 구시현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한때 유명한 랭커셨었어요.”

우빈의 생각이라도 읽은 마냥, 그 사내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구시현?”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진 않다. 그렇다는 건 유명했어도 그다지 임펙트가 있지 않았다는 뜻일 터.

여러 대화를 하던 중,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민주희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한다.

수정 동굴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저기 박힌 광석으로부터 은은한 빛이 주변을 밝힌다. 

수십 개의 텐트, 반딧불이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광체.

그 중심으로 거대한 샘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캠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샘이 아니었다.

마치 퍼즐을 맞춰놓은 듯 덕지덕지 붙은 거대한 지도가 있었다.

‘비슷한데.’

이 일대의 지형이 마스터 지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아마 수년간 돌아다니며 이 일대의 지형을 기록한 거겠지.

주희와 우빈이 캠프를 관찰하던 그때.

“형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전력이 부족하던 참이었거든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모시고 오겠습니다.”

김호정이 정보를 제공할 인물을 데리러 부리나케 뛰어가기 시작했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한 사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낡다 못해 삭아버린 천. 뚫린 구멍 사이로 차가운 냉기와 습기가 들어온다. 

강아지만한 벌레가 들락거리며, 수시로 독이 퍼져나오는 열악한 환경.

구시현은 이 지옥에서 17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이제 한계야.’

구시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절망했다.

그 녀석에게 동생과 친구를 잃고의 1년.

구시현은 분노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길드원의 90%가 전멸. 사실상 길드는 해체되었다.

2년 차가 되던 해, 가능성이 보였다. 

나인테일의 특성을 파악하였고, 외곽 지역을 개척하며 누구도 손에 넣지 못한 아이템과 성장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5년 차. 

지식이 쌓이고, 외곽 생활이 익숙해지며 성장을 이어나갔다. 가능성을 보았지만, 인력이 부족했다. 

아무리 혼자서 강해져봤자 한계는 분명하였으니까.

그렇게 7년 차가 되었다. 

전이자가 계속 넘어오면서 외곽 지역을 찾는 놈들이 늘어났다. 부족했던 인력이 해결되자 희망이 현실로 바뀌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결실 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10년이 지나고 15년이 흘러, 결국 17년 차가 되었다.

바로 어제 17년을 함께한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불가능해.

구시현은 절망했다. 

그 누가 온다 해도 저 괴물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구시현이 절망과 허탈감에 무너져가던 그때였다.

“형님!”

멀리서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호정이었다. 캠프에 온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나름 싹싹한 녀석이었다.

“무슨 일이야?”

“나인테일을 공략하고 싶다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형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래. 알겠다. 바로 가지.”

구시현은 태연하게 답하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뜸하긴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다. 외곽은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리턴이 큰 보물창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온 놈들이 간혹 있었으니까.

“뭔가 엄청나신 분 같아요. 기간테로스를 한방에 터트리는데, 꿈을 꾸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김호정이 뜻밖의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간테로스를 한방에 터트렸다고?”

“네! 조금 전 메시지 못 보셨어요? 기간테로스가 멸종했어요.”

“멸종!?”

구시현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기간테로스는 서북부의 상위 포식자이다. 분명 어제만 해도 40마리 이상이 일대를 돌아다녔는데, 그걸 전멸시켰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당장 밖으로 나가면 5분 내로 증명될 이야기로 거짓말을 할까? 그렇다는 건 저 말이 진짜라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누가?’

호기심이 증폭되어가던 그때, 처음 보는 남녀 한 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라고?’

구시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빛바랜 가죽 갑옷, 헤진 천 쪼가리.

보는 순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반갑습니다. 서북부 나인테일 공략 캠프를 지휘하고 있는 구시현입니다. ”

“강우빈이라고 합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찾은 건 아니고,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구시현은 익숙하다는 듯, 손바닥을 펼치며 텐트를 가리켰다.

“일단 따라오시죠. 차라도 한잔하면서 천천히 대화해보죠.”

“됐습니다. 몇 가지만 들으면 되거든요.”

빠직-

구시현의 이마로 핏줄이 솟구친다. 거만한 언행에 울컥했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대게 외곽에 오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이 적었기 때문이다.

“네, 한번 말씀해보세요.”

“나인테일의 정보를 듣고 싶습니다. 여태까지 공략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나, 까다로웠던 점 같은 것들이요.”

순순히 답해 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제가 왜 그걸 알려드려야 하죠?”

17년간 엄청난 희생을 치러가며 얻어온 정보이다. 그런 귀중한 정보를 순순히 말해줄 정도로 구시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구시현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알려주신다면 오늘 내로 나인테일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잡아준다고? 저 발언은 구시현의 17간의 노력은 물론, 여태까지 죽어간 동료들을 비웃는 오만이었다.

“뭐? 잡아줘?!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이성을 잃은 구시현의 주먹이 무의식적으로 사내의 뺨을 향했고, 있는 힘껏 뺨을 강타한 그 순간.

띠링-

[비브타노의 복수가 당신을 강타합니다!]

빠악!

강렬한 충격에 구시현의 의식은 끊어졌다.

***

“형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갑자기 급발진하더니, 혼자 나자빠진 구시현에게 박호태와 김호정이 다가간다. 열심히 흔들어보지만, 구시현은 깨어날 생각이 없다.

우빈은 볼을 타고 올라오는 알싸한 통증을 느끼며, 하나의 스킬 카드를 확인했다.

띠링-

[스킬 카드: 비브타노의 피부]

종류: 스킬 카드

등급: UL

레벨: 10

형태: 패시브

효과

-피부의 강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추가 효과

-물리 방어력 100% 증가.

-물리 방어력 200% 증가.

-물리 방어력 300% 증가.

-물리 방어력 400% 증가.

-피부 강화 획득.

-물리 방어력 500% 증가.

-물리 방어력 600% 증가.

-물리 방어력 700% 증가.

-비브타노의 복수 효과 획득.

*피부 강화: 물리 방어력에 비례하여 피부의 강도가 증가합니다.

*비브타노의 복수: 물리 피해를 입을 시, 현재 방어력 수치만큼 데미지를 반사합니다.

스킬 카드 노가다로 제작한 UL등급의 스킬이었다.

‘생각 보다 쓸만한데.’

구시현이라고 했던가, 초대 용사답게 나쁘지 않은 무력을 지닌 것으로 판단됐다. 

아무리 못해도 고지태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보였는데, 고작 반사 데미지에 정신을 잃었다.

아직 제대로 된 방어구 세팅을 하지도 못했는데 이정도 위력이라니. 만약 제대로 된 세팅을 하면 얼마나 세지는 걸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우빈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벌써 부족하네.’

부족한 스킬 슬롯 때문이었다.

[스킬 슬롯]

1. [스킬 카드: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

2. [스킬 카드: 빅뱅]

3. [스킬 카드: 뇌광섬]

4. [스킬 카드: 마나의 샘]

5. [스킬 카드: 비브타노의 피부]

모든 슬롯이 가득 차, [스킬 카드: 아그니스의 불꽃]은 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스킬 슬롯을 늘리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방법이 없었다.

우빈이 새로운 스킬 카드의 효과에 만족하던 그때였다.

“괜찮으세요?!”

“뭐야. 씨발···”

기절했던 구시현이 퉁퉁 불은 뺨을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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