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내가 대체 누구인데? (100/110)


100화. 내가 대체 누구인데?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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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보다 더 예쁘세요!’

아침부터 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지안은 어안이 벙벙한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 인파가 몰려왔다.

출근 피크 타임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 안은 만원이었다.

지안의 작은 몸집은 크고 건장한 직원들 틈에 끼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의 우람한 어깨에 지안의 몸이 휘청 옆으로 밀려났다.

놀란 그녀가 남자 직원 쪽을 응시하자, 남자 직원도 반사적으로 그녀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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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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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동시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눈이 순간 튀어나올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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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승 대리님?”

지안이 오래전 식권 뒤에 고이 적혀 있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부르자, 주승은 당황한 듯 눈동자를 한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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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 안녕하셨죠?”

핏기가 가신 듯 하얗게 상기된 얼굴이 마치 만나선 안 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불편해 보였다.

지안은 주승의 어색한 반응에 살짝 고개를 기울이다가, 엘리베이터 안내 화면을 보고는 내릴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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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고하세요. 대리님.”

주승을 향해 가볍게 묵례한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녀가 내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일보 직전, 누군가 후다닥 뒤따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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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기요!”

지안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서 있던 주승이 여전히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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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리님?”

지안이 그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가자, 주승은 앙다문 입술을 굳게 물었다가 떼곤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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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 주십시오!”

지안은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 사이를 살짝 좁히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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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주승은 바짝 마른 입술을 다시며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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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제가 드렸던 식권. 식권 뒤에 예쁘다고 적었던 문구. 전부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지안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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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씨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때 제 무례한 행동은 잊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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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승은 그 말을 끝으로 잽싸게 복도를 뛰어 비상구 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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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기요. 윤 대리님!”

주승이 사라진 복도 한가운데로 지안의 목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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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씨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그가 남기고 간 말을 곱씹던 지안의 눈동자가 의문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가…… 대체 어떤 분인데?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아침부터 듣게 된 의문투성이의 이야기들.

보통의 평범한 하루가 펼쳐지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이라도 한 듯 지안의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근심이 번지고 있었다.

‘배달 근로자 복지팀’이라는 팻말이 보이는 사무실 앞에 도착한 지안은 잠시 숨을 고르고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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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나 하자! 일!”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 만난 사람들과 그들에게 듣게 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잠시 뒤로하고 업무만을 생각하리라.

굳은 각오가 담긴 몸짓으로 지안은 문을 잡아당겼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평소와 다른 공기에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재영과 그녀, 둘만 쓰는 사무실이지만 아직 정리가 덜 되어 어수선하던 사무실 안이 대청소라도 한 듯 말끔했다.

게다가 수더분하고 털털한 재영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내던 복잡한 책상 위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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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지?”

지안이 믿기지 않은 눈빛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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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지안 씨! 일찍 출근했네.”

재영의 목소리에 지안이 얼른 뒤를 돌아봤다.

쓰레기통을 든 재영이 평소와 다른 눈빛으로 지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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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사무실이…….”

지안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재영이 멋쩍은 듯 과장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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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지안 씨. 진작에 이렇게 깨끗한 환경에서 업무 볼 수 있게 해야 했는데. 지저분한 상사 때문에 지안 씨가 정말 불편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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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혼자 전부 다 하신 거예요? 대청소하실 거면 저한테도 말씀해 주시죠. 그럼 더 빨리 나오는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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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아니에요. 선배가 되어서 잘해준 것도 없는데. 이깟 청소쯤이야.”

재영은 평소에도 센스 있고 훌륭한 선배였다. 후배를 편안하게 해주고, 말없이 배려해주는 고마운 선배.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생각에 잠긴 지안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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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지안 씨. 혹시 내가 불편하게 했다거나 실수 한 거 있으면 너그럽게 용서해 줘요.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더라고. 나도 모르게 지안 씨한테 꼰대 짓을 했을까 봐 그게 걱정이라니까.”

지안은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혹시 오늘이 케이원 그룹이 지정한 ‘사우 화해의 날’이라도 되는 걸까.

왜 이렇게 갑자기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그것도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들이.

벙찐 얼굴로 서 있는 지안을 향해, 재영은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 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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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요. 그러니까 지안 씨도 못 알아봤지. 지안 씨, 그러니까 나랑 지내며 불편한 거 있으면 꼭 그때그때 말해 줘야 해요. 전력을 기울여 시정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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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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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구.”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이 알던 세계가 아닌, 다른 이상한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이 자꾸 저를 떠받들어주고, 의식적으로 잘해주려고 애쓰는 게 느껴지는 건 그저 기분 탓일까.

지안은 더는 이상한 감정에 빠져들기 싫은 듯 고개를 저으며 책상 의자에 앉았다.

사무용 컴퓨터를 켜고 잠시 대기하는데, 익숙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낸 지안은 화면을 확인한 뒤 얼른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많지 않은 복도 끝으로 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정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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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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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 무슨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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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말이다. 지안아, 그게…….

무슨 일인지 평소답지 않게 머뭇대는 정순의 목소리에 지안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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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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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걸 못 봤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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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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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말이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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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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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너희 결혼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자꾸 나한테 연락을 해오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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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자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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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도하랑 네가 결혼 준비를 한다는 게 그새 소문이 났나 봐. 그래서 내가 솔직하게 다 말해버렸지 뭐니.

순간 지안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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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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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실 전에도 도하의 병상 결혼식 소문을 듣고 기자들이 얼마나 연락을 해오던지. 그때 죄지은 사람처럼 한마디도 못 하고 숨어 있었던 게 한스럽기도 하고. 또 우리 도하가 얼마나 훌륭한 신부를 맞이하는지 세상에 자랑도 좀 하고 싶고. 그래서 인터뷰를 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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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잠시 먹통이 되었던 머릿속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오늘 아침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로비 화장실에서 만난 여직원들이 전지현보다 예쁘다고 했던 것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윤주승 대리가 모두 잊어달라고 부탁하던 것도.

재영이 사무실 안을 반짝거릴 정도로 깨끗하게 쓸고 닦아 놓은 것도.

모두 다 정순이 말하는 인터뷰 기사를 본 게 틀림없었다.

수화기 사이로 긴 침묵이 흐르자 정순이 걱정스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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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지안이 너한테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나도 워낙 경황이 없어서 얘기할 타이밍만 지켜보다 결국 이렇게 선수를 빼앗겨버렸구나.”

죽다 살아온 손자의 결혼 소식을 만천하에 자랑하고픈 정순의 마음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사이, 결혼 기사의 주인공이 되었단 놀람이 가시지 않아 지안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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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저, 저는 괜찮아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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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얼마나 놀랐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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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자, 정순은 지안은 위로하듯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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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아, 그래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잖니? 이참에 이렇게 시원하게 공개되어버렸으니 이제 더는 고민할 것도 없잖아. 회사에, 사람들한테 어떻게 공개해야 할지 너희가 골머리 앓는 것보다, 이 주책맞은 할머니가 저질러 버린 게 훨씬 나을 수도 있고.”

듣고 보니 그랬다.

이제 와서 회사 사람들과 동료들에게 도하와 저의 관계를 공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걸 누군가 대신해 주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지안은 더는 정순이 걱정하지 않게 일부러 씩씩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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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할머님. 어차피 모두 다 알게 될 일이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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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역시 우리 지안이야!

정순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한동안 놀라 뛰던 가슴도 잔잔해진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지안은 빠르게 포털사이트 화면을 켰다.

오래 걸리지 않아, 익숙한 이름이 등장하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케이원 그룹 황정순 회장, 손자 권도하 대표 결혼 계획 밝혀]

지안은 떨리는 손가락을 힘겹게 움직여 머리기사를 클릭했다.

[케이원 그룹 권도하 대표의 결혼식이 임박했다. 최근 권 대표가 웨딩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제보를 받은 본지의 취재 결과, 권도하 대표의 결혼설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케이원 그룹의 최대 주주이자 명예회장인 황정순 회장과 직접 통화한 결과, 황 회장은 손자인 권 대표의 결혼 소식을 흔쾌히 인정했다.

케이원 그룹의 안주인이 될 신부에 대해서도 황 회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 대표가 교통사고로 3년여간 의식 불명 상태일 당시, 권 대표의 곁을 지키며 성심성의껏 간호해온 간병인인 예비 신부 서 씨는 아름다운 미모만큼이나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재원이라고.

취재 결과, 예비 신부 서 씨와 권 대표는 이미 혼인신고가 된 부부로 권 대표가 병상에 누워 있을 당시 한 번의 결혼식을 올린 적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위독하던 권 대표와 상심한 황 회장을 위해 예비 신부 서 씨가 용기를 낸 결정이었다고.

그 용기에 화답하듯 깨어난 권 대표와 서 씨는 동화처럼 진짜 사랑에 빠졌고, 지금의 결혼이라는 결실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구체적인 결혼 장소와 일정은 논의 중으로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한다.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서민 출신 간병인과 그룹 대표의 러브스토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살 것으로 보인다.]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기사 말미에 첨부된 사진 한 장을 발견한 지안의 동공이 요동치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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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떡해!”

갓 스물이 넘었을 무렵 찍었던 증명사진.

기사 속 사진은 도하의 간병인으로 처음 출근하기 전, 정순에게 보냈던 이력서 사진이었다.

양 볼에 아직 포동포동 젖살이 남아 있던 시절의 사진.

카메라 셔터에 놀란 듯 한껏 휘둥그레진 눈과 긴장한 듯 굳은 입매.

흑역사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런 사진이었다.

할머님도 참…….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이 후끈해졌다.

지안은 참을 수 없는 민망함에 얼른 인터넷 창을 껐다. 그러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조금 전 확인했던 기사 아래로 수십, 아니 수백 개의 파생 기사 목록이 보였다.

그중에서는 공개된 지안의 사진을 바탕으로 머리기사를 뽑은 자극적인 제목들도 보였다.

‘케이원 안주인이 되려면 이 정도 미모는 기본?’

‘3년 식물인간, 권도하 대표가 깨어나 반한 얼굴은?’

‘의식 불명 환자도 깨어나게 한 미모! 권도하 대표의 예비 신부 화제!’

인생을 살며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다.

이미 엎질러져 버린 물처럼 돌이킬 수 없었던 순간.

병실 속 잠자는 왕자와 결혼식을 올린 순간도,

깨어난 그와 또 한 번의 결혼을 약속한 순간도.

그리고 만천하에 얼굴이 공개된 지금 이 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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