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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새로운 발견 (40/171)

40. 새로운 발견2021.09.18.

황제의 이복 막냇동생, 없어서는 안 될 책사. 론타의 유일한 대공이자 북부의 주인. 대단한 위세만큼이나 거대한 트로비카 대공저에는 수십 명의 사용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콧대를 높이며 대충 창문을 닦는 애니와 그녀의 무리가 있었다.

16558455363092.jpg“대공께서 그렇게 화가 나신 건 처음 봐.”

16558455363092.jpg“대공비 전하의 회고연 때 그 정부라는 여자와 함께이셨을 때 이후로 말이지.”

16558455363092.jpg“정부는 무슨. 진짜 정부라면 어째서 주인님께서 여자와 함께 데이트를 한다는 소문 한 자락 없단 말이야?”

16558455363107.png‘다음번에 나를 볼 때는, 멀쩡한 두 다리로 맞이하는 게 아니라 공손히 두 무릎부터 꿇고 예를 갖추렴?’

  그 여자가 대공저를 나서면서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16558455363092.jpg“마리!!”

애니는 생각하자마자 불쾌해져서 미간을 와락 찌푸린 채 마리를 불러세웠다.

16558455363092.jpg“으, 응!”

16558455363092.jpg“이리 와서 네가 다 닦아. 네가 어제 여기 담당 아니었어?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손자국이 많아? 다음날 내가 닦는 차례라는 걸 알고 일부러 그런 거지?”

16558455363092.jpg“아니, 아니야! 오해야!”

16558455363092.jpg“그럼 똑바로 다시 닦아, 이 굼뜬 계집애야.”

애니는 그대로 물동이를 발로 걷어찼다. 탕! 소리와 함께 나뒹구는 물동이 아래로 여러 번 걸레를 빨았던 구정물이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나무 바닥에 스며들었다.

16558455363092.jpg“이, 이 바닥에 물이 스며들면……!”

16558455363092.jpg“재주껏 닦아봐. 몇 날 며칠을 햇볕에 잘 말리고 기름칠을 해야 다시 멀쩡해질 테니.”

애니는 자신의 무리와 함께 청소하던 방을 벗어났다.

16558455363092.jpg“근데, 어제 주인님께서 화가 나신 게 그 여자 때문일 수도 있대.”

16558455363092.jpg“뭐?”

16558455363092.jpg“예전에 집사가, 그 여자의 사치가 심하다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아. 주인님을 등에 업고 사치를 엄청 부린 게 아닐까?”

16558455363092.jpg“대공 전하께서 사치 좀 부렸다고 그렇게 화가 나시진 않았을 것 같은데…….”

16558455363092.jpg“예정보다 일찍 출발하신 것도, 그 여자의 저택에 찾아가기 위해서라고…….”

16558455363092.jpg“만약 정부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크게 싸우셔서 이별을 고하러 가신 걸지도 몰라!”

16558455363092.jpg‘그랬단 말이지……?’

예민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 줄이 느슨히 풀리는 기분에, 애니가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16558455363092.jpg“그럼 그렇지. 그런 여자가 대공 전하와 어울리기나 해?”

다음에 만나면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해? 방종하게 굴다 버려지는 정부 주제에.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공이 돌아와 장례를 마무리하면 어떻게 그의 침실에 들지 생각해보던 애니는 바쁜 하녀장 몰래 거리에서 쇼핑이라도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1층 입구를 향해 걸었다.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뚝, 멈춘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콰쾅-! 웅장한 저택의 문이 사납게 열리고, 낯선 인파들이 대공저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주인 없는 대공저에 들이닥친 사람은 얼마 전에 대공저를 헤집어 놓고 사라진 아카시아 백작 부인이었다.

16558455363107.png“오랜만이구나, 애니.”

16558455363092.jpg“……!”

기사 수십 명과 함께 들이닥친 귀부인의 뒤에는 열댓 명의 백작저 하녀들도 함께였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애니에게 스스럼없이 바짝 다가온 여자는 다정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16558455363107.png“뭐 하니?”

웅성거리며 몰려드는 사용인들 사이로, 여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박혀 들어왔다.

16558455363107.png“잊었니? 다음번에 나를 보면 어찌하라 했는지.”

겨우 올려다본 여자의 눈은 충혈되어 있는 데다 반쯤 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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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8455363107.png“확인은 끝났나? 대공께서 이렇게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시고 떠나셨는지는 몰랐는데.”

16558455363092.jpg“…….”

집사 가스팔은 손에 들린 공문을 몇 번이고 훑어보았다. 간간이 저택에 내려오는 황실의 공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양식과 황후의 인장이었다.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어딘가 날이 바짝 선 아카시아 백작 부인의 기세는 등등했다. 낯선 위엄을 내비치는 귀부인이 제집처럼 앉은 로비의 소파 뒤, 허리를 꼿꼿하게 편 백작저의 하녀들이 마치 새집에 이사라도 온 듯 저택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스팔은 굴러들어온 돌들의 기세에 위기감이 엄습했다.

16558455363107.png“조문객에 시신을 보이려면 내가 그 시신 앞을 지켜야 할 텐데.”

다리를 꼬고 앉아 소파 손잡이를 쓰다듬는 블리에 아카시아는 묘하게 관능적이라 가스팔은 마른침을 삼켰다.

16558455363092.jpg“대공 전하께서, 대공비 전하의 시신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구경거리가 되는 게 싫으셔서였습니다. 당연히 저택으로 방문하는 누구든 시신을 보이지 않습니다.”

16558455363107.png“그래서?”

16558455363092.jpg“당연히 부인께도 시신을 보이지 말고, 조용히 있다 가게 하라 명하셨습니다.”

16558455363107.png“시신을 지키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라?”

아드리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집사 가스팔을 응시했다. 황실에서 나온 공문서를 손에 꾹 쥐고 뻣뻣하게 서 있는 꼴을 보자 도리스가 잠시 맛보여주는 이 권력이 실감 났다.

16558455363107.png“그건 대공 전하가 자네에게 내린 명이지, 내가 황후 폐하께 받은 명은 그게 아닌데.”

16558455363092.jpg“황실에서 사람을 보내주신 것에는 감사하나, 이 대공저의 주인도, 시신의 주인도 당연히 전하시니 마땅히 따라 주시면 계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모시겠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시신이 노에비안의 것이란 말인가. 아드리엔은 실소를 감추지 않고 가스팔을 응시했다. 그는 자신이 꽤 설득력 있게 말을 했다 생각했는지 원래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16558455363107.png“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제국의 달이신 황후 폐하의 명보다 대공 전하의 명령이 우위에 있다는 뜻인가?”

16558455363092.jpg“그, 그런! 그런 말이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16558455363107.png“그리 말해놓고 어째서 그런 말이 아니지?”

아드리엔은 집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황실의 배려에는 감사하오나,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아드리엔은 이곳에서 의미 없는 입씨름이나 하고자 온 게 아니었다.

16558455363107.png“시신을 지키러 온 황실의 관리인에게도, 시신을 보여주지 않는다니 별수 없군.”

16558455363092.jpg“부인께서 그런 권한으로 오셨다고 하나, 대공저 내에서만큼은 총괄 집사인 제 권한보다 완전히 위에 계실 수는 없습니다.”

16558455363107.png“자네의 말이 옳아.”

가스팔은 마침내 안심하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16558455363107.png“그럼 자네 외의 모든 사용인들을 추궁해서라도 시신을 찾아야겠어.”

요즘 계속 낯설게 귀족처럼 구는 블리에 아카시아가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16558455363107.png“집사를 제외한 모든 사용인들을 불러와.”

16558455363092.jpg“그런……!”

16558455363107.png“자네는 그렇게 주인의 명을 지키게. 아무도 자네를 탓하진 못할 테니까. 자네는 자네가 할 일을 해. 나는 황후 폐하의 명을 반드시 받들어야겠으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어.”

귀부인의 얼굴에 언뜻 비치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싸늘하게 굳은 얼굴이 반대쪽으로 향했다.

16558455363107.png“가장 먼저…… 건방진 너희들은 어떨까?”

귀부인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입구에 뻣뻣하게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서 있던 애니의 무리가 있었다. *** 시신을 어디다 숨겨놓았을지 짐작 가는 곳은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을 테니 무작정 모든 곳을 헤집을 순 없었다.

16558455363107.png“황후 폐하의 명을 받들어야 하는 나를 도와줄 아이가 있니?”

16558455363092.jpg“저희에게 물어보셔도, 저희는 아는 게 없어요.”

16558455363107.png“너희가 이 저택에서 아는 게 없다고?”

온 저택을 헤집고 다니며 가십을 떠드는 애니의 무리가 아는 게 단 하나도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조곤조곤 추궁하고 시간을 들이자니 내가 가진 시간이 촉박했고, 무작정 폭력을 행사하자니 그 또한 보는 눈이 많았다. 도리스의 눈과 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었고.

16558455363107.png“그래-?”

끝내 무릎 꿇지 않고 뻣뻣하게 서서 말하는 애니와 눈치를 보는 다른 하녀들을 보자 호승심이 치솟았다. 도리스의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노에비안이 날 지켜보라 심어뒀을지도 모르는 사람은 또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16558455363107.png“그럼 너희가 황후 폐하의 명을 따를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줘야겠구나.”

16558455363092.jpg“예……?”

노쇠한 몸을 이끌고 겨우 모습을 드러낸 대공저의 하녀장 소피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았다. 나는 별일이 아니라고 안심이라도 시키듯, 입꼬리를 매끄럽게 끌어올렸다.

16558455363107.png“저것들을 벽장에 가두게.”

16558455363092.jpg“!”

16558455363107.png“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내가 도와줘야겠어.”

귀족에게는 귀족의 방식이 있다. 직접 매질을 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16558455363107.png“마리?”

16558455363092.jpg“예, 예……?”

끄트머리에서 최대한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던 마리는 가엾게 떨며 겨우 내게 다가왔다.

16558455363107.png“벽장에 가둔 저 아이들에게 물 한 모금, 썩은 빵 한 조각 주지 말렴.”

16558455363092.jpg“……!”

16558455363107.png“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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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녀의 팔을 다정하게 잡아끌고 속삭였다.

16558455363107.png“2시간에 한 번씩 저것들이 들어 있는 벽장을 몇 번이고 힘껏 걷어차렴.”

16558455363092.jpg“그게, 무, 무슨…….”

16558455363107.png“쌓인 게 있지 않니?”

미세하게 절룩이는 마리의 걸음걸이와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양새로 보아 그동안 애니에게 시달린 게 틀림없었다. 나는 영혼을 바치면 모든 것을 주는 악마처럼 더 낮게 속삭였다.

16558455363107.png“벽장 속에 있는 악마들은,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벽장을 걷어차는 사람이 너일 줄 상상도 못할 거란다.”

약속해. 마지막 약속까지 하자, 마리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16558455363092.jpg“부, 부인……. 벽장에 가두시고 뭘 어쩌시려고……!”

16558455363107.png“하녀장, 그대는 노쇠하여 휴식이 필요하지. 나머지는 황후 폐하의 명을 받든 내게 맡기게. 나 역시 이 저택을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은 없어. 벽장에 가두고 기강을 바로잡는 것 정도야 귀족가의 사용인들이라면 익숙하고 가벼운 벌이 아닌가.”

16558455363092.jpg“…….”

황후 폐하의 명이라는 말에 입을 꾹 다문 하녀장이 그대로 기사 몇에 의해 끌려가는 애니의 무리를 지켜만 봤다.

16558455363092.jpg“이거, 이거 놔요!”

16558455363092.jpg“소피 님! 소피 님! 저희를 도와주세요! 이건 말도 안 돼요! 저희의 주인은 돌아가신 대공비 전하시라고요!”

질질 끌려가면서 죽은 나를 팔아먹는 소리를 듣자, 나는 약간의 찝찝함마저 날려버렸다. 안절부절못하며 저들을 따라가야 할지, 내 곁을 지켜야 할지 망설이던 마리에게 나는 조용히 웃었다. 미소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마리가 멈칫하다가 멀어지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 나는 곧바로 집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준 서류를 살폈다.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 저택에 직접 조문을 하러 온 귀족들의 이름, 그리고 드문드문 노에비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위로의 선물을 가져온 이들은 비고란에 선물의 종류까지 아주 철저하게 써 놓았다. 노에비안이 집사에게 맡겼을 게 분명한, 아주 잡다한 정보였다. 어찌해야 내 권한으로 더 중요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문득, 아주 문득 그런 생각이 번쩍 들었다.

16558455363107.png“……어째서 집사의 필체가 노에비안의 필체가 똑같지?”

나는 노에비안의 필체는 물론이고, 집사의 필체도 대략 알고 있다. 노에비안을 비롯한 황족들은 모두 오랫동안 정립된 황실 특유의 글씨체를 배우기 때문에 개인마다 조금씩 달라도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잠깐. 나는 온몸의 피가 싸하게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16558455363107.png“요나.”

16558455363092.jpg“네, 마님.”

16558455363107.png“2황자께 보낸 서신에는 답이 왔니?”

16558455363092.jpg“아니요, 대신 이걸…….”

나는 대공저로 오기 전, 아침 일찍 로아드네스에게 당장 만나고 싶다는 서신을 보냈었다. 요나가 건네는 두툼한 봉투에는, 답장 대신 이전에 그가 내게 받아 갔던 내 엘라콘어 과제에 대한 첨삭만 가득했다. 만나고 싶다는 내 서신에는 응답하지 않은 것이다.

16558455363107.png‘역시나 화가 난 걸까. 내가 너무 주제넘어서.’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날 밀어내던 로아드네스의 얼굴이 떠오르자 괴로웠다. 하지만 어제저녁 제대로 잠들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나는 기세가 올라 이 대공저로 오는 내내 그를 만나 확인하고 싶었다. 코완에 대해, 작은 숲에 대해. 빠르게 로아드네스의 첨삭을 훑어보던 나는, 순간 벌떡 일어나 뻣뻣하게 굳었다.

16558455363092.jpg“마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거예요?”

요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손님방에 울렸다. 나는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가스팔이 준 서류와 로아드네스의 첨삭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16558455363107.png“필체가…… 똑같잖아.”

로아드네스가 정성스럽게 첨삭해준 글씨. 서류 속 집사 가스팔의 글씨.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노에비안의 글씨. 세 명의 글씨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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