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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괜찮은 거야? (100/183)


100. 괜찮은 거야?
2022.04.13.


은비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의 목표는 이게 아니었는데. 이정오가 정지헌의 내연녀라는 사실을 밝히는 게 나의 작전이었는데!

바로 옆 파티션의 이정오는 이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듯 무감한 표정으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데! 너는 내연녀가 되어야 하는데!

은비를 감싸주었던 조시내 대리도 녹음파일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은비는 조시내 대리에게 하소연하며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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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리, 알지? 이건 다 모함이야. 조 대리는 이해하지? 조 대리도 당한 게 있으니까.”

그러나 조시내 대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점차 뒷걸음질로 멀어져갔다.

시내는 정지헌 이사의 일방적인 주장과 채은비 과장의 일방적인 주장 모두 들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채은비 과장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었던 건 그편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이 있었다니. 이게 세상에 까발려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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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이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이제 과장님은 못 믿겠어요.”

빠른 손절. 이를 지켜본 이들 또한 불쾌하다는 듯 은비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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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너지! 이정오 네가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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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래. 미쳤나 봐.”

은주가 벌레라도 보는 듯이 떫게 혼잣말했다.

결국 은비는 파일이 가짜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다가 영업방해로 쫓겨났다. 명예롭지 않은 퇴장이었다.

한 시간 후 맥스기획의 직원들에게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사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획제작 1본부 본부장 정지헌입니다.

현재 맥스기획에서 퇴사한 제작팀 직원의 실수로 직원의 사생활 관련 자료가 유출되었습니다. 본부의 책임자이자 사건의 관련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우 여러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금일 유출된 녹음파일을 개인적으로 다운로드받으신 사우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삭제하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지헌이 녹음파일을 삭제하라 요청하였지만, 직원들은 더욱 열의 있게 파일을 저장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싸움 구경. 그중에서도 으뜸은 치정 싸움 구경이라.

일에 치여 유령처럼 퀭한 눈을 하고 돌아다니던 직원들은 오랜만에 생기 있게 의견을 나누었다. 둘 이상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정지헌과 채은비를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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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본부 채은비 과장이 올린 녹음파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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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그러니까, 채은비 과장이랑 정지헌 이사랑 결혼할 사이라는 게 헛소문이었던 거잖아. 그것도 채 과장이 혼자 퍼트린 헛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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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지난번에 이정오 대리한테 욕한 것도 그렇고, 허언증이야 피해망상이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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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집안이라기에 품위 좀 있는 사람인가 했지. 어후, 그런 사람이랑 안 엮이길 다행이지. 지금 채 과장 일 떠맡은 사람들도 다 죽상이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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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지헌 이사도 의외로 멍청하네. 그 나이 그 본분에 가짜 연애로 발목이나 잡히고.”

대부분 은비에 대한 비난이었지만 지헌도 쓴소리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갈등을 정리하기 위해 지헌이 일부러 손을 썼을 거라고 짐작하는 제작 2팀만이 후련한 표정들이었다.

그중 고은주 대리가 가장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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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 너무 짜릿해!”

채은비만 욕을 먹으면 참 좋을 텐데, 정지헌까지 욕을 먹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토록 즐거워하니 정오는 살짝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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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리님,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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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리님. 솔직히 인정하자고요. 진작에 밝혀져야 할 일이었어요. 그 진실이, 드라마틱한 상황에 팡 터져버렸는데 얼마나 다행스럽고 속 시원한 일입니까. 바람이 났느니 뭐니 헛소리를 시전한 그 상황에서! 이 대리님 이름이 나오기 바로 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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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요. 조만간 제 이름도 퍼질 거예요. 사람들은 소문을 좋아하니까요. 게다가 채은비가 저를 지목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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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걱정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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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요. 그렇다고요.”

은주의 관심 어린 질문에 정오가 기운 없이 대답했다.

정오에겐 이제 시작이었다. 아직 사내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자신의 딸이 정지헌의 친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또 얼마나 흥분할까.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지쳤다.

잠잠히 입술을 붙이고 있던 은주가 잠시 후 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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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님. 저는요. 회사생활에서는 아무한테도 예쁨받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회사 다니는 게 아니고 돈 벌려고 다니는 거니까요. 그리고 남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내가 예쁜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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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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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볼 필요 없어요. 아시죠? 사랑받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아요.”

은주의 격려에 정오가 천천히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고은주 대리는 항상 동료와의 선을 지키며 현명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자신과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너무나 힘이 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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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기운 낼게요.”

정오의 진심 어린 인사에 은주는 멋쩍은 듯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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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헌의 녹음파일이 터지고, 지헌의 안위가 걱정스러워진 승규가 집무실로 달려왔다. 지헌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떤 콘텐츠에 빠져 있는 건지 간간이 실실 웃음까지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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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헌…… 괜찮은 거야?”

괜찮은 거야, 실성한 거야.

처져 있지 않고 생기 있어 보이니 다행이다만 도무지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 더욱 걱정스러웠다. 승규는 지헌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아 한숨과 함께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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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건 모르겠고, 지킨 건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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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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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사회적 평가가 바닥을 기든 어쨌든 굴하지 않고, 네 몸을 불살라 불의를 폭로하는 그 의협심이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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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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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넌 지금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모든 걸 회피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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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볼래?”

대답 없는 지헌에게 거듭 말을 거니 지헌이 손을 뻗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문자 메시지 화면이었다. 예나와 문자 메시지를 나눈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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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학원으로 데리러 왔으면 좋겠어.

 
문자를 확인한 승규가 미간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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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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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가 보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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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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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가 나한테 처음 보낸 문자인데, 맞춤법 하나도 안 틀린 거 봐. ‘좋’ 자 쓴 거 봐봐. 일곱 살이 다 이렇진 않지?”

……이런 녀석을 걱정한 내가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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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아들은 한글 겨우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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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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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길 듣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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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카피라이터니 엄마를 닮았나? 엄마의 문장력을 물려받았나 봐.”

정지헌 딸 이예나는 글자 열여섯 개를 보내고 미래의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왜 벌써 못 봐주겠지?

승규는 지헌의 휴대폰을 빼앗아 테이블 위에 엎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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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소리 그만하고. 어떻게 된 거야? 채은비가 그런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었을 리는 없는데.”

승규가 날카롭게 질문했다. 아무리 채은비가 생각이 짧다지만 자신에게 해가 되면 해가 됐지 득은 없을 자료를 회사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지헌이 승규가 엎어놓은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며, 여상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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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다시피 직원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회사에서는 재량껏 직원의 PC에 접속할 수 있어. 본부 내의 PC에 대해서는 나한테 그 권한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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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채은비가 없는 틈을 타서 채은비 PC에다가 네 파일을 넣어놓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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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실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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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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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채은비가 이렇게 크게 터트려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사실인 듯했다. 승규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지헌의 자백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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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야. 그냥 채은비가 PC 정리하다가 실수로 클릭 한 번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녹음기록이 다른 사람들 귀에 조금이라도 흘러들어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어. 아주 소박한 꿈이었을 뿐이야. 진짜 소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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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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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작전은 채은비를 얼른 회사에서 내보낸 다음에 사내 게시판에 사실대로 글을 올리는 거였어. 채은비가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녀서 내가 힘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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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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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든 다 정리됐으니 할 말 없지. 신이 도왔나 봐. 운이 좋았어.”

……나 조금 소름이 끼치는데.

왜 신은 저런 지독한 놈에게 운발까지 주신 걸까.

승규는 팔에 쭈뼛 선 털들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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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쨌든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지만, 혹시나 채은비가 문제 삼으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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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물이고, 나는 PC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회사 내규상 아무 문제도 없는데?”

녀석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답지 않게 몹시 태평했다.

승규는 헛숨을 토해냈다.

아, 나는 네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무시무시한 발톱을 숨기고 있는 녀석. 적으로 만나면 제일 곤란한 녀석.

내가 연예인 걱정을 했어야 하는 건데 네 걱정을 했다. 바보같이.

착잡하게 쳐다보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지헌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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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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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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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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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예나가 너보다는 이정오 대리를 많이 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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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걱정하지 마. 정오를 쏙 빼다 박았어. 이 문자메시지 보면 모르겠어? 아, 이런 것도 있다. 이것 좀 볼래? 내가 잘 자라고 하니까 이응 두 개 보냈어. 그러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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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나! 그만 좀 해!”

더는 버티지 못한 승규가 버럭 소리쳤다.

*

국순의 식당 자리는 금방 팔렸다. 이제 식당 자리에는 치킨집이 들어온다고 한다. 식당의 물품들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하여 국순이 정리할 것은 많지 않았다.

국순이 새 주인에게 이것저것 중요한 정보들을 일러두는 동안 정오는 예나와 함께 식당에 가만히 앉아 국순을 기다렸다.

정오가 멀뚱하니 앉아 있는 동안 따님은 무척 바빠 보였다. 휴대폰 화면을 보며 히죽거리니 정오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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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공주. 대체 뭘 그렇게 재밌게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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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야.”

예나는 정오에게서 등을 돌리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저 휴대폰은 문자메시지 전송이랑 통화 기능밖에 없는데, 대체 저걸 만지작거리며 웃을 만한 일이 뭐란 말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예나는 계속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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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휴대폰은 놓고 앞을 보고 걸어야지.”

한 손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예나에게 정오가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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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예나는 싱긋거리며 휴대폰에서 손을 떼었다.

국순이 정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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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아빠는 오늘 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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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늘 아홉 시에 온대.”

정오 대신 예나가 대답했다. 정오는 듣지 못한 소식이었다. 정오가 예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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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연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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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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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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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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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비밀을 만드는 게 어디 있어! 어디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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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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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는 목에 걸려 있는 휴대폰을 감싸며 할머니 뒤로 숨었다. 정오가 국순에게 앙탈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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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예나 좀 봐. 예나가 나한테 문자 안 보여줘. 저 휴대폰 내가 사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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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애 엄마나 똑같다, 똑같애.”

다시 평화를 되찾은 일상. 정오와 예나는 국순의 주위를 뱅그르르 돌며 기운차게 집까지 왔다. 하지만 집 앞에 이르러 정오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지헌의 엄마, 장영미 여사가 서 있었다. 영미가 정오와 예나를 알아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미가 또각또각 다가오는 동안, 예나를 붙잡은 정오의 손엔 꽈악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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