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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생일 축하해! (159/183)


159. 생일 축하해!
2022.11.05.


영미는 턱을 헐겁게 떨어뜨렸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입으로 쉰소리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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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바란 적도 없었다.

영미는 목까지 붉어져서는 숨을 시근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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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일이…….”

조혈모세포의 공여자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는 영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미는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한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아들이 공여를 해주었다고 한들 그 미안함과 고마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아들도 아니고, 손녀딸이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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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랬어.”

왜 그걸 허락했을까.

다시 격통이 시작된 듯 심장이 꽉 죄여들었다. 자신의 병이 원망스러웠다.

일곱 살짜리 아이가 모든 절차를 가뿐히 넘겼을 리 없었다. 검사를 받고, 주사를 맞고, 채혈을 하는 내내 성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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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는. 지금 어쩌고 있는데.”

영미가 가슴을 부여잡고서 물었다.

왜. 대체 왜 그랬을까. 왜 아무도 막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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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가 고생하지는 않았어.”

안심하라는 듯, 재광이 편안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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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야. 고생을 안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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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어른이 앞날을 내다보셨지. 사돈어른께서 예나 태어날 때 제대혈 보관 신청을 했다네. 당신은 그 제대혈을 공여받은 거야.”

재광이 설명하는 동안 영미의 입은 다물어질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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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나 뿐 아니라 예나를 낳은 우리 며느리한테도, 예나 제대혈을 보관해주신 사돈어른한테도 고맙다고 해야 해.”

연신 일렁거리던 영미의 두 눈동자 위로 죄책감 같은 무거운 눈물이 그득 쌓였다.

며느리에게 못 할 짓을 했다. 아들에게도 그랬다.

하나뿐인 손녀딸에게도, 사부인에게도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인데. 회복할 수도 없을 텐데.

집안 사정을 알지 못하는 간병인은, 영미가 아픈 와중에도 손녀딸을 구했다며, 손녀딸이 고마워할 거라며 영미를 추켜주었다.

하지만 영미는 그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오랜 과오가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채은엽이 병실을 습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야기된 사건이었다. 손녀가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손녀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내가, 불과 몇 달 전에는 손녀딸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던 내가, 그런 귀한 걸 받아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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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나는 제대혈이 아니었다면 직접 공여를 했을지도 몰라. 다들 걱정을 하는데도 그 작은 애가 당신한테 공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더라.”

재광의 이어진 말에 끝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끄으윽. 끄으으윽.

눈물이 호흡을 막는 것처럼 숨을 넘기기가 벅찼다. 재광이 그런 영미의 마음을 짐작하는 듯 등을 쓸어주며 나긋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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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나아. 얼른 나아서 보여줘야지. 금쪽같은 손녀딸이 그 귀한 걸 내줬는데 반드시 건강해져야지.”

흐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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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미안하다고 직접 말해야지.”

흐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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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살면서 보답해야지. 안 그래?”

재광이 가만히 다독이는 동안 영미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잘못을 하고도 뉘우칠 줄을 몰랐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드높았던 자존심이 부끄러웠다.

나이 예순이 다 되어가도록, 겨우 만 여섯 해를 넘긴 아이만큼의 덕량도 지니지 못했다.

흘러간 인생이 부끄러웠다.

너무나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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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각. 차 두 대가 바닷가 마을로 출발했다.

조금 재미난 점이 있다면 도빈이 제집 차를 놔두고 지헌의 가족과 동행하게 되었다는 것.

지헌은 당연하다는 듯이 예나의 옆을 차지한 도빈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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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빈아, 너는 왜 너희 집 차를 두고 우리랑 같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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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랑 놀아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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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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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것도 되네요!”

도빈이 넉살 좋게 대꾸했다.

갓 배운 말일 텐데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써먹는 도빈의 깜찍함에 지헌과 정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정오는 불과 몇 달 전, 예나와 나누었던 대화 한 토막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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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도빈이는 엄마랑 아빠랑 도윤이랑 캠핑 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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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나도 캠핑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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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얘기한 거야. 엄마는 바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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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도 갈 수 있지. 여름은 너무 더우니까 가을에 가자.”

 
그냥 얘기한 것이라며 속마음을 감추었던 예나는 정오의 긍정적인 대답에 크게 기뻐하며 도빈에게 자랑을 했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저미었던 기억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과거를 떠나보내듯 회색의 도심을 등지고 서서히 풍부해지는 빛깔을 향해 차가 달렸다. 매년 맞이하는 계절이 새롭게 여겨졌다. 작년 가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경에 정오는 지그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뒷좌석에서는 아이들의 종알거리는 소리가 내내 끊이질 않았다. 예나 혼자였다면 분명 차를 타자마자 심심하다며 칭얼거리다가 잠들었을 텐데, 두 아이가 함께 있으니 쉴 새 없이 수다가 이어졌다.

이따금 아이들이 소리를 높이면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드라이브였다.

세 시간 남짓 달린 차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닿았다. 진서의 부모님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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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도빈이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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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고! 우리 왕자님 오셨네!”

서울의 장난꾸러기, 말썽쟁이도 이곳에 오면 대접받는 왕자님. 도빈이 할아버지에게 안겨 헤헤 웃었다. 승규도 짐을 내리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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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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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오느라 힘들었지?”

그 옆으로 간 지헌도 공손하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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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정지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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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어서 와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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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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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와줘서 우리가 고맙지.”

지헌의 인사에 흐뭇하게 미소 지은 진서의 어머니는 그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는 얼굴이 보였다.

6년 전, 서울에서 꽃집을 하던 시절에 같은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여사님. 음식 솜씨가 좋고 덕이 많은 이라 금세 근방에서 이름을 알린 백반집의 주인 여사님이었다.

진서의 어머니가 국순에게 다가가 국순의 손을 반갑게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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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 이렇게 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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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이렇게도 인연이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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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서한테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사돈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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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닙니다.”

그 반가운 인사에 돌연 지헌이 끼어들었다.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참견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지헌을 바라보았다.

진서 모는 그저 인연에 대한 한국식의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식당 아주머니를 이모님이라고 부르듯, 친구의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듯, 진서의 어머니는 지헌과 정오가 맺어졌으니 승규의 가족인 우리도 정오와 사돈이다, 라는 농담을 건넨 것인데.

지헌은 잘못 알아듣고서 정색해버렸다. 예나와 도빈을 벌써 맺어주려고 그러는 줄로 오해하고서.

다들 지헌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뒤늦게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지헌의 얼굴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아, 이를 어쩌나.

가장 재빨리 지헌의 의도를 눈치챈 정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쥐구멍이라도 만들어서 지헌을 넣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오는 잽싸게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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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이정오라고 합니다. 예나도 인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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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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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예나구나! 아유! 공주님이네! 우리 도빈이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

예나까지 불러와 인사를 시키니 사람들의 시선은 금세 예나에게로 옮겨갔다. 정오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귀가 붉어진 지헌이 슬그머니 발을 뒤로 빼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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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헌 씨. 오늘 이불킥 좀 하시겠어.’

정오는 그런 지헌이 우스웠다.

지헌의 가족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배부른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지헌과 승규는 집 마당에 터를 잡았다. 뭐든 처음인 지헌은 승규의 조언에 잘 따랐다.

덕분에 별로 헤매지 않고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큼지막한 텐트가 완성되자마자 아이들은 좋다며 그 안을 굴러다녔다.

지헌은 정오를 위해 편히 앉을 만한 의자도 설치해주었다. 정오는 지헌이 마련해준 의자에 앉아 요구르트를 떠먹었다. 임신 3개월차에 접어든 정오는 여전히 날씬했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만 배가 조금 볼록해졌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오는 본능적으로 조심하게 되었다. 빈속 입덧이라고 마냥 먹기만 하면 체중이 급격히 늘어날 것 같아 적은 양을 자주 먹었다.

지헌은 그 옆에 앉아 정오를 그윽이 바라보았다. 정오에게는 챙겨 먹는 시간이 힐링이었고 지헌에게는 그런 정오를 바라보는 시간이 힐링이었다.

정오의 입으로 건너가야 할 요구르트 한 스푼이 아래로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볼록 나온 정오의 배 위로. 정오가 배를 좀 더 내밀어 손끝으로 요구르트 자국을 닦아내는 것을 보며 지헌은 저도 모르게 푸흡 웃었다.

그런 지헌의 반응에 정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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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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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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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서 비웃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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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귀여워서 웃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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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웃었다는 거잖아.”

발끈한 정오의 타박에 지헌의 웃음도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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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러오는 게 얼마나 서러운 건지 알아? 여기서 더 배 나오면 발톱 깎는 거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고. 그때도 웃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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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은 내가 깎아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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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요한 걸 오빠한테 맡겨야 한다는 게 서러운 거라고!”

진서는 멀찌감치 앉아 정오가 지헌에게 따박따박 따지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진서의 곁으로 승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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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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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헌 씨가 정오 씨 배 위에 요구르트 떨어진 걸 보고 웃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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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승규가 대역 죄인을 보듯 지헌을 바라보았다. 지헌은 억울해졌다. 그저 아내가 사랑스러워서 웃었을 뿐인데.

이번엔 승규가 지헌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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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사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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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습니다.”

지헌은 어쩔 수 없이 정오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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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한 번만 용서해줄게.”

정오가 도도하게 눈꺼풀을 내리고서 대답했다.

지헌의 입술 사이로 긴장 풀린 한숨이 흘러나왔다.

승규는 몰래 웃었다.

천하의 정지헌도 아내한테는 꼼짝을 못 하는구나.

내 친구의 이런 모습 처음이야.

그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통쾌한 승규였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가 갯벌에서 조개를 캤다. 이전에 갯벌 체험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는 도빈이 예나에게 조개 캐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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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야, 이거 봐. 여기 바닥에 이렇게 구멍이 있잖아. 그건 조개들이 숨을 쉬는 거거든. 그럼 이 호미로 파내면 조개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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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기하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된 도빈은 으쓱했다. 도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조개를 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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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꼬마가 일꾼처럼 조개를 캤네!”

어느덧 도빈의 통에 그득 담긴 조개들을 보며 지나가던 어른이 감탄했다. 도빈은 지헌보다도 훨씬 많은 조개를 캤다. 바둑학원에서는 예나가 1등이지만 갯벌에서는 도빈이 1등이었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돌아온 이들은 마당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다른 한쪽에서는 잡아온 조개가 익어갔다. 아이들은 조개의 입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똑같이 입을 벌렸다.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서서히 말수를 줄여갔다. 오늘 갯벌에서 열정을 불태운 도빈이 가장 먼저 곯아떨어졌다. 예나도 제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지헌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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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으로 데려가서 누여.”

지헌이 계속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정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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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았어.”

알겠다고 한 뒤에도 지헌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지헌의 두 눈이 맑게 젖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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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아아!”

귓가에 대고 빼액 소리치는 예나의 성화에 지헌은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비몽사몽이었다. 지헌은 겨우겨우 실눈을 뜨고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6시. 너무 이른 아침. 아니, 아직 새벽이었다.

일요일인데. 아빠는 아직 피곤한데 예나야.

그러나 예나는 그런 지헌의 속도 모르고 지헌의 허리 위에 올라앉았다.

이것이 아빠의 숙명인가.

예나의 장난감이 된 지헌은 예나의 닦달에 힘 없는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래도 단번에 깨어날 수는 없었다. 기어이 예나가 아빠의 감긴 눈을 집게손으로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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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아. 예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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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생일 축하해!”

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었다.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오늘을 일깨웠다.

나뭇잎 위에서 부피를 키운 이슬방울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서 톡 깨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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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빠 생일이라서 예나는 최고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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