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48
지휘부 회의가 끝난 후 쉴 자리를 정리하는데, 마침 제갈수광의 자리가 내 위쪽이었다.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교관님.]
정찰조 활동을 함께하게 되었기에 한 말이다.
제갈수광이 특유의 사무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그 표정을 보니 이번 정찰조 구성이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그보다도 제가 정찰조를 지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진심이다.
상황에 따라 종종 지휘관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런 역할은 내 적성에 잘 안 맞는다.
제갈수광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네 녀석의 그 성향이야 잘 알지.]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가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실은 그게 바로 내가 정찰조 쪽으로 합류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껏 날뛸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주면 네 녀석이 얼마나 신나게 날뛸 수 있는지 잘 아니까. 지금의 네 녀석이라면 더 무시무시하게 날뛸 수 있을 테고.]
다 좋은데, 같은 말씀이라도 거, ‘날뛴다’가 뭡니까.
어쨌거나 제갈수광의 말대로이긴 하다.
제갈수광은 예전부터 전투 시에 내 역할을 따로 정해주지 않았었다. 자유롭게 놔두면 내가 알아서 최적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제갈수광의 지휘권 아래에 있으면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다.
제갈수광은 내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든 호응해준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암기술로, 먼 거리에서는 궁술로.
제갈수광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송유하를 정찰조에 합류시킨 건 미안하군.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다른 의도 없이, 건이보다 송유하가 더 정찰조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차출한 것뿐이니.]
[오해 같은 거 없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장원에 있을 때도 송유하의 경지 대비 움직임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이번에 보니 실전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본인의 역량을 다 발휘하더군. 내심으로 많이 놀랐다. 송유겸이가 제대로 키워내니 확실히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제갈수광은 내가 잠룡관 시절부터 오랜 기간 공들여 송유하를 지도해왔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저 말을 하는 것이다.
그가 전음을 이었다.
[정찰조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쪽도 건이보다는 송유하 쪽이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건이는 갓 절정에 오른 터라 자신의 무학에 대해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할 테고.]
[감사합니다. 누이에게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내 말에 제갈수광이 특유의 사무적인 표정과 어조로 대꾸했다.
[감사할 거 없어. 말했듯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차출한 것뿐이니까.]
[그래도요.]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대꾸해줬지만, 제갈수광은 특별한 반응이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정리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제갈수광과 송유하의 합류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마침 묘한 이질감과 용마검의 상관관계에 대한 가설을 실험해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용마검을 맡길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송유하다. 가족이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내 가설이 사실로 증명되어 눈동자 색이 이상하게 변할 경우, 가장 빠르게 조치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제갈수광이다.
그는 과거에도 내 눈동자 색이 변할 때 옆에 있었던 만큼, 내게서 이상한 징후가 보이면 금세 알아챌 것이다.
* * *
자시 초(밤 11시) 무렵, 정찰조가 먼저 길을 나섰다.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다 보니 별다른 문제 없이 평지를 지나칠 수 있었다.
이후에 우리는 금세 다시 산지로 진입해서 경공을 펼쳤다.
정찰조는 현재 두 줄로 이동하는 중이다.
현재 일 열에는 제갈수광과 임려현이, 이 열에는 남궁설과 선우린이, 삼 열에는 우문직과 송유하가, 사 열에는 단목강과 내가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정해진 이동 대형은 아니다.
제갈수광과 임려현이 상의할 게 있다며 일 열에 서다 보니, 나머지 인원들은 후열 쪽에 알아서 선 것이다.
한 시진쯤 달리다 보니 비탈 아래로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 우리는 잠시 그 지점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조원 중 몇 명은 소피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고, 나머지 인원들은 물줄기 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단목강과 함께 곧장 물줄기 쪽으로 내려갔다.
확인해 보니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매우 깨끗해서, 우리는 물통에 식수부터 채우고 이후에는 세안도 했다.
옷 소매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며 단목강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조장님, 출발한 후부터 가만히 지켜보니 얼굴이 싱글벙글하던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실이다.
정찰조는 아까 집합하자마자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단목강의 표정은 그때부터 계속 싱글벙글했었다.
“아, 내가 그랬소?”
“예.”
“하하, 별일 아니오.”
“별일 아닌 게 아닌 것 같던데요.”
“하하, 별일 아니라니까.”
모른 척 대화를 주고받긴 했지만 나는 단목강이 저러는 이유를 대강 짐작하고 있다.
송유하가 정찰조에 합류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나는 단목강이 송유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몇 년 전에 알아차렸었다.
그러나 단목강 혼자서 조용히 그 마음을 품고 있는 느낌이라, 나도 대놓고 그 얘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나는 송유하의 오라비인 만큼, 이런 종류의 사안은 단목강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알고도 모른 척해 주는 게 나을 테니까.
당연히 이번에도 모른 척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니, 그걸 몰라서 물어요?”
비탈 위쪽에서 선우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니, 선우린과 남궁설이 우리의 옆으로 사뿐 뛰어내리고 있었다.
착지를 마친 선우린이 내게 바짝 다가오더니 속삭이며 말했다.
“빤하잖아요.”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이것들이 바로 위에서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얘기한다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야?”
모른 척 매우 조용히 되묻자, 이번에는 남궁설이 내게 바짝 다가오더니 말했다.
“하여튼 눈치 진짜 느려.”
남궁설도 속삭이듯 말했는데, 나를 향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쯤 되자 단목강도 우리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우리가 속삭이듯 대화하고 있다 보니, 얘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모른 척 남궁설에게 되물었다.
“뭐가?”
그녀가 또다시 속삭이듯 대꾸했다.
“아유, 진짜……! 송 언니 때문이잖아요오.”
목소리와 표정에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다.
푸흐흡! 성공이다. 내 입이 아니라 남의 입을 통해 송유하의 이름이 나오게 했으니.
단목강의 반응은 즉시 나왔다.
“컥……!”
몸이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정곡을 찔린 듯 크게 당황한 모습이다.
이번에는 선우린이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는 예전에 정가장으로 처음 합숙하러 갔을 때부터 눈치챘었다니까요. 정 장주님이랑 세건이를 처음 봤던 그 합숙 말이에요.”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한 투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요것아.
물론 나는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중이다. 처음 알았다는 듯이.
남궁설이 말했다.
“비룡장에서도 보면, 조장님이 송 언니를 은근히 많이 챙기고, 수련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주고 그랬어요. 우린 그 이유를 아는 거죠.”
선우린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단목강이 안절부절못하며 계곡의 상류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금 임려현과 송유하가 그쪽에 모습을 드러낸 탓이다.
다행히 거리가 제법 멀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제법 큰 만큼, 이곳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저쪽까지 들릴 일은 없다.
단목강이 다급히 선우린과 남궁설에게 말했다.
“소, 소저들……, 제발 조, 조용히 좀……!”
거의 울상이다.
선우린이 단목강의 시선을 좇아 상류 쪽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쉬잇.”
남궁설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를 입술에 댔다.
한데 둘 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불여시들의 사악한 미소라 하겠다.
단목강이 앞으로 얼마나 피곤해질지 눈에 선하다.
가뜩이나 저 여시들의 출신을 생각하면 단목강의 입장에서는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단목강이 조용히 말했다.
“그, 그저 혼자만의 마음일 뿐이오. 이런 마음을 알게 해서 송 소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소. 가뜩이나 송 소저는 요새 실전 실력을 갈고닦고자 매우 집중하고 있는 상태요. 그런 송 소저를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소. 그러니 제발 이 얘기가 송 소저 포함,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해주시오.”
사정하는 듯한 어조다.
남궁설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뭐, 조장님 하시는 거 봐서요.”
선우린도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역시나 호락호락한 애들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단목강이 매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사정 좀 봐주시구려. 나를 위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송 소저를 위해서 이러는 거잖소. 가뜩이나 소저들도 송 소저와 매우 친한 사이시고.”
그러자 선우린이 남궁설에게 말했다.
“대박! 송 언니에 대한 마음, 엄청 진심.”
남궁설이 대꾸했다.
“응, 완전 순정파 느낌.”
“애초에 조장님이 나쁜 남자 느낌은 아니니까.”
“답답한 순정파는 별론데, 조장님은 답답한 쪽인 것도 아니고.”
이것들이, 어디서 평가질이야?
출신만 대단하면 다냐? 엉?
곧 선우린이 단목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마침 기회가 생겨서 장난 한번 쳐봤던 것뿐이에요, 조장님. 그러니 걱정 마세요.”
단목강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번에는 남궁설이 대꾸했다.
“린아 말대로 장난이었어요. 저희가 어찌 조장님을 곤란하게 만들겠어요? 조장님이 우리한테 어떤 분인데.”
“저, 정말이오?”
단목강이 묻자 선우린이 대꾸했다.
“그럼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조장님과 우리 송 언니에 관련된 일인데, 저희도 최대한 잘 풀려가길 원하죠.”
그제야 단목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두 여시가 나 다음으로 믿고 따르는 친우는 두 명인데, 한 명은 길초량이고 다른 한 명은 단목강이다.
그렇다 보니 장난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모양새다.
물론 저 두 여시라면 다음에도 틈틈이 기회를 노려서 장난을 치긴 하겠지만.
모두가 비탈 위로 올라와서 모이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오면서 임 선배님과 진형을 의논했다. 이동 진형은 남궁설과 단목강이 일 열, 나와 임 선배님이 이 열, 우문직과 선우린이 삼 열, 송유하와 송유겸이 사 열이다. 전투 진형의 전열은 좌로부터 나, 남궁설, 단목강, 임 선배님이고, 후열은 우문직, 선우린, 송유하, 송유겸이다. 숙지하도록 한다.”
“예.”
모두가 작은 목소리로 짧게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우문직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교전에서 우리의 상황이 불리해질 경우, 우문직은 송유하에 대한 보호를 최우선시한다. 물론 송유하도 실전 움직임이 좋긴 하지만, 치열한 상황에서는 아직 적응이 필요한 단계니까.”
“예!”
우문직이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굳은 의지가 느껴지고 있다.
이후에 우문직이 고개를 돌려 송유하를 바라보자 송유하가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문직도 ‘섣달그믐날 모임’의 초창기 구성원이었던 만큼, 송유하와도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다.
참고로 우문직은 특전반원이 된 후로 실력이 한 층 더 성장하여, 지금은 어엿한 정예 무인이 되어 있다. 단짝으로 지내고 있는 단목홍신이 최근에 절정에 올랐으니, 우문직의 현재 마음가짐도 남다를 것이다.
곧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제갈수광이 일러준 이동 대형에서 내 옆자리는 송유하다.
송유하는 아까 정찰조에 차출됐을 때부터 계속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남들이 보면 미미한 미소 정도라고 여길 테지만, 나는 저 정도면 송유하가 매우 기분 좋은 상태임을 잘 알고 있다.
달리면서 곁눈질로 확인해 보니 지금도 싱글벙글하고 있다.
[누이,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이유가 뭔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해줄 얘기도 있고 해서 물어봤다.
[네.]
[뭐가 그렇게 좋아?]
[언젠가는 오라버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먼 미래의 일일 거라고만 여겼는데, 갑자기 이렇듯 바람이 이뤄져서…….]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송유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누이의 실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아. 누이 정도의 경지면 일반적으로 정예로 분류되기도 하고.]
송유하가 달리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이 살짝 커져 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목적으로만 꺼낸 말이 아니다.
사실을 얘기한 것이다. 송유하의 현재 경지가 일류의 중반 즈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이는 실전에서의 움직임도 좋고, 궁술이라는 특기까지 보유하고 있지. 그 정도면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정예야. 최정예에 가깝지.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일전에 길초량은 송유하에게 신룡대 입대를 제안하려 했었고, 남궁묵도 송유하에게 특전반 입반을 제안하려 했었다. 그 두 사람이 괜히 그랬던 게 아니다.
내 말을 들은 송유하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몇 년 전에 처음 송유하에게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를 가르치던 때가 생각난다.
잘 가르칠 자신이야 있었지만, 그때는 송유하가 이렇듯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내가 중간중간 영초를 복용시켜서 공력을 늘려 준 게 컸다고 봐야겠지.
잠시 묵묵히 달리다가 송유하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누이, 두 가지만 당부할게.]
[네, 말씀하세요.]
[첫째, 절대로 누군가가 지켜주기를 바라지 마. 전장에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거야.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무리해서는 안 돼. 굳이 검 한 번 더 휘두르거나 화살 한 대 더 날리겠답시고, 동료들의 움직임에 반 박자 느리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아…….]
[둘째, 절대 포기하지 마. 가령, 인지한 순간에 이미 적의 검이 심장 앞에 도달해 있다고 쳐. 보통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온몸이 굳어버리게 돼. 그러면 안 된다는 거야. 최후의 최후까지, 포기하지 말고 몸을 비틀어야 해. 그 찰나의 순간에도 빠르게 판단해서, 어느 방향으로 비트는 게 더 나은지까지 생각하면 더 좋고.]
내 말을 새기기라도 하겠다는 듯, 송유하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할게요, 오라버니.]
각오가 담겨 있다.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당부하긴 했지만, 딱히 걱정은 안 된다.
지금껏 지켜본바, 송유하라면 잘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