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9화 (9/77)

〈 9화 〉 8화 - 인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조선 통신사가 당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주명은 역사학도로서 그들에게 임진왜란이란 팩트를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통신사를 만나더라도 설득을 어떻게 할지는 둘째치고, 애초에 그들을 만날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베어버리기 전에 꺼져!"

안그래도 삼엄한 영주성의 경비가, 통신사라는 국빈의 방문에 더욱 철저해져 주명과 같은 민간인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마도주 입장에서는 영지의 명운이 걸린 일이 통신사를 접대하는 일일 터인데 어찌 경비를 허술하게 할 리가 있겠는가.

발길을 돌린 주명이 향한 곳은 항구의 한 객잔.

일행이 항행으로 지쳐있는 관계로 숙소 겸 식당부터 잡는 것이 먼저였다. 때문에 항구에서 내리자 마자 가장먼저 향한 곳이 바로 이 객잔이었다.

그곳에서 다른 일행을 쉬게 두고 혼자서 영주성으로 향했던 주명이지만 그결과는 알다시피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는 싱거운 결말이었다. 그덕에 금방 다시  항구로 내려왔기 때문에, 마침 저녁 때가 되었는지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식사를 할 재화는 대체 어디서 나서, 일전에 다 조선 백성에게 나눠줬다면서 무슨 돈이 있어 소비를 하냐고?

콘솔이 있는데 그런 소시민적 걱정이 왜 필요한가.

'Player_gain_local_money'

[현지의 화폐인 코반(小判) 10냥(両)을 수중에 획득합니다.(CP 소모 : 1)]

[남은 CP : 5/10]

그저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을.

콘솔 키는 전에 말했다시피 치트키의 상위호환이다.

일본의 화폐인 코반(小判) 1냥(両)은 일본식의 석(石: 코쿠)개념으로 따지면 4석에 해당하는 가치였다.

1석이 한 사람의 1년분 식량(약 150 kg)으로 지금 가치로 치면 약 25만원 정도인데, 4석이면 약 100만원이라 1냥이 꽤나 고액권인 셈이다.

그런 고액권을 고작 1시간의 기다림(1 CP)으로 무려 10냥이나 얻을 수 있으니, 사실상 시급이 1,000만원인 셈이라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코반이란 건 수십년 뒤에 일본을 통일한 에도막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화폐단위라 지금 시대에 통한다는 것이 이상한 점이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각 지역의 다이묘가 저마다 화폐를 찍어냈던 개판이었던 관계로 그게 수십년 후의 물건이든 아니든 쓰는 이들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어차피 화폐 자체를 보고 거래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당대 사람들은 화폐의 재료, 그러니까 금과 은과 같은 금속의 가치를 보고 거래를 했기 때문이었다.

주명이 콘솔로 얻은 코반(小判)은 금으로 되어 있었다. 누군가 가치를 별도로 정해주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는지라 통용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우와! 이 생선요리 너무 맛있어요."

"크음. 왜인들의 음식도 꽤나 훌륭한 구석이 있구먼."

그러니 일행이 항구에서 나름 최고급으로 치는 객잔에 묵을 수 있었고, 음식도 가장 비싼 걸로 시킬 수 있어 저리 감탄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우물우물. 어? 주명 형! 밤 늦게야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옥현은 음식이 매우 마음에 든다는 듯 쉴새없이 입 속에 욱여 넣고 있었고, 점잖아 보이던 정여수 어르신 역시 음식이 적잖에 마음에 들었던지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너무 정갈하고 깔끔해."

특히 소울푸드라도 찾은 듯 눈을 부릅뜨며 모밀 소바를 흡입하고 있는 초희를 보며 주명은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음식같은 단순한 것에서 일전의 기구하고 힘들었던 쓰라린 기억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면 좋을 일일 테지.

"자네. 갔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보군."

"그렇죠 뭐. 어르신 말대로 애초에 확인도 않하고 쫒아내니 절대로 들여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다들 음식이 입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거야 뭐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크흠."

옥현이 초희가 들을까봐 다급히 제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신호를 보내자, 정씨 어르신 역시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듯 급히 말을 끊었다.

다행스럽게도 메밀 소바에 푹 빠져 있던 초희는 자신이 지금껏 해 왔던 요리가 다른 이들에겐 절대로 먹을만한 물건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혹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줄 수 있겠나?"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던 문제이기에 정씨 어르신은 앞으로 어찌할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 문제에 다들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소년(옥현)과 여인(초희)도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주명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뭐 통신사를 만나려는 건 애초에 계획에는 없던 거였어요. 그냥 어쩌다 알게 되어 시도해본 거에 가깝죠."

"계획이 나름 있긴 했는데, 그 계획이란게 구체적이지 않아 시작부터 어그러질 뻔했네요. 항로도 정확하게 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항해하는 바람에 왜구들 본거지에 덜컥 가버려 위험에 처하지 않나. 휴..."

그때의 긴장감, 두려움이 떠올랐는지 일행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건 맞는 말이네. 지금까진 막연한 어딘가를 향해 떠돈다는 느낌만 받을 정도로 방향이든 경로든 모호하긴 했지."

"그렇죠. 심지어 목적지도 말씀드리지 않았으니까요. 하하하.."

본인이 생각해도 멋쩍은지 주명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세력을 키우려 하는 이유도 따로 설명하지 않았네요. 특히 조선에서였다면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역모로 취급받을 만한 목표인데. 제가 생각해도 너무 무계획 무대책이었습니다."

역모란 얘기가 나오자 정씨 어르신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는 것이 기축옥사(정여립의 난)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 일이 떠올라 그런 듯 했다.

"세력을 키우려는 이유는 왜구들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사랑하는 가족을 왜구에게 잃었던 슬픔이 있는 옥현과 초희의 눈동자가 떨리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

정씨 어르신은 짐작은 했던 것 같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어 주명이 확인시켜 주자 몹시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앞으로 주명이 할 일에 대한 기대감에 눈이 크게 떠지며 흥분한 기색이었다.

"암, 자네같은 하늘이 내린 장사는 마땅히 그런 뜻을 품을만하지!"

노구를 이끌고 그가 사실상 고난과 고행의 연속인 뱃일을 자원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가족을 잃은 본인의 슬픔뿐 아니라 유린당하고 있는 조선의 처지에 한명의 선비로서 비분강개한 마음이 어디 없었겠는가.

"아시다시피 조선은 지금 상황에서 절대 왜구를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라도 나서지 않으면 어르신처럼 가족을 잃고 비통해 하는 분들이 조선에 넘쳐날 겁니다!"

결연하게 포부를 말하던 주명은, 갑자기 재차 머리를 긁으며 민망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먼저, 항해사부터 구해야 할 것 같네요. 세상에 항해사도 없이 항해를 해왔다니 제가 정신이 나가 있었나 봐요."

AI가 있는 인공지능 배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시간으로 위치를 보여주는 네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턱대고 되는대로 배를 움직였다는 것은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충분히 병신짓이고 미친짓이었다.

오히려 해적들의 소굴로 불시착한 것이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 망망대해로 기약없는 항해를 이어가다 유령선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검객도 구해보죠."

***

미즈시나 나미에(水科波江)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저토록 무방비하게, 아무런 경각심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있을 줄이야.

저들이 지니고 있는 금화를 노리고 눈을 번뜩이고 있는 승냥이 무리가 자신이 본 것만 해도 벌써 열 손가락을 세기 힘들 정도로 주변에 깔린 상황.

그럼에도 속 편하게 음식이나 퍼먹으며,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저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카미소(花海荘)에 호위병력 하나 없이 왔으면서 저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놓다니 미쳤군."

카미소(花海荘)는 쓰시마 섬 최고의 숙박시설이자 식당. 당연히 그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싸기 그지없었고, 그곳을 드나드는 이는 온 쓰시마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돈이 모이는 곳이 아니랄까봐, 그들에게서 나오는 재물 부스러기나 정보를 노리고 승냥이들이 주시하고 있는 곳이 이 카미소였으니까.

보통은 유력자나 거물이 드나들기에 그저 관심으로 끝났다. 수십의 호위를 대동한 그들을 승냥이떼도 어찌하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저런 돈만 많은 애송이들은 경우가 달랐다.

지켜주는 무력 하나 없이 그 토실한 뱃살을 드러낸 저런 양들이라면, 지체없이 달려와 배를 가르고 속살을 파먹으려는 승냥이들이 주변에 그득했다. 지금도 마치 피냄새를 맡은 상어떼처럼 그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가진 건 다 털리고 목숨까지 잃어 관짝에 실려 나가겠지.

"젊은 남자는 그렇다 치는데. 노인, 어린아이, 그리고 여자?"

심지어 여자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 곱게 죽지는 못할 터였다. 사내들은 어떻게든 여자만 보면 욕정을 풀려 안달이었으니까.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비록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금 당장은 저잣거리를 전전하며 도둑질이나 하고 있는처지지만, 한때 여자로서 쉽지 않은 무(武)의 길을 걸었던 몸이며 무사가 되고자 했던 자신이다.

저 순하게 생긴 여인이 능욕당하는 미래가 그려지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저 여인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에 더더욱.

사부로부터 배운 무사의 길을 따르자니 당장 뭔가 해야할 것 같아 어깨가 들썩였지만, 몇일을 먹지 못해 비루한 몸과 관리할 여력이 없어 이가 다 상해버린 검을 생각하자니 망설여졌다.

애초에 일면식도 없는, 그것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을 위해 나서는 건 바보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미에는 자꾸만 움직이려는 몸을 억누르려 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정말 바보같았다. 곤궁한 처지일 지라도 의롭지 못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순진한 생각에, 악한 이들의 담벼락만 넘으며 버텨왔다.

하지만 악하면서 재물을 지닌 이들을 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원래 악당들이 더 철저하게 제 재산을 지키고 경각심도 가지는 법이다.

하는 족족 대부분 실패하는 통에 삼개월도 되지 않아 거지꼴을 면할 수 없었다. 평판은 나락으로 떨어져 암암리에 현상수배자 명단에 오른 것은 덤.

꼬르륵

귀족도 아닌 주제에, 게다가 남자도 아니고 여인인, 평범한 어부의 딸일 뿐인 자신인데. 대체 그깟 무사도가 뭐라고 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도리에 매달리며 배를 곯고 있는 걸까.

그냥 다른 여인들처럼 몸을 막 굴리며 부자의 첩으로 들어간다면 편한 인생을...씨발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나미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떠올리자 처음 본 저들에 대한 일말의 정의감과 동정심도 빠르게 식는 것을 느꼈다.

"위험을 경계하지 않은 자는 이미 시체와 같다."

사부가 늘상 강조하던 말을 되뇌며, 나미에는 저들은 이미 시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체들에 더이상 눈길을 주지 않고 어떻게 악행을 하지 않고도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려 했다.

하지만,

'왜 위험을 자초하는거야?! 대체 왜!'

외국인 여인은 일행의 눈치를 살피더니 홀로 자리를 떠나 객잔 밖으로 빠져나와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히 여인은 이곳이 처음인지라 길을 쉽사리 찾을 수 없었고, 헤메고 헤메더니 점점 더 구석진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아닌가!

혼자가 된 외국인 여인을 향해 다가가는 세 마리의 승냥이를 발견한 순간, 동시에 그 승냥이들의 눈에 서린 추악한 욕정을 알아본 그 순간, 나미에는 쏜살같이 뛰쳐 나갔다.

마치 질풍과도 같은 빠르기였다. 그리고 그 질풍은 승냥이 중 한명을 향해 쇄도하였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일을 벌이려는지 최대한 움직임을 숨긴다고 노력했다만 그런 허접한 수작 따위는 나미에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승냥이는 질풍에게서 숨을 수 없었다.

아는 놈이었다. 얼마나 더러운 삶을 살아왔던지 나름 이바닥에서 유명한 놈이었으니까.

"..크억."

덕분에 놈의 목에 칼을 쑤셔 넣는데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정확히 시야의 사각에서 찌르는 날카롭고 매서운 검격에, 누구에게 무슨 일을 알기도 전에 놈은 절명하였다.

더러운 인생의 끝을 장식하는 것은 질척이듯 불쾌하게 끈적거리는 악취나는 피분수였다.

하지만 그녀의 낡은 검의 수명도 다했다는 게 문제. 놈의 목뼈에 박혔던 검을 힘주어 빼내려 했더니 부러져 버렸다.

"빌어먹을."

시간이 없었다.

짧은 순간에 최대한 사각을 파악하여 쇄도하였기에, 방금 절명한 놈의 상황을 아직 다른 두놈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사각이란 게 영원하지는 않을 테니 곧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부의 가르침에 따르면 최대한 일대일의 구도를 반복하다보면 다수와의 싸움도 충분히 가능하며, 최선은 시야와 감각의 사각을 활용해 하나씩 암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그 남은시간 동안 두놈도 마저 처리해야 했다.

구석진 곳으로 외국인 여인이 향했던 덕분에 아직까지는 주변의 누구도, 저 쓰레기 같은 두 승냥이놈도, 그리고 심지어 목표가되어 추격을 당하고 있는 저 여인 마저도 살인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부에게 배운 보법을 펼치며 최대한 신속하게 다음 놈에게 접근한다.

놈은 위에서 덮칠 생각인지 외국인 여인이 걷고 있는 길가의 지붕 위로 올라가 여인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그정도 높이, 그정도 거리는 나미에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날듯이 뛰어 올라간뒤,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다가갔다. 그 흐르는 물같은 자연스러움과 깃털같은 가벼움을 지닌 발걸음은 마치 바람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놈의 뒤로 다가가 반쯤 부러진 검으로 놈의 심장을 찔렀다.

"끄아악!"

하지만 검이 부러졌다는 것을 순간 잊었다는 것이 실수였다. 검상의 깊이를 잘못 계산한 덕에 절명했어야 할 적이 비명을 지르며 뒹굵게 되어 버린 것이다.

놈의 죽음자체는 피할 수 없을 터지만, 문제는 다른 한놈의 승냥이가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거였다.

"이노우에! 크아아아! 이 개같은 년이!"

반대편 지붕에서 외국인 여인을 향해 다가가려던 놈은, 동료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나미에를 향해 뛰어왔다.

지붕과 지붕 사이의 간격을 재빠른 몸놀림으로 뛰어 넘는 것이 예사놈은 아니었다.

그리고 발도하듯 순식간에 휘두른 검격, 검이 왼쪽 허리에 매여 있다는 것과 뛰어드는 몸의 속도를 살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올려베는 검격이었다.

비록 한손으로 휘두른 것이나 신속한 발도였다는 점, 놈이 검술을 제대로 배웠던지 그 경로가 너무나도 깔끔했다는 점이 검격을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미에 역시 평범하지 않은 인물.

자신의 작은 체구를 살려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 검격을 피한 그녀는, 급히 경로를 틀어 다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검격을 부러진 검으로 흘려버렸다.

최초의 검격보다 이미 기세와 속도가 줄은 상황에서 제2격은 그녀에게 너무도 손쉽게 파훼활 수 있는 공격이었다. 흘려버림과 동시에 놈의 목을 그어 버렸던 것은 거의 순식간이었다.

피를 콸콸 흘리는 목을 부여잡으며 마지막 승냥이가 무릎을 꿇었다. 고통과 원망이 섞인 놈의 눈빛에도 담담한 나미에였지만,

'젠장, 목격자가 있어.'

구석진 골목임에도 하필이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인지,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봐 버렸다는 것을 확인하자 눈동자가 떨려왔다.

자신이 죽인 세놈은 미친개들의 무리로 유명한 세이죠의 무리에 속했다.

이미 현상수배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상황에서, 세이죠 그 기분나쁜 쓰레기가 제 부하가 그녀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결국 알게될 것이다.

"...망했군."

악인들의 집을 털면서도 적어도 목숨은 거두지 않으려 했기에, 그랬던 덕분에 그냥 '당한 놈이 병신이고 저년은 미친년이다'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놈들의 척살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피를 보게 되었으니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생각없음을 탓하면서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와 벌어질뻔했는지도 모른채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저잣거리의 칼부림 당사자' 정도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외국인 여자를 바라보며,

그래도 나미에의 입가에는 희미하지만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자신을 칼부림으로 사람을 쳐죽이는 무서운 불한당으로 바라보는, 겁에질린채 자신을 괴물 보듯 바라보는 시선이었지만,

나미에에겐 차라리 그런 시선이 더 견디기 쉬웠으니까.

"젠장. 정면에서 보니 더 닮았어...씨발."

피눈물을 흘리며, 왜 자신을 구해주지 못했냐고 원망하는 그런 시선이 아니었으니까.

비록 얼굴만 닮은 생판 남이었지만, 저 얼굴과 닮았던 누군가와는 달리 이번에는 구해줄 수 있었으니까.

"...어차피 쟤는 그녀가 아닌데. 후..."

자신은 쫒길 것이다. 그리고 이 쓰시마를 벗어날 수 없다면 오늘 죽음을 맞은 세놈의 강간 모의범과 같은 운명, 아니 자신이 구해주었던 외국인 여인이 당할 뻔했던 그 능욕의 과정이 추가된 더 더러운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적어도 이 빌어먹을 섬에 온 뒤에 오늘만큼은 무사 같았죠?"

멍하니 저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의 끝에는, 거대한 일본도를 찬 호쾌한 인상의 중년인이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그녀에게만 보이는 모습이겠지만.

"사부님."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그녀를 닮은 저 여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척살령이 떨어지기 전 자신이 몸을 빼내기 전까지는 시간이 충분하겠지.

그렇지 못하다는 건 자신이 가장 잘 알았지만, 왜인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니 없던 시간도 충분하다고 우기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나미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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