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역공녀에게 후회는 필요 없습니다 (76)화 (76/109)

76화

수도 대신전 속 타미타르테의 집무실은 단정하고 청초한 그의 인상과는 달리 제법 지저분했다.

여기저기 산처럼 쌓여 있는 종이들이나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책들까지.

깔끔한 걸 좋아하는 타입일 줄 알았는데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호쾌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보였다.

“신전까지는 어쩐 일이야?”

“궁금한 게 있어서요.”

“음?”

소매 안에 넣어두었던 꾸러미를 하나 꺼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원래라면 오늘 알렉시스 공작이 먹었을 건강보조제였다. 꾸러미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걸 조심스럽게 들었다.

“이게 뭔데?”

“나도 몰라요.”

“뭐?”

나도 모르니까 들고 온 거지. 얼굴을 바꾼 채 성력으로 남을 고치고 다니기는 했지만 약제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 부분은 앨런이 담당하는 일이었으니까.

앨런에게 부탁한다면 손쉬운 일이겠지만 건국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앞으로는 오늘처럼 공작가에서 밤늦게 외출하는 일은 조금 힘들어질 터였다.

“모른다고?”

“예. 몰라서 들고 온 거예요. 신관님이 이게 뭔지 알아내 주셨으면 좋겠어요.”

꾸러미를 풀고 꺼낸 약을 보던 그가 으음, 앓는 소리를 냈다.

“알아내기 힘든 건가요?”

“알아내려고 한다면 알아낼 수야 있겠지만,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네.”

“어느 정도로요?”

“한…… 엿새 정도?”

어쩔 수 없지. 알아내기만 한다면야. 정말로 단순한 건강보조제면 상관없겠지만, 이게 알렉시스 공작의 건강과 관련된 거라면 내게는 또 다른 하나의 패가 되어줄 것이다.

꾸러미 안에 있던 약을 몇 번 살펴보던 타미타르테가 조심스럽게 그걸 서랍 안에 넣어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엿새 후에 신전으로 와. 아님, 내가 달리 사람을 시켜서 말을 전해주도록 하마.”

“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이번엔 뭔데?”

궁금한 게 한껏 많은 어린 조카를 보는 따뜻한 눈빛에 괜히 가슴 한쪽이 간질거렸다.

“저희 부모님은 신전에서 도망갔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는 다정한 기색이지만,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내면 늘 아픈 얼굴을 했다.

타미타르테와 부모님의 일은 몇십 년 전의 일일 텐데도 불구하고 꼭 어제의 일 같은 얼굴이었다. 내가 한 말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헤집어댄 것 같기도 했다.

“……그랬지.”

살짝 마른 음성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부모님이 도망가셨을 때…… 같이 도망가면 좋았잖아요.”

“…….”

“사이가 돈독했다면 저희 부모님도 끝까지 함께하려고 하셨을 텐데. 왜 타미타르테 님은 신전에 남은 거예요?”

“맞아, 그러려고 했어. 실제로 도망치기도 했고.”

그가 조금 쓰게 웃었다.

“재수 없게 붙잡혔지만.”

내 질문들이 너무 흥미 위주의 질문들로 느껴질까 봐 쉽사리 이것저것 물어볼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평생 갇혀서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성력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되는 바람에.”

“…….”

“목숨을 부지하게 된 거지.”

일상적인 말을 하듯, 평온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물론 다니엘 님만큼 대단한 성력은 아니었지만.”

타미타르테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늘 맑기만 하던 연하늘빛 눈동자가 흐리게 변했다. 마치 뿌연 안개가 낀 저녁의 길목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남으면…… 고아원 아이들이 실험체로 사용될 일도 없으니까. 로지안은 본인의 안위에 대한 성력을 쓰고 싶어 했거든.”

“…….”

“그게 다야.”

아주 별것 아닌 이야기인 것처럼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에 내가 숨을 짧게 들이켜다 물었다.

“로지안 스타리유가 지난 시간 동안 늙지 않았던 이유가. 성력 때문인가요?”

타미타르테의 말은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타미타르테는 긍정했다. 로지안이 아직까지 젊음을 유지하는 데는 성력의 힘 때문이었다.

“성력으로 불필요한 병이나 노화 를 막고 있으니 시간이 이만큼 지나도 그 모습인 거지.”

그의 말을 해석하자면 로지안의 상태는 한마디로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최상의 상태를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영위하고 있는 중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새삼 타미타르테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가 한 행동은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었으니까.

“이제 고아원도 정말 고아원으로서 역할 되고 있으니 다행이지.”

“…….”

“어차피 로지안은 젊음만 유지하면 되는 거니까.”

“그 사람이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죠?”

“본인 권력을 계속 쥐고 싶은 것뿐이지.”

이번에도 빠르게 나온 대답이었다. 측근의 인물이 하는 말이니만큼 그렇겠지.

역시나였다. 로지안은 여자였으면 좀 더 나았겠지, 라는 생각은 할지 언정,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늘내일하고 있지만 황제의 목숨이 계속 연명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페르포네는 도대체 어떻게 로지안을 견제하려는 걸까. 오롯이 자신의 지위나 측근만으로는 견제하기가 힘들 텐데.

그렇게 생각에 잠길 때였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니?”

“예? 아, 예, 하세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타미타르테는 꽤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믿고 싶은 내 욕심인 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던 나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보인 반응이나 눈물은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보이는 삼촌 같은 다정함도.

“……어머니에 대한 건, 기억하니?”

그리고 나온 말은 꽤 의외의 말이었다. 이건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지, 아니면 내 기억 속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간절함이 엿보이는 하늘빛의 눈동자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기억한다는 말을 원한 거겠지. 그리고 내 기억 속 어머니가 어땠는지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죄송해요, 기억은 잘 안 나요.”

“아…….”

“집에 있던 시간이 길었던 건 아버지여서 아버지 기억은 많이 남아 있는데 어머니는 잘 기억이 안 나요.”

“…….”

“그나마 집에 어머니 그림이 있어서 얼굴을 아는 거지.”

어머니와 함께 있던 기억들은 가물가물했다. 집안의 생계 때문에 주로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셨던 분이었으니까.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도 좋은 어머니셨다는 점이다.

날 향해 웃던 입가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겠네. 다니엘은 신전에 갇혀 지냈었으니까 돈 버는 덴 쥐약이었을 거고.”

“…….”

“그럼 버니스가 돈 벌려고 다녔을 거고.”

“두 분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그가 당연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돈을 벌려고 한다면 성력을 쓰는 것뿐일 텐데, 그런 건 소문이 너무 쉽게 나니까.”

“…….”

“그 사람의 성력을 이어받아 돈을 벌고 있는 너도 마찬가지잖아?”

암암리에 퍼지는 소문을 듣고 다들 찾아오는 이들이었다.

신전에서 도망쳤다고 했으니, 만약 성력을 썼다고 한다면 신전에 아버지를 밀고하는 인물도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떻게 돈을 버셨는진 모르겠네요.”

“아마 약초상으로 돈을 벌었을 것 같은데.”

타미타르테가 턱을 쓸며 말했다.

“왜냐면 신전에 약재를 납품하는 상단의 상단원이었거든.”

“아…….”

타인에게서 듣는 부모님의 이야기라 새삼 신기하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슨 일을 하는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신전에 갇혀 지냈던 아버지와 만날 방법은 확실히 그런 쪽밖에 없었겠지.

“어머니 그림 있는데 한번 볼래?”

“보여주실 필욘 없으세요. 어머니 그림은 저한테도 있으니까요.”

두 분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림 속에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봐봤자 별 감흥은 없을 것이다. 그건 제게도 있는 것이었고, 정 보고 싶으면 아티팩으로 모습을 바꾼 뒤 거울을 봐도 상관없었으니까.

“그래도. 네가 알고 있는 모습은 조금 더 나이가 있는 모습이니까. 나한테 있는 건 좀 더 젊은 시절의 모습이거든.”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는데도 타미타르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저분한 집무실을 둘러보다 책장 앞에 탑처럼 쌓여 있는 책들을 전부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보이는 건 책장 밑, 자물쇠로 단단히 봉해둔 서랍장이었다.

짤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장의 문을 열고 또 그 뒤로 숨겨둔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여기.”

무슨 보물을 숨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서랍장을 가리기 위해 쌓아둔 책도, 자물쇠로 봉해둔 서랍장도, 가장 안에 있는 상자와 상자를 열어 또 봉해둔 상자까지.

몇 번의 자물쇠를 풀고 풀어 나오는 건 아주 작은 액자였다.

집 안에 있던 어른스러운 미소와 달리, 개구진 소년처럼 장난스럽게 씩 웃고 있는 청량한 미소의 어머니는 내 또래처럼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