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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를 훔쳐라-9화 (9/128)

#9.

히나는 반황권파의 귀족 세력이 모두 몰래 모인 새벽, 자택 앞에 버려져 있던 갓난아기였다.

당장 어디다 버리려고 했을 때 발견한 것이 신전의 문양이 찍힌 펜던트였다. 펜던트 뒷면에 돌로 삐뚤삐뚤 써진 히나라는 이름과 함께 아이는 버려져 있었다.

황족 다음으로 제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풀토 공작도 신관이나 신녀만이 가질 수 있는 이 문양을 함부로 사칭할 순 없었다.

히나를 보자마자 신전과 연관이 있는 아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히나를 자신의 영지 가장 구석에 있는 마을에 몰래 숨겨 키웠다.

‘이 아이가 신녀라도 된다면…….’

대마법사를 뒤로 두고 있는 황제에 맞서 세력을 더 강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선택받은 신관이나 신녀는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히나에게 신력이 있다면 나중에 쓸 곳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히나는 신력을 포함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진 않아 보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풀토 공작은 감시인을 한 명 심고 히나를 가난한 마을에 방치했다. 그리고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공작님. 그 아이는 잘 있습니까? 왜, 신전의 아이 말입니다. 혹, 대마법사 시녀로 들여보낼 생각이 없으십니까?”

최근 대마법사의 뒤를 밟고 있었던 리처드 백작이 은밀한 루트로 별궁 시녀를 뽑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보고에 따르면 히나는 아주 성실했다. 그리고 제아무리 능력 밖이라고 해도 시키는 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려 노력했다.

풀토 공작은 망설임 없이 히나를 불러들였다.

‘아주 좋아. 역시 키워두길 잘했어.’

히나에겐 그 무엇도 없었다. 들킨다고 해도 협박을 당할 일도 없고, 히나 본인 자체가 쓸데없을 정도로 입이 무거웠다. 몇 번의 시험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그녀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갈 일은 절대 없어 보였다.

성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순진한 히나가 이 일에 열을 내게 하는 방법은 아주 쉬웠다.

“네 어미에게서 연락이 왔다, 히나.”

“어머니요?”

“그래, 네 친어머니 말이다.”

“정말요?”

“널 아주 오래전부터 찾고 다녔다는구나.”

풀토 공작은 히나에게 사실은 부모가 살아 있고, 오래전 자신에게 큰 빚을 져서 당시에 어렸던 그녀를 팔아넘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돈을 벌면 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소식이 끊겼는데 겨우 연락이 닿았지.”

그는 히나의 가족들이 아직도 큰 빚은 갚지 못하고 전보다 더 어렵게 살고 있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딸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예의가 아니라며 꼭 돈을 모아 다시 사겠다고, 조금만 시간을 달라 부탁했다는 말도 첨가했다.

“하지만 평생을 일해도 갚지 못할 빚이야.”

“그, 그럼 전 부모님을 만날 수 없는 건가요?”

“그래서 네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하는데…….”

철석같이 믿고 있는 히나에게 이번 임무를 수행하면 빚을 갚아주는 것은 물론 평생 살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히나는 순진하지만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 만약 들킨다고 해도 자신을 키워준 것도 모자라 부모까지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은인의 이름을 결단코 말하지 않으리라. 어차피 그녀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의 거짓된 독재에 대해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세뇌당한 탓에 히나는 그 누구보다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공작은 정의감이 넘치는 그녀의 의지에 불을 붙이고 기름까지 들이부었다.

“네 부모가 기다리고 있다. 이 임무를 끝내면 약속대로 평생 쓸 돈과 함께 돌려보내 주마.”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예상대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히나의 눈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다른 시녀들에게 절대 그 자리를 빼앗겨선 안 된다, 알겠지?”

“네!”

“대마법서만 가져오면 되는 거야, 히나. 그게 아니라면 대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라도 몰래 훔쳐 오거라. 알겠나?”

“네, 공작님!”

듣기론 히나의 키보다도 더 큰 지팡이를 가져오는 건 확실히 위험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는 대마법사의 별궁을 고려해 봤을 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가만. 황제가 자주 와서 차를 마시고 간다고 했지.’

능구렁이 같은 황제는 의심이 많았다. 침실에서도 철통같은 보안으로 자신의 안위를 지켰으며, 결코 경계심을 풀어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대마법사 앞이라면?’

황제는 카신과 함께라는 이유만으로도 긴장을 풀고 경계를 하지 않는다. 본궁도 아닌 별궁에서 주변 호위를 물리고 남의 시녀가 타다 준 차를 마신 건 그만큼 대마법사를 신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좋은 기회가 여기 또 하나 있었군.’

잘만 하면 황제를 죽일 수도 있으리라. 일이 술술 풀렸다.

“히나.”

“네?”

풀토 공작이 히나에게 작은 천 주머니를 건넸다.

“이 약을 가져가거라.”

“이게 무슨 약인가요?”

“가끔 황제가 찾아온다고 했지? 혹, 기회가 생긴다면 그걸로 황제를 죽이거라.”

놀란 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 황제 폐하를 죽여도 되는 건가요? 그래도 이 나라의 황제인데…….”

“방탕함이 하늘을 찌르고 독재를 즐기는 현 황제보다도 더 황제에 맞는 분이 계시단다. 하지만 현 황제로 인해 지금 안타깝게도 황궁 밖에 쫓겨나 계시지.”

“어, 어떻게 그럴 수가……!”

현 황제의 이복형제이자 풀토 공작이 지지했던 제이스 사이어 카를로스.

제이스는 루이스와 달리 아둔하고 정사에 관심이 없었다. 처음부터 척을 졌던 루이스와 달리 제이스는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는 풀토 공작을 신임하고 따랐다. 제이스가 황제가 된다면 풀토 공작은 제이스를 철저하게 꼭두각시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루이스는 아직 아들이 없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루이스가 죽으면 황위 계승 서열 1위인 제이스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면 대마법사가 어찌하고 말 것도 없다.

어차피 대마법사는 세간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황제가 누구로 바뀌든 이번에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

‘다른 황제들보다 현 황제와 유난히 친한 것은 조금 걸리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겠지.’

루이스는 선대 황제들과 달리 주기적으로 대마법사와 만났다. 기록에 따르면 카신은 역대 황제들과도 선을 그었다. 만나봤자 황제의 간청에 도움을 한두 번 주는 것 외에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처럼 루이스와 카신의 작은 친분이 걸렸다.

하지만 그래봤자 한 달에 한 번이었다. 친하다고 하기엔 애매한 관계였다. 현 황제는 워낙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혼자 도발적인 행동을 하는 걸 수도 있다.

“대마법사가 황제와 단둘이 만나고, 네가 차를 타준다고 했지? 그때 넣으면 되겠구나.”

황제를 죽이는 것. 사실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대마법사가 옆에 있을 때 루이스는 호위까지 물리고 티타임을 즐기며 산책까지 했다. 물론 대마법사라는 엄청난 호위가 있지만, 방대한 마력과 강력한 마법으로 자만에 빠져 있는 대마법사는 믿었던 시녀가 배신할 거라고 생각지 못할 수도 있다.

“당장 쓰라는 건 아니다. 대마법서나 지팡이를 훔칠 수 없다면 기회를 엿봐서 황제를 독살하는 방법밖에 없으니 주는 거란다.”

히나가 남을 속이는 일에 무척이나 어설프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풀토 공작은 곧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대신 이 약을 써서 황제를 죽인다면 너도 이 약을 먹고 그 즉시 자결해야 해. 증거도, 증인도 절대 남겨서는 안 된다.

“자, 자결이요?”

“별궁에서 차를 타주는 시녀는 너 하나잖아. 어차피 잡히면 죽지도 못한 채 고문을 당해야 한단다.”

“하, 하지만.”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네 부모의 뒤를 평생 봐주마. 너도 네 부모가 행복하길 바라지 않느냐.”

겁을 잔뜩 먹고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에 히나는 입술을 꼭 깨물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히나, 잘 듣거라. 이 약을 네가 써서 네 손을 더럽히는 건 나도 원치 않는단다. 이게 다 제국을 위해서야. 알고 있겠지?”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것도 아무리 나라를 망치는 독재자라고 해도 제국의 황제를 죽이는 건 꺼림칙했다. 하지만 만약 성공하면 가족도 행복해지고 제국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죽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한평생 큰 빚으로 인해 고생만 한 그들이 노후엔 행복하길 바랐다. 설사 자신의 목숨과 바꾸더라도.

“그럼 만약 황제 폐하를 도, 독살한다면 대마법사님은 그대로 두는 건가요?”

“대마법사도 같이 죽이면 좋겠지만, 듣기론 독약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 그런가요.”

독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와 닿진 않지만, 카신이 독 따위에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대마법서를 훔치거나 황제를 죽이는 일 중 하나는 꼭 성공해야 해. 알겠지?”

“네!”

“히나, 조금이라도 의심을 사면 이 약으로 바로 자결해야 한다.”

무서웠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하려면 꼭 성공해야 하는 일이었다.

“네, 공작님.”

결의를 다진 히나의 얼굴을 보며 풀토 공작은 안심했다.

풀토 공작은 그 밖에도 의심을 살 경우, 카신을 독살하고 지팡이를 빼돌려 특정 장소에 숨겨두는 둥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일러주었다. 어떻게 자결해야 그 자리에서 빨리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네가 죽더라도 네 부모는 걱정하지 말거라. 들켜서 자결했다고 해도 그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쳐 주마.”

“감사합니다, 공작님.”

평생을 보지 못한 부모를 볼 기회가 없다고 해도 히나는 제 부모가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도록 돌봐준다는 약속을 굳게 믿었다. 그녀는 임무를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풀토 공작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건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 곧이구나. 이 임무를 성공만 하면 곧 네 부모를 만날 수 있다.”

“네!”

히나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대답했다. 부모를 만나는 상상만으로도 기쁜 모양이었다.

‘생사조차 모르는 부모가 있다고 믿다니. 멍청한 년.’

풀토 공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히나는 히쭉히쭉 웃었다.

‘꼭 성공해서 엄마랑 아빠를 불러봐야지.’

반역죄가 얼마나 큰지는 알고 있지만 이게 다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부모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잘해준 카신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임무는 꼭 성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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