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히나의 주변으로 여러 마법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카신은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결코 믿기지 않는 엄청난 마력을 쏟아부으며 단단한 보호막에 쌓여 있는 히나에게 몇 번이고 공격 마법을 날렸다.
시간이 갈수록, 수십 차례의 마법진이 나타나고 없어지길 반복할 때마다 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한 마법이 시현될 때 나타난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봤던 빛도, 두 번째 빛도 모두 카신이 마법을 썼을 때 나타났다. 그것도 꽤 강력한 마력을 끄집어냈을 때만.
그때 상황을 따져 보면 보호 마법이 걸려 있든 말든 상관없이 빛이 나왔다. 심지어 처음엔 멀리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음에도 나타났었다.
빛이 시현되는 데 제약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신은 수업 중에 히나에게 보호막을 펼쳐 두고 시험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녀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 교수님 아직도…… 우욱!”
카신은 헛구역질을 하며 비틀거리는 히나를 다급히 잡았다.
아무리 보호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한들 휘황찬란한 공격을 몇 번이고 받았다. 평범한 여자아이가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괜찮니?”
카신은 이해할 수 없도, 공감할 수도 없는 공포였다. 과격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애초에 그는 히나의 몸을 단단한 보호막이 막고 있으니,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물, 불, 바람 등 속성별로 마법을 시현해도 히나에게서 예의 그 빛은 나오지 않았다. 공격, 방어, 속박 등 목적이 다양한 마법으로 시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럴 리가 없지.”
순식간에 사라졌던 첫 번째의 희미했던 빛과 달리 두 번째 빛은 그곳에 있던 여러 사람이 목격할 정도로 분명했다. 그로 인해 히나가 세인트에 오게 됐으니, 절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카신은 잠깐 동안 희망을 가지고 더 기다려 봤지만, 빛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의 공통된 상황들을 떠올리며 직접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생각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하도록 하자꾸나.”
제발! 어서 가!
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학생들은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히나를 통과한 공격 마법은 중간에 있는 제어 마법진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시금 쏟아졌다. 생명을 담보로 펼친 보호 마법진은 확실히 정확하고 강력했다. 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기도 했다.
‘사상 최악의 수업이었어.’
어떻게 안 것인지 공격 마력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학생들에게는 카신의 보호 마법이 발동되었다.
애초에 카신이 학생들을 세세히 살피지 못해 죽게 할지도 몰라 가르치지 못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연달아 떨어지는 공격 마법에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 마력이 부족하여 툭툭 쓰러지는 학생들에게 보호 마법이 걸리는 걸 확인하고는 쓰러지는 척 포기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눈앞에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거대한 공격을 보면 도저히 보호 마법을 거둘 수 없었다. 혹시나 카신의 보호 마법이 자신에겐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다들 끝까지 죽자고 버텨야만 했다.
‘이러다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닐까?’
마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보호 마법을 쳐서 버티던 학생들도 나중에는 전부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전부 다 카신의 보호 마법에 갇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신은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히나를 지나쳐 수많은 공격 마법이 쏟아졌다. 보호 마법 안에서 그 무지막지한 공격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걸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히나는 반쯤 실신한 상태였다.
“다들 형편없군.”
카신이 진작 다 나가떨어진 학생들을 훑으며 혀를 차는 게 보였다.
루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마 기절하지도 못한 채 카신에게 붙잡혀 있는 히나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그 공격을 모두 견뎌낸, 오늘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
“이러다 누구 하나 죽어버리면 큰일인데 말이야.”
거짓말!
자신이 걸어놓은 보호 마법진이 깨지며 학생들은 정말 죽음에 직면한 공포를 느꼈다. 카신이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쳐 놓은 보호막이 아니었다면 정말 다 죽었으리라.
얼마나 카신이 대단한지, 절대적인지 그들은 몸으로 철저하게 깨달았다.
“보호막을 펼치는 시간이 짧구나. 다음 시간부터는 조금 더 버틸 수 있도록 연습해 두거라. 본인의 나약함으로 정말 죽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만약 누구 하나 죽는다면 그건 무조건적인 카신의 부주의였다. 다른 마법사라면 모를까, 무한한 마력과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한 카신에게는 그랬다.
태연한 얼굴로 끔찍한 말을 남기는 카신은 그렇게 마력을 퍼부어대고도 멀쩡했다.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너무도 온전하고 멀끔한 모습이라 더 무서웠다.
“오늘은 여기서 수업을 마치도록 하지.”
카신이 수업을 끝내자마자 여기저기서 고통스런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몸의 기가 전부 빨린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날 수도 없었다.
“아흑……. 우리 이러다 죽지 않을까.”
“너는 얼마나 버텼나?”
“난 첫 번째 공격에서 바로 탈락했어.”
학생들은 앓는 소리마저 괜히 빌미를 잡혀 혼이 날까 싶어, 대놓고 하지 못하고 속닥이고 있었다.
“루터. 네 동생, 살해당한 건 아니지?”
걸어올 힘도 없는지 굼벵이처럼 기어온 카터가 행여 들릴까 싶어 작게 속삭였다.
“그게 아니면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몰라.”
카터의 온 시경이 히나를 살피고 있는 카신에게 가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듣고 있을 것 같아 왠지 불안했다.
“그, 글쎄. 순순히 죽게 두진 않을 것 같은데…….”
수업을 끝내자마자 카신은 넋을 놓은 히나를 부축한 채 그녀의 주변에 여러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시험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포기가 안 되는지 그의 얼굴이 자못 심각했다.
“그런데 네 동생, 정말 뭐가 있는 거야?”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드래곤도 뚫지 못한다는 튼튼한 보호진 안에 있었다고 하나, 응축된 마력을 한 번에 몇 번이고 받아냈다. 가히 충격적인 일이리라. 그럼에도 아직도 저런 시험을 당하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참으로 가여웠다. 정작 카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애초에 공포라는 감정 자체를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사실 어딘가 특별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난 그런 거 한 번도 보지 못했는걸.”
루터는 한편으론 카신의 특별 대우를 받고 있던 히나를 부러워했던 걸 후회했다. 저런 공포감을 감당해야 하는 특별 대우라면 절대 사양이었다.
아직도 히나에게 쏟아지는 카신의 관심에 부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젠 마냥 부럽지는 않았다.
“어디가 아픈 거니?”
털썩.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는 히나를 카신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응시했다. 루터의 예상대로 그는 히나가 겪었을 공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히나가 강력한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아팠지? 몸이 좋지 않으면 어서 의무실로 가자꾸나.”
다 당신 때문이잖아!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카신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었다. 정작 카신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진짜 모르는 거야? 정말로?’
루터는 히나가 왜 의무실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카신을 보니 기가 막혔다. 물론 대마법사인 카신을 존경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아니, 직접 보니 숭배해야 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마법사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모르는 카신이 얄밉기도 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학생들과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히나를 보며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는 그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교수님! 저희도 의무실에 가야 합니다!”
싸늘한 시선. 히나를 볼 때와 달리 서늘한 눈빛이었다. 루터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루터 피안 리베리아 군. 남자로서 정말 형편없는 체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저…… 여, 여기 있는 전부가 다 마찬가지인데요.”
“세인트의 상급반도 별거 없군.”
카신의 감흥 없는 눈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학생들을 훑었다. 마치 이런 것들에게 당한 지난날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이에게 아주 작은 관심을 주는 것도 싫은지 카신이 바로 히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카신은 학생들이 죽든 말든 신경 자체를 안 쓰는 것처럼 보였다.
“히나. 얼굴빛이 별로 좋지 않구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기력을 보충해 줄 약이라도 만들어주마.”
말투도 달랐다. 수업을 가장한 협박과도 같은 살벌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히나를 향해서 나오는 카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웠다.
정신이 반쯤 혼미한 히나를 안은 카신은 공간이동 마법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난 내 몸에서 마력이 다 뽑혀서 사라지는 줄 알았어.”
“마력을 함부로 남발하면 죽는다는 걸 직접 느끼게 되다니…….”
“그런데 교수님은 도대체 사람이긴 한 거야?”
“아무리 대마법사라지만 그렇게 마력을 쓰고도 멀쩡하다니.”
작은 전쟁을 겪은 기분이었다. 제국에 대마법사가 있다는 것이 다른 나라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몸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근데 나 아까 교수님 공격, 조금이지만 제대로 막았다?”
“나도. 보호 마법을 실전에서 이렇게 제대로 쓴 건 처음이야.”
“너도 그래? 나도 원래 보호 마법 같은 건 잘 못했는데…….”
공격형 마법만 쓰던 학생들까지 전부 보호 마법을 써서 막았다. 점점 강대해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끌어 쓰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요령도 터득했다.
급박함 속에서 빠른 속도로 펼쳐지지 않은 마법진을 버리고, 그나마 겨우 시현한 마법은 의외로 무척이나 잘 맞았다.
“우리 정말 보호 마법 익힌 거 맞지?”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힘이 없었지만, 결코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공격을 조금이라도 막았다.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자 방금 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실감 났다.
카신의 수업을 받고 세인트를 졸업한 이 학생들이 마법사로 아주 뛰어난 활약을 하게 되는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런데…… 히나 있잖아. 인체 실험 당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가 사람 잡을 수도 있겠네.”
학생들은 카신의 위대함을 몸소 깨달은 것은 물론, 그가 얼마나 두려운 인물인지 뼛속까지 인지했다.
여기저기서 히나에 대한 걱정이 이어졌다. 히나가 부러우면서도 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