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죄송해요.”
히나의 입에서 나온 의미 모를 사과에 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에게서 사과를 듣자고 화를 낸 게 아니었다.
“아까 카신 님 옆에 제가 없는 상상을 했어요. 도망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카신 님이 너무 좋아져서…….”
카신은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 히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또 사랑의 묘약 효능이 발동했나 봐요. 하지만…… 도망간다기보다 카신 님 곁에서 떨어졌단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참 솔직하고 요령 없는 아이였다. 카신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불안해할 거면서 날 왜 다른 사람들한테 보냈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사람들과 엮이는 게 그리 좋지 않은데 말이다.”
“하지만…… 카신 님 곁에 조금 더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친구?”
“카신 님은 힘들 때나 외로울 때 의지할 분이 많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폐하 말고도 카신 님께 어울리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했어요.”
풀토 공작의 모반이 밝혀지고 나서, 귀족이 되고서, 세인트에 들어가서 히나의 자신감은 부쩍 사라지고 있었다. 항상 당차고 밝았던 때가 언제인지 모를 만큼.
힘들었을 그녀를 당장에 안아주고 투정을 받아주고 싶은 마음을 접으며 카신은 조금 더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너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같구나.”
“저는 카신 님께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인걸요.”
“나도 귀족이 아니다만.”
“하지만 카신 님은 귀족들도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대단한 분이잖아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카신의 옆에 있으면서 수많은 손가락질과 소곤거림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에 황제도 그녀가 카신 옆에 있는 걸 의아하게 봤었다.
“그, 그렇다고 카신 님 곁에서 떨어지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카신 님은 마법사니까, 마법에 대한 고민도 들어주고 연구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고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히나는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저도 노력해서 카신 님께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예요. 노력한다고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할 거예요.”
한껏 작아졌던 목소리가 커졌다. 자신의 포부를 외치듯 말하는 히나의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카신은 처음 첩자로 들어왔을 때, 무척이나 의욕적이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카신 님이 말한 제 능력도 찾아낼 거예요. 그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카신 님도 뭔지 모르시는 힘이라면, 엄청 대단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특이하니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확실히……. 그런 능력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겠지.”
“그거면 됐어요. 그럼 저도 카신 님 옆에 계속 붙어 있을 거예요! 제가 마법사는 아니니, 마법에 대한 상의나 번민을 이해하고 공감해 드릴 순 없겠지만, 손가락질 받지 않을 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될게요!”
카신은 굳이 마법사를 친구로 둘 필요가 없었다. 그가 보기엔 황궁 마법사들의 마법은 어린아이 장난 수준이었다. 절대적인 마법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한 그에게 일개 마법사나 평범한 일반인이나 다를 게 없었다.
마법에 대해 논한다고 해도 같은 수준으로 대화를 나눌 인간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카신은 히나의 예쁜 마음 씀씀이에 재를 뿌리고 싶지 않았다.
“아주 기특한 생각을 했구나.”
손가락을 튕기자 단정하게 올렸던 히나의 머리카락이 풀어졌다. 카신은 놀라는 히나를 보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손가락 사이로 휘감기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느끼니 여태 밀려오던 짜증이 진정되었다.
“머리가…….”
어깨 위로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히나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카신은 절대 원래대로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아까부터 어깨를 훤히 드러낸 것도 거슬렸지만, 편히 머리를 쓰다듬을 수 없어 언짢았다. 처음 보는 아리따운 레이디의 모습을 남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돌아갈 거니?”
잠시 고민하던 히나가 착하게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했다. 히나가 자신에게 크게 의지하면서 옆에 있겠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었다.
‘물론, 레베스톤 공자는 차단해야겠지만.’
어째서 그 녀석이 평소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히나의 힘을 감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위험했다. 어둠의 힘을 쓰는 자신도 한순간에 마음이 편해질 만큼 강한 힘이었다. 카신은 남의 이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라우너가 얼마나 히나에게 빠져 달려들지 염려됐다.
“그리고 의지라기보다 마법을 같이 논할 수 있는 친구라면…… 비슷한 건 있단다.”
그녀의 예쁜 마음과 노력을 허투루 만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히나가 다른 황궁 마법사들과 자신을 붙여놓는 건 더 이상 사절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다른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있다고요? 폐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요?”
카신은 언제 봤는지 까마득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혹시…… 대신녀님인가요?”
“거기서 왜 대신녀가 나오는 거지?”
카신은 갑자기 튀어나온 세이나의 이름에 당황스러웠다. 다급히 히나의 말을 부정한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히나를 두고 얼마나 긴 미래와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흑심을 품고 있는데! 카신은 히나의 생물학적 어미인 대신녀와는 결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성별이 걱정되는 거라면 ‘그것’은 남자란다.”
보통 친구를 ‘그것’이라고 칭하진 않는다. 히나의 눈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거든.”
“인간이 아니면요?”
“……나중에 소개해 주마.”
소개시켜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 여자 한 명에게 쩔쩔매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두고두고 놀릴 것이 뻔했다.
“정말 친구 맞는 거죠?”
인간이 아니라는 말에 히나의 눈에 처음으로 불신이 서렸다.
“친구 비슷한 관계라고 할 수 있지.”
“네, 그렇군요.”
절대 믿지 않으나 일단 대답은 해주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아, 히나. 그는 드래곤이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신전에서 순례를 올 때마다 난 짧게 여행을 갔었지. 그때마다 그를 보러 간 거였어. 믿기지 않는다면 다음에 황제를 만날 때 내가 정기적으로 여행 간 일을 확인해 봐도 된다.”
세이나와 이따위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았다. 카신은 다급히 설명했다.
“그는 아주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유희를 즐기러 나오지도 않아. 그래서 내가 가끔 그를 보러 갔단다.”
사실 갈 곳이 없어 며칠 눌러앉은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카신은 친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와의 관계를 몇 번이고 포장했다.
“드래곤이요? 그럼 카신 님은 드래곤과 친구인 거예요?”
“……그래.”
비록 그 드래곤에게 친구라고 말하면 언제부터 그렇게 낯간지럽게 굴었냐며 그를 크게 비웃을 테지만.
카신은 굳이 당장 말하지 않아도 될 사실들은 철저히 숨겼다. 또 어떤 것에 감동을 한 건지, 눈을 반짝이는 히나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드래곤과 친구라니, 대단해요! 나중에 꼭 소개시켜 주셔야 해요?”
“그, 그러마.”
“역시 카신 님은 대단한 분이세요. 어떻게 살면서 한 번 보기 힘들다는 드래곤과 친구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친구라고 하기 애매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이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참 복잡했다. 서로 죽이려 싸우다가 그리된 거였으니 말이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단다.”
“카신 님의 친구분, 어서 빨리 보고 싶어요.”
카신은 되도록 말을 아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다 동원해서라도 웬만하면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겠군.’
하지만 평소에는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해도 절대 말하지 않는 히나가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서 보고 싶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는 걸 보며 카신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 * *
“오늘도 여전히 형편없구나.”
멀리서 상급반 학생들이 오늘도 수업을 빌미로 카신에게 여실히 까이는 걸 보며 히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렸다.
“어디 가서 마법사라고 하지도 말거라. 미래 제국의 유능한 마법사라고 소개하기 창피하구나.”
카신은 오늘도 여전히 히나가 아닌 다른 학생들에게 가차 없었다. 신랄하게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판 그는 그 어떤 죄책감도 갖지 않은 채 사라졌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났다. 파티에서 계속 서서 인사를 했던 후유증으로 히나는 이삼일 동안 진이 빠진 상태로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가, 갔지?”
“으응. 갔어.”
“하아.”
카신이 떠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하나둘 울려 퍼졌다. 이제는 적응할 만도 하건만, 여전히 대마법사의 수업은 고단했다. 카신의 수업을 듣고 나면 며칠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히나, 넌 좋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안전한 곳에서 위대한 마법을 넋 놓고 지켜보던 히나가 쪼르르 달려왔다. 히나의 멀쩡한 얼굴을 보며 앓는 소리를 내던 카터가 부러움을 표했다.
“네 힘을 시험하는 건 이제 됐다. 그건 내가 나중에 개인적으로 확인하지.”
얼마 전부터 카신은 히나에게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더 이상 시험을 하려 하지도 않았고, 언급도 안 했다.
학우들은 처음에 히나가 카신에게 무지막지한 공격을 당할 때만 해도 가여웠다. 하지만 지금은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그녀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카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히나가 오늘따라 유독 더 정신을 못 차리는 루터를 일으켜 주었다.
“루터, 너도 부럽다.”
나도 저런 살가운 여동생이 있었으면. 하지만 이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는 정작 루터에게 들리지 않았다. 카터는 아쉬운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으응. 수명이 줄어든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카신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영혼이 갈리는 기분이었다. 특히 파티가 끝나고 나서부터 루터는 얼굴이 반쪽이 될 만큼 초췌해졌다.
“어떡하죠? 아! 전에 카신 님이 만들어주신 약이 잘 듣던데.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할까요?”
“아니!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까 절대 그런 부탁 하지 마!”
루터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교육을 빙자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만약 히나가 자신으로 인해 카신에게 부탁을 한다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전부 뽑히는 기분이었다. 생각만으로 아찔했다.
파티 때 큰 잘못을 하지 않았다. 실수도 안 했다. 하지만 카신은 그때부터 유독 루터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분명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카신이 무자비하게 공격할 때마다 파티에서 라우너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루터는 우상인 대마법사가 사실은 속이 아주 좁다는 걸 몇 번이고 상기하며 속으로 눈물을 쏟았다.
“그런 부탁은 절대 하면 안 돼! 만약 부탁을 하고 싶으면 뭘 할지 나한테 꼭 물어보고 해야 돼! 알겠지?”
“아, 알겠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는 히나를 보며 루터는 한시름 놓았다. 히나는 일부러 남을 속이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대답을 했으니, 카신에게 부탁을 할 때 그에게 먼저 허락을 구할 것이다.
“그럼 제가 교실까지 부축해 줄게요.”
히나가 루터의 팔을 잡으며 부축해 주었다. 루터는 주변에 카신이 있는지 없는지 재빨리 확인한 다음 히나에게 몸을 맡겼다.
그는 파티 이후로 히나와 한결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카신은 그걸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친해진 모습은 되도록 보이지 않는 게 추후 신상에 좋았다.
“그런데 교수님과는 어떻게 친해진 거야?”
교실로 돌아가면서 루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세인트에 있는 동안에도 교수와 학생, 그 누구에게도 곁은 내주지 않는 ?ソ키?히나가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건지 전부터 궁금했다.
옆에서 따라오던 카터도 궁금한 건지 귀를 기울였다.
“음…… 그게…….”
“그보다, 대마법사님 안 무서워? 가만 보면 히나도 제일 겁쟁이인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겁을 안 먹는단 말이야.”
카신과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다니. 그 싸늘한 눈빛이 자신에게 계속 머물러 있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에이, 제가 교수님을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리가 없죠.”
끔찍하다는 듯, 몸을 바르르 떠는 카터를 보며 히나가 작게 웃었다.
“어째서? 더 가까운 사이면 지금보다 더 무자비한 모습도 봤을 거 아니야?”
“사실 이건 비밀인데…….”
히나가 뜸을 들이며 목소리를 줄이자 루터와 카터가 고개를 바짝 들이댔다. 히나의 시선이 살짝 카터에게 가자 루터가 그를 툭 쳤다.
“넌 이만 가라.”
“왜! 나도 듣고 싶다고.”
“가족회의야, 가족회의. 보면 몰라?”
“그게 무슨 가족회의야!”
“안 가?”
“치사해서 간다, 치사해서!”
입술을 삐쭉이며 먼저 가는 카터를 보며 루터가 어서 말해보라는 듯, 히나를 응시했다.
“사실 저는 사랑의 묘약을 마셨어요. 그래서 교수님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몸서리칠 만큼 무서워할 순 없어요.”
“뭐?”
사랑의 묘약? 그게 실제로 존재한다고? 그래, 상대는 대마법사니까. 하지만 왜 그걸 히나에게……. 그건 너무 치사한 방법 아니야?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
짧은 시간 동안 루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히나!”
뒤늦게 모든 상황을 이해한 루터가 똑바로 서며 히나의 양어깨를 잡았다.
“어서 교수님께 해독약을 만들어달라고 해!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어째서 화를 내는지, 아니 애초에 자신이 화를 내는지도 모른 채 루터는 강압적으로 외쳤다.
“하, 하지만 그건 제가 나쁜 짓을 해서 내리신 벌인걸요. 그리고 회복약은 카신 님도 모른다고 했어요.”
“뭐? 그게 말이 돼? 그건 그 작자가 순진한 널 꾀어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
“그래도…….”
“그래도가 어딨어, 그래도가! 그건 파, 파렴……. 아무튼! 여자한테 할 짓이 아니지!”
차마 대놓고 파렴치하다고는 하지 못한 루터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댔다.
어쩐지 히나가 가끔 심하게 카신에게 쩔쩔맬 때가 있었다. 단순히 그걸 히나의 소심한 성격 탓이라 생각하고 말았던 게 문제였다.
‘너무 치사한 수법이잖아! 자기가 대마법사면 다야? 이럴 거면 정정당당하게 부딪히는 라우너 형이 훨씬 낫지!’
루터가 고개를 홱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히나, 네가 무슨 잘못을 했어도 마음을 농락한 짓은 잘못된 거야. 그러니까 교수님도 똑같이 당해야지.”
서로 좋아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순진한 아이를 꼬드겨 혼자 재미를 보는 거였다.
루터는 갑자기 화가 났다. 카신이 히나를 더 갖고 논다면, 아니 같이 있는 모습만 봐도 배알이 꼬일 것 같았다.
“당해요? 카신 님이요?”
“그래!”
“하지만 어떻게요?”
카신이 무슨 수에 당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물론 일전에 상급반과 내기를 했을 때, 카신이 전적으로 당했지만 히나는 그때 그가 봐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야. 이거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리베리아가에서는 사랑의 묘약 해독법을 알고 있어.”
“정말요?”
“사랑의 묘약 때문에 불편했지? 내가 그 효능을 없애줄게.”
“하지만 카신 님이 해주신 건데…….”
“효능이 없다고 네가 도망가거나 교수님을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너도 편한 마음으로 교수님 옆에 있는 게 나을 것 아냐!”
수긍을 한 것인지 히나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루터는 순진한 히나가 완전히 넘어온 것을 보며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이론 지식으로는 상급반 최고인 루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루터는 히나에게도 겨우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