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114화 (114/128)

114.

“저거, 널 노리고 있어.”

칼피온은 검은 액체가 계속해서 카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너한테만 간다고.”

“확실히 그런 것 같군.”

오히려 공격을 한 칼피온에겐 가지 않고, 멀리 있는 카신만 쫓고 있었다.

“이상한 의지를 갖고 있어.”

카신은 채 도망가지 못한 짐승이 검은 액체에 삼켜지는 것을 보았다. 검은 것에 뒤덮여 발버둥 치던 짐승이 곧 스르르 녹아 없어져 버렸다.

“저걸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 거야?”

칼피온이 아무리 브레스를 날려도 소용없었다. 검은 것은 뭐든 삼켰다. 작은 타격 하나 없이.

“감도 안 잡혀?”

연이은 칼피온의 질문에 카신은 검은 액체가 움직이는 것을 뚫어지게 관찰했다.

검은 것에서 나오는 검은 마법사가 무엇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확실히 그가 연구했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거였다.

‘기존의 연구 결과에 저 검은 것이 뒤덮여 변형되어 버렸지만.’

마력을 갖고 태어난 인간을 토대로 만들어진 마법사였다. 수명이 고작 한 달도 되지 않는, 힘만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한 마법사.

“감이야 잡히지만…….

코반드는 끝까지 그를 원망했다. 죽으면서까지 그에게 절망을 줄 만큼.

카신은 검은 것이 코반드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희망 하나 없이, 망가진 몸과 피폐해진 정신으로 절망만 갖고 있던 그가 마지막 발악을 했을 거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좀 해보라고!”

정확하진 않지만, 예상이라면 가능했다.

코반드에게 남은 건 그에게 훔쳐 간 연구지밖에 없다. 도와줄 동족도, 함께해 줄 전우도, 심지어 제대로 된 육체도 가지지 않았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상태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으리라. 야망이 큰 코반드는 분명 마력이 있는 인간들을 데려다가 계속 인위적인 마법사를 만들었을 것이고, 그들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하려 했을 것이다.

“저건 인간의 수백, 아니 수천 가지의 의지가 뒤섞여져 만들어진 괴물이야.”

인간의 몸은 때론 무한한 힘을 냈다. 다른 동물들, 심지어 드래곤까지 그러지 못했다. 위급한 시기에 때로 평소에는 절대 엄두도 못 낼 힘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카신은 한때 무한한 힘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인간의 몸에서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실험을 했던 거였다.

마법사가 되지 못할 만큼 희미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도 대대로 칭송받는 위대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실험이었다. 그 실험체들의 힘을 뽑아다가 제 몸에 합쳐서 저리된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카신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검은 것에서 한 명씩 생성되어 제국군에게 가는 실험체를 관찰했다. 대부분이 삐걱거리며 몸을 불편하게 움직였다.

제대로 완성된 실험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한 마력이 뭉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부족해.”

“부족하다니, 그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거야?”

어딘가로 향해야 할지 모를 원망과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아직 실험체의 의지가 모두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 부정적인 모든 감정을 가진 검은 마법사들은 코반드의 의지 아래 조종당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도망갈 방법이 있을까?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한번 카신을 발견한 이상 절대 놓지 않으려 들 것이다.

“로티우스, 네가 못 하겠다고?”

단 한 번도 불가능이란 단어를 보여주지 않았던 카신이 확정 지어 못 한다고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워낙 덤덤한 얼굴이어서 칼피온은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나 의심했다.

“그래. 저걸 없애려면 힘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압도적으로 눌러 없어야 돼. 하지만 지금 그 정도 힘을 내긴 힘들어.”

“힘을 흡수한다고? 저게?”

“그래. 네가 한 공격부터 지나가는 벌레까지 모두.”

검은 것은 웬만한 힘을 전부 흡수하려 들었다. 그러니 칼피온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듣지 않는 거였다.

몸이 정상적이었어도 가능했을까? 확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검은 것을 없앨 만큼 얼마나 힘을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제국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검은 마법사들의 실력이 의외로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곳에 더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히나가 걱정되었다. 아마 지금쯤 처음 내보냈던 검은 마법사와 대치하고 있을 것이다.

“저건 계속 널 쫓아오는데?”

여차하면 히나를 데리고 도망가야 했다. 히나 한 명이라면 어떻게든 눈을 피해 도망갈 수 있을 테니.

“힘을 흡수하는 거라면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고. 알고 있잖아?”

제국군의 힘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수가 헤아릴 수 없게 많다. 만약 제국군을 전부 삼키기라도 하면 더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가더라도 쫓아오는 걸 막아야지!”

“히나가 저기에 있어.”

“로티우스!”

검은 것이 코반드의 의지로 움직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검은 마법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각의 의지로 빠져나와 제국군을 발견하자마자 공격하려 들었다.

아델리아나 리베리아 후작의 실력을 떠올려 봤을 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검은 것의 눈을 피해 수많은 제국군을 모두 대피시킬 수도 없다.

“제국군은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하지만 저게 널 계속 따라간다면…….”

카신은 뒤돌아 칼피온을 보았다.

“당장 드래곤 장로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모아.”

“장로들을?”

“그들과 합세해서 저걸 없앤다. 그때까지는 제국군과 합류하여 검은 마법사를 막고 있도록 하지.”

적어도 검은 마법사들을 제국군에게서 떼어놓고 검은 것을 유인해야 했다. 그것도 안 된다면 히나를 데리고 따로 도망치든지.

“잠깐, 일단 네가 제국군에게 가는 건 위험해! 저건 널 쫓고 있다고! 저게 제국군 근처로 가서 한꺼번에 흡수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검은 마법사 몇 명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는 검은 것이 제국군을 삼키는 걸 카신도 막지 못한다. 칼피온은 검은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지는 것이 염려되었다.

“일단 장로들을 데려올 테니, 여기서 저걸 유인하면…….”

“안 돼.”

카신은 딱 잘라 거절했다.

“코랄드는 히나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있어!”

마지막 순간에도 코반드는 히나로 하여금 그에게 절망을 주려 했다. 카신은 그때의 코반드를 잊을 수 없었다.

“저것들이 히나를 발견하기 전에 가야 돼.”

그 생각에 미치자 참을 수가 없었다. 카신은 말리려는 칼피온을 두고 제국군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로티우스!”

뒤에서 칼피온이 따라왔지만, 카신은 멈추지 않았다.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황궁 마법사의 보호막 속에서 제국군의 기사들이 검은 마법사들을 겨우 막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하지만 카신은 예상과 달리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직면했다.

“히나, 이쪽으로 오렴!”

히나는 리베리아 후작과 베라미의 뒤에 꼭 붙어 있었다. 그리고 아델리아를 중심으로 황궁 기사단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아니, 보호받는 게 아니야!’

히나가 성력을 쓰면 리베리아 후작과 베라미를 비롯한 몇몇 마법사가 증폭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약해진 검은 마법사를 검기를 다루는 기사들이 처리했다.

검은 마법사들은 황궁 마법사들의 보호막을 제대로 뚫지도 못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강하게 느껴지는 히나의 성력에 몸이 약해진 탓이었다.

“히나의 성력…….”

뒤따라온 칼피온이 히나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말을 이었다.

“엄청나군.”

카신은 짤막하게 하, 하고 웃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가장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히나를 보니 뿌듯했다. 저절로 어깨가 펴졌다.

‘얼마 전까지는 독 하나 제대로 못 타던 주제에.’

의외로 엄청난 선전을 하는 히나를 구경하던 카신은 멀리서 검은 것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장로는 부를 필요 없어.”

“응? 그럼 저건 어떻게 하려고?”

함께 얼빠져 있던 칼피온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도 점점 근접해 오는 검은 것에 시선을 돌렸다.

“구경이나 하라고.”

카신은 히나에게 빠르게 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력의 산뜻한 기운이 몸에 확 퍼졌다.

“카신 님?”

가장 먼저 히나가 카신을 발견했다.

“저걸 처리하고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눈앞의 검은 마법사들을 단번에 벤 아델리아가 힐끗하고, 카신을 확인하며 물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무리라.”

카신은 히나의 옆에 착륙하며 꽤 많은 수의 검은 마법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히나의 옆에 딱 붙은 라우너가 신이 나서 약해진 검은 마법사를 베고 있었다. 힘도, 전의도 잃은 적을 베면서 히나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것에 흥분한 건지, 그의 검기가 꽤나 사납게 흘러나왔다.

“지원군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지원군이라니, 도대체 대마법사님께 누가 지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카신은 한 손으로 히나의 어깨를 감쌌다. 최근에 꽤 자주 봤을 텐데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지 베라미가 몸을 움찔하며 놀라는 게 보였다.

가까이 오면 올수록 강해지는 히나의 성력 덕에 황궁 마법사의 보호막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법사들의 수가 꽤 되어서 그런지, 점점 더 많은 양이 다가온다.

“카신 님!”

히나를 안은 채 카신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있는 아델리아 앞을 가로막았다.

검기를 다루는 기사도 한계가 있고, 히나의 성력도 마찬가지니 이대로는 제국군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가 없다면 제국군은 검은 것에 먹혀 전멸했으리라.

“내 지원군은 히나, 한 명이면 됩니다.”

성력이 마법에 의해 증폭이 된다고?

그러면 간단했다. 마력과 부딪혀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카신은 성력을 가장 폭발적으로, 아주 멀리까지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그만 다들 물러나 있으시죠.”

아델리아를 비롯한 다른 제국군이 앞장선 카신과 히나를 멀뚱히 응시했다.

“히나, 이번 전쟁은 우리 둘이 끝을 내자꾸나.”

“저, 저희 둘이요?”

증폭된 성력에는 영향이 가지 않게, 섬세한 컨트롤로 다른 공격 마법과 혼합을 시키는 건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성력에 수십 가지의 마법을 덧씌울 수도 있었다.

“그래. 내 손에 네 성력을 주면 되는 거란다.”

카신은 히나의 손에 제 손을 겹치며 말했다. 멍하니 맞닿은 손을 보던 히나가 곧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야무진 입술을 벌리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손안에 옅은 빛이 일어나더니 히나의 성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카신은 히나를 안은 채로 아까보다 더 많은 수의 검은 마법사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히나의 손이 살며시 떨렸다. 아무래도 같은 선두라도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보호를 받았던 것과 달리, 바로 눈앞에 수많은 적군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게 무서운 모양이었다.

“저도 무슨 일이 있어도 카신 님을 지켜줄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무섭다고 할 줄 알았던 것과 달리 강한 의지가 담긴 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에게, 정확히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보호받는 일은 꽤 즐거웠다.

방금 전까지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한 상대였다. 하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카신은 진격해 오는 수많은 검은 마법사들과 검은 것을 보며 가볍게 픽 웃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싸우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우리 둘 다 서로를 지켜낼 거야. 걱정할 일은 없을 게다.”

손안에 알맞게 모아진 성력을 느끼자마자 카신은 마력을 세분화시켰다. 히나의 성력을 바탕으로 여러 마법식이 순식간에 허공에 그려졌다.

“우리가 합쳐지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이 완벽해질 테니 말이다.”

검은 것을 보는 카신의 노란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리고 찬란한 빛을 두른 엄청난 마력 덩어리가 검은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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