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03화 (203/350)

203화 요정왕의 서클릿 (3)

“에라 모르겠다! 죽든 말든, 매혹에 걸리든 말든 그럼 네 말대로 딜 조절 없이 친다!”

여전히 몰려오는 서큐버스들을 잡아내고 있는 당당이.

덕분에 형님과 나는, 좀 더 수월한 상태에서 퀸을 향한 극딜 모드에 돌입할 수 있었다.

한데 그러자 곧, 서큐버스 퀸이 방금 전과 같은 매혹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무살 형님은, 역시나 저항하지 못하고 여지없이 상태 이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우왓! 내가 이럴 거라고 했잖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공격해 오는 무살 형님.

상태 이상 ‘매혹’의 효과는 ‘혼란’과 얼핏 비슷했지만, 지속 시간이 몇 배는 더 길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종류의 상태 이상기는 예전에 겪어봤던 것.

좀 전은 몇 대 맞아주다 회복 차단이 터져 당황했던 거지, 사실 내게는 그다지 위협적인 스킬은 아니었다.

다수라면 모를까, 평타만 날리는 형님 한 명의 공격쯤이야 피해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집중 회피!]

휙, 휙!

고개만 까딱하며 형님의 평타 공격을 피하자, 군단장의 암살검이 내 몸통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미묘한 신경전과 훼이크가 없는 이런 정직한 검로 따위로는, 나 정도 되는 랭커급 유저에게 절대 유효타를 먹일 수 없었다.

“오,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제가 괜찮을 거라고 말했잖아요!”

십여 초나 이어진 매혹 디버프 시간 동안, 단 한 대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자 형님의 태도도 달라졌다.

내가 충분히 몸빵이 가능한 상태에서 퀸이 회복 감소까지 걸리게 되면, 어쩌면 남은 시간 내에 킬을 노려볼 수도 있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핏!

다시 정신 차리고 후방 공격을 휘두르던 무살 형님의 검에서 흑색의 이펙트가 짧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미 예전부터 수차례 봐온 적 있는, ‘회복 감소’의 발동 효과였다.

‘지금이다!’

[재빠른 몸놀림!]

[약점 포착!]

그걸 본 것과 동시에, 제대로 된 극딜 모드로 전환했다.

순식간에 급증하는 공속과 공격력!

그 직후 차례대로 내가 가진 즉발 스킬들을 사용해 폭딜을 넣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양손에 찬 팔찌를 부딪쳤다.

칭!

이제 1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최후의 승부수로, ‘스킬 가속’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당당아! 지금부턴 너도 공격해!”

“넵, 알겠어요!”

이 인던의 제한 시간은 딱 10분.

보스가 있는 이곳까지 오려면, 많은 마물들과 데몬의 추종자라는 상위 몹을 수차례 잡아야만 했다.

한데 그렇게 어렵사리 만난 보스는, 매혹이란 상태 이상도 모자라 회복 수단까지 갖춘 놈이었다.

‘그런 보스 몹 HP가…… 많을 리가 없잖아?’

이런 악조건들이 겹친 놈인데, 잡으라고 만들어 둔 거라면 약점이 없을 수 없다.

실제로 새로운 페이즈로 접어들기 전이었던 처음에는, 50% 구간까지 손쉽게 도달했다.

즉 이 서큐버스 퀸이란 보스 몹은, 다양한 공략법과 조합 연구 끝에 레이드할 수 있도록 세팅된 놈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회복을 거는 서큐버스들만이라도 전부 정리한 뒤 잡았어야 하는 놈.

하지만 이놈을 찾는답시고 헤매다가 상당한 시간을 낭비하고 만 우리에게 남은 선택권은 없었다.

‘이제 와서 부하 몹 잡을 시간 따윈 없어! 그러니 도둑 셋의 극딜을 믿고 달려본다!’

회복을 ‘차단’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회복 ‘감소’로 대처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회복 속도가 따라오지 못할 극딜을 먹여버린다면, 낮은 확률이지만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잡는 게 왠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연속 베기!]

[급소 찌르기!]

[회전 베기!]

마나 소모량 10배가 적용되어, 스킬 하나에 MP가 2, 3천씩 쭉쭉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래 봤자 회전 베기 한 방에 쑤욱 차올랐다.

긴 손톱을 뽑아내어 휘두르는 서큐버스 퀸.

퀸을 향한 회복 마법 대신, 내게 원거리 공격을 날리는 부하 서큐버스.

집중한 상태로 그 모든 공격들을 최대한 피하는 도중, 시야 한 편에 있는 제한 시간을 살펴봤다.

남은 시간은 이제 28초.

서큐버스 퀸의 체력바는 어느새 25% 직전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보고 쓰는 건 늦어……. 도박이다!’

결심을 굳힌 난, 퀸의 체력이 25%에 도달하는 순간 스킬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금 뭐라 떠벌이려던 서큐버스 퀸의 음성이 도중에 끊겨버렸다.

“내가 왜 몽환의 악마인지 친히 알려…… 끼익!”

펑! 펑! 펑! 펑! 펑!

차례로 날아가 서큐버스 퀸의 몸에 꽂히는 매직 미사일들.

멘트와 함께 처음 마주할 당시의 안개 상태로 변하던 몸이, 캔슬되어 도로 원상태로 돌아왔다.

변환과 캔슬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마치 제자리에서 연기를 내뿜다 만 것만 같았다.

“나이스!”

“뭐, 뭔 일이야?”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형님! 지금은 그냥 치세요!”

제한 시간이 준 압박 덕분인지…….

열심히 피를 깎고 있는 도중에도, 나는 놈의 다음 페이즈 패턴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상태 이상과 체력 회복이란 새로운 패턴을 보인 녀석이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진 않았고…….

그렇기에 처음에 봤던 ‘안개화’가 불현듯 생각났는데, 제대로 적중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와! 드로 형! 설마 방금 다음 페이즈 예측 캔슬한 거예요? 지린다…….”

“당당아, 지금 말하고 있을 때가 아냐! 20초 남았다, 지금부턴 너도 난도질 쓰고 붙어!”

“네? 아, 네 네!”

내 외침과 함께 멀리서 빙빙 돌며 원딜을 날리던 당당이가,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퀸의 뒤로 순간이동했다.

그리고는 무살 형님과 함께 난도질을 사용하곤 열심히 후방 공격을 먹이기 시작했다.

[난도질!]

여기에 나도 빠질 순 없었다.

스킬 가속 덕분에 쿨타임이 되돌아온 난도질을 쓰고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마나 쉴드가 5,33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4,887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퍼펑! 펑! 펑!

쉴 새 없이 터지는 피격 효과와 타격 이펙트!

신검의 위력을 믿긴 하지만 남은 시간이 워낙 촉박했다.

초조한 마음 반, 무아지경 반.

매정하게 줄어드는 카운트 다운의 숫자를 아쉬워하며 검을 휘두르던 순간!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방해를 받게 될 줄이야! 나의 아가들아, 다음을 기약하자꾸나!”

제한 시간을 알려주던 시계가 멈췄다.

그리고는 체력이 다한 서큐버스 퀸이 남은 서큐버스들과 함께 스르륵 사라졌다.

남은 시간은 단 3초.

아슬아슬했지만, 결국 우리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것이었다.

“와! 잡았다!”

“깨, 깬 거야……?”

[퀘스트 ‘페어리 퀸의 부탁’을 클리어했습니다.]

[서큐버스 퀸 패퇴에 성공하여 중간계로 돌아갑니다.]

지금껏 이곳에 도전한 유저들은 모두 시간이 모자라 쫓겨났겠지만…….

우리는 이곳을 제한 시간 내에 정식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무려 S급 난이도의 인던을 단번에 클리어해서!

슈웅.

넘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 이동하듯 잠시 주변이 뒤틀렸다가, 길드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공중정원으로 돌아왔다.

“어, 어떻게 됐어요, 형님들!”

“딱 10분 채우자마자 나왔네? 역시 너라도…… 처음이라 어렵긴 어려웠지? 그러게 내가 힐러 없인 힘들 거라고 했잖아!”

“그래 드로야, 어디까지 갔어? 추종자 2마리 뒤에는 뭐가 나왔는데?”

밖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제독은 생각할 게 많았는지, 예상과 달리 올림푸스는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다들 이곳에서 편안하게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지, 우리가 나타나자 허겁지겁 다가와 질문해왔다.

“아, 축볼 누나. 그다음엔 추종자 3마리가 한 번에 나오더라고요.”

“뭐야, 뭐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설마 잡았어?”

“당연히 잡았죠.”

“와! 대박 대박! 10분 만에 거기까지 가다니! 너희 진짜 도둑으로만 들어갔던 거 맞는 거야?”

“뭐? 힐러도 없이 추종자 셋을 잡았다고? 와, 저 자식은 진짜 너프 당해도 할 말 없을 만도 해. 완전 말도 안 되는 사기캐라니까!”

축볼 누님에 이어 현중이까지.

앞서 요정계를 다녀와 난이도를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놀라기엔 아직 한참이나 일렀다.

“아니, 거기까진 4분 만에 깼어요. 그리고 10분 다 채워서 나온 것도 아니고요.”

“뭐? 3분? 그리고 무슨 소리야! 제한 시간 다 돼서 나왔으면서, 채워서 나온 게 아니라니……. 너희 그럼 설마?”

“네, 누나. 저희…… 이제 퀘스트에 다시 도전할 필요 없어요. 들어간 김에 보스 몹을 잡아버리고 나왔거든요.”

* * *

한차례 폭풍과도 같은 난리가 지나간 후.

길드원들이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자, 페어리 퀸에게 다가갔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

과연 페어리 퀸이 보상으로 무엇을 줄지, 확인해보는 것만 남아 있었다.

‘단번에 이걸 깨버릴 줄이야. 당연하겠지만…… 역시나 최초이자 최고 보상이겠지?’

기록 경신용 퀘스트였는데, 무려 클리어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첫 도전에서 바로!

힘들게 이곳을 만들어뒀을 개발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가 말을 걸자, 페어리 퀸이 날개를 호들갑스럽게 펄럭이며 대답했다.

“페어리 퀸이시여……. 요정계를 침입한 마족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다행히도 성공했습니다.”

“오, 지혜롭고 용맹한 모험가들이여……. 잊을만 하면 요정계를 침공하는 서큐버스 퀸은 저의 오랜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데 그녀를 패퇴시키다니……. 마치 신마전쟁 당시의 열두 용사가 재림한 것만 같군요! 그대들의 뛰어난 활약에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고마움을 어찌 보답해야 할지……!”

“보답은 역시나 손이 무겁게…… 큼큼!”

잠시 무언가 계산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던 페어리 퀸이, 다시 입을 열면서 보상도 함께 내주었다.

“이 정도 활약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 그러니 이 보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대들이라면 다가올 위협을 해결할,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줄지도……!”

띠링!

[업적 ‘새 시대의 희망’을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페가수스의 깃털(3)’을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최고 보상인 ‘마력을 잃은 요정왕의 서클릿’이 당신의 파티에게 주어집니다.]

“와! 페가수스 깃털이 3개나? 그리고 또 레전더리 템이 보상으로?”

“오! 서클릿이라면 투구네요? 일단 드로 형이 획득하시죠?”

“응? 내가?”

3인 파티로 있던 상태라, 일단 획득 전에 파티원 전원에게 획득권이 주어졌다.

그런데 의견을 나누기도 전에, 무살 형님과 당당이는 포기 버튼을 눌러 빠졌다.

하는 수 없이 내 인벤토리로 가져온 다음 두 사람을 향해 분배를 의논하려 하자, 다들 한사코 거절했다.

“다들 왜 그러세요? 그럼 이거 제가 가져요? 저 레전더리 투구 이미 있는데요?”

“응. 너 가져. 네가 준 군단장 검 값을 갚으려면, 그 정도 템으로는 한참 모자라잖아? 그리고 난 업적 보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이다.”

“저도요, 드로 형. 형이 준 테네시 단검 덕분에 이제야 제 성장 방향을 찾은 느낌이에요. 흔쾌히 검까지 내주셨는데, 제가 염치도 없이 욕심낼 순 없죠!”

“어? 당당아…… 그거 준 게 아니라 한번 써보라고 던져 준 거였는데…….”

“네? 형님? 뭐라고요?”

너무 당연하게 테네시 단검을 준 것으로 여기는 당당이의 모습에, 차마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아, 아냐! 그래, 그럼 이 서클릿은 제가 갖겠습니다!”

그렇게 페가수스 깃털까지 하나씩 나눈 후, 업적부터 살펴보았다.

[업적 : 새 시대의 희망(S)]

* 옛 영웅의 행보를 이을, 새로운 시대의 희망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력 +5%, 이동 속도 +5%)

* 업적 효과로 레벨 차이에 의한 보정 효과가 다소 늘어납니다.

제국 원로원장으로부터 받았던 S급 업적 ‘새 시대의 영웅’과 비슷한 이름과 효과.

한데 레벨 차이 보정 효과를 줄여줬던 것과 달리, 이건 오히려 늘려주는 옵션이었다.

‘쩌, 쩐다……. S급 업적이라니! 그리고 이 옵션은, 내가 레벨이 높으면 보정 효과가 더 늘어난다는 뜻이잖아?’

지금까지 ‘새 시대의 영웅’에 붙어있는 보정 감소 효과 덕을 톡톡히 누려왔다.

수치화되진 않았지만, 나보다 레벨이 높은 몹을 사냥하고 랭커들과 전투할 때마다 페널티를 거의 느낄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이번에 얻은 ‘새 시대의 희망’ 업적은, ‘앞으로’ 효과를 톡톡히 누릴 업적이었다.

나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을 상대로 할 때 보정 페널티가 더욱 심하게 적용되는, 새 시대의 영웅과 반대되는 개념의 옵션이었으니까 말이다.

“드로야, 보상으로 뭐가 나온 건데? 너희끼리만 보지 말고, 좀 알려 줘봐.”

“아, 축빙 형님. 바로 링크 걸어드릴게요. 괜찮은 템이 뜬 것 같아요.”

업적 다음으로, 퀘스트 최고 보상으로 제공된 투구를 채팅창에 공유하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력을 잃은 요정왕의 서클릿(레전더리, 투구)>

* 방어력: 165

* 마법 방어력: 220

* 모든 속성 내성 +5%

* 모든 능력치 +15

* 최대 HP 및 MP +750

* 초당 HP 및 MP 회복 +15

* 정신계 공격 마법 저항 +50%

* 스턴 저항 +25%

* 이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신마전쟁 당시 요정계를 다스리던, 선대 여왕 루엘 세리온의 서클릿입니다.

* “예전의 찬란하게 빛나던 모습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 페어리 퀸 루엘 소니아 -

‘괜찮긴 하네……. 비록 나한텐 제사장의 머리 장식이 있고, 필요 없는 옵션들이 달려 있어서 쓸모없을 것 같지만…….’

상당히 괜찮긴 했지만 레전더리는 레전더리.

+4 제사장 투구를 가진 내게는, 대체할 만한 템으로 보이진 않았다.

워낙 마방이 높은 데다가 마나 쉴드도 있어서, 정신 공격 마법과 스턴 저항 상승 옵션은 전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대탐이의 말에, 나의 이런 생각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대탐험시대: 어? 이거 디바인 템이네요?]

[축복받은무빙: 응? 버젓이 레전더리라고 적혀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대탐험시대: 옵션 중에 ‘이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잖아요. 이거랑 똑같은 옵션이 붙어있던 레전더리 템이 이미 타연에 등장했었어요.]

[산드로: 뭐야, 정말이야? 그게 뭔데?]

[대탐험시대: 지금 형님이 차고 계신 바로 그 망토요. ‘천사장 페리엘의 고결’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레전더리 템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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