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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22)화 (22/167)

제22화

“자, 자릿세요?”

놀란 듯 답해 주자 불량배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너 살던 데는 없었어? 여기 처음 오는 사람 아니면 다~ 아는데.”

리벨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제가 살던 데는 없었어요…….”

그녀의 말에 불량배가 안심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괜찮아. 처음 내 봐서 그래. 한두 번 내다 보면 익숙해져. 안 그러냐, 동생들아?”

불량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남은 네 명의 불량배가 갑자기 힘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팔 근육을 자랑하는 놈도 있었다.

“물론입니다, 형님!”

그러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맞추는 건 잊지 않았다. 무슨 합창단 같았다.

“그렇단다, 자.”

불량배는 리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 줄래?”

“네?”

“자릿세.”

그가 뻔뻔하게 물었다. 리벨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깜빡였다.

요즘은 자릿세도 흥정……할 리는 없고, 그냥 얼마를 내밀든 윽박질러서 기를 죽이려는 거로군.

뻔한 수작이었다.

“동전 세 개……?”

리벨은 소심한 듯 손가락 3개를 펴 보였다.

그러자 남자가 감탄했다.

“이야, 사과 아홉 개면 되겠네? 가서 따 와?”

와하하 웃던 남자가 갑자기 얼굴에서 표정을 싹 지웠다. 그러고는 말했다.

“은전 세 개.”

“네?”

그 말에는 리벨도 진심으로 놀랐다.

이놈들이 미쳤나?

3주 치 평민 생활비를 자릿세로 받는다고?

괘씸함이 하늘로 치솟았다.

시스테인 경이 이 꼴을 봤으면 이놈들은 제초기에 밀려 나가는 잡초처럼 투타타탓 튕겨져 날아갔을 터였다.

물론 잘했다간 그 잡초들 사이에 잠입 취재 나온 벨 기자도 섞여 날아갈 터다.

안 돼, 시스테인 경은 안 돼!

리벨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든 그녀의 선에서 이 개판을 정리해야 했다.

기사 쓰려고 온 거잖아! 진정하자, 리벨!

리벨이 속을 가다듬는 사이 남자가 말했다.

“무울론 처음만. 다음 주부터는 두 개, 그다음 주에는 한 개, 그다음 주에는 동전 다섯 개. 자, 많이 줄어들지?”

남자가 손을 펴 보이며 설명했다.

언뜻 듣기엔 팍팍 줄어드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저게 진짜인가는 둘째 치고, 결국 주마다 걷는다는 말 아닌가?

이런 양아치 놈들을 봤나!

“그렇게 큰돈은 없어요…….”

왜냐면 나인 경이 다 가져갔거든.

리벨은 금화가 짤랑거리던 돈주머니를 생각하며 말했다.

그사이 분노를 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곧 털어 버릴 놈들이니까 참자!

“뭐? 없어?”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바닥을 다시 쾅 굴렀다.

“그럼 이 자리에서 꺼져야지!”

팍! 팍팍!

바닥을 굴러다니던 과일들이 불량배들의 발 아래에서 으깨졌다.

이벨라 영지 과일 가게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그래도 되팔아서 이득은 안 봤으니까 용서 좀!

“어, 저건 뭐야?”

그러다가 리벨 옆에 있는 작은 주머니를 발견하고는 덥석 집어 들었다.

“그건……!”

리벨이 가련하게 외치자 그들은 씩 웃으며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 주머니에는 오늘 리벨이 과일 장사로 벌었던 동전 5개가 들어 있었다.

“흠, 동전 다섯 개라.”

남자들은 동전을 꺼내 제 주머니에 쑤셔 넣어 버렸다.

“이거라도 잠깐 쓴 자릿세로 가져갈 테니까 썩 꺼져라, 응?”

엉망이 된 곳에서 불량배들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외쳤다.

“오늘 온 김에 수금할 테니까, 다들 돈 꺼내쇼!”

그 말에 지금껏 안심하고 있던 상인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남 일처럼 지켜보던 자들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힝.”

리벨은 대충 상처받은 표정을 지은 다음 자리에서 벗어났다.

대충 현장에서 볼 건 다 봤으니까 이 모습으론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시장을 빙글 돌아,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곧 저자들의 목을 베겠습니다.”

그리고 오자마자 나인의 말을 들었다.

“콜록!”

덕분에 마른기침이 터진 리벨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기 전에 해야 될 일이 있어.”

그러지 말라곤 안 하겠는데……. 리벨이 시장 쪽을 돌아보았다.

이 시장은 디엘렌 영지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그런데 저놈들이 저렇게 당당하게, 이 시장에서 장기간 돈을 뜯었다는 건?

저들을 잡아 족쳐야 할 기사단이나 위쪽에서 눈감아 줬다는 이야기다.

리벨은 그들을 쫓을 생각이었다.

“그럼 잠깐만.”

리벨은 마차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모습을 바꾸었다.

―파앗!

이번엔 갈색 머리 남자의 모습이었다.

롤란드의 바람 현장을 목격한 모습이라 별로 쓰고 싶진 않았지만, 잠깐 시장만 둘러볼 거니까 괜찮을 터다.

―달칵.

리벨이 달라진 모습으로 문을 열고 나오자 나인은 아주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다시 잠입하시는 겁니까?”

“응, 이번엔 같이 가자.”

지금쯤 시장에서는 놈들의 ‘수금’이 한창일 터였다.

그리고 수금이 끝나면, 돈을 줘야 할 곳이나 저들의 본거지로 향하겠지.

리벨은 그 현장을 잡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당당하게 걷는 리벨의 한 걸음 뒤로 나인이 따라왔다.

리벨은 난감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러면 누가 봐도 호위기사잖아. 형제인 척해, 형제인 척.”

그러자 나인은 잠깐 움찔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뭐지? 빡쳤나?

리벨이 눈을 깜빡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변한 나인이 터억 리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자, 릭! 오늘은 형이 꼬치구이 쏜다!”

?????

갑자기 너무 형제 바이브 아니냐?

리벨은 그의 어깨춤에 시장으로 휩쓸려 가며 생각했다.

대체 황태후 폐하는 뭘 양성하신 거야?

*  *  *

리벨이 한창 디엘렌 영지에서 취재를 시작할 즈음.

시스테인은 그 시간에 기사단 업무에 열중해 있었다.

결혼은 한 달 후로 잡혔고, 일주일의 결혼 휴가가 그때부터 시작될 테니 급한 일은 일찍 처리해 두어야 했다.

―사각.

그 생각에 빠른 속도로 펜을 놀리던 그의 손끝이 문득 멈칫했다.

‘이용……이요?’

그렇게 되묻던 예비 신부의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놀란 듯한 눈은, 놀란 것만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조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아니…….”

시스테인이 저도 모르게 뇌까렸다.

충격과는 좀 다른 감정. 그렇게 생각하던 시스테인은 길게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꼬리를 잘라 냈다.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전하.’

‘이 결혼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건 제 인생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복수와 결혼 생활은 완전히 별개라는 것.’

‘롤란드 그놈은 제 인생에서 이미 스쳐 간 놈이고, 제 삶은 계속될 거잖아요. 그리고 대공 전하와 결혼하게 된 이상, 전 대공 전하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곧바로 다시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귓가에 들리는 듯 생생했다.

기사들이 내는 소음 한가운데에서도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던 것 같다.

“…….”

그 말은 진심으로 보였다.

얼떨결에 한 결혼.

사실 그녀를 이용하는 건 나인데.

시스테인은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그녀와 조금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의 마력은 눈에 띄게 안정되어 있었다.

―쿵쿵.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시스테인이 허락의 의미로 책상을 두드려 주자 부기사단장이 들어와 그에게 묵례했다.

“단장님, 다음 주면 대공령으로 가실 때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부기사단장은 단장이 주기적으로 대공령에 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는 바쁜 와중에도 영주로서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단장이 존경스럽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진짜 왜 대공령에 들르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로.

“다음 주 일정을 미리 비워 놓겠―”

“아니.”

부단장이 당연한 듯 말하는 것을 시스테인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다음 주는…… 안 가도 될 것 같군.”

부단장은 눈을 크게 떴다.

디란타 대공이 주기적으로 들르던 대공령 방문 일정을 취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곧 혼인하실 이벨라 영애를 생각하여 그러시는 겁니까?”

시스테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 때문은 맞지.”

하지만 걱정되어서는 아니었다.

그녀가 마력을 안정시켜 준 덕에, 들끓는 마력을 풀어놓으려 대공령에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언제쯤으로 일정을…….”

부단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스테인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그 자신도 몰랐다.

오직 그녀에게 달려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얼마나, 가까이해 주시는가에 따라 일정은 달라질 것 같군.”

그가 부단장에게 손짓했다.

“일정은 유동적으로 조정 가능하게 처리해.”

“……알겠습니다.”

부단장은 살짝 눈을 크게 뜬 채 단장실에서 물러났다.

신기할 따름이다.

그 무뚝뚝하다는, 심지어 감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도는 대공도, 결혼할 사람에게는 다르구나 싶어서.

“얼마나 가까이해 주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녀가 함께해 주는 시간이 많을수록, 대공령에 갈 시간이 그만큼 아깝다는 뜻 아닌가.

부단장은 지난 3N년 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옆구리가…… 시리다…….

―달칵.

부단장이 그의 말을 본의 아니게 달콤한 말로 해석하며 나가는 사이, 시스테인이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그는 궁금했다.

그녀가 얼마나 제 마력을 더 가라앉혀 줄 수 있을지.

‘전 대공 전하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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