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25)화 (25/167)

제25화

다음 날 오후.

리벨은 의외의 만남에 당황했다. 아니, 의외는 아니지.

“여기서 뵙네요.”

시스테인과 재회할 줄은 알았지만, 황성에 들어가기 직전에 딱 마주칠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

대공가의 화려한 문양이 수놓인 마차에서 내린 시스테인이 직접 그녀에게 인사했다.

“어제는 자리를 비우셨었다고 들었습니다.”

올, 올 게 왔다! 리벨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레퍼토리에 대한 답은 이미 준비되었다! 와라!

“아, 영지를 좀 돌아보느라고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손부채질을 했다.

이벨라 자작이 하지 않는 영지 관리를 그녀가 가끔 한다는 건 주변 영지에도 왕왕 알려진 사실이었다. 시스테인이 그걸 모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셨습니까.”

시스테인은 여상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는 의심 없이 넘어가는 듯했다.

“제 마차로 모실까요?”

그는 더 말을 얹는 대신 리벨의 마차를 가리켰다. 마침 바퀴 한쪽이 삐걱거리고 있던 그 마차는 다름 아닌 이벨라 자작가의 마차였다.

시장에서 빌린 마차도 바퀴는 멀쩡했었는데, 젠장!

욕하던 참이었는데 잘됐다! 리벨은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시스테인은 그녀에게 흠 하나 없는 예법으로 손을 건넸다. 에스코트를 받은 그녀가 대공가의 마차에 올라탔다.

“저건 디란타 대공가의 마차가 아니오?”

“요즘 황성에 자주 들르신다는군.”

“이전엔 그러지 않으셨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지…….”

귀족들이 떠드는 소리가 리벨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원래 황가와 거의 교류가 없던 대공이 연신 황성을 오가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신기하지 않소? 저번에 ‘그 기사’ 사건 때에도―”

“쉿, 말조심하게.”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하필 그 이야기가 들어왔다.

그 얘기 하지 마!

리벨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이 디란타 대공은 앞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쏘아보는 건가?

원래 서늘한 표정인 건 알고 있었지만 하필 들리는 내용이 기사 이야기라, 그래 보였다.

“대공가에서 황가에 이렇게 자주 들르시다니, 신기한 일……”

―탁!

리벨은 재빨리 창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바깥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바깥 사람들이 말이 많네요.”

하하하하! 얘기할 거면 다른 얘기나 하라고! 리벨이 애써 미소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쿵쿵.

그러자 시스테인이 손을 들어 제가 기댄 벽, 다시 말해 마부석 쪽 벽을 두드렸다.

“신부님께서 바깥이 거슬리신다는―”

“아아아니그게아니고요.”

이 집은 청소를 왜 이렇게 좋아해? 리벨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활기차고 좋다는 뜻이에요.”

맞아, 좋지. 그 이야기가 내 기사 이야기만 아니면!

리벨이 웃어 보이자 시스테인은 그제야 손을 내렸다.

휴. 주님, 오늘도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리벨은 창밖을 노려보았다.

그래, 나라도 신기하겠어요. 황가하곤 척이라도 진 것처럼 교류가 없던 대공가가 요즘따라 달라졌으니까.

이 안에 있는 게 나만 아니면…… 나도 참 신기했겠어요…….

리벨이 아련하게 웃었다.

*  *  *

“어서 와, 내 아가들!”

리엔 황태후는 무려 머무는 별관 밖으로 직접 나와 둘째 아들 부부를 반겼다.

그녀가 빙그레 웃는 얼굴은 진심이었다. 늘 벼려진 칼날 위에서 걸어 다니는 것 같은 황궁 별관의 시종들조차 조금 마음을 놓을 정도로.

“요새 너희 생각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황태후는 들뜬 얼굴로 두 사람을 응접실로 들였다.

후후 웃는 황태후와 리벨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왜그렇게보세요? 일주일에한번씩문안인사를했어야했나?

리벨이 머리를 풀가동하려는 때에 리엔이 옅게 웃었다.

“나도 그이와 한창일 때가 있었는데.”

시중드는 자들을 모두 물려 버린 리엔 황태후가 가벼운 얼굴로 말했다.

“그이가 첩을 황후 자리에 앉히겠다고 내 잔에 독을 타기 전까진 말이야.”

“녜?”

리벨은 혀가 꼬여서 되물었다. 아니, 전대 황제 폐하는 병으로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

리엔 황태후는 살짝 웃는 얼굴로 리벨을 돌아보았다.

“몰랐니? 어지간한 귀족가에는 다 알려진 사실인데. 쉬쉬할 뿐이지.”

“…….”

시스테인 역시 알고는 있었는지 침묵했다. 리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원래 남을 죽일 생각을 하는 자는, 저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렇게 살벌하게 말한 리엔 황태후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방에는 식당처럼 웬 넓고 긴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간단한 식사나 하자는 말에 불려 온 리벨은 눈을 깜빡였다.

간단한…… 식사?

“……이쪽으로.”

시스테인은 그런 그녀에게 의자를 빼 주었다.

“앗, 고마워요.”

작게 속삭인 리벨이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그 맞은편에 시스테인이 앉은 순간이었다.

―짝짝!

리엔 황태후가 박수를 두 번 치자, 웬 거대하고 묵직한 트레이를 밀고 들어오는 자들이 보였다.

그건 다름 아닌 요리사들이었다.

―달칵. 탁.

그리고 테이블 위로 놓이는 건 굉장히 묵직한 접시들이었다. 절대 가벼운 식사로 보이지 않았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으렴.”

아니, 이 대사는 오색찬란한 밥상을 뜻하는 마법의 대사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드러나는 요리를 보면서 리벨은 눈이 튀어 나갈 뻔했다.

저 황금송이버섯은 가벼운 식사로 나오는 게 아닐 텐데?

그녀가 알기로 저 황금송이버섯은 한 송이에 수백 골드를 호가하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그냥 버섯볶음에 불과했다.

실화냐?

어느새 방에 들어온 나인과 다른 황태후의 그림자들이 식사 시중을 시작했다.

―달칵.

그림자들은 눈치도 움직이는 속도도 기가 막혔다.

리벨은 접시에 시선 한번 주는 것만으로 먹기 좋게 살이 다 발라져 접시에 내어지는 음식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암살자로 키워져서 사진은 못 찍더니 식사 시중은 기가 막히게 드네.

리벨이 홀린 듯 포크를 들며 생각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불렀단다.”

리엔은 그러는 사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뭐, 어떻게 지냈는지는 나인이나 다른 기사들이 다 보고했을 것 같은데……. 리벨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였다.

시스테인이 심각한 얼굴로 제 어머니의 말을 받았다.

“일주일마다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쿨럭.”

리벨은 하마터면 식탁 위로 기침할 뻔했다.

아니, 뭘 또 보고서를 올려요?

그녀의 반응에 리엔이 웃음을 터뜨렸다.

“얘가 이런다니까. 우리 아가가 애 좀 잘 녹여 봐. 응?”

“예?”

녹여요? 어떻게? 리벨이 눈을 굴리는 사이 리엔 황태후의 웃음이 짙어졌다.

“어머니로서 ‘부탁’이야.”

부탁이라는 말을 굳이 강조하는 건, 우리의 거래 아닌 거래를 상기시키려는 뜻일 것이다.

리벨은 침을 꼴깍 삼켰다.

“……노력해 볼게요.”

노력. 노오력. 근데 그게 쉽지가 않거든요? 리벨은 간신히 웃으며 시스테인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설마 보고서에 뭐 쓸지 생각하는 거 아니죠?

“그나저나 아가 소식도 봤단다.”

그때 리엔 황태후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기자’가 의전원에서 사진도 찍었던데.”

그 말에 리벨에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분명 조금 전까지 생각에 잠겨 있던 시스테인의 시선이 빠르게 리엔에게로 꽂혔다.

‘그 기자’ 이야기가 나온 후로부터였다.

그거에만 반응하지 말아 주실래요? 리벨은 다시 목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시스 소식을 신문에서 보자니 신기한 기분이지 뭐야. 물론 시스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기사 뒷얘기를 아는 게, 또 정보가 많은 자의 특권이 아니겠니.”

리엔 황태후가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기자’한테 고마워해야겠어.”

자구 그 기자에 악센트 주지 말아 주실래요! 따지고 싶었지만 현실은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었다.

모르는 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리벨은 웃음을 짓기 위해 힘썼다.

“네, 그 용케 찍어서 올렸더라고요. 의전원은 쉽게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잖아요.”

리벨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찍은 건 아니고요! 하하하하! 아무튼 아니고!

“그러게. 의전원 아이들이 우리 아가 일이라 신경 써 준 모양이야.”

리엔 황태후가 빙그레 웃었다.

“덕분에 주목도 받은 모양이더라. 우리 아가하고 시스한테는 좋은 일이지, 안 그러니?”

“그럼요.”

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적 미소! 웃음! 미소! 편집장을 보고도 웃었던 나다! 할 수 있다!

리벨이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시스테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교계에서는…….”

리엔 황태후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기자 이야기만 아니라면 긴장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이야기들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리엔 황태후의 살벌한 성정을 생각해 본다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대화였다.

“…….”

리벨은 조금 놀란 반면, 시스테인은 이런 모습이 익숙했다.

그는 다소 제 어머니가 새신부에게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야기에 끼어들어야 하나.

곧 새신부가 될 사람은 자신보다 어머니와 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었다.

이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란 건 그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부러 신경 쓴다고 입을 열었다간 돌발 상황에 약한 새신부는 의자에서 튀어오를 듯 놀랄 게 분명했다.

여태 놀라는 걸 몇 번이나 봐 왔던 시스테인은 굳이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문득 움직이던 식기를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배려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탓이었다.

“…….”

……하긴, 리벨 이벨라, 이 사람 앞에서는 마음이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 들끓을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마력이 그녀 앞에서만큼은 조용했으니까.

그가 다시 식기를 들었다. 그사이 황태후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나저나 아가, 롤란드 백작에게는 복수할 생각이지?”

이 이야기는 시스테인도 관심이 있는 것이었다.

시스테인의 시선이 리벨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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