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42)화 (42/167)

제42화

[디엘렌 가, 아닌 밤중에 날벼락]

[디엘렌 영식, “파혼, 합의되지 않은 이야기”…… 알레로 자작의 답은?]

온갖 기사가 신문을 도배했다.

어지간한 기사로는 따내기도 힘든 크라이베리 신문 1면에도 실렸을 정도였다.

이번엔 당연히 슈 기자의 기사는 아니었다.

“기사가 뜨면서 감찰기사단도 떴나 봐요.”

리벨은 신기한 눈으로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몰랐는데, 나랑 같이 감찰기사단 쪽에서도 디엘렌 가를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리벨이 신혼으로 정신없는 동안, 디엘렌 가도 정신이 없었던 듯했다.

“오…….”

리벨은 며칠간의 밀린 신문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자들은 사교철이 막 시작되자마자 터진 가십에 정신도 못 차리고 기사를 폭풍처럼 써내고 있었다.

들뜬 기자들과 활기찬 신문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해, 리벨이 다시 웃었다.

“소식이 마음에 드십니까.”

시스테인이 찻잔을 들며 물었다. 아침 후의 모처럼의 티타임이었다.

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많이요. 근데 감찰기사단까지 온 줄은 몰랐어요.”

―쨍.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유독 시스테인이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조금 세게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가 평소처럼 입을 열었다.

“……감찰기사단도, 눈과 귀를 닫고 살진 않을 테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리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요. 일개 기자가 알 정도면…….”

리벨은 신문을 다시 살폈다.

디엘렌 가가 원래 뭐로 돈을 벌던 집안이었는지부터 시작해서, 디엘렌에 대한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 기사들의 시초가 된 벨 기자…… 그니까, 나는 디엘렌하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서 꼬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감찰기사단에게는 나보다 훨씬 더 정보를 모으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할 터였다.

리벨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오늘 아침에 온 초대장들입니다.”

집사 헬리아가 두 사람 사이의 테이블에 초대장 무더기를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찻주전자를 잡아 두 사람의 찻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오늘도 많네요.”

리벨이 눈을 반짝였다.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있는 방에도 화로는 있었지만, 오늘은 저 초대장들을 다 불태울 마음은 없었다.

“…….”

“…….”

리벨과 시스테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편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찾는 이름은 하나였다.

―탁.

그리고 이내 시스테인이 먼저 그 이름을 찾아냈다.

“여기 있군요.”

그가 들어 보인 편지에 리벨의 시선이 향했다.

[디엘렌 가의 연회에 귀한 손님을 초대합니다.]

“오.”

리벨은 재빨리 그의 옆으로 의자를 옮겨 붙였다.

―화르륵!

나머지 쓸데없는 초대장은 모두 화로로 집어넣은 후였다.

그러고는 자세히 편지를 살폈다.

[곧 돌아올 24일 오후 8시,

새롭게 단장한 디엘렌 별저에서 손님 여러분을 모십니다.]

“디엘렌 별저?”

리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스테인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시는 장소입니까.”

“네. 근데…….”

한동안 롤란드 디엘렌과 사귀었던 리벨이 그 별저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거기 완전 낡았는데?”

그녀가 알기로 관리가 안 된 지 오래인 건물이었다.

“새롭게 단장했다고 하는군요.”

그 말에 시스테인이 초대장 한쪽을 가리켰다.

리벨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거길…… 연회장으로 쓸 정도로 리모델링을?”

리벨이 언젠가 스치듯 봤던 별저는 덩굴이 반쯤 뒤덮다 못해, 그 덩굴이 회색으로 말라비틀어진 곳이었다.

대체 거길 어떻게 쓰려고?

[200여 분 이상의 손님을 모시는 이번 연회에서는……]

시스테인은 편지지를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연회라면, 아예 새 건물처럼 단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

보통 작은 사교회는 10명 내외의 손님을 초대하고, 경조사가 있을 때나 몇백 명씩 손님을 부른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디엘렌 가에서 대규모 연회를 준비하는 게 분명했다.

무리해서라도.

“가문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나 보군요.”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시스테인이 결론을 내렸다.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담담하게 방 안을 울렸다.

“그러게요.”

리벨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디엘렌 가에서 말한 200여 명은 대부분 상인들과 남작, 자작, 백작위의 중간층 귀족들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평소 친분이 있는 귀족들을 다 초대한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연이 닿은 곳이라면 선물이라도 하나 얹어서 초대장을 보냈을 터였다.

이번 연회가 얼마나 성대하게 열리느냐에 따라 디엘렌 가가 얼마나 건재한지를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선물이 오면 받은 쪽에서도 입 싹 닦을 순 없으니 누구라도 하나 보내게 되어 있고.

“우리가 오길 딱히 기대하진 않은 것 같네요.”

리벨은 편지지를 앞뒤로 돌려보면서 말했다.

그야 리벨과 롤란드의 사이를 생각하면 오지 않길 원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그 전에 디엘렌 백작가 따위의 연회에 디란타 대공 부부가 행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이 초대장을 보낸 건 예의상 보낸 것에 불과했다.

“근데 어쩌나, 우린 갈 건데.”

리벨이 편지지를 탁 접었다.

그녀는 얼마 전 티타임에서 황태후가 보던 사교회 목록을 떠올렸다.

‘이곳이 좋겠구나.’

거침없이 종이를 넘기던 황태후 리엔이 가리킨 연회가 바로, 이 디엘렌 가의 연회였다.

감찰기사단에게 탈탈 털린 것도 모자라 알레로 가에게 파혼당할 위기에 처한, 아니, 사실상 파혼당한 디엘렌 가는 이번 연회에서 반드시 주목받아야 했다.

가문의 건재함을 알리고 기존에 거래하던 상단들이나 알레로 가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거기에 대공 부부가 가면?

그것도 그곳이 대공비의 사교계 데뷔 무대가 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성대한 연회를 열 거야. 대공비의 데뷔 무대로도 나쁘지 않지.’

황태후 리엔이 말한 대로였다.

물론 리벨도 디엘렌이 작은 연회를 열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별저를 아예 갈아엎을 정도로 사활을 걸 줄은 몰랐지만.

리벨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쪽에서 시선을 싹 끌어 디엘렌 가의 부흥을 막는다는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감찰기사단에 갔으면 벌금도 꽤 냈을 텐데.”

분명히 그 집의 구린 것이 불법 세금 징수만은 아닐 테니 뜯긴 게 돈뿐만은 아닐 터였다.

아마 국고로 디엘렌 가의 기둥뿌리 몇 개는 들어갔을 게 분명하다.

“별저를 갈아엎을 만한 돈이 어디서 난 거지?”

리벨이 고개를 기울였다. 시스테인이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이번을 가문 부흥의 기회로 삼았으니 어디에서든 자금을 끌어왔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알레로 가를 붙잡아야 했을 테니까요.”

리벨은 눈을 깜빡였다.

시스테인은 그녀의 생각보다 디엘렌 가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나랑 결혼하기로 한 게 농담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한 것도 알레로 가의 자금줄을 붙잡기 위해서였지.

리벨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편지지를 내려다보았다.

“알레로 자작이 이 연회에 올까요?”

오면 오는 대로 디엘렌 백작이 알레로 자작에게 설설 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재미있을 터였다.

시스테인은 그녀를 살피다가 물었다.

“오길 원하십니까?”

개구쟁이처럼 반짝이는 리벨의 자줏빛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레로 자작가는 감찰에 붙잡혀 간 가문과 혼인으로 연을 맺고 싶진 않을 거고, 디엘렌 가는 알레로 자작가를 붙잡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잖아요.”

그녀가 슬쩍 웃었다.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요.”

마음 같아서는 알레로 가가 디엘렌 가를 시원하게 걷어찼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리벨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잘 생각해 보면 알레로 가도, 나랑 롤란드가 사귄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거다.

분명 디엘렌이 줄 수 있는 이득 때문에 그렇게 결혼할 것일 텐데…….

“…….”

리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디엘렌 가가 감찰기사단에게 털리고도, 이전에 약속한 것보다 더 큰 이득을 안겨 줄 수 있다고 하면 알레로 가도 결혼을 재개할 것이다.

뭐 신문 기사가 좀 시끄럽게 나겠지만 포장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베니카 영애와 디엘렌 영식의 사랑은 무엇도 막지 못했다느니 어쩌고저쩌고하는 거.

기사 몇 명 섭외해서 기사 크게 내면 그만이긴 하다.

문제는 기둥뿌리가 우두둑 부러져 나간 디엘렌 가에서 알레로 자작가에 뭘 해 줄 수 있느냐였다.

그건 연회에 가 보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이 연회를 마님의 데뷔탕트 무대로, 부족함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눈을 반짝이는 리벨과, 그런 그녀를 살피는 시스테인 앞에서 집사 헬리아가 말했다.

―히히힝!

그렇게 며칠 후, 신혼으로 조용했던 대공가 저택에서 화려한 마차가 출발했다.

목적지는 디엘렌 영지였다.

그건 제국의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행차였다.

사교계의 귀족들은 물론이고, 초대장을 직접 보낸 디엘렌 가조차도 짐작하지 못한 파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