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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43)화 (43/167)

제43화

디엘렌 백작과 롤란드 디엘렌은 손님들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오늘 오는 손님들은 다른 때보다 더 극진하게 대접했다.

연회에 오시라며 작은 선물을 보내는 것은 물론, 연회에 참석해 주어 감사하다는 의미로 또 다른 선물까지 준비했다.

물론 받는 자들이 규모 있는 상단의 상인들이나 영향력 있는 귀족들인 만큼, 시시한 선물은 아니었다.

이름 있는 장인의 손길로 빚어진 액세서리부터 최고급 와인 등등.

그 선물에 나간 돈도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였다.

디엘렌 백작조차도 이렇게 큰 규모의 돈을 한 번에 써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래야만 했다.

“오늘, 실수 없어야 할 게다. 특히 알레로 자작 영애께. 알아들어?”

디엘렌 백작은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제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자작가 영애라며 존대도 안 할 땐 언제고, 언제부터인가 디엘렌 백작은 그들에게 극진하고 깍듯해지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했다.

지금 디엘렌 가는 가문의 기둥뿌리가 다 뽑혀 나간 상태였다.

이번 연회를 열기 위한 돈도 평소 디엘렌과 깊이 연락하던 큰 상단에서 빌려준 것이었다.

모처럼 온 기회이니 놓칠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롤란드도 그런 가문의 사정을 알기에,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떻게든 베니카 알레로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그녀가 날 사랑한 건 사실이다.

롤란드 디엘렌은 단단하게 마음먹으면서 생각했다.

비록 이번에 디엘렌의 어두운 비밀이 좀 들통나긴 했지만, 그는 어떻게든 알레로 영애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내 사랑스러운 베니카. 나만의 꽃.’

그런 꿀 떨어지는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알레로 영애였으니까.

그는 베니카 알레로의 속도 모르고 그렇게 자신 있게 생각했다.

듣기 좋은 말, 입에 발린 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정도 규모의 연회를 열고, 별장을 통째로 리모델링할 정도면 아직 우리 가문이 망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겠지.

뭔가 남은 저력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흐흠. 어서 오십시오!”

롤란드 디엘렌은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며 자신 있게 웃었다.

알레로 가 사람들은 보나 마나 와서 놀랄 것이다.

[알레로 가, “디엘렌 가와의 혼인은 무효”]

[“이번 결혼은 사기 결혼” 알레로 자작, 디엘렌 가와의 인연 부인]

온갖 인터뷰를 다 낸 게 괘씸하긴 하지만, 이번엔 디엘렌 가에서 좀 굽혀 줄 차례였다.

“일단 우리가 개털이 아니란 걸 알면…….”

롤란드 디엘렌의 계획은 이러했다.

디엘렌 가에 남은 저력이 있다는 걸 알면, 알레로 가에서도 디엘렌 가의 작위나 영지가 가진 잠재력을 보고서라도 디엘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로 공식적인 결혼 약속만 다시 받아 내면 된다!

이미 이번 연회에서 어떻게 베니카 알레로의 마음을 살지, 모든 각본은 다 짜여 있었다.

게다가 중요한 정보까지 이미 손에 넣었다.

[알레로 자작가에서 마차가 출발했답니다. 알레로 자작과 베니카 알레로 영애께서 타셨다고 합니다.]

알레로 가에서 아예 초대를 거부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좋아, 계획대로만 진행하면 된다!

롤란드 디엘렌이 머릿속에서 각본을 다시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그의 계획에 전혀 없던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주, 주, 주인니임!”

하인이 헐레벌떡 멀리에서부터 달려왔다.

디엘렌 백작이 인상을 썼다.

“귀한 손님들 앞에서 무슨 경거망동이란 말이냐!”

이런 없어 보이는 행동이라니, 가문의 품위가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디엘렌 백작이 살펴본 손님들은 생각보다 하인의 꼴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냥 관심이 없었다.

“그분께서 오셨다고?”

“이런 곳에?”

“허어…….”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로 하인이 급히 외쳤다.

“디란타 대공가의 마차가 오고 있습니다!”

“?”

“???”

디엘렌 백작과 롤란드 디엘렌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렸다.

왜? 이런 누추한 곳에 대체 왜 오십니까?

돈을 덕지덕지 처바른 곳 한가운데에서, 디엘렌 백작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  *  *

―덜컹!

리벨과 시스테인이 탄 마차는 거침없이 디엘렌 가 영지의 경계를 넘었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온 디엘렌 별저는 리벨이 알고 있던 건물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헐.”

리벨이 입을 떠억 벌릴 정도로.

원래 회색빛으로 음침하게 잠들어 있던 저택은 번쩍번쩍거리는 새하얀 저택으로 탈바꿈했다.

자세히 보면 건물의 골격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안팎을 완전히 새로 단장한 듯했다.

이 정도 리모델링이면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오래 걸릴 터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래 안 걸린다는 걸, 지난 결혼식용 건물을 보고 알게 된 리벨이었다.

“……이 정도 돈이 그 집에 남아 있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빠칭! 리벨의 기자로서의 감이 발동했다.

이거 분명히, 누가 뒤에서 밀어준 거다!

어지간한 가문이 아니다. 리벨이 눈을 반짝일 때였다.

시스테인도 같은 생각인 듯 저택을 주시하고 있었다.

“디엘렌 가의 자금 규모로는 이 정도 연회가 불가능합니다.”

그 말에 리벨은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 사람…….

“디엘렌 가에 대해 잘 아세요?”

그녀의 질문에 시스테인은 틈도 없이 답했다.

“예.”

바로 돌아온 답에 리벨이 눈을 깜박였다.

디엘렌 가가 디란타 대공가에서 신경 쓸 만한 가문이었던가?

“혼인 전에, 급히 알아보던 것이 저 가문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시스테인이 말을 이었다. 리벨이 몇 번 더 눈을 깜빡였다.

그럼 그렇게 바빴던 이유가……?

“결혼 전에는, 알아 두어야 하니까요.”

시스테인의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나랑 결혼하기 전에 디엘렌 가에 대해서 알아본…… 그래, 알아볼…… 수도 있지.

리벨이 볼을 긁적였다.

신부의 전 약혼자…… 아니, ‘농담 약혼자’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스테인 폰 디란타가 그랬다니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잘 쓰는 사람이었으면 리엔 황태후 폐하께서 그렇게 걱정하진 않으셨을 텐데.

“……디엘렌에, 대해서요?”

리벨이 슬그머니 물었다. 시스테인이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게,”

그의 푸른 시선이 리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리벨의 남편이 되기 전에도, 후에도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테니.”

하긴, 나랑 롤란드 디엘렌이 사귀었으니까…….

리벨이 입을 몇 번 뻐끔거렸다.

신문엔 농담 결혼 어쩌고로 나긴 했지만 나랑 롤란드 디엘렌이 결혼하기로 했었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특히 황제 폐하랑 황태후 폐하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 사람이라고 모를 리가 없지.

그러니까 요컨대 정말로, 내 전 남친이라고 조사한 거? 그런 거?

믿기지 않게도, 그런 거?

리벨은 상상도 못 했던 결론에 살짝 입을 벌렸다.

리엔 황태후 폐하, 폐하의 아드님이…… 아드님이 달라졌어요! 댁의 아이가 달라졌어요!

시스테인의 평소 성정을 생각하면 그의 입장에선 매우 세심히 신경 써 준 것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리벨이 뇌까렸다. 아니, 근데 로맨틱한 말을 저렇게 목석처럼 하는 건 여전하시네.

리벨은 새삼 얼굴이 타올라 손부채질을 했다.

―덜컹!

그러는 사이, 마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오는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디엘렌 백작과 롤란드 디엘렌이 멀리 보였다.

저 흙먼지에 뒹군 것 같은 칙칙한 회갈색 머리카락을 내가 왜 좋아한 거지?

리벨은 나란히 서 있는 부자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쪽 마차를 보는 디엘렌 부자의 얼굴도 마치 진흙이라도 씹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웃기 위해 애쓰는 것이 가관이었다.

그 모습에 리벨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우리가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나 봐요.”

시스테인은 그 말에 별장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이런 낡은 곳에서 하는 연회에, 디란타 대공비가 올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요.”

담담한 목소리가 가리키는 별장은 안타깝게도 디엘렌 가에서 사활을 걸고 리모델링한 번쩍번쩍한 별장이었다.

황가 기준으로 생각하면 고급…… 마구간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리벨은 애잔한 마음을 담아 웃어 주었다.

“그래도 전 이번 데뷔 무대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리벨은 천천히 마차가 멈춰 서는 걸 느끼며 말했다.

뭣보다, 저 디엘렌 부자를 멕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그녀는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는 별개로 이 사람에게는 확실히 해 줘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건 제 복수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디란타 대공비로서 첫 사교회 참석이기도 하다는 거 알아요.”

그만큼 중요한 일이죠. 리벨이 눈을 반짝였다.

“잘 부탁해요, 시스.”

“…….”

그 말에 시스테인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신부의 자줏빛 눈동자에서는 반짝이는 별빛 같은 마력이 흩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마력은 그에게 닿아, 그의 끓어오르려는 마력을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당신이 사교계 데뷔를 하든 안 하든, 어떤 모습으로 데뷔하든 난 아무 상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시스테인은 그녀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이내 마차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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