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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46)화 (46/167)

제46화

“……아닙니다.”

리벨이 놀라서 시스테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시스테인은 제 심장 주변의 마력이 더욱 들끓는 것을 느꼈다.

리벨이 놀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가 놀랐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대공령에서 충분히 마력을 터뜨리고 왔어야 할 것을, 오래 억누른 탓일까.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마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시스……?”

리벨이 걱정스럽게 그를 볼 때였다.

시스테인의 눈에 화원 한쪽이 보였다. 정확히는 화원에 있는 라이아 약초가.

“……저곳에서, 조금 쉬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가 흔들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말했다.

리벨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  *

진짜 어디 아픈가?

리벨은 시스테인을 살폈다. 평소다운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안색이 유독 창백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가 보였던 표정은 분명 통증에 일그러지는 표정이었다.

“이쪽이죠?”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을까, 화원 깊숙이 들어오자 그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예.”

그리고 그가 마침내 다가간 곳은…….

리벨은 그가 다가간 곳에 있는 꽃을 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하필 여기에 왜 저게!

영 좋지 못한 곳이잖아!

리벨은 꽃이나 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스테인이 지금 만지고 있는 꽃에 대해서는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저게 왜 여기 있냐고!

그건 다름 아닌 라이아 약초였다.

[(단독) 디란타 대공, 그가 대공가의 대를 끊겠다 선언한 이유]

리벨 자신이, 편집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썼던 그 문제의 고자 기사!

거기에 시스테인 폰 디란타가 밤일 능력이 없다는 근거로 제시된 것이 저 라이아 약초였다.

리벨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니, 저게 왜 저기 있어?

롤란드 너, 안 서???? 정력이 부족해???

“…….”

시스테인은 그 꽃을 손등으로 쓸어 보고 있었다.

근데 저 사람은 또 왜 하필이면 저 꽃 앞에 가서…… 아, 저 사람도 저거 좋아하지.

“……?”

리벨은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라이아 약초는 필요도 없을 사람이 왜 라이아 약초를 찾았던 거지?

‘……아.’

리벨은 지난 신혼 밤을 떠올렸다. 하룻밤도 아니고 길게 이어졌던 그 밤들.

리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설마…… 설마 그거, 약발(?)이었습니까?

시스테인이 들었다면 대공저의 의자가 아니라 화원이 통째로 날아갔을 오해였지만, 다행히 리벨의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리벨은 슬그머니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시스테인은 라이아 약초가 끝도 없이 늘어져 있는 화단 앞에 앉아 있었다.

―사락.

그의 옆으로 흔들리는 진한 푸른빛의 라이아 약초는, 그의 화사한 금발과 대비되어 더욱 눈에 띄었다.

아니, 그의 푸른 눈동자가 라이아 꽃의 꽃잎 같기도 했다.

그리고 제 눈을 닮은 꽃잎을 건드리는 그는, 누구보다도 귀족적인 새하얀 예복을 입고 있었다.

아.

리벨은 순간 그 손끝에 시선을 온전히 빼앗겼다.

그가 건드린 꽃이 시들어 있지만 않았다면 더욱 오랫동안 그랬을 것이다.

“?”

근데 시들어 있는 꽃은 시스테인이 건드린 꽃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있는 주변 라이아 약초가 죄다 시들시들했다.

아니, 롤란드 이놈은 화원 관리를 어떻게 시키는 거야?

“그…….”

리벨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라이아 약초 좋아하시나 봐요?

그렇게 말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이 풀과 시스테인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미 거하게 기사가 났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것도…… 벨 자신의 손으로 올린 기사가.

새삼스러운 기억에 입을 오물거리던 리벨이 슬그머니 뒷말을 바꿨다.

“라이아 약초……네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색은 이제 평소처럼 잔잔하게 돌아와 있었다.

뒤흔들린 적은 없다는 것처럼.

“예.”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리벨은 그런 시스테인을 살폈다.

“…….”

살짝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고 있는 그가, 라이아 약초를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이러쿵저러쿵 쓰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라이아 약초로 약을 만든다 한들 약효가 며칠…… 가진…… 않을…… 거…… 아니야……?

리벨은 신혼 밤을 다시 떠올렸다가 고개를 홱홱 저었다.

그리고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그녀의 입이 결국 열렸다.

“시스도 라이아를 수집하죠?”

그 말에 감겨 있던 시스테인의 눈이 뜨였다.

“예.”

고민 하나 없는 답이었다. 리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수집하세요?”

그 말에 시스테인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라이아 약초에는 특별한 효능이 있습니다.”

“그, 그건 알죠.”

리벨의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졌다.

지지진짜 그 용도였습니까? 진짜 며칠 동안 했던 그건 전부 약발이었어요?

리벨이 목끝까지 올라온 말을 억누를 때였다. 시스테인의 말이 조용히 이어졌다.

“마력을 가라앉히는.”

“?”

엥? 리벨이 눈을 몇 번 끔뻑였다.

“라이아 약초에 그런 효과가 있다고요?”

“예.”

시스테인은 라이아 약초 화단을 돌아보았다. 아까보다 더 시들해져 있었다.

그에 반해 그의 안색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닙니다……, 저도 우연히 알았으니.”

시스테인은 축 늘어진 라이아 약초를 보다가, 리벨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리벨은 입을 몇 번 오물거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사용하시는 게 아니에요?”

물어봤다! 물어봐 버렸어! 하지만 궁금한 걸 어떡해! 리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을 때였다.

텅 비어 버린 그녀의 머리를 시스테인의 말이 거침없이 후려갈겼다.

“사용하시길 바랍니까?”

완전히 혈색이 돌아온 그의 얼굴이 리벨과 가까워졌다.

“아니면……,”

그의 낮은 목소리가 리벨의 귓가를 울렸다.

“―사용한 것, 같습니까?”

“아아아아니요?”

그럴 리가요? 리벨은 호다다닥 그에게서 물러섰다.

시선만 들어 쳐다보는 그에게 리벨이 손을 내저어 보였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럴 틈이 어디 있었다고.”

아니란 거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리벨은 그의 눈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고 생각했다.

사용한 것 같다고 하면 오늘 밤 당장이라도 아니란 걸 증명해 줄 것 같았다.

리벨이 손을 마구 내젓자,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있던 시스테인은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

리벨은 그 순간 시스테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분명히 보았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시스테인을 가리켰다.

“웃었죠?”

“아닙니다.”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리벨은 그가 시선을 돌린 곳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아닌데, 분명히 봤어요. 이렇게 웃는 거.”

리벨이 그의 입꼬리를 손끝으로 슬그머니 올려 주었다.

“…….”

“…….”

그리고 시스테인의 입꼬리에 그녀의 손끝이 닿은 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한 10초쯤 침묵이 흘렀을까.

슬슬 정신을 차린 리벨의 시선이 제 손끝에 멎었다.

“아아아아아니.”

리벨은 불에라도 덴 듯 손을 재빨리 뗐다.

아니, 떼려고 했다.

―탁!

그녀가 손을 뺀 순간, 시스테인의 손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시스?”

리벨이 눈을 더 빠르게 깜박였다. 그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볼 찌른 건―”

“좋았습니다.”

“네?”

볼 찌른 게? 리벨이 제 손끝을 쳐다보았다가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시스테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해 주신다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뭐가요?”

리벨이 되묻는 사이, 시스테인이 그녀의 손끝을 제 볼에 가져다 댔다.

그의 푸른 시선이 리벨을 올려다보았다.

“제가요.”

시스테인이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마치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가 눈을 감았다.

“이러고 있으면, 들끓는 마력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니까.”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  *  *

디엘렌 가의 연회는 이미 반쯤 파장 분위기였다.

“디란타 대공 전하께서는 아직도 나가 계신가?”

“대공비 전하께 말 한마디 못 붙여 봤는데…….”

이미 손님들은 대공 부부가 언제쯤 돌아올지 눈치를 살피느라 디엘렌 가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흐음…….”

알레로 자작가 사람들도 연회에 참석하긴 했지만, 그들은 디엘렌 가의 연회 꼴을 보고는 의례적인 인사만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디엘렌 백작님.”

“오오오, 어서 오십시오. 만나 뵙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반기는 디엘렌 백작과 무표정한 알레로 자작의 표정은 천국과 지옥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저번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해서 조심스럽게 드릴 말씀이―”

디엘렌 백작의 말을 알레로 자작은 곧바로 잘라 냈다.

“오늘은 대화 나누기가 피곤하군요.”

그 후 그들은 연회장에 있는 몇 시간 동안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롤란드도 롤란드대로 기를 쓰고 있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새빨간 꽃 한 송이를 들고 베니카에게 다가갔다.

“베니카.”

그리고 그렇게 부르자마자, 베니카 알레로는 그에게서 몸을 홱 돌려 버렸다.

“감찰기사단에서 주시하고 있는 가문과 말 섞을 생각 없어요.”

알레로 자작가는 상단으로 규모가 커진 가문이었다.

상단은 특히 영지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그들이 시장에서 불법 세금 징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디엘렌 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베니카. 잠깐만 이야기하자. 응?”

하지만 롤란드 디엘렌은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베니카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감찰기사단에 그렇게나 털렸을 텐데도 이렇게 화려한 연회를 여는 걸 보면, 아직 그녀도 모르는 디엘렌 가의 저력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디엘렌 가는 백작위인 데다 그 작위를 통해 높은 자리의 귀족들과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이기도 했다.

“흐음.”

베니카는 못 이기는 척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 감찰 일로 그 높은 가문들도 디엘렌 가와 손을 많이 끊었을 것이다.

디엘렌 가와 친하게 지내 봐야 감찰기사단의 시선만 받을 테니까.

“베니카, 제발. 응?”

원래대로라면 롤란드 디엘렌이 저보다 작위가 낮은 자작 영애인 베니카에게 이렇게 애절하게 매달릴 일은 없었다.

보나 마나 뭔가 디엘렌 가에서 알레로 가에 제시할 수 있는 이점을 들이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철저하게 상단 집안의 딸인 베니카는 그를 홱 돌아보았다.

“뭐 때문에 자꾸 부르는 거죠? 알레로는 디엘렌에서 우리에게 숨긴 게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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