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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03)화 (103/167)

103화

분명 엊그제까진 쥬리 백작 영애가 필레 공작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문만 돌았다.

그런데 어느새 소문은 열애설로 번져 버린 모양이었다.

“역시 발 달린 소문은 제 모양대로 전해지는 법이 없다니까.”

[필레 공작은 최근 번지고 있는 쥬리 백작 영애와의 열애설에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소문에 많은 분들의 눈과 귀가 주목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며, “오해 없도록 확실히 말씀드리건대, 저와 쥬리 백작 영애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며 사교계에서의 일상적인 접촉만 있었을 뿐”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블레어 디망 경과는 자주 얼굴을 보는 바, 이번 소문으로 그와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며, “부디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사교계 사람들은……]

한마디로 난 결백하다고 열심히 써 놓은 인터뷰였다.

“역시 필레 공작은 전면 부인할 수밖에 없지.”

리벨은 쥬리 백작 영애를 생각하다가, 혀를 찼다.

“쯧쯧.”

이야, 공식적으로 까였네?

하지만 불쌍하진 않았다. 그러게 누가 유부남한테 대시하래?

지금쯤 쥬리 백작가의 저택 앞에는 온갖 기자들이 몰려가 진을 치고 있을 터였다.

그들은 대부분 블레어 디망 경과의 관계를 물어볼 거고, 여기서 쥬리 백작 영애가,

‘전 결혼하기 싫어요!’

같은 소리를 했다간 카리스가 옳다구나 모가지를 날려 줄 터였다.

“쯔쯔.”

리벨은 거듭 혀를 찼다.

어쨌든 쥬리 백작 영애는 황가의 육촌인 블레어 디망 경과 결혼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행운인 줄 알아라.

원래대로라면 반역에 어설프게 손댔다가 필레 공작과 같이 모가지가 날아가는 역이었지만, 이번에는 목숨은 건졌으니까.

“…….”

리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쯤 쥬리 백작 영애는 달콤한 권력의 꿈이 박살 난 것에 펑펑 울고 있겠지만, 그건 리벨이 알 바가 아니었다.

언제 꼭, 한번 실수인 척 그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아 버리리라!

그러게 시스한테 왜 들이대, 들이대길!

리벨이 속으로 분노할 때였다.

그녀에게 아주 결정적인 정보가 들어왔다.

“마님, 크라이베리 신문 1면에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건 다음 날 아침 나인이 전해 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문 1면에 광고 좀 실릴 수 있지, 했을 테지만 리벨은 달랐다.

“광고 자리가 아닌데 실렸다는 말이지?”

저번에 슈의 기사 자리가 펑크 났을 때 급히 렐라 의상실 광고로 메워졌던 것처럼.

“예.”

나인이 말하며 그녀에게 크라이베리 신문을 내밀었다.

“음…….”

리벨이 1면에 실린 광고를 확인하고 뒤로 신문을 빠르게 넘겼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광고 수를 빠르게 세어 나갔다.

어차피 눈에 띄는 광고만 세는 것이니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아홉, 열, 그리고 열하나.”

리벨은 마지막 자리에 있는 광고를 손으로 툭 짚었다가 1면으로 다시 신문을 넘겼다.

“이번에도 열한 개네.”

원래 크라이베리 신문의 광고 칸은 열 칸.

미리 예약하는 자리인 만큼 열한 번째 자리가 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저번 렐라 의상실과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렐라 의상실 지하에는 이상한 것이 있었지.

[카실라 무기점, 고급 예식용 장검부터 실전에서 쓰일 고급 병장기까지!]

그리고 오늘 그 자리에 있는 건 웬 무기점이었다.

“여기 유명한 데 아니지?”

리벨이 나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저번과 완벽히 같은 케이스다.

“이 근처 조사해 봐. 혹시 저번 살롱하고 비슷한 시설이 있는지.”

“알겠습니다.”

리엔의 그림자가 닿지 않은 곳은 제국에 몇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조사가 결과를 거두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후.

“카실라 대장간은 최근에 지어진 곳입니다. 때문에 그 근처로 공사 자재가 오간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나인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런데 자재를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대장간의 외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고급 자재가 다수 쓰인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다. 팔짱을 끼는 리벨 앞에 나인이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탁.

예의 그 살롱에서 봤던, 카지노 칩 같은 것이 그녀의 앞에 놓였다.

“그리고 이전에 봤던 물건들도 옮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장간 근처의 풀숲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좋아…….”

리벨은 칩을 집어 들었다.

이로서 증거는 갖추어졌다. 이제 그와 담판 아닌 담판을 지을 때였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마신 리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시스, 할 말이 있어요.”

그날 저녁 시간, 사용인들을 제 손으로 직접 물린 리벨은 시스테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평소에 사용인들을 물리는 건 늘 그였기에, 시스테인은 리벨이 사용인들을 물렸을 때부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예삿말이 아님을 짐작했기에.

“심각한 일입니까, 리벨.”

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걱정도 다소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리벨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체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에게 감찰기사단으로서 도움을 주길 원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일단 그는 리벨 자신에게 감찰기사단장이란 사실을 밝힌 적도 없었다.

그건 리엔 황태후가 마음대로 밝힌 것이지, 그가 밝히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기엔 난감했다.

……하지만, 카실라 대장간 지하의 상황을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나인이 자세히 알아본 결과 그곳에는 새로운 ‘살롱’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물건 일부를 옮기는 등의 모습도 포착되었다.

한마디로 필레 공작의 살롱은 이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사 시기에는 혼란스러운 법.

만일 수사를 하거나 잠입을 하려면 지금뿐이었다.

“…….”

말을 고르고 고르려던 리벨은 결국 입을 열었다.

어차피 감찰기사단장임을 알고 있다는 걸 숨길 순 없으니, 괜히 짱돌 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제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 리벨이 입을 열었다.

“시스의 정체를 알아요.”

시스테인은 그 말에 리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움직이던 식기는 멈춘 채였다.

늘 하던 경청의 자세였다.

하지만 이번엔 놀라 멈춘 것도 있으리라.

“시스테인이…… 감찰기사단장이라는 것,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시스테인의 식기가 다시 움직였다.

안 놀라나?

리벨이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시스테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안 숨긴 거였냐!

순간 고민해진 게 허망해져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랬다.

하긴, 감찰기사단장인 걸 철저하게 숨기려고 했으면 저번에 서부 사건 수사 일지는 왜 줬단 말인가?

그것도 제가 ‘범죄 추리 같은 거 좋아해요’ 같은 말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멍청해진 기분에 이마를 짚는 것도 잠깐이었다.

고민 없어지면 좋지, 뭐!

땅 파면 뭐 하냐! 리벨은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열었다.

방금까진 워밍업이었고, 그녀가 할 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래서 감찰기사단장인 시스의 도움이 필요해요.”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어떤……?”

“이전에 말했던, 그 살롱 있잖아요. 필레 공작과 다른 귀족들이 있던 곳.”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곳이 이사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수도 북서쪽으로요.”

그 말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리벨이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그가 감찰기사단장인 거야 리엔이 가르쳐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안 숨겼다고 쳐도…….

“그건, 어디서 입수하신 정보입니까?”

최근 필레 공작을 주시하고 있던 감찰기사단장인 그보다 정보를 먼저 얻어 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곤란해지는 것이다.

리벨에게 또 다른 조사 수단이 있거나, 아니면 필레 공작의 살롱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니까.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을 터다.

하지만 리벨은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사를 하고 있다잖아! 이사 다 하고 살롱 다 지어지고 나서 침투하면 뭐 해!

자고로 구린 짓 하려고 만드는 곳엔 온갖 함정과 경계용 장치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게 지금은 없는 데다가 건물을 필레 공작이나 귀족들이 한 땀 한 땀 노가다로 지을 게 아니라면, 필시 외부인의 손길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잠입을 하려면 지금이었다.

“제가…… 취미 생활 하는 곳에, 이런 데 관심 있는 친구가 좀 있거든요.”

결국 리벨이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을 잘 돌려 말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면서도 그에게 제 정체를 밝히지 않는 방법이.

그에게 진실을 전하면서도,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리벨은 마음이 무거운 것으로 꾸욱 눌리는 기분이었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시스테인은 결국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 정보의 신빙성을 떠나서, 필레 공작 정도의 인물이 감추는 정보를 그렇게 빠르게 입수하는 건 일반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리벨은 그 위치까지 특정하지 않았는가.

이사한다는 사실이야 어떻게든 기존의 살롱 위치를 알고 있으니, 주변에 죽치고 앉아 있다 보면 우연찮게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어떻게 안단 말인가?

“혹시 그 친구분이, 필레 공작 주변의 인물입니까?”

시스테인이 그렇게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리벨은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아니고요.”

숨을 다시 짧게 내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원래 크라이베리 신문 광고는 열 개인데…….”

어떻게 정보를 알아냈는지, 자세하게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시스테인의 표정은 미묘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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