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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04)화 (104/167)

104화

“그렇게 알게 되신 겁니까…….”

시스테인은 리벨의 긴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 주었다.

그리고 짧은 감상을 말했다.

“그 친구분이 신문사에서 일하시나 보군요.”

리벨은 대차게 움찔했다. 하마터면 포크 집어 던질 뻔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건 아니고! 신문사랑 일하고요!

무엇보다 그게 사실 친구가 아니고 나……인데……☆

물론 그걸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슬쩍 고개만 저었다.

“관련된 일을 해요.”

따지자면 관련된 일만 하는 거 맞지.

신문사에 앉아서 일하는 게 아니라 기사 주는 프리랜서니까.

“…….”

리벨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스테인을 살폈다.

아무리 친구 이야기라고 했기로서니, 리벨은 사실상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다 까발린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까지 외근을 자주 하면서 정보에 밝은 데다가 필레 공작 같은 거물까지 조사하는 직업?

사실상 제 정체를 광고하는 꼴이었다.

감찰기사단장인 그가 못 알아챌 리 없다.

……내가 기자라는 걸.

리벨이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그가 뭐라고 하든, 제가 벨이라는 사실만큼은 가장 나중에 밝힐 생각이었다.

기자라는 건 밝혀지더라도, 만일 그가 벨이 아니냐며 추궁하더라도, 그가 끝내 저를 싫어하게 될 때까지는 부인할 생각이었다.

‘당신이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리벨은 문득 지난 뜨거웠던 밤의 그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정말 아무 상관도 없을까. 당신의 어릴 적 상처를 건드린 셈인 나를, 또 다시 사람들의 시선 속에 당신을 던져 넣었던 나를 그렇게 가볍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리벨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니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나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게 그와 나 사이에 내가 처음 저지른 실수에 대한 당연한 대가다.

리벨이 그렇게 결연하게 결심하는 순간까지도 시스테인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심지어 의심 한 톨 없었다. 당연히 부정적인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요.”

심지어 리벨이 한 이야기가 모두 친구의 이야기라는 걸 믿는 기색이었다.

아니, 뭐야?

그런 감으로 감찰기사단장 하세요?

마음의 준비를 했던 리벨은 마치 대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중간고사 오늘 본대서 준비 빡세게 하고 갔더니 다음 날로 미뤄졌다고 했을 때의 그 허탈함.

내 마음의 준비는???

물론 리벨은 따질 군번이 아니었기에 입만 벙긋거렸다.

아니, 기자라는 건 당연히 알 수 있을 거고, 그럼 나한테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

리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까지 못 알아채는 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 사실 시스테인이 감찰기사단장이지만 엄청나게 감이 없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접어 두고.

그럼 나머지 하나는.

“?”

그는 그녀가 뭔가 다른 일을 할 거라 확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거 뭐?

이렇게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 간 크게 귀족 뒤를 캐고 다니고, 밥 먹듯이 외근하면서 정보에 밝은 직업이 또 있다고?

리벨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날 대체 뭘로 생각하고 계신 거지?

정체를 들킬 각오를 했는데도 안 들키니 뭔가 이상했다.

이상하다? 이쯤 되면 눈치챌 때가 됐는데?

거짓말하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리벨의 마음이 좀 더 불편해졌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주제를, 갑자기 끊을 수는 없었다.

결국 리벨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저번에 필레 공작 근처로 모였던 살롱도 수상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이야기를 얹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목록에 있었던 사람들이 죄다…… 유명하거나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도 그렇고, 이렇게 비밀스럽게 장소를 옮겨 가면서 모임을 갖는 것도 그렇고, 수상해서요.”

리벨은 신중해지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필레 공작은 엄연히 황가의 피를 이은 사람이잖아요.”

사촌이지만. 리벨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이렇게 긴 시간 지속되는 모임을 따로 가지려면, 황가에 보고할 의무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고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애초에 황가에 보고된 모임이었으면 그렇게 비밀스럽게 모이지도 않았겠죠.”

그녀가 식어가는 식사를 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거 혹시 위험한 거 아닌가 싶어서요. 이전에도 도와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때는 그저 시스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이번에는 제국의 감찰기사단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예요.”

제도기사단장은 양지의 일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감찰기사단장은 상대가 ‘반역 용의자’라는 가정 하에, 제국법에 저촉되는 일까지도 할 수 있다.

그들을 수사해 잡아내기 위해서라면.

그게 리벨이 시스테인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하며 재차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유였다.

“필레 공작, 페티아 후작, 롤란드 디엘렌, 쥬리 백작 영애, 안느 후작, 슈리엘 백작…….”

시스테인의 입에서 줄줄이 익숙한 이름들이 튀어나왔다. 리벨이 이전에 전해 주었던, 살롱에 있던 귀족들의 이름이었다.

아니, 난 그거 직접 보고도 까먹은 건데?

리벨은 그의 기억력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근데 이런 기억력과 비상한 머리로 내 정체는 모르는 거야, 지금?

모르는 거예요,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예요?

리벨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려고 했다.

그때 목록의 이름들을 뇌까리던 시스테인이 입을 뗐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카실라 대장간의 인부들 사이로, 감찰기사단을 파견하겠습니다.”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거기서 쯩(?) 까고 뭔 짓 하느냐고 따지는 거 아니죠?

“그들은 그곳에서 일을 도우면서 내부의 지도를 파악하고, 감찰기사만의 비밀 통로를 만들면서 그들의 목적에 관해 보고할 겁니다.”

“오…….”

리벨은 살짝 입을 벌렸다. 제도기사단의 딱딱하고 원칙주의적인 분위기와는 역시 다른 모양이었다.

저번에 검은 가면으로 잠입했을 때부터, 감찰기사단은 변칙적인 방법도 많이 쓰는구나 하긴 했지만…….

“…….”

……그런데 그날 왜 시스테인이 검은 가면이었던 거지?

뒤돌아 생각해 보면 거기 있던 사람 중에 검은 가면이 제일 어색했다.

그가 페티아 후작가의 대리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작 의심받았을 것…….

“……아, 페티아 후작가!”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감찰기사를 부르려던 시스테인이 그녀를 다시 돌아보았다.

“리벨?”

“그 목록에도 페티아 후작가가 있고, 저번에 소금 담합 사건에서도 페티아 후작가가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돈 많은 귀족들이 더 많은 돈을 쓸어 모으려고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만일, 반역을 위한 자금을 모으려는 일이었다면?

“소금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금은 현재 감찰기사단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시스테인은 신중하게 말했다.

“만일 그 일이 살롱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때 제가 찾았던 장부와는 다른 장부가 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제―”

……가 찾은 건데요? 리벨은 순간 머리를 비우고 말할 뻔했다.

“후웁!”

그리고 재빨리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이거 말하면 그 하인이 나인 걸 실토하는 꼴이잖아! 미쳤나 봐!

아니, 근데 들킨 거 아니었냐고! 진짜 내가 기자 같지가 않은가?

“많이 놀라셨습니까.”

그때 시스테인이 물었다. 리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그, 네.”

뭐 여러 가지에 놀랐다고 할 수 있죠. 리벨은 진땀을 흘렸다.

“단순한 소금값 담합 사건으로 만들어 시선을 끄는 것이 목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시스테인은 그런 그녀를 보다가, 신중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소금값 담합 사건에 대해서는 더 깊이, 그리고 말씀해 주신 장소에 대해서는 사람을 투입시켜 더 자세하게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는 시중일관 진지한 목소리였다.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끝내 아직 반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필레 공작과 그의 살롱이, 황가에 숨겨 가면서 모임을 갖는 정황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반역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정확한 증거는 없었으니까.

시스테인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럼 저는 오는 초대장들을 살펴볼게요.”

만일 저번과 같은 형식으로 불꽃에 반응하는 초대장이 온다면, 그 연회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리벨의 말에 시스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그렇게 리벨과 감찰기사단의 공조 수사(?)가 시작되었다.

시스테인의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감찰기사단에서는 적당한 인물을 선별해 카실라 대장간의 건축 현장에 파견했다.

“어이, 이쪽 흙으로 메워야 돼! 빨리빨리 움직여!”

“네엡!”

감찰기사들은 원래 변장과 잠입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대장간에서 일하려고 했던 자들과 비슷한 인상착의로 분장하여 카실라 대장간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정확히는 대장간의 지하 비밀 공간을 만드는 작업에.

그러면서 그들은 여러 가지를 알아냈다.

1. 일단 이 지하는 미로 형식이라는 것.

2. 각 구역의 작업자가 모두 달라,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도 이 구역의 완벽한 지도를 손에 넣을 수가 없다는 것.

3. 이 지하의 주인이, 마력석을 넣고 원하는 곳과 연결하는 게이트를 만들어 낼 예정이라는 것.

그건 심지어 십수 개였다. 어디로 통하는지는 직접 게이트를 설치한 자만 알 터였다.

“이쪽으로…….”

각 구역에 잠입해 있던 감찰기사들은 대부분 그 게이트를 설치한 ‘외부인’들을 목격했다.

그들을 상전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모시는 필레 공작가 기사의 모습도.

그 ‘외부인’들에게서는 기이한 느낌이 났다.

마법사처럼 보였지만 마법사라기엔 마력이 아니라 보다 살벌한 기운을 지닌 그들은, 주변에 어두운 안개라도 깔고 다니는 듯했다.

온통 음침한 느낌의 사람들은 머리카락 한 올 드러내지 않고 로브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그리고 4번, 마지막으로.

투입된 감찰기사들은 작업이 끝날 즈음 모두 암살 위협을 받았다.

아마 그들이 일반인이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하 건축 작업에 동원된 인부들은 모두 암살당했다.

지하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자는 없애 버렸다는 뜻이었다.

물론 감찰기사들은 적당히 죽은 것처럼 변장하고 빠져나와 그 사실을 알렸다.

“……단순 살롱으로 쓰이기엔 구조도 거대할뿐더러, 통로도 지나치게 크군.”

시스테인은 감찰기사들이 얻어 온 정보를 살피며 뇌까렸다.

물론 높은 사람들이 지내는 곳은 그 권세를 드러내기 위해 천장을 높이 짓고는 했다.

마치 황성처럼.

하지만 지하에 숨겨 놓은 장소에서 그럴 이유가 있나? 게다가 그 통로는 지나치게 넓었다.

훈련된 기사들이 오갈 수 있을 정도인 것은 물론, 인간이 아닌 것도…… 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스테인이 대공령에서 봤던 몇몇 커다란 마물들을 떠올릴 때였다.

“시스!”

리벨이 그의 집무실 문을 급히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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