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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05)화 (105/167)

105화

시스테인과 감찰기사들이 여러 가지 귀한 정보를 손에 쥐는 사이.

리벨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인과 그림자들을 보내, 지하를 건축하는 자들이 어디에서 자금과 자재들을 끌어모으는지 그 흐름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항상 규모 있는 상단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저번 소금값 담합 사건의 주범인 니아와 틸라 상단도 있었다.

“분명 감찰에 탈탈 털렸을 텐데…….”

리벨이 뇌까렸다. 그러면 규모가 어느 정도 작아졌어야 하는데, 그들은 건재해 보였다.

오히려 더 든든한 ‘아군’이라도 얻은 것처럼.

연루된 상단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리벨이 그림자들과 함께 살롱에서 봤던 상단주들의 상단도 섞여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리벨이 여느 때처럼 사교계 초대장을 태우고 있을 때였다.

―달칵.

헬리아가 창문을 열어 방 안을 환기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리벨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 헬리아.”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헬리아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원래 사교계의 매너는 초대장에 회신을 해 주는 것이다. 장작처럼 초대장을 불태우는 게 아니라.

그 때문에 초대장을 불태우는 주인 내외에게 잔소리를 하던 헬리아였지만, 그녀는 이번에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가문의 주인과 안주인이 수상한 자들을 쫓기 위해 그러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리벨이 올겨울 장작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화륵!

여느 때처럼 화롯불에 타오르던 편지들 사이에서 푸른 글자가 나타나는 편지가 있었다.

“어!”

리벨은 거짓말처럼 드러나는 푸른빛에 재빨리 그 편지를 꺼내 들었다.

열기가 닿자 푸른빛으로 숨겨져 있던 잉크가 드러나는 것.

저번 루엘라 후작가의 연회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용이 좀 달랐다.

“……?”

리벨은 편지의 앞뒤를 돌려 보았다. 하지만 푸른 글씨로 새로 드러난 내용은 하나였다.

[△]

세모 모양 그림. 단 하나.

하지만 리벨은 직감했다. 이건 그녀와 시스테인이 찾던 ‘살롱’의 실마리였다.

“시스!”

리벨이 방에서 뛰쳐나갔다.

*  *  *

리벨이 발견한 문제의 초대장은 아스테아 백작가의 초대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목록에 있던 가문 중 하나군요.”

시스테인의 말대로 예의 그 ‘살롱’에 오가는 자였다.

게다가 살롱에 오가는 자들, 자재의 운반과 자금을 대는 자들을 엮어 한 번에 들여다보니 그 관계가 좀 더 확실해졌다.

아스테아 백작가는 살롱과 연결된 타 가문이나 상단에서 물건을 옮길 때, 눈에 띄지 않도록 제 가문의 영지를 통해 물건을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가문이었다.

한마디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가문.

게다가.

“원래 아스테아 백작가라면 상업으로 흥한 가문이니, 이런 자재의 움직임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시스테인은 아스테아 백작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스테아 백작령.

수도 근처로 향하는 어지간한 물건은 모두 백작령을 거쳐야 이동이 가능했으니까.

조그마한 먹거리나 운반이 용이한 것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물건이 그러했다.

아스테아령 중간을 가로지르는 큰 강과 잘 만들어져 있는 마차 전용 도로는 그걸 충분히 가능케 했다.

하지만.

불을 붙이자 △가 드러나는 수상한 초대장을 보냈다는 걸 확인한 후, 아스테아 공작가에 감찰기사를 붙이자 좀 더 수상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유독 하루에 십수 대씩 마차를 통과시키는 상단이 있다고?”

하루에도 수백 대씩 마차가 지나가는 아스테아령은, 그 검문이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각 상단마다 지나갈 수 있는 마차의 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평균적으로 알려진 것은 하루에 10대 정도.

하지만 최근 아스테아령에 마차를 수십 대씩 통과시킨 상단들이 일부 포착되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는 이름이었다.

니아 상단, 틸라 상단.

그 짐마차들은 당연히 카실라 대장간으로 향했다.

명백히 아스테아령에서 그들의 검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마디로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겉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아스테아 백작과 백작 부인이 그 살롱에 연관되어 있는지, 연관되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그들을 직접 살펴야 알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 편지에 그려진 세모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직접 저택에 가 봐야 알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건 디란타 대공 부부라는 신분에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덜컹!

마차가 흔들렸다. 오랜만에 시스테인과 함께 타는 디란타 대공가의 마차였다.

마차에 그려진 대공가의 문양만 봐도, 근처의 마차들은 비켜나기 바빴다. 마부들이고 기사들이고 예의를 차리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은 지금 아스테아 백작 부인의 연회에 귀빈으로 초대되어 가고 있었다.

“마침 가면무도회네요.”

리벨은 초대장을 재차 살펴보며 말했다.

아스테아 백작 부인은 가면무도회를 즐겨 개최하는 사람이었다.

십여 년도 전부터 이미 그녀는 가면무도회 중독자였다.

아는 사람이라도 얼굴을 가리고 만나면 색다른 만남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건 그렇지. 색다른 만남이 되지.

리벨은 눈앞의 시스테인을 바라보았다.

화사한 금발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푸른빛 벽안. 옅은 미소를 띤 조각 같은 얼굴.

그 얼굴이 검은 가면과 검은 머리칼로 가려졌을 때에는 색다른 느낌을 줬던 것도 같았다.

‘아 그, 남부 틸리아 씨를 72수레 거래해서 큰 수익을 올렸다는 상단 말인가.’

시스테인이…… 그렇게 잠입과 연기에 익숙지 않은 티를 내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리벨은 새삼 검은 가면의 모습을 되짚어 보았다.

원래 잠입 초짜들이 쓸데없는 정보까지 다 외워 가는 법이다.

일반인은 몰라도 될 것 같은 정보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면허증 일련번호까지 외우고 다니는 거다.

정작 면허증 진짜 주인도 일련번호까지는 모를걸?

하지만 시스테인은 좀 그런 과인 듯했다. 한마디로 연기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

“원래 아스테아 백작 부인은 가면무도회를 즐겼으니, 특별히 이번 초대장 때문에 가면무도회를 개최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시스테인이 그녀의 손에 들린 초대장을 가리켰다.

멀쩡한 편지 봉투로 감싸여 있었지만, 그 안쪽의 편지에는 분명 그을린 자국과 함께 ‘△’ 모양의 푸른 글씨가 나타나 있을 터였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문제는 이 세모로 무엇을 전하려고 했느냐는 건데.

그건 시스테인과 자신이 잠입…… 다시 말해, 연기를 해서 알아내야 하는 일이었다.

“시스, 연기 잘해요?”

리벨이 슬그머니 물었다. 이미 정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의 말에 시스테인이 멈칫했다.

아주 조금의 침묵 끝에 그가 말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잘하는 건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리벨은 턱을 매만졌다.

“그럼―”

그녀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시스테인이 불쑥 물었다.

“리벨은 어떻습니까.”

“네?”

시스테인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리벨은, 잘하십니까?”

그 말에 순간 리벨은 말문이 막혔다.

알고 묻는 건지, 모르고 묻는 건지 헷갈려서.

하지만 이것까지 거짓말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아니, 애초에 그에게 더 이상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리벨은 팔짱까지 끼고 말했다.

“잘하죠.”

“그렇습니까.”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웃었다.

“그럼 제가 문제겠군요.”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돌아갔다.

저도 모르게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다잡은 리벨은 그를 살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번 잠입에서 우리가 할 일은 시선을 끄는 것 정도예요. 그건 그냥 연회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고요.”

가면무도회 특성상,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다른 연회처럼 대대적인 관심은 받지 못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서로의 신분을 숨기고 하는 연회니까.

하지만 디란타 대공 부부가 이번 가면무도회에 온다는 건 이미 많은 귀족이 알고 있을 것이다.

대문짝만한 가문 문양을 단 마차를 타고 가고 있으니까.

“대공 전하께서도 오신 건가?”

“아까 창문 안쪽으로 살짝 보이시는 것 같았는데…….”

아스테아령으로 향하는 마차들이라면 마찻길이 겹칠 수밖에 없으니, 본의 아니게 다른 가문의 기사들이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저런 자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전해질 것이다.

대공 부부가 이번 연회에 참여했노라고.

그러니.

“이미 시선은 쏠렸을 거예요. 마음 놓고 연회에만 참여해요.”

리벨이 시스테인에게 말했다. 그러니 그는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평소의 시스테인 폰 디란타처럼 행동하면 그만이다.

물론 많은 잠입 취재 초짜 기자들이 그거 하나를 못 해 가지고 수상한 티를 팍팍 내고는 하지만…….

이번엔 프로가 옆에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리벨이 자신 있게 웃은 순간이었다.

시스테인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의 시선은 아까부터 줄곧 쳐다보고 있던 아스테아 저택으로 향해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그 저택을 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스테아 저택에서 기묘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리벨은 눈을 크게 떴다. 시스테인이 그를 돌아보았다.

“감찰기사들은 마법에 지식만 있을 뿐, 마력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자들은 얼마 없습니다. 만일 아스테아 저택에 마법적인 장치가 있다면, 제가 직접 살펴야 합니다.”

시스테인 그 자신이 평소에 자신의 마력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보니, 마력 감지에 능숙하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감찰기사 중에서 시스테인만 그렇다는 건 굉장히 안 좋은 소식이었다.

“다시 말해, 제게도 약간의 연기력이 필요할 것 같군요.”

그가 한 손을 들어, 검지 한 마디를 짚어 보이며 말했다.

난감한 듯 웃는 미소가 눈이 부셨다.

“…….”

그렇게 눈부시게 웃는다고 해도 없는 연기력이 생겨나진 않거든요!?

“오…….”

리벨은 차마 머리는 싸매지 못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갑자기 잠입의 난도가 급상승했다.

―덜컹!

그런 리벨의 마음도 모르는지, 마부는 점점 마차의 속도를 올려붙이고 있었다.

속도 줄여!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리벨의 절규와 함께 아스테아 가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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