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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06)화 (106/167)

106화

가면무도회에서 가발까지 쓰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은 리벨에게는 아주 다행인 사실이었다.

안 그랬으면 자줏빛 머리칼 덕에 누가 봐도 디란타 대공비라는 것을 알아챘을 테니까.

두 사람이 쓴 가면은 간단했다.

검은색 베이스에 은색 장식과 깃털이 담겨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심플한 스타일의 가면.

“어서 오십시오, 손님.”

이미 아스테아 가의 집사는 디란타 대공 부부가 온다는 사실을 연락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면무도회에 참가하는 귀족들을 ‘손님’이라고만 부를 뿐, 별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가면무도회에서 서로의 정체를 맞추는 건 그 손님들 자신이지, 사용인들이 아니었기에.

이런 가면무도회에서 사용인들은, 그저 그들을 모두 하나같이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 주는 것이 매너였다.

매너에 따라 가볍게 인사한 집사가 홀 앞의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 위에 달려 있던 화려한 장식의 종이 울렸다.

―찰랑!

“손님께서 드십니다.”

그 말에 홀 안에 이미 와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원래 가면무도회라면 새로 들어오는 손님에게 이렇게까지 시선이 쏠리진 않지만, 지금 이곳만큼은 달랐다.

“저분들일까요?”

“글쎄요, 일단 지켜보아야…….”

“이미 홀에 계실지도 모르지요.”

디란타 대공 부부가 이 가면무도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용인들을 통해 순식간에 소문이 난 탓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차에서 내린 대공 부부가 저택 본관의 홀까지 들어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올 때가 됐다는 뜻.

“이미 와 계실 리가요. 지금까지 오신 분들이 누구인지는 대충 파악했지만 디란타 대공 내외께서는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마당발이라고 주장하는 은색 가면의 귀족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분들일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렇게 가면을 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리벨과 시스테인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또각.

리벨과 시스테인의 발소리가 나란히 홀을 울렸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홀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애초에 홀 안쪽은 높은 신분의 귀족들이 차지하는 자리.

아무리 가면무도회라고 해도 모두가 알아볼 거라면 굳이 신분을 감출 생각은 없다는 듯, 두 사람은 당당하게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설마, 디란타 대공비 전하?”

그때 용기 있는 붉은색 가면의 영애가 물었다. 검은 가면을 쓰고 있던 리벨은 멈칫했다.

“……오자마자 들킬 줄은 몰랐네요.”

그러더니 난감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물론 하나도 난감하지 않았다.

원래 서너 커플씩 홀에 입장하는데 이렇게 혼자 들어오는 커플이라면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띄라고 온 것이니 상관없었다.

“제가 맞힌 건가요?”

붉은 가면의 영애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리벨은 주저하는 듯 시스테인을 올려다봐 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결국 리벨이 살짝 가면을 들었다 내려놓아 보였다.

“네. 아무래도 전 가면무도회 체질은 아닌가 봐요, 시스.”

그 말에 시스테인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즐겁게 즐길 수만 있다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담담한 목소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다.

“귀한 분들이 자리하셨군요.”

“가면무도회에도 오실 줄이야.”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서로의 신분을 비밀로 해 주어야 하는 가면무도회답게, 일반 연회만큼 사람들이 몰려들진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충분히 쏠렸다.

두 사람이 원하던 대로.

에스코트로 닿아 있는 두 사람의 손이 꼭 맞잡혔다.

*  *  *

한편 그들이 성공적으로 계획을 수행하는 사이. 약간의 차질 아닌 차질을 빚는 집단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시스테인 휘하의 감찰기사단과, 리벨 휘하의 그림자들이었다.

“…….”

“…….”

홀에서 다소 떨어진 방은 두 집단 덕에 침묵에 싸여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평범한 귀족가의 기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림자들은 시스테인이 ‘이런 일에 익숙한 자들로 특별히 선별해’ 데려왔다는 말로, 눈앞에 있는 기사들이 감찰기사임을 짐작이나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감찰기사들은 정말 그림자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냥 대공 전하께서 신뢰하시는 실력 있는 기사들.

그 때문에 대공비 전하께서 외근을 나가실 때에도 디란타 대공가의 기사들 없이 이들만 대동한다고 들었다.

“…….”

“…….”

하지만 실력 있는 기사가 잠입과 정보 수집까지 잘하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 앞에 주인들이 공통적으로 던져 준 명령은 이것이었다.

[홀에는 최소한의 호위 인력만 남기고, 저택 전체에서 수상한 것이 있는지 수색하라]

수상한 것이 저택 복도 한가운데에 있을 리 없으니 오만 데에 다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그런데 다른 가문의 기사 모습으로 쏘다닐 수는 없으니, 변장 내지는 잠입술이 필수였다.

“……일단 최상층인 4층부터 내려오면서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런 그들 가운데에서 그림자 미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감찰기사 요한은 반색했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잠입에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함께 움직이지 말자니 땡큐였다.

“그럼 저희는 아래에서부터 수색하겠습니다.”

요한이 말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이어 말했다.

“두 번 빠르게 훑어보죠.”

그런데 그의 말을 거의 동시에 따라 한 사람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림자 미엘이었다. 요한이 멈칫했다.

잠입과 정보 조사의 기본은 큰 틀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대략적인 틀을 알고 있어야 세부적인 것까지 확인 가능하니까.

하지만 원래 기사란 우직한 자들은 한번 일할 때 꼼꼼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4층부터 내려오면서 뒤지겠다면 절대 두 번 돌아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뒤진다.

그 덕에 잠입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놓치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대공비 전하 휘하의 이 기사들은 아닌 듯했다.

미엘이 말을 이었다.

“처음은 먼저 저택의 구조부터 간단하게 훑어보고, 이 자리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한 후 저택의 구석구석을 조사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건 그림자의 정보 수집 방식이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그,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공교롭게도 감찰기사단의 것과 일치했다.

요한과 함께 감찰기사단의 시선이 한데 맞물렸다.

그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가능성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미 감찰기사들 사이에, 디란타 대공비 리벨이 감찰의 조력자라는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그런 분과 함께 ‘외근’을 다니는 자들.

‘설마 이자들도 조력자들인가?’

감찰기사단의 눈에 조금의 호감이 덧씌워졌다.

“그럼 출발합시다.”

요한이 손짓했다. 그러자 그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건 누가 봐도 기사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

물론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습을 감추는 요한이나 다른 감찰기사들도, 일반적인 기사의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낯선 기사들에게서 익숙한 동종 업계 종사자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  *  *

두 집단이 협업 아닌 협업을 하는 사이.

리벨과 시스테인은 적당히 홀을 한 바퀴 돌았다.

이제 홀 안에 이 심플한 검은 가면의 부부가 디란타 대공 부부라는 걸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앗, 어깨에 깃털이 떨어졌어요, 부인.”

“이 와인은 특히 남부의 풍미가 묻어나 깊은 맛이랍니다. 한잔 같이 들어 보시겠어요?”

덕분에 온갖 핑계를 들어 그들과 이야기하려는 자들은 넘쳐났다.

―툭!

“이런!”

실수로 가면을 떨어뜨리는 귀족은 벌써 네 번째였다.

어떻게든 디란타 대공 부부에게 눈도장 한번, 좋은 인상 한번 남겨 보려는 귀족들의 노력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시선이 엄청나게 쏠리네요.”

리벨은 그들에게 적당히 답해 주다가, 시스테인에게 속삭였다.

시스테인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무도회라 다행입니다.”

리벨은 그 말에 백 번, 천 번 공감했다.

가면무도회는 ‘어쩌다가 우연히’ 상대의 신분을 알아냈더라도 비밀을 지켜 주는 것이 매너였으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연회가 시작하자마자 지금까지 사람들로 만들어진 원에 둘러싸여 질문으로 쥐어 짜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시스테인은 홀 한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하인으로 분장한 감찰기사 한 명이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대략적인 조사는 끝이 났고, 수상한 곳을 찾았다는 의미였다.

때가 왔다.

시스테인은 리벨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쉬고 오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은 리벨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모두 들리는 것이었다.

“그럴까요?”

검은 가면 부부의 말에 주변의 귀족들은 내심 아쉬워했다.

특히 한 번도 말을 못 걸어 본 사람들이 그랬다.

하지만 쉬고 온다는 건,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다.

그들은 다시 검은 가면 부부가 오면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그러는 동안 시스테인은 리벨을 홀에 붙어 있는 작은 방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미리 감찰기사들이 정리해 둔 방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곳이기도 했다.

―달칵.

따라 들어온 감찰기사가 문을 닫자마자, 리벨은 가면을 살짝 벗었다.

가면을 오래 쓰고 있으니 답답했다.

“후우.”

리벨이 한숨을 내쉴 때였다. 시스테인 역시 가면을 벗었다.

다소 흐트러진 그의 금발 사이로 청명한 벽안이 드러났다.

“리벨. 그럼 계획대로.”

시스테인이 속삭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내 리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스테인이 옆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던 감찰기사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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