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10)화 (110/167)

110화

헉.

리벨은 소리도 못 내고 숨을 다급히 들이마셨다.

주변을 홱홱 둘러보니 온통 똑같이 생긴 문들뿐이었다.

이 중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어디?’

리벨이 입 모양으로 묻자 나인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근처라는 것뿐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진 못한 듯했다.

“…….”

리벨은 할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는 그녀를 아예 엘브가 안아 올렸다.

“…….”

실례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인 그녀는 빠르게 복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볍고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다.

탑승감 쥑인다…….

리벨이 그렇게 어이없는 생각을 할 때였다.

「―는 것이 문제였군.」

「이런 간단한 문제로…….」

아까와 같았다. 엘브와 나인은 전혀 듣지 못하는 듯했지만, 리벨에게는 문 너머의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방음 마법을 믿고 소리도 안 죽이고 대화하는 모양이었다.

“!”

리벨이 허공에 손짓했다.

멈춰 선 두 그림자에게 리벨이 방 하나를 가리켰다.

소리가 들리는 방이었다.

‘저 방인 것 같아.’

눈이 마주친 그림자들은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복도 입구 근처에 시스테인이 숨어 있으니 그 근처에 숨을 순 없고, 다른 곳에 숨으려는 것이었다.

최대한 소리를 감추기 위해 맞은편 벽에 붙은 엘브가 걸음을 옮길 때였다.

―스륵.

손끝이 살짝 벽에 닿았을 때, 리벨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

그건 소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느낌이었다. 정전기 같은.

‘잠깐.’

입을 뻥긋거린 리벨이 벽으로 손을 뻗었다.

아까 손이 닿자마자 이상한 느낌이 났던 그곳이었다.

그녀가 손을 완전히 대자, 벽에 소리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리벨도, 미리 이 복도를 조사했던 다른 두 그림자도 눈을 크게 떴다.

*  *  *

“정확한 위치는?”

“이쪽입니다.”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테인은 수상한 복도에 위치한 숱한 방 중 하나에 잠입해 있었다.

이곳은 유사시 탈출에 용이하면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위치로 감찰기사들이 선별한 곳이기도 했다.

“복도 천장이 낮군.”

“이걸 위해 만든 곳이니까요.”

“하긴 크게 만들 수는 없었겠지.”

하나는 아스테아 백작 부인의 목소리다.

하지만 그녀에게 말을 거는 자들의 목소리는 시스테인이 모르는 목소리였다.

“…….”

시스테인이 저와 함께 숨어 있던 감찰기사 젠을 돌아보았다.

젠이 고개를 저었다. 그도 모르는 목소리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고치고 나서 바로 귀환하시는 건 피로하시지 않겠습니까? 차라도 한잔하시는 것이.”

시스테인의 귀로 백작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절절하게 매달리는 느낌의 목소리였다.

“흥, 우린 누군가들과는 달리 바깥에 나다니면 곤란한 자들이라. 정중하게 거절하겠소.”

전혀 정중하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코웃음을 치며 백작 부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물건을 고치면 그길로 돌아갈 테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오.”

“알겠어요.”

답하는 아스테아 백작 부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물건을 고친다고?

그는 문득 그을린 편지에서 봤던 세모 모양을 떠올렸다.

미완성이나 불완전함을 뜻하기도 하는 세모.

저들이 고친다는 건 아마 아까 그 게이트일 것이다.

게이트에 마법적인 문제가 있어서 고치러 온 게 분명한데.

“…….”

그 정도 규모의 게이트를 저렇게 가볍게 고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마법사가 이 대륙에 얼마나 될까?

애초에 그의 예상대로라면, 저런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정상적인’ 마법사는 이 대륙에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달칵.

그러는 사이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어 보니, 그들이 살펴본 방이 분명했다.

게이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 거다.

―파앗!

그와 동시에 마력 파동이 주변을 쓸고 지나갔다.

감찰기사 젠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뿐이었지만, 시스테인은 달랐다.

마력에 전보다 훨씬 민감해진 그는 방 안쪽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방금의 마력 파동은 방음 마법을 위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방에서 들려오던 인기척 등이 없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마력 파장까진 숨기지 못할 것이다.

“…….”

시스테인은 문제의 방 쪽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예상대로 마력 파장이 다시 일어났다.

―우웅! 우우웅! 우웅!

그건 연달아 세 번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다시 마력 파장이 퍼져 나갔다.

방음 마법이 풀린 것이다.

그리고 게이트가 있는 방 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하나뿐이었다.

아스테아 백작 부인의 것.

“…….”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그 정체 모를 자들이 게이트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 분명했다.

저 게이트를 ‘고친’ 후에.

―또각, 또각.

시스테인이 생각에 잠긴 사이, 아스테아 백작 부인의 힐 소리가 멀어져 갔다.

들어왔던 계단 쪽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

시스테인은 충분히 인기척이 멀어진 후에, 문을 열었다.

당연히 문 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사락.

그러는 그의 시야에,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아스테아 백작 부인의 옷자락이 보였다.

그가 다시 소리 없이 문을 닫은 순간이었다.

―철컥!

“……!”

시스테인이 멈칫했다. 감찰기사 역시 주변을 경계했다가 말했다.

“문이 잠기는 소리입니다.”

“복도의 문이 전부 잠긴 건가.”

아무래도 이 저택의 주인이 이 복도에 마력적인 간섭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잠그는 것 정도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마터면 갇힐 뻔했습니다.”

감찰기사 젠이 고비를 넘겼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시스테인은 그 말에 굳이 답하진 않았다.

갇혔다고 해도 마법을 풀어 문을 열 순 있었을 것이다.

물론 문을 잠근 아스테아 백작 부인 측에서 뭔가를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

“…….”

그는 답 대신 젠에게 복도 끝을 가리켜 보였다.

젠은 고개를 깍듯이 숙이고 소리 없이 복도 끝으로 향했다.

계단 쪽으로 사람이 오는지 보러 가는 것이었다.

시스테인은 그가 안전하다는 사인을 주고 나서야, 게이트가 있는 방으로 움직였다.

게이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게이트 너머로 넘어간 수상한 자들.

그들이 문 앞을 지나갈 때, 문틈으로 밀어 넣어 그자들의 몸에 붙인 제 마력이 게이트를 잘 통과했다는 사실을 느낀 탓이었다.

적어도 게이트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

그는 게이트가 있는 방을 신중하게 살폈다.

아까 아스테아 부인에 의해 문이 잠길 때도 이 방의 문에서만큼은 문 잠그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함정 등의 장치가 없음을 확인한 그가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그가 문을 열자마자, 게이트가 크게 일렁였다.

“이건…….”

―달칵.

그답지 않게 시스테인은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이쪽에서 넘어가는 사람이 없는데 게이트가 마력 파장을 내뿜는 건, 단 한 가지를 뜻했다.

게이트 너머에서 사람이 건너온다.

“쌍방향 게이트였다고?”

시스테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제가 짐작하고 있는 대로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마력을 모았다고 해도 쌍방향 게이트를 만들려면, 너무나도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그만큼의 수많은 ‘제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 틈은 없었다. 다시 숨어야 했다.

그가 원래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감찰기사 젠이 복도 끝에서 얼굴이 새하얘진 채 달려오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필레 공작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가 속삭였다.

“필레 공작?”

이 연회에 필레 공작은 안 왔는데?

가면무도회라고 해도, 이미 연회에 참석하는 자들의 명단은 감찰기사단의 손에 들어온 지 오래였다.

그들 중에 필레 공작은 없었다.

게다가 이 복도로 오고 있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게이트를 보러 온 거다.

“게이트 너머에서도 사람이 건너오고 있다.”

시스테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젠이 입을 떠억 벌렸다.

아까 아스테아 백작 부인이 복도에서 나간 뒤로, 이 복도의 문은 싹 다 잠기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 복도는 꾸밀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적치물 하나 없었다.

“그럼……!”

젠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저택의 지도가 떠올랐다.

하지만 3층과 4층 사이에 있는 이 복도에 더 숨을 곳은 없었다.

옆에 있는 많은 방들 말고는.

“문을 열지.”

시스테인이 다른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잠근 마법을 풀면 아스테아 백작 부인이 이상함을 느낄 가능성도 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들키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가 문을 잠근 마법을 풀려는 순간이었다.

―후욱!

갑자기 문 옆의 벽이 새까맣게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벽 뒤에 숨겨져 있던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누군가의 손이 시스테인을 확 잡아당겼다.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뿌리칠 수가 없었다.

분명 낯설지만 익숙한 모습의 여자를 보았기에.

자줏빛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한없이 낯선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스테인의 마력을 가라앉히는 힘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