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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59)화 (159/167)

159화

리벨은 롤란드의 처형장에 굳이 가 볼 생각이 없었다.

아니 일단, 시스테인부터 반대했다.

“피를 무서워하시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좀 날조가 된 정보…… 아니 그렇다고 피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결국 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대신 사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에 살려 달라며 비는 모습은 보기로 했다.

“리베에에에에엘! 내가 잘못했어! 사실 내가 너어어어얼!”

“나인, 저놈 입 좀 막아.”

저놈이 죽기 전에 무슨 스캔들을 만들려는 거야?

리벨의 명령에 재빠르게 창문으로 뛰어내린 나인이 롤란드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읍으브읍! 살려 줘!”

막힌 입으로도 어떻게 잘 외치는 그였다.

싹싹 비는 모습이 아주 걸작이었다.

내가 미쳤다고 살려 주냐?

저놈 때문에 고생한 게 얼만데, 어?

리벨은 끌려가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시스테인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후 처리에 나섰다.

“살롱에 오간 자들은 모두 잡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림자가 와서 보고했다.

“일부는 세이프티 바에 숨어들었습니다만.”

“거기에?”

리벨이 멈칫했다.

“거긴 감찰기사단이 진입할…… 수 있나?”

하긴, 감찰이 반역자 잡겠다는데 막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문제는 세이프티 바의 주인이었다.

“거기는 범죄자라고 해도 잘 안 내주기로 유명한데…….”

어지간한 건이 아니고서야 협조도 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 고발성 기사를 쓸 때도 거기에서 입장 거부를 당한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 주인이 협조해 줬어?”

협조했어도 적어도 모든 손님이 다 룸에 들어가면 룸을 조사하라고 하는 식으로 조사할 텐데.

적어도 잡혀간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도록.

그게 세이프티 바가 손님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협조해 주셨습니다.”

반역이라 그런가?

누가 바의 주인인지는 몰라도, 세이프티 바의 비밀을 지켜주려는 뒷배 귀족들은 차고도 넘쳤다.

어떤 말을 하든 비밀로 절대 새어 나가지 않는 곳.

애초에 익명이 보장되는 곳.

그런 귀한 곳은 얼마 없었으니까.

하지만 반역으로 흉흉한 분위기인 지금, 반역자들을 감춰 줘 봐야 세이프티 바 주인만 위험해질 뿐이다.

“세이프티 바도 반역에는 협조하는구나.”

리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그림자가 불쑥 말했다.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닐 듯싶습니다.”

“응?”

그럼 뭔데? 돌아보는 리벨에게 뜻밖의 진실이 떨어져 내렸다.

“세이프티 바의 주인이 리엔 폐하이십니다.”

“뭐?”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그녀가 시스테인을 번개같이 돌아보았다.

“아아알고있었어요?”

그 말에 시스테인도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감찰기사단으로서 조사를 위해 들어가려다 몇 번이나 거부당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황가의 검을 막나 했는데, 그게 어머니 리엔의 바였다면 이해가 갔다.

감찰기사단의 이름으로 협조 요청서를 올려도 허가가 유독 늦게 떨어지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몰랐습니다.”

그가 이마를 짚었다. 그가 그걸 알았으면 거기서 술을 마실 이유가 없었다.

리벨은 그 말에 턱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 그그그럼.”

잠깐, 이 사람하고 나하고 처음 바에서 만났을 때 보고 올라간 거 아니야?

리벨은 ‘뭐? 시스가 누구랑 밤을 보냈다고?’ 하면서 흥미에 눈을 반짝이는 황태후 리엔의 얼굴이 눈앞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설마.”

아아아니겠지? 리벨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럼 그 일사천리 결혼도 다?

미리 바에서 있던 일을 보고받고 날치기 결혼으로?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셨던 거죠, 리엔 폐하?

리벨이 속으로 비명을 지를 때였다.

“아, 그리고 이벨라 자작도 잡혔습니다.”

그림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리벨이 멈칫했다.

이벨라 자작이 왜? 반역에 참여했나?

아.

그녀는 머리를 볶던 손을 내렸다.

“그 살롱을 오간 사람은 다 잡은 거지?”

“예.”

그림자가 고개를 숙였다. 리벨은 혀를 찼다.

한심한 인간 같으니!

이벨라 자작은 반역을 하러 간 게 아니라 순전히 도박을 하러 간 것이었다.

역시 손모가지를 콱! 했어야 했는데!

“도박을 쉽게 끊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그래도 도박하다가 도매금으로 반역자들하고 잡혀가는 건 정말 너무 한심한 거 아니냐?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시스테인이 그때 불쑥 물었다. 리벨은 손을 내저었다.

“전혀요. 애초에 의절하다시피 한 사이였어요.”

그 인간하고 저는 단지 불쾌한 하숙집 주인과 을인 하숙인 관계였는데요?

시스테인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의 정도 없을 거라고 리벨은 자신할 수 있었다.

“곧 감옥으로 갈 겁…… 아, 저기 오는군요.”

그림자가 창밖을 가리켰다.

리벨은 업무를 보던 방의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아직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는 뚜렷하게 들렸다.

“……가 누군지 아느냐! 현 대공비의 아비! 되는 자다! 이거 놔……!”

“어우.”

리벨은 듣다 말고 창밖에서 고개를 다시 집어넣었다.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해졌다.

“입을 열지 못하게 할까요?”

그때 그림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리벨은 그 목소리에서 묘한 한기를 잡아냈다.

“아냐.”

지금 입 닫게 하라고 하면 입을 영원히 못 열게 할 것 같았다.

“놔라! 리벨! 아비가 왔다아아아!”

하지만 다음 순간 리벨은 그냥 입을 막으라고 할 뻔했다.

“리베에에에에에에엘!”

“와우.”

리벨은 결국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저자가 대공비 전하의 아버지셔?”

“그런 것 같은데?”

복도를 지나가던 시녀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얼굴이 화끈해진 리벨이 손부채질을 했다.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요.”

결국 리벨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시스테인은 그녀의 옆에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같이 가죠, 리벨.”

부드럽게 웃은 그가 리벨을 에스코트했다.

“이런 일로…… 안 따라오셔도 되는데.”

저런 자가 장인이라고 하면 시스테인도 낯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스테인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런 일이기에 따라가는 겁니다.”

그가 리벨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리벨의 얼굴이 조용히 타올랐다.

이 사람이 무뚝뚝했던 사람이라고 누가 생각할까.

“헉.”

지나가던 시녀들은 물론 변한 시스테인의 모습에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므로, 들고 있던 물건을 와르르 떨어뜨렸다.

물론 그건 리벨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딸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녀가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마침 그녀가 있던 건물 앞을 지나던 이벨라 자작이 쩌렁쩌렁 외쳤다.

“워우.”

리벨이 다시 몸서리를 쳤다. 저 소름 돋는 호칭은 뭐야?

대공비가 나오자 그를 끌고 가던 그림자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리벨은 그에게 다가갔다.

“어쩌다가 이런 꼴로 잡혀 오셨어요?”

다 알지만 모르는 척, 그녀가 슬쩍 물었다.

그러자 이벨라 자작이 줄로 묶인 양손으로 리벨의 손을 꼬옥 붙들었다.

“내가…… 내가 정말 딱 한 번만 따고 그만두려고 했다. 저택이 저당 잡힌 게 있어서 그걸 어떻게든 하려고…….”

어휴. 리벨은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도박하지 말랬죠.”

그 말에 이벨라 자작이 움찔했다. 그러다가 곧 금세 뻔뻔한 표정을 회복했다.

“내가 다음엔 진짜, 진짜 끊으마! 진짜다! 내 이름에 걸고 맹세하마!”

그 이름에 뭐가 남았다고 맹세씩이나 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리벨은 손을 내저었다.

“안 믿어요.”

“안 믿긴! 이 아비가 허튼 말 하는 것 봤느냐!”

그 말에 리벨은 입을 떠억 벌렸다.

“네. 무지 많이.”

“…….”

“…….”

그들 사이로 찬 바람이 불었다. 잠시 굳어 있던 이벨라 자작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봐라. 딸아. 내가 도박하다 잡혀갔다는 소리가 돌면 너를 사교계가 얼마나 비웃겠느냐? 네 명예가…….”

그 말에 시스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디란타 대공가의 명예에 대해 운운하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벨은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불쑥 말했다.

“그런 거에 흠집 날 명예였으면 애초에 결혼도 못 했거든요?”

시스테인은 그 말에 리벨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어떤 모습의 당신이었든 난 결혼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의 생각이 읽힐 리 없는 리벨은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처벌 피해 갈 생각 하지 마요. 난 대공비고 딸이고 댁 구해 줄 생각 전혀 없으니까.”

“아니, 그렇게 정 없이 굴면―”

정이 있었어야 정 있게 굴지 않을까요? 리벨은 그림자들에게 밝게 웃어 주었다.

“저놈 손에 트럼프 카드는커녕 종이 한 짝도 여 주지 마.”

그러자 그림자들이 쩌렁쩌렁 외쳤다.

“예!”

“종, 종이는……!”

이벨라 자작이 기겁했다.

“돈도 종이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했다. 리벨은 어이가 없어 손부채질을 했다.

“정신 차려라, 좀.”

어떻게 인간이 등장부터 퇴장까지 저렇게 한심할 수가 있지?

리벨은 손을 내저었다. 어서 끌고 가라는 뜻이었다.

“딸아아아아! 이건 너무하지 않으냐!”

도박 강제 치료 위기(?)에 놓인 이벨라 자작이 절규했다.

리벨은 그러거나 말거나 길에서 물러났다. 끌고 가라는 뜻이었다.

그녀와 시스테인에게 인사한 그림자들이 다시 그를 끌고 갈 때였다.

리벨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근데 감옥으로 가는 거 아니야?”

이쪽은 감옥 반대 방향인데? 오히려 궁을 나가는 방향이었다.

그 말에 그림자가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이자는 다른 곳으로 끌고 가라 명하셨습니다.”

“다른 도박하던 놈들은?”

“그자들은 모두 불법도박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리벨의 질문에 그림자가 바로 답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그럼 이쪽만 색다르게 처벌하겠다는 뜻?

“어디로 가는 거지?”

그녀가 묻는 사이 이벨라 자작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림자들은 그녀의 질문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대공비 전하께는 준비를 마치면 연락을 드리라 명하셨습니다만…….”

“준비?”

뭔 준비?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완전히 비밀에 부치란 명은 아니었는지 결국 그림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벨라 자작가로 끌고 가라는 명이십니다.”

그 말에 이벨라 자작이 눈을 크게 떴다.

“내 저택으로!?”

몸도 곧게 편 것이 완전히 희망에 가득 찬 듯했다.

하지만 리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댁 집 아니잖아요?

문득 리벨은 이벨라 자작저를 누가 샀는지 떠올렸다.

“……혹시 두 분 폐하 중 어느 분께서 명하신 거지?”

그 말에 그림자가 바로 답했다.

“카리스 황제 폐하이십니다.”

이벨라 저택을 별장으로 쓴다며 샀던 사람이잖아!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카리스가 이벨라 자작을 데려가는 건 거기서 뭔가를 하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리벨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자 시스테인이 물었다.

“가 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리벨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카리스라면 이 도박에 미친 인간을 용서해 주진 않을 것 같아서였다.

원래 도박엔 충격 요법이랬어!

사형이면 벌써 다른 곳으로 끌려갔을 테니, 카리스가 뭘 할지 궁금해졌다.

“살려 줘서 고맙다! 내가 앞으론 성실하게 산다고 다짐하마!”

전생에 다진 마늘을 밥 대신 먹었는지 다짐이 많은 이벨라 자작은 희망에 찬 얼굴로 떠났다.

리벨은 그 시선을 무시하면서 눈썹을 치켜올렸다.

“불법도박죄면 원래 재산 몰수죠?”

“예. 그런데 이번 건은 사안이 사안이라 가중 처벌될 듯합니다.”

시스테인이 답했다.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재산 몰수에 가중 처벌이면 뭐지?

노역이라도 뛰나?

호기심이 안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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